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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능선
손 정 모
차창 밖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기 그지없다. 4월 초순이라 전국의 산야에서는 진달래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겨우내 계속 휘몰던 추위로부터 탈피하려는 우주의 몸짓으로 여겨진다. 차를 몰면서 흘깃 내비게이션 화면을 바라본다. 목적지까지는 반시간만 달리면 도착되리라 여겨진다.
어제 저녁에 전화선을 타고 귓전으로 흘러들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처사님, 여기는 경남 산청의 운청암(雲靑庵)이에요. 두 달 전에 법명이 소상(素霜)인 장선영(張鮮英) 스님이 입멸했어요. 저희 절에서는 유언에 따라 이제야 처사님께 연락합니다. 내일이 토요일이라 시간이 괜찮다면 저희 암자를 찾아 주시겠어요? 소상 스님의 말씀으로 처사님이 아드님이라더군요. 꼭 오셔서 스님의 유품을 인수해 주세요. 오시는 것으로 알고 기다리겠습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러면서 내 의식계로 차가운 바람이 휙 내달았다. 주지승이라 밝힌 여인은 사찰의 위치를 짧게 들려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궁금한 점이 떠올라 물어보려 했을 때는 이미 전화가 끊겼다. 내가 거듭 통화를 시도했지만 더 이상 연결되지 않았다. 아마 저녁 예불을 하러 법당으로 건너간 모양이라 여겨졌다. 나는 이내 체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4시 무렵이다. 나 혼자서만 서울 사당동의 자택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 두 아들 녀석들은 깊이 잠들어 있다. 아내가 아파트 주차장까지 내려와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전송한다.
혼자 차를 몰며 생각에 잠긴다. 원래 아내도 나랑 동행하겠다는 마음을 내게 전했다. 하지만 생모(生母) 문제는 내 개인이 해결할 문제라 여겨진다. 그래서 아내마저도 남겨 두고 나 혼자 산청으로 가고 있다.
산청을 향해 차를 몰 때다. 작년 가을철의 일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금요일 한밤중에 일어나 전화를 받으니 사촌 형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주시 가좌동의 어머님이 거주하는 집의 옆집에 사는 사촌 형수였다. 국내의 혈육이라곤 나뿐인데 자식마저 몰랐던 소식을 전하던 형수였다. 한 마디로 착잡한 고뇌의 진통이 밀려들었다. 나보다 3살 연상인 46살의 형수의 목소리에 슬픔이 마구 출렁거렸다. 평소 때부터 나의 어머니를 친모(親母)처럼 잘 받들던 고마운 형수였다.
차를 몰다가 습관처럼 조수석을 바라본다. 나랑 동행을 잘 하는 아내의 자리가 비어 있다. 나의 주관에 의한 결정이었지만 조수석이 비어 있으니 마음이 공허해진다. 중학교 3년생인 인호와 중학교 1학년생인 인수가 아들 녀석들이다. 집을 나설 때에 그 녀석들은 포근히 잠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내가 방문을 여는 줄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차창 밖의 풍경이 수려한 산수화의 진경을 연신 펼친다. 골짜기에 담긴 자연의 풍정이 가슴에 알싸한 정감으로 밀려든다.
어디서나 친밀하게 느껴지는 산야의 풍경에 유년기의 추억이 밀려든다. 유년기의 추억은 언제나 내 마음을 아늑하게 녹여 준다.
궁핍한 환경에 찌들어 언제나 시린 가슴으로 나날을 보내던 시절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일 때였다. 나보다 10살 연상인 형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다고 했다. 저녁 무렵이면 도착할 거라고 했다. 당시에 45살이었던 어머니는 관절염을 앓아 관절에 고름이 실려 있었다. 몸살로 인한 합병증으로 다리가 부으면서 생긴 관절염이었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에도 신음을 삼키며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어머니가 2km나 떨어진 개양 삼거리까지 가겠다며 집을 나서려고 했다. 집에서 삼거리까지는 반듯한 신작로(新作路)마저 없었다. 농로로 이어진 협소한 통행로 정도였다. 무슨 일로 삼거리까지 가려느냐고 내가 어머니한테 물었다.
“네 형이 잠시 후면 도착할 거야. 쇠고기를 좀 사러 갈 참이야.”
돼지고기는커녕 생선마저도 거의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랬는데도 형이 온다고 쇠고기를 사러 가겠다는 어머니다. 그나마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처지임에도.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망설일 겨를도 없이 말했다. 내가 대신 사러 가겠다고. 머나먼 길을 떠올려 근심이 드리워졌던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관절이 아파 땅바닥도 근근이 딛는 처지라 2km는 엄청난 거리였다. 어머니로부터 돈을 받아 내가 길을 나섰다. 겨울철이라 동구에는 어스름이 실연기처럼 내리깔리기 시작했다.
나는 논과 밭 사이로 뚫린 길을 따라 삼거리로 향했다. 삼거리는 진주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거기에서 시내와 삼천포와 부산으로 향하는 세 갈래의 차도(車道)가 열렸다. 삼거리에는 도로를 따라 다섯 개의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그 상점들 중의 한 군데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팔았다. 평소에는 구경하지 못하던 거금으로 쇠고기 한 근을 샀다. 그러고는 곧바로 뛰다시피 집을 향해 길을 나섰다.
고름이 스며 나와 무릎을 적셔도 병원에 가기를 미루던 어머니였다. 늘 가난에 쪼들리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재산이라곤 없어서 종중산의 산자락에 터를 잡은 부모였다. 그나마도 내가 4학년 때에 아버지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농토는 물론이고 가옥조차 없었던 터였다. 종중산 자락에 무허가인 초가(草家)를 지어 겨우 생계를 유지했다. 종중의 논과 산자락을 개간한 밭 몇 마지기가 생계의 터전이었다. 그나마도 종중산을 이용한다고 하여 연말이면 경작료를 종중에 지급해야 했다. 형이 군대에 있을 동안에 내가 어머니를 거들어 일했다.
그 날 저녁에 어머니가 쇠고기 국을 끓인 직후였다. 마침 형이 도착하여 모처럼 가족 셋이 모여 식사를 했다. 형과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에는 정감이 듬뿍 실려 있었다. 형과 어머니의 대화가 정신적으로 아늑한 운치를 제공했다. 거기에 못지않게 쇠고기 국은 나를 한없이 황홀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허기가 졌던 나에게 쇠고기 국물은 특별한 음식이었다. 밥을 국물에 말아 김치와 함께 우걱우걱 씹느라고 경황이 없었다.
마침내 중부 고속도로에서 진주로 빠져 나가는 요금소에 도착한다. 요금 카드에 찍힌 대로 금액을 계산하고는 국도에 접어든다. 이제 20여 분이면 산청읍 내리(內里) 마을까지 들어서게 된다.
형이 며칠간 머물더니 이내 군대로 되돌아갔다. 형이 논밭에서 일할 때는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형이 군대로 되돌아간 며칠 뒤였다. 무슨 돈이 생겼는지 어머니가 시내의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 아마도 형이 군대에서부터 어떻게 변통해 온 모양이었다. 그러기에 어머니가 망설임 없이 진주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엿새간의 입원 치료였다. 당시에 내가 결석을 하며 병원에서 어머니를 돌봤다. 세상에 일단은 친척이 많고 볼 일이라 여겨졌다.
나 혼자서 어머니 병 간호를 하려니까 한없이 서글프고 공허했다. 전혀 무서운 병이 아님에도 혹여 숨질까 두려울 정도였다. 밤에는 사촌 형수가 어머니를 들여다보러 오곤 했다. 외톨이 집 같은 마을이어서 병문안을 오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그 점이 내게도 무척 서운하고도 서럽게 느껴졌다. 저녁을 먹고 난 뒤에 어머니가 잠들었다. 무릎의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다고 들려주었다. 수술을 하고 좋은 약을 바르니까 치료 속도가 빠른 모양이었다.
병원의 벽시계를 보니 밤 11시 무렵이었다. 6인실 병실이라 다른 환자들과 가족들도 대부분 잠든 상태였다. 나도 어머니 침대 곁의 보조 의자에서 잠자려고 했다. 막 잠이 들려는 찰나였다. 누군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불이 꺼진 상태에서 낯선 사람이 들어서려고 하여 섬뜩했다. 나는 자리에 누워 가만히 눈을 떠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출입문에 들어서려는 사람이 벽의 스위치를 올렸다. 순식간에 병실 안이 훤해졌다. 30대 초반의 온화한 표정의 여인이 병실 안을 둘러보았다. 검정 머리카락을 빗어 비녀로 꽂은 단아한 머리 모양새였다. 여인은 누워 있는 어머니를 향해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어머니를 깨웠다. 어머니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과 시선이 마주쳤을 때다. 여인이 움찔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인을 향해 말했다.
“선정 씨, 우리 사이의 얘기는 이미 끝났잖아요? 여기는 어쩐 일이세요?”
여인이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는 듯하다. 잠시 멈칫거리다가 어머니한테 말한다.
“여기서는 말하기가 조심스러우니 잠시 병실 바깥에서 얘기를 좀 나누죠. 내 여동생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말씀드리려고 왔어요. 그 정도는 괜찮겠죠?”
어머니도 언짢은 표정을 풀더니 다리를 절며 복도로 나간다. 그러면서 나한테는 병실에 남아 있으라고 말한다. 어머니와 여인 사이에 무슨 얘기가 진행되는지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궁금하게 여긴다고 하여 궁금증이 풀릴 계제는 아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의 표정이 시리게 변하여 병실로 들어섰다. 낯선 여인은 병원을 떠난 모양이다. 그 날 밤 내내 내겐 궁금증이 치솟아 올랐다. 병실을 찾아 온 여인은 누구이며 어머니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차는 서서히 산청의 지리산 기슭에 가까워지고 있다. 산청 휴게소를 지나 십여 분만 달리면 목적지인 운청암(雲靑庵)에 닿는다. 사찰 인근의 산야에는 죽림(竹林)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멀리서 바라봐도 인가가 밀집된 지역임이 확연히 드러나는 정경이다.
숱한 세월이 흘렀어도 병실에 찾아 왔던 낯선 여인은 수수께끼였다. 어머니마저도 내게 비밀로 하고 싶은 얘기라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머릿속으로 상상만 했을 뿐 어머니한테 여태껏 물어보지 못했다.
마침내 지리산 자락의 암자 주차장에 나의 승용차가 도착한다. 주차장 언저리에 울창하게 펼쳐진 솔숲에서 솔바람이 하늘을 가른다. 주차장은 산문 앞에 펼쳐진 넓은 공간의 공터이다.
작년 가을철이었다. 일가족을 태워 승용차를 몰아 진주시 입구인 가좌동 산야에 도착했다. 공터에서 산기슭 위를 올려다보았다. 선명하게 조등(弔燈)이 켜져 상가임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쁜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이 방문한 모양이었다. 낯선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빈소에 도착하자마자 사촌 형수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가족을 맞았다. 그러면서 형수가 내게 물었다.
“먼 길 오느라고 힘드셨죠? 곧바로 식사를 차릴게요.”
형수와 잠시 얘기를 나눈 뒤였다. 나의 아내가 금세 상복으로 차려 입었다. 형수와 나의 일가족이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그런 뒤부터였다. 아내는 형수를 도와 문상객들에게 음식을 날랐다. 나와 자식들은 빈소에서 문상객들을 맞았다. 인호와 인수가 차분히 자리를 지키며 문상객들을 맞는 게 듬직스러웠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를 떠나보낸 슬픔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쳤다. 어머니와 헤어질 마음의 준비가 덜 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 버렸다.
문상객들의 대부분은 낯선 얼굴들이었다. 내가 타향에서 주로 생활했음이 피부로 생생하게 느껴지는 정경이었다. 때때로 아내와 나의 직장 동료들이 문상객으로 몰려들어 위안이 되었다. 또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들이 찾아 주어 많은 위로가 되었다. 평소에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학연의 고리로 반겨 주는 그들이었다.
빈소를 지키면서도 많은 상념에 휩쓸렸다. 마당에는 마을에서 빌려 설치한 천막 8개가 펼쳐져 있었다. 천막 아래로는 마을에서 빌린 멍석들이 펼쳐져 있었다. 멍석들 위로 음식상들이 쭉 배열되어 있었다. 빈소에서 부자(父子) 셋이서 문상객을 맞는 의례가 하염없이 반복되었다. 인호와 인수가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말끄러미 들여다보곤 했다. 할머니와 자주 만나지 못했던 터라 서먹서먹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듯했다. 이들을 할머니와 자주 대면시키지 못했기에 무척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10살 때인 초등학교 4학년 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폐결핵을 앓아 무척 심한 기침을 하다가 새벽에 사망했다. 폐결핵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느껴졌다. 세상 떠나기 전날이었다. 방의 벽을 바라보는 자세로 5분이 넘게 기침을 해댔다. 기침이 얼마나 심하든지 통증이 내게로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쿨룩쿨룩 쿨룩쿨룩! 으흐흐! 으흐흐흐!”
얼마나 지독한 기침인지 신음 소리가 곧바로 터져 나오곤 했다. 정말 곁에서는 듣기 힘든 소리였다. 나는 살그머니 방을 빠져 나가 뒷산에 올랐다. 집 뒤는 산기슭이고 대숲이 널따랗게 물결치고 있었다. 나는 진주 시내에서 입주식 가정교사로 대학을 다니는 형을 떠올렸다. 남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학생을 지도하는 형이었다. 고등학생을 맡아 과외 지도를 하는 거였다. 주말이면 시간이 더욱 바빠 집에 오지 못하는 터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집에서는 형을 뒷바라지할 계제가 아니었다.
당시에 초등학생인 나의 견해가 너무나 미약했음이 드러났다. 기침이 심하다고 해서 설마 아버지가 사망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감기만 들어도 기침 정도는 심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날의 기침은 아무래도 정도가 달라 보였다. 형언하기는 어렵지만 머리카락이 죄다 갈라지는 듯한 섬뜩한 느낌에 잠겼다.
나는 뒷산의 바위에 올라서서 아랫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거리가 멀어 아랫마을의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지만 마을이 있겠거니 여겼다. 나는 진주 시장에 농작물을 팔러 간 어머니를 떠올렸다. 웅덩이를 퍼서 잡은 미꾸라지와 시금치와 가지와 호박을 팔러 갔다. 마을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세 군데나 있었다. 웅덩이마다 미꾸라지가 엄청나게 많이 들끓었다. 웅덩이를 퍼고 며칠만 지나면 금세 미꾸라지들이 와글거렸다. 시골의 다른 집에서는 논밭의 일이 바빠 웅덩이를 퍼지 못했다.
소유자가 없는 웅덩이에서 들끓는 미꾸라지는 어머니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다. 미꾸라지만 잡아 시장에 팔아도 제법 목돈을 마련해 오곤 했다.
장례를 치르던 작년 가을인 9월의 밤이었다. 시계를 살펴보니 밤 10시 무렵이었다. 시각으로는 늦었지만 잠시 저녁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문상객들의 수도 잠시 줄어든 상태였다. 형수한테 말을 꺼내자 형수가 선뜻 저녁을 차리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형수와 함께 한참 늦은 저녁 밥상을 차렸다. 부엌 가까운 마루에 두레상을 차려 놓고 둘러앉았다. 나의 가족 넷과 형수를 포함하여 5명이 둘러앉았다. 상주 가족으로는 너무 적은 인원이라 여겨졌다.
둘러앉은 다섯은 경황없이 숟가락질을 했다. 언제든 문상객이 찾아들면 빈소로 들어서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는 찾아오는 문상객이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신속히 양치질까지 마쳤다. 그러고는 3부자가 빈소로 찾아들었다. 아들 녀석들이 향 연기가 지독하다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피어오르는 향 연기가 빈소의 공간을 나비처럼 날아오르며 뒤덮었다.
식사를 끝내자 형수와 아내는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를 비롯한 3부자는 빈소로 들어갔다. 빈소에 들어서면서 인호와 인수의 표정은 멍해졌다. 애들의 표정에 영향을 받았음인지 나도 머릿속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미묘한 자극만 가해져도 머릿속에 뒤엉켰던 기억은 곧잘 출렁대었다. 어머니가 틈틈이 내게 들려주던 얘기였다. 내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기 직전의 1월의 일이었다. 눈이 내려 천지가 하얗게 뒤덮여 있을 때였다. 내가 홍역을 앓아 사경에 처했을 때였다. 찢어지게 어려운 가정 여건이라 병원을 찾을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니는 집에서 산을 넘어 죽봉(竹鳳) 마을의 무녀를 찾았다. 어머니와 고등학교 2학생이었던 형이 번갈아 나를 업어 고개를 넘었다. 50대 초반의 무녀는 마침 집에 머물러 있었다.
무녀가 혼수상태의 나를 들여다보더니 금세 나의 옷을 발가벗겼다. 그러면서 어머니한테 복숭아나무의 나뭇가지를 잘라 4묶음으로 만들라고 시켰다. 복숭아나무는 무녀의 집 바깥 울타리에 무리를 지어 자라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침내 4묶음을 만들어 무녀한테 가져갔다. 무녀가 4묶음의 나뭇가지를 동서남북의 네 방향에 배치했다. 찬물에 적신 수건으로 내 몸을 꼼꼼하게 닦았다. 그러고는 다시 내 옷을 입혀 방바닥에 눕혔다. 이어서 무녀가 정화수를 떠서 4방향을 향해 신장(神將)을 향해 빌었다. 부디 꺼져 가는 생명을 자비롭게 구해 달라고.
4방향에 대한 무녀의 기도가 이루어진 뒤였다. 놀랍게도 내 몸의 열기가 스러지면서 내가 깨어나더라고 했다. 하마터면 그때 내가 숨졌을지도 모른다고 어머니가 내게 들려주곤 했다. 어쨌든 내가 어머니한테는 사경에서 헤매다가 신장(神將)의 도움으로 회생한 자식이었다.
빈소의 향 연기가 점차 짙게 깔렸다. 시계를 흘깃 들여다보니 새벽 2시 무렵에 접어들었다. 자정을 넘어서자 조문객들은 더 이상 찾아들지 않았다. 그래서 자정 무렵부터 3모자(母子)는 방에서 잠이 들었다.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와 산자락 아래의 공터로 걸어갔다. 공터는 개간한 밭이지만 농작물이 심기지 않은 곳이었다. 집 바로 옆이기에 어머니의 유품을 거기에서 태우기로 했다. 아랫마을과는 600m쯤 떨어진 곳이라 밤에 유품을 태워도 무난한 장소였다.
내가 어머니의 짐을 챙겨 공터로 나갔을 때다. 옆집에서 3살 연상의 사촌 형수가 나를 도우러 기다리고 있었다. 4년 전에 사촌 형이 세상을 떠난 후로 혼자 살았다. 자식도 없는 처지였다. 나의 생가 곁에는 사촌 형수의 집이 유일한 이웃집이었다. 두 집으로부터 아랫마을이 600m가량 떨어져 있었다. 나의 생가와 사촌 형수의 집은 외톨이 집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평소부터 어머니와 사촌 형수와는 각별히 잘 지냈다. 마치 친딸처럼 어머니를 잘 도우며 살던 형수였다. 게다가 사촌 형이 세상을 떠난 뒤부턴 어머니와 더욱 가까워졌다.
어머니가 사용하던 낡은 장롱에 불을 붙이자 형수가 훌쩍거렸다. 미국의 형한테 전화를 했더니 차가운 목소리의 응답이 들렸다.
“너도 알다시피 한국까지 건너갈 여건이 못 돼. 수고스럽겠지만 모든 장례 절차를 네가 처리해 주길 바란다. 형이 되어 이런 말하기가 너무 미안하구나. 언젠가 때가 되면 한 번 방문할게.”
참으로 암담한 느낌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10년 차이의 나이로 의사소통이 쉽지 않던 형이었다. 그런데다가 10년 전에 이민을 떠나면서부터는 거의 잊고 지내던 처지였다. 말이 형제이지 실제로는 고아나 다름없는 내 처지라 허허로웠다. 오히려 형보다는 사촌 형과 더 가까이 지냈던 편이다.
사촌 형수가 어머니의 옷을 태우면서 나를 향해 말했다.
“정이 듬뿍 들어 친어머니처럼 지냈는데 이런 일이 생겼군요.”
장롱이 타면서 치솟는 불길에 평야 건너편의 철도가 훤히 드러났다. 옷과 나무가 타면서 내는 불길이 하늘로 치솟았다. 주변에 인가라곤 멀리 떨어져 있어 호젓한 느낌이 주변을 뒤덮었다.
주변이 적막에 휩싸이자 옷과 나무가 불타는 소리가 드높아졌다. 밤이 점차 이슥해지자 하늘엔 별들이 초롱초롱 빛을 내뿜었다. 널따랗게 멍석이 깔린 마당을 둘러봤지만 문상객들은 다들 돌아가고 없었다. 밤을 새워 조문하던 풍정은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터였다.
대학생이 되어 진주를 떠날 때까지의 마을의 장례 분위기가 떠올랐다. 문상객들이 상주들을 위로하느라고 상가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밤새 문상객들이 어우러져 곳곳에서 화투를 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이루었다. 세상을 떠나는 망자의 영혼이 외롭지 않게 떠들썩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지나던 마을의 어느 상가에서건 사람들이 내뿜는 정감이 훈훈하게 흘렀다.
부모의 후손이었던 내가 시골에 살지도 않았었고 친척도 없는 편이었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주변에 알릴 만한 곳이 거의 없었다. 고작 아내와 나의 직장 동료들이거나 학교 선후배들이 조문객들의 대다수였다. 텅 비어 을씨년스런 마당을 둘러볼 때에 스산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나는 아내가 잠든 방도 잠시 기웃거려 보았다. 피곤했던 탓인지 정신없이 잠들어 있었다. 나는 살그머니 방의 출입문을 닫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하늘에 드리워진 냉기가 옷을 파고들어 전신으로 밀려들었다.
사촌 형수와 함께 어머니의 옷을 다 태웠다. 장롱 안에 놓여 한 번도 입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자식 노릇을 한답시고 때때로 명절 때 샀던 옷들이었다. 입지도 않은 옷을 바라볼 때에 가슴이 알싸하게 젖었다. 아마도 아낀다고 평소에 입지 않았던 모양이라 여겨졌다.
사촌 형수가 나를 향해 말했다.
“논길이 꺾여 밭둑으로 올라서는 지점의 굴곡이 큰 도로를 알지예? 바로 거기에 경운기가 이르렀을 때였십니더. 농로에서 지방도로로 진입하던 화물차가 경운기를 들이받고는 달아나 버렸다 쿠데예. 논에서 일하던 사람이 넷이었는데도 차 번호를 못 봤다 켔십니더.”
내 가슴이 저려 왔다. 결국 뺑소니 사고라 범인도 놓친 채 장례를 치르던 중이었다. 살면서 답답한 일이 더러 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도무지 범인을 찾을 길이 없는 상태였다. 같은 마을에 상가가 두 군데였다. 경운기를 몰던 아랫마을 53세의 철규라는 사람도 함께 사망했다. 경운기가 화물차에 떠밀려 전복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즉사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옷을 다 태운 뒤였다. 고색창연한 문갑이 하나 보였다. 내 기억으로 처음 대하는 물건이라 여겨졌다. 지금까지 어머니를 대하면서도 그 문갑을 대하기는 처음이었다. 문갑에는 가로가 45cm, 세로가 62cm에 이르는 정방형의 서랍이 발견되었다. 서랍 내부에는 한 권의 공책이 들어 있었다. 공책을 펴니 어머니가 짬짬이 기록해 둔 글자들이 시선을 자극했다. 검정색 사인펜으로 틈틈이 쓴 글 줄기가 펼쳐져 있었다. 30여 장의 공책들을 쭉 넘기며 훑어보았다. 대부분이 이웃집에서 빌려 쓴 금액과 갚은 날짜가 적혀 있었다.
그러다가 공책의 중간 부위에 누런 편지지가 꽂혀 있었다. 세월이 엄청나게 흘러 색깔이 심하게 변한 종이였다. 종이의 1/3에 해당하는 부위에만 글이 짧게 실려 있었다.
아기가 자라는 모습이 먼발치에서도 잘 보이더군요.
영원히 찾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한 번만 아기를 직접 만나고 싶어요.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빕니다.
- 소 상 드림 -
글을 읽는 순간 가슴이 섬뜩해짐을 느꼈다. 그러자 일시에 머릿속으로부터 과거의 기억이 휘말려 올랐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학생 때였다. 밭 가장자리의 산기슭에 매어 놓았던 소를 몰고 내려오던 중이었다. 산기슭과 오솔길이 만나는 지점에서였다. 20대 후반의 여승 둘이 길에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너무나 맑아 세상의 사람 같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둘의 얼굴도 선녀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내가 소를 몰고 오솔길에 들어서자 나와 소를 비켜 주었다. 그러면서 여승 둘이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여승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소를 몰 때였다. 얼굴이 갸름한 여승이 방긋 미소를 짓더니 나한테 말했다.
“네가 오철준이지? 그간 많이 컸네. 집에 어머니가 안 계시던데 시장에서 안 돌아오신 모양이구나.”
아버지는 산등성이 밭에서 일하느라 아직 귀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농산물을 파느라고 귀가하지 못한 시점이었다. 내겐 낯선 두 여승이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떡여 여승의 말이 맞다고 시인했다. 두 여승이 한동안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자꾸 말을 걸었다. 집에 혼자 남아 여승들을 상대하려니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침착하게 여승들을 지켜보며 응대했다. 대략 반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두 여승이 집을 떠나 되돌아가려고 마루에서 일어섰다. 떠나면서도 연신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여승들이 사립문을 벗어나서 아래 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승들이 집을 떠나자 일시에 내 가슴이 홀가분해졌다. 이상스런 일도 있었다고 여기고는 이내 잊어 버렸다. 그때 여승들이 집을 찾아왔던 일을 아예 부모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여승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순간에 아예 기억에서도 사라진 모양이었다.
아스라한 기억의 공간 어디에서도 여승들의 자취는 말끔히 지워졌다고 여겼다. 그랬는데 어머니의 공책을 바라보자 일시에 기억이 되살아났다. 정황에 따르면 얼굴이 갸름했던 여승이 나의 생모(生母)였으리라 여겨졌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서 파르스름한 섬광이 마구 치솟았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나한테 따로 생모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창졸간에 허둥대면서 마음속으로 중얼대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설혹 내게 생모가 있었을지라도 이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야. 사망한 어머니만이 진정한 어머니일 뿐이야. 마음은 스산하지만 금세 기억 속에서 지워야지.’
마음을 모질게 먹었지만 서서히 가슴 밑바닥이 저려 왔다. 세상이 돌연 낯설게 여겨졌다. 이전에 내가 잠시 의문을 가져 보았지만 이내 잊었던 터다. 세월이 흘러 생모의 존재가 밝혀지자 가슴이 처연해졌다.
어머니의 필체가 담긴 공책을 한동안 들여다본 뒤였다. 기록물에 의해 실상이 밝혀졌을지라도 달라진 건 없다고 여겨졌다. 내겐 나를 키워 준 어머니가 진정한 어머니로 여겨졌다. 어머니의 일기와 생모의 기록이 아니었다면 생모의 존재는 잊혔을 것이다.
진주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난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발인제를 올리고 나서는 장의차가 어머니의 시신을 화장장으로 옮겼다. 한 시간쯤 화장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어머니의 유골함을 받아들었다. 일가족과 사촌형수를 차에 태운 뒤였다. 나는 차를 몰아 경남 산청으로 달렸다. 산청읍 내리(內里)에는 남강(南江)의 상류인 경호강(鏡湖江)이 흘러내렸다. 강물의 유속이 커지는 강가에 높다란 절벽이 치솟아 있었다. 절벽 위에는 단아한 모습의 정자인 연풍정(燕風亭)이 세워져 있었다. 지형으로 볼 때 숱한 관광객들이 다녀가는 명승지로 여겨졌다.
정자가 세워진 절벽에 연결된 능선에는 진달래나무의 군락지가 펼쳐져 있었다. 수백여 포기가 군락을 이루어 장엄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형수가 나를 향해 말했다.
“정자 왼쪽의 진달래 군락지를 어머님께서 평소에 자주 찾으셨어요. 당신이 운명하면 뼛가루를 거기 땅에 묻어 달라고 했어요. 진달래 군락지는 응달이라 햇살이 잘 안 들잖아요? 죽어서나마 아기를 맡긴 어떤 여인의 마음을 느껴 보겠다고 했어요. 어떤 여인이 누구한테 아기를 맡겼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어요. 묘한 일이죠?”
절벽 아래 강가에 차를 세우고는 일행이 절벽 길을 올랐다. 숱한 사람들이 다녔던 등산길이라 길은 안전한 편이었다. 가파른 경사의 등산길을 십여 분이 지나 마침내 올랐다. 진달래나무의 나뭇잎에 단풍이 들어 바람결에 애잔하게 남실대었다. 다홍색과 노란색이 어우러져 물결치는 진달래의 나뭇잎들을 대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진달래나무를 대할 때 문득 어머니의 숨결이 느껴졌다. 평생 자식들에게 애정을 쏟아 돌보던 어머니였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자마자 가슴이 먹먹하게 젖어들었다.
진달래나무들이 자리 잡은 땅 속을 조금씩 모종삽으로 팠다. 그러고는 거기에 어머니의 뼛가루를 조금씩 흩어 묻었다. 이른바 수목장(樹木葬)이라는 장례 형식이었다. 세월이 흐르면 어머니의 뼛가루는 영양물질이 되어 진달래에게 흡수될 것이다. 어머니의 뼛가루를 진달래나무 뿌리 부분에 묻고 난 뒤였다. 나의 일가족과 사촌형수가 진달래나무를 향해 횡렬로 섰다. 그러고는 마음을 가다듬어 두 차례의 절을 했다. 어머니의 뼛가루가 묻힌 곳을 향해서였다.
이윽고 승용차로 되돌아 가 차를 진주로 몰았다. 사촌형수를 집에까지 태워 주려는 취지였다. 그렇게 작년 가을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6개월이 흘렀을 때였다. 4월 초순이라 곳곳에서 꽃들이 다투어 피려는 시점이었다. 퇴근하여 저녁 식사를 마쳤을 무렵에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내일이 토요일이라 시간이 괜찮다면 저희 암자를 찾아 주시겠어요? 소상 스님의 말씀으로 처사님이 아드님이라더군요. 꼭 오셔서 스님의 유품을 인수해 주세요.”
내용을 듣고 보니 주말인 내일 잠시 다녀가라는 얘기다. 만나서 자세히 얘기를 전해 주겠다면서 주지가 전화를 끊었다. 전할 물품이 있다면서 꼭 다녀가라고 강조했다.
교통이 번잡할 것을 고려하여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했다. 운청암에 닿으니 오전 8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다. 암자의 마당에 들어서니 60대 중반의 주지승이 법당에서 나온다. 여승인 주지의 얼굴은 맑은 샘물처럼 청아하기 그지없다. 주지승이 먼저 활짝 미소를 지으며 합장을 하더니 내게 말한다.
“일찍 도착하셨군요. 소상(素霜) 스님이 저승에서 기뻐하시겠어요.”
이윽고 주지승의 안내로 승방(僧房)인 주지실로 들어섰을 때다. 주지가 물을 끓여 녹차를 다탁에 올린다. 둘이 마주 앉았을 때다. 맑은 미소를 머금으며 주지가 입을 연다.
소상(素霜)은 나의 생모(生母)의 법명이다. 생모는 20대 초반에 불가에 들어섰다. 그 이후로 불가에서 얻은 법명이라고 들려준다. 전국을 떠돌다가 40대 초반부터 운청암에 머물렀다고 한다. 하도 불심(佛心)이 견실하여 소상이란 법명을 얻게 되었다.
주지와 소상은 나이도 비슷하고 취향도 비슷하여 친하게 지냈다. 주지는 소상으로부터 때때로 소상의 과거사를 듣게 되었다. 선영(素箱)이 여상을 졸업하고 취직이 안 되어 집에 머물 때였다. 그녀의 부모는 서천 해변에서 해물탕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식점에서 부모의 일손을 거들 때였다. 나의 아버지가 음식점에 들러 해물탕과 술을 주문했다. 아버지가 앉은 식탁에 음식을 선영이 날랐다.
전형적인 농부로 보이는 중년 사내의 눈빛이 맑게 흘러들었다. 오후 3시 무렵이라 손님도 많지 않을 때였다. 아버지가 선영에게 바다까지만 같이 가겠느냐고 의견을 물었다. 아버지는 선영의 부모와도 구면인 처지였다. 연중 한 차례씩 아버지는 서천을 찾곤 했다. 서천에 묵으면서 내리 사흘을 해물탕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이런 관계로 선영의 부모한테는 아버지가 소중한 고객이었다. 별로 성가시지 않은 고객의 요청이라 선영의 부모도 흔쾌히 허락했다. 선영도 취직이 안 되어 마음이 한창 심란한 시기였다.
선영이 아버지와 함께 서천 해변을 함께 거닐며 대화를 나누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의 처녀인 선영이었다. 마음이 심란한 처지의 선영이었던지라 아버지에 대한 인상은 각별했다. 서서히 시간이 흐르면서 선영의 마음은 아버지한테로 기울어졌다. 유부남인 줄 알면서도 마음이 자꾸만 기울어지려는 정감을 조절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아버지의 마음이 공허하여 서천을 방문했을 때다.
세상이 허망하게 느껴져 아버지가 극심한 공허감에 시달릴 때였다. 선영을 해변에서 집으로 돌려보내고는 혼자 남아 술잔을 기울였다.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다가 해변의 음식점에서 비틀거렸다.
아버지가 해변의 여관에서 잠들고 난 새벽이었다. 새벽에 소변을 보러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곁에 누운 선영을 발견했다. 아버지가 잠들자 선영이 아버지의 숙소에 은밀히 뛰어들어 동침했다. 그 날의 인연으로 태어난 자식이 나라고 했다. 선영이 배가 불러오면서부터 그녀의 부모로부터 내쫓겼다. 선영의 미래를 아버지도 책임질 처지가 못 되었다. 마음만 안타까워 허둥댈 무렵에 선영은 암자를 찾아 들어갔다. 선영에겐 두 살 위인 선정이란 언니가 있었다. 선영은 언니에게 자초지종을 밝혔다. 출생한 아기인 나를 양모인 어머니를 찾아와 맡긴 뒤였다.
주지가 기나긴 이야기를 말한 뒤다. 주지가 처연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2년 전부터 간암을 앓았어요. 암 세포가 전신에 전이된 시점에야 발견한 거죠. 이미 회생의 가능성은 사라진 상태였죠.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았지만 3개월 전에 사망했어요. 자신이 죽거든 뼛가루를 철쭉나무의 뿌리에 묻어 달라고 했어요. 죽어서라도 햇살을 많이 받는 식물의 영혼이 되겠다고 밝혔어요. 그래서 처사님의 양모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싶다고 밝혔어요.”
나는 가슴이 서늘하게 식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는 진달래나무 숲에서 수목장을 하고 생모는 철쭉나무 숲에서 하다니?’
주지는 말을 마치자 생모의 유골함을 내게 전해준다. 나는 생모의 유골함을 받아들고는 운청암 경내를 벗어났다.
산청의 경호강을 굽어보는 암자(庵子)에는 석양이 비단결처럼 곱게 밀려든다. 주지에 이끌려 암자 서쪽의 산등성이에 들어선다. 주지승이 나를 향해 말한다.
“세상 떠나기에 앞서 처사님의 어머님께서 많이 아팠어요.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끝내 본인이 입원을 거부했죠. 사찰 경비로 입원비 정도는 충분히 댈 정도였는데도 말입니다. 다만 가슴에 남는 말이 한 마디 있었어요.”
주지가 잠시 말을 멈추고는 내 눈을 그윽이 들여다본다. 왠지 주지의 눈빛에 너무나 많은 슬픔이 남실대는 기분이다. 연유를 몰라 나도 잠시 숨을 죽이고 주지를 마주 바라본다. 눈빛이 허공에서 서로의 얼굴을 더듬는다. 그러다가 주지가 나를 향해 처연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세상살이가 너무 버겁다고 했어요. 버겁다는 말만을 서너 번 내뱉은 새벽에 입멸하고 말았어요.”
주지승의 말을 듣는 순간에 울컥하고 목이 멘다. 세상살이는 어느 누구한테도 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누구라도 가슴에는 시린 상처를 안고 살기 마련이라 여겨진다. 다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을 뿐이라 생각된다. 이런 와중에서 생모(生母)를 버겁게 한 요인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불도에 뛰어든 지 40년이 넘는 세월을 생모가 보냈다고 한다. 불도에 정진했음에도 마지막에 버겁다는 말을 한 의중이 안타깝게 비친다.
생모가 세상을 떠난 지금에는 생모를 어머니로 받아들이고 싶다. 슬픔의 무게를 가슴에 안고 살다가 이승을 떠난 어머니. 뼛가루를 사찰 산골짜기의 철쭉나무 뿌리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생모와 다져진 정감으로 주지승이 뼛가루를 직접 뿌리고 싶었다고 들려준다. 하지만 유언에 따라 나를 위해 2개월을 기다렸다가 연락했다고 한다.
주지승의 안내를 받아 수려하게 치솟은 능선으로 올라선다. 거기에는 철쭉나무가 무리를 지어 치솟아 바람결에 남실댄다. 흔들리는 철쭉나무를 바라볼 때다. 생모(生母)와 양모(養母)인 두 어머니가 주고받았을 눈물이 가슴을 알싸하게 뒤흔든다. 양모가 자신의 뼛가루를 진달래나무에 뿌리라고 한 연유가 가슴에 읽힌다.
시골 출생이라 나무의 속성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아는 어머니들이다. 진달래는 일조량이 적은 응달에 주로 자생한다. 반면에 철쭉은 일조량이 많은 양달에서 자생한다. 어느 산자락을 훑다시피 해도 양달에서는 진달래가 발견되지 않는다. 반면에 응달에서는 철쭉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배다른 자식인 나를 키운 양모의 고뇌가 얼마나 스산했을지 먹먹하다. 나를 키우면서도 수시로 뿌렸을 슬픔의 눈물이 가슴으로 밀려드는 듯하다.
운청암(雲靑庵)의 주지승을 찾기 직전이었다. 나는 어머니(養母)의 뼛가루를 뿌렸던 연풍정의 진달래 군락지를 먼저 찾았다. 연풍정과 운청암의 거리는 800m가량 떨어져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4월 초순이라 진달래가 온 산야를 붉은 화염처럼 뒤덮고 있다. 진달래가 만발한 숲에 두 차례 절을 한다. 어머니의 뼛가루를 영양분으로 삼아 잘 자란 진달래꽃이기 때문이다. 나를 피눈물을 머금고 키웠을 어머니의 속내를 떠올리자 눈물이 치솟는다. 진정으로 어머니한테 무한한 사랑을 느낀다.
오죽하면 자신의 뼛가루를 진달래나무 뿌리에 묻으라고 했을까? 그만큼 생모에 대한 마음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죽어서조차 생모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던 양모였다. 어머니의 마음이 불탔음일까? 때를 맞춰 피어난 진달래의 군영이 온 절벽에 만발하여 남실댄다.
축복받지 않은 존재인 나를 두고 흘렸을 두 어머니의 눈물.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어쨌든 아버지는 형과 나한테 일관된 애정을 베풀었다고 기억된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언제나 형과 나를 다독거려준 아버지였다.
아버지를 사이에 두고 두 어머니가 겪었을 고뇌. 이 고뇌의 기류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철쭉이 피려면 한 달은 기다려야 할 시점이다. 나는 철쭉의 군락지에서 생모를 떠올리며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개천을 굽어본다.
나는 주지승 앞에서 사찰 계곡의 철쭉나무 뿌리에 뼛가루를 묻는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중얼댄다.
‘얼굴도 익히지 못했지만 저를 낳아 주신 고마운 어머님! 산중의 절간에서 얼마나 외로운 나날을 보내셨습니까? 아무리 경문(經文)이 심오해도 어머니의 속내까지 위로하지는 못했으리라 여겨집니다. 오늘 소자(小子)가 다녀가니 서러웠던 마음을 허공에 다 털기를 바랍니다. 어쨌든 어머니로 말미암아 세상을 보게 되어 너무 고맙습니다. 자주는 못 내려와도 때때로 찾아올게요. 안녕히 계세요.’
낙조가 서녘 하늘에서 자줏빛 공작의 깃털처럼 나부낀다. 이윽고 주지승이 먹먹한 눈빛으로 나의 손을 감싸 쥔다. 주지승이 밝힌다. 유년시절에 어머니랑 진주를 찾아 나를 본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고. 그 말을 듣고서는 어머니를 대한 듯 주지승에게 절을 한다. 이윽고 내가 일어서려니까 주지승이 나를 아들처럼 꼭 껴안고는 훌쩍거린다. 그러고는 서로 손을 맞잡고 대화하다가 주지승과 작별한다. 사찰 아래 마을의 입구로 내려서니 어스름이 짙게 몰려든다. 차에 오르기에 앞서 나지막하게 저승의 두 어머니한테 말한다.
“두 분 어머님, 공기 좋은 산청 땅에 나란히 묻혔군요. 진달래와 철쭉처럼 응달과 양달에서 산청의 산바람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세요. 두 분 부디 저승에서는 서로 다정하게 지내시기를 간절히 빌게요.”
나는 연풍정과 운청암을 향해 잠시 합장하여 고개를 숙인다. 진심으로 두 어머니의 영혼을 향해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 그런 뒤에 서서히 차에 오른다. 서서히 차바퀴가 산길을 거쳐 중부 고속도로를 향해 내닫는다. 차창 밖으로 들리는 바람소리가 저승의 영혼들이 화합하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몸이 점차 이완되면서 정신은 한없이 편안하고 쇄락해진다. 산청 골짜기로부터 연신 흘러내리는 솔바람이 한없는 그리움으로 물결친다.
<200자 원고지 100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