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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숨결

                                                                                          손 정 모

   새벽 해변 그 어디에도 불빛 하나 일렁대지 않는다. 하다못해 나룻배 한 척 움직이는 기미조차 스러진 상태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 섬 북동쪽의 탈리세이(Talisei) 섬의 새벽 4시 무렵이다. 망망한 남태평양의 물굽이에 싸여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북동쪽 풀루바리(Puluvary)에 치솟은 우주 센터에도 암흑이 드리워져 있다. 풀루바리에서 동쪽으로 1km 떨어진 툴룽다리(Tulungdary) 해변. 거기에는 2km에 달하는 광막한 백사장이 드러누워 있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절해고도의 적막에 휩싸여 버둥대는 곳이기도 하다.

   나는 두근대는 가슴을 추스르며 해변의 백사장으로 내닫는다. 육지와 단절된 곳이라 26살의 처녀임에도 전혀 두렵지 않다. 해변의 덤불숲을 헤치고 백사장에 닿았을 때다. 나와 동갑인 인도네시아의 처녀인 다몽크(Damongkeu)가 백사장의 안개 더미에서 서성댄다. 마치 거대한 안개의 장막이 그녀를 뱃속으로 삼키려는 느낌마저 든다.

   자귀나무의 꽃을 닮은 에마르기나타(emarginata)의 붉은 꽃송이가 바람결에 정열적으로 물결친다. 해풍이 일 때마다 농염한 꽃송이에서 향긋한 꽃냄새가 향불처럼 치솟는다. 불길처럼 농염한 꽃송이를 대하자 기억이 아스라한 공간으로 내풀린다.

   새벽에 걸려온 다몽크의 전화에서였다.

   “은빈 씨, 해 뜨기 전에 툴룽다리 해변에서 만났으면 해요. 제가 밉더라도 얼굴을 보여주실 수 있겠죠? 진심으로 간청 드릴게요. 그럼 기다릴게요.”

   전화기로 밀려드는 그녀의 음절에는 세상을 초연한 듯한 허허로움이 내깔렸다. 왠지 다시는 못 만날 듯한 서러운 정감마저 느껴졌다.

   바람결에 나풀대는 에마르기나타의 붉은 꽃송이가 어머니(養母)의 숨결 같아 보인다. 그녀의 넋이 서성거릴 저승의 공간이 어렴풋하게 머릿속으로 연상된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그만 목이 멘다. 이혼녀가 되어 세상을 등지려다가 나를 구하게 되었다는 어머니다. 폭포에서 몸을 날리려다가 물살에 떠내려 온 나를 구한 그녀였다. 너무 못생긴 나와는 대조적으로 천상의 선녀(仙女)처럼 고운 어머니였다. 임종한 모습마저 너무 아름다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폐암으로 작년 겨울 한밤중에 내 품으로부터 이승을 떠난 그녀였다. 너무나 숭고하여 곁에서 숨 쉬는 공간마저 선경(仙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느닷없이 꽃향기에 휘감겨 어머니의 얼굴이 백사장의 상공에 환영으로 드리워진다. 가슴이 시큰대면서 울음이 터지려는 찰나다.

   해풍이 왈칵 밀어닥치며 나의 머리카락을 휩쓴다. 그 바람에 머릿속에 떠올랐던 어머니의 모습이 애석하게도 바스러져 버린다. 느닷없이 절벽 꼭대기에서 골짜기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이 몰려든다.

   해변에는 새벽안개가 잔뜩 끓어올라 곳곳마다 어두운 잔영으로 내닫는다. 그 잔영의 허리춤에 매달려 다몽크가 백사장을 배회한다. 그녀의 발자취마다 시린 고뇌의 바람줄기가 치솟는 듯하다.

   아스라한 기억의 창고를 뒤지면 그녀가 처음으로 내닫던 날이 떠오른다. 2주일 전의 한낮이었다. 우주 센터 내부의 외빈용 대기실에서였다. 다른 연구원들이 우주선 조립에 매달린 직후였다. 센터 대기실의 외빈을 연구실로 인솔하러 갈 사람이라곤 나밖에 없었다. 연구실 내부를 둘러보면서도 다몽크의 관심은 오로지 셀라위치(Sellawich)에 고정된 상태였다. 나와 동갑이면서 인도네시아 우주선 실무 책임자인 셀라위치는 선임 연구원이다. 한 마디로 인도네시아 우주 센터의 핵심을 이루는 남성 연구원이다.

   툴룽다리 해변의 산기슭에는 연구원 아파트와 외빈용(外賓用) 아파트들이 세워져 있다. 국립 우주 센터에서 운영하고 관리하는 곳이다. 다몽크를 처음 만났던 날 그녀를 외빈 아파트로 내가 안내했다. 셀라위치가 말레이시아로 출장을 나갔기에 내가 다몽크의 안내를 맡았다. 셀라위치의 출장은 예견되지 않은 긴급한 출장이어서 다몽크가 당혹스러워했다. 숙소에서 다탁에 나랑 마주 앉아 찻잔을 들며 다몽크가 말했다.

   “셀라위치는 나를 좋아하면서도 무엇에 홀린 것 같아서 두려워요. 속내를 잘 모르는 저는 그 원인이 댁인 줄 알았어요. 아무래도 기술 실무자들끼리의 만남이라 그 사이에 정(情)도 들었으리라 여겼어요.”

   말을 하다가 중단하고는 다몽크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하도 어처구니없는 말이어서 내가 미소를 머금으며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다몽크는 외빈 숙소에서 셀라위치를 만날 때까지 머물겠다고 들려주었다. 의외로 셀라위치의 출장은 다소 길어졌다. 셀라위치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그녀와 함께 동침하기로 했다. 혼자서는 두렵다고 그녀가 내게 호소했기 때문이다.

   셀라위치가 섬으로 돌아오기 전날에 다몽크가 내게 말했다.

   “내일이면 셀라위치가 돌아오지요? 그와 나는 연인이면서도 왜 영혼의 연결이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한참 애기하다 보면 그의 시선은 다른 세계를 더듬고 있어요. 그런 느낌이 내게 곧잘 진하게 느껴지곤 해요. 이럴 때 같은 여자로서 은빈 씨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다몽크의 안타까운 마음이 실연기처럼 내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내 의식에 섬광처럼 의심의 기류가 치솟는다. 나랑 업무 회의를 할 때면 톱니바퀴만큼이나 정확히 교감하는 셀라위치다. 우주 센터의 연구원들이 다들 셀라위치 수준이라면 좋았으리라 여겨진다. 그런데도 연인인 다몽크와는 정감의 교류가 잘 안 된다니 의아스럽다.

   150톤 추력의 1단 로켓은 한국에서 제조되어 공급된 상태다. 2단 로켓은 인도네시아에서 제작된 것이 사용되기로 되어 있다. 이미 우주 센터에서는 1단과 2단 로켓이 결합된 상태다. 셀라위치의 주도로 사흘 뒤에는 우주선을 쏘아 올릴 작정이다. 셀라위치가 섬으로 돌아온 뒤부터는 발사 체제에 가속이 붙는다. 그는 확실히 우주 센터의 출중한 인재로 여겨진다. 우주 센터에는 한국의 과학자들도 최근에 십여 명이 도착했다. 그래서 발사에 차질이 없도록 꼼꼼하게 점검하는 중이다.

   툴룽다리 외빈 아파트 504호 실로 다몽크를 안내한 첫 날이었다. 혼자서는 두렵다며 함께 동침하자고 그녀가 제안했을 때 반가웠다. 내가 구사하는 인도네시아어가 얼마나 정확한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까지 되는지 알고 싶었다.

   술라웨시 섬 중앙의 산촌(山村)이 다몽크의 출생지였다. 밀림 지대에서 들리는 수목의 음향에 편안하게 적응한 상태였다.

   다몽크가 셀라위치를 만나 연인이 된 지는 2년째였다. 처음에는 서로의 마음이 잘 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랬는데 근래에 들어서 자꾸만 둘 사이에 삭막한 기운이 감돌았다. 접근하고자 다가서면 둘 사이에 암울한 기운이 감돌곤 했다. 마음이 열릴 듯하다가도 가슴에 암울한 장막이 드리워지곤 했다. 안타깝고 답답한 소용돌이에 휘감겨 다몽크가 몸을 떨곤 했다.

   백사장 곳곳에서 안개가 수중의 잠룡(潛龍)처럼 꿈틀댄다.

   “해 뜨기 전에 툴룽다리 해변에서 만났으면 해요.”

   새벽에 들리던 다몽크의 목소리엔 처절한 슬픔이 흘러나왔다. 비장하게 가슴으로 밀려들던 목소리의 떨림이 안개의 소용돌이에서도 느껴지는 듯하다.

   사흘 전 오후였다. 해변 시장에 물건을 사러 나간다며 다몽크가 잠시 외출했다. 그녀의 숙소에서 나는 창문을 통해 바다를 굽어보았다. 셀라위치는 섬에 돌아왔으면서도 다몽크의 숙소에는 발걸음조차 옮기지 않았다. 광막한 바다에 석양이 들끓기 시작했다. 자줏빛 공작의 깃털처럼 저녁놀이 물결처럼 남실대었다. 해변의 곳곳마다 포말들이 하얗게 치솟아 뒤엉켰다. 치솟는 포말들이 내게로 달려들며 마구 포효하는 느낌이었다.

   “연고자라곤 없는 고독한 사람아! 너는 최소한 다몽크만큼이라도 마음을 열 연인을 두었니?”

   파도의 포말이 던지는 질문에 휩싸여 내 의식이 파들대었다. 나는 상념에 잠겨 마음속으로 중얼대었다.

   ‘어쩌다가 연인도 없는 황량한 신세로 타국의 고도(孤島)에서 떨고 있는가? 정녕 내가 마음을 열 상대는 있을까? 어쩌다가 내가 어머니(養母)한테서 양육받는 운명에 처해졌을까? 나의 생부모(生父母)는 세상에 살아 있기나 할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게 느껴져.’

   3주일 전의 일요일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툴룽다리 해수욕장에서였다. 해변에는 휴일을 맞아 술라웨시(Sulawesi) 섬에서 건너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백사장 모래마다 관광객들이 해수욕복 차림새로 이리저리로 몰려다녔다.

   나 혼자 해수욕복 차림새로 허허롭게 백사장을 거닐었다. 발바닥이 모래에 닿자 머릿속으로 새로운 느낌들이 치솟았다. 한낮임에도 햇살이 자꾸만 미궁으로 흩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모래가 밟히는 소리가 ‘뽀드득’거리며 밀려들었다.

   느닷없이 사람들이 모여 앉아 우글대는 장소가 눈에 띄었다. 백사장에 떠밀려온 상어의 시체 곁에서 사람들이 웅성대었다. 훼손된 살점으로 드러누운 상어의 시신이 슬픈 여운으로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과거에 어머니가 아니었으면 물속에 상어처럼 시신으로 버려졌을 나였다.

   상어로부터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25세가량의 청년이 멍한 눈빛으로 내게 걸어오며 말했다.

   “혹시 물속의 조개를 잡고 싶으세요? 관심이 있으면 잘 잡히는 곳으로 안내할게요.”

   나는 청년을 향해 곧바로 응답했다.

   “조개 잡는 전문가이시군요. 스쿠버(scuba) 잠수를 하려는 거죠?”

   청년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고개를 끄떡여 동의했다. 과거에 스쿠버 잠수를 한 경험이 있는 나였다. 백사장 동쪽 귀퉁이에는 암석이 치솟은 해안이 도드라져 있었다. 산소통을 등에 지고 청년을 뒤쫓아 바다로 들어섰다. 경사가 서서히 가팔라지면서 수중 바위에 조개들이 펼쳐졌다. 기다란 뿔 고둥과 소라와 전복들까지 다채롭게 눈에 띄었다.

   물속에서 건장한 몸매로 청년이 부지런히 조개를 건져 올렸다. 청년의 몸짓은 내게 유년의 공간을 일깨워 주는 듯했다. 청년의 뒤만 쫓으면 스러진 유년의 영역으로 진입할 듯이 여겨졌다. 내 영혼의 흔들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년은 조개 채취에만 몰두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채집망에도 해산물이 제법 채워졌다. 청년이 물속에서 나를 바라보며 격려의 손짓을 보냈다. 나도 기쁨에 넘쳐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랬는데 청년이 돌연히 바다 깊이 자맥질해 들어갔다. 내가 해변에 올라서서 반시간을 기다려도 되돌아 나오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자 불귀의 객이 되었다고 여겨졌다.

   지난주 주말의 정오 무렵이었다. 셀라위치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조개 채취를 가르쳐 주었던 청년을 떠올리며 해변을 찾았다. 다몽크와 내가 스쿠버 조개 채취선을 찾아 갔다. 다몽크도 수중 잠수의 경력자라 말했기 때문이다. 40대 사내의 안내를 받으며 수중에서 다몽크와 조개 채취를 시작했다. 두어 차례 조개를 건져 올리다가 둘이 자맥질 자체에 몰두했다. 조개를 건져 올리는 일보다는 자맥질 자체에 마음이 쏠렸다.

   내겐 물속에서의 자맥질이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자맥질 자체에 과거로 통하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맥질을 하면 유년기의 기억조차 되돌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런 믿음이 생긴 근원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의 근원이 흔들렸다.

   다몽크가 물속에서 내게 신호를 보냈다. 보다 심해(深海)로 나가자는 몸짓이었다. 하필이면 익사한 먼젓번의 청년이 자맥질하던 방향을 가리켰다. 가슴속으로 은근히 원인 모를 두려움이 파고들었다. 물속에서 안내하던 사내를 잠시 바라보았다. 다몽크와 나한테 되돌아 나오라는 뜻의 손짓을 과장스럽도록 크게 했다.

   내 가슴으로 더욱 두려움이 크게 밀려들었다. 하지만 나도 다몽크를 뒤쫓아 자맥질해 나갔다. 내 뒤를 사내가 천천히 따라오는 게 보여 안심이 되었다.

   반대편 물속으로부터 두 명의 잠수부들이 빠른 속도로 자맥질해 나왔다. 둘 다 사내들이라 여겨졌다. 그들의 손엔 작살로 잡은 물고기가 파드득거렸다. 두 사내들의 자맥질에는 안정감이 실려 있었다. 대략 살펴봐도 50cm 길이는 될 만한 물고기들이 작살에 꽂혔다. 연신 수중에는 물고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맞은편 사내들의 모습을 발견하자 내 뒤의 사내가 급히 자맥질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다몽크를 앞질러 가더니 다몽크에게 몸짓을 했다. 즉시 되돌아나가야 한다는 절박감이 실린 몸짓으로 느껴졌다. 사내의 몸짓에 따라 다몽크와 나는 해변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해변에 도착한 직후였다. 다몽크와 나를 안내했던 사내가 고함을 지르며 화를 냈다.

   “무턱대고 물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해요? 게다가 물고기의 핏방울까지 번졌기에 상어들의 공격을 받기 십상이었어요. 당신들 같은 손님은 안 받을 테니까 당장 돌아가요!”

   잔뜩 무안한 표정으로 다몽크와 나는 업소에서 돌아서서 해변을 거닐었다.

   해변을 함께 거닐면서 다몽크가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아마도 셀라위치와 통화를 시도하려는 모양이었다. 통화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통화를 끝냈다. 그러면서 백사장을 밟으며 푸념을 내쏟았다.

   “정말 현실이 너무 갑갑해 미치겠어요. 휴식 시간이라면서도 전화를 그렇게 박절하게 끝내니 이해가 안 돼요. 연인들이란 달콤한 꿈을 꾸기에도 바쁘다고 들었는데 너무나 암담하게 느껴져요. 차라리 물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싶어요.”

   왠지 내겐 다몽크가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너무나 행복하여 그런 식으로 위장하려는 기색으로 비쳤다. 갑자기 내 가슴에 공허감이 격렬히 끓어올랐다. 세상의 생명체들이 짝을 맞아 정감을 나누는데 나만 소외된 느낌이었다. 내가 극한적인 공허감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백사장의 모래를 발끝으로 찼다. 금세 모래 먼지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이때 다몽크의 휴대전화가 격렬히 울어대었다. 다몽크가 신속히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 대었다. 슬쩍 표정을 바라보니 의외로 처절한 기색으로 몸을 떨었다. 두어 마디를 들어 보니 셀라위치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다몽크에게 심리적 부담을 끼치지 않으려고 내가 바닷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닷물에 손을 적시며 수평선을 굽어보았다. 언제 바라봐도 가슴을 뭉클하게 적시는 감동을 주는 수평선이었다. 한없이 장중하며 포근하고 아늑한 기운을 드리운 우주의 경계선이었다.

   삭막한 정감에 휩싸여 허청대는 다몽크를 애써 달래 숙소에서 취침했다. 이튿날 오전 10시 무렵에 셀라위치가 우주 센터에 도착했다. 셀라위치를 만나자마자 나는 그를 우주 발사장으로 데려갔다. 이미 발사대에 우주선은 잘 장착되어 있었다. 사흘 뒤에는 하늘로 쏘아 올릴 작정이었다. 지금까지의 점검 결과를 셀라위치에게 상세히 들려주었다. 셀라위치와 내가 현장을 돌며 섬세한 부위까지 꼼꼼히 점검했다. 이미 한국과 인도네시아 연구원들이 꼼꼼히 점검한 부분이었다. 양국 책임자 간의 최종 점검 과정이었다. 연료와 산화제 주입만 남겨 놓은 상태였다.

   셀라위치가 그의 연구실로 나를 불렀다. 둘이 원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며 얘기했다. 셀라위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이번에 갔던 일은 희토류 금속(稀土類金屬) 수입에 관한 거였어요. 우주선에 사용될 전자 제품을 국산화시키려면 희토류 금속이 필요하잖아요? 예전에 한국이 했던 것처럼 우리도 국산화를 시도하는 중이거든요.”

   광막한 백사장 가득 물안개가 불길처럼 요동친다. 안개더미가 늘씬한 다몽크의 몸뚱이를 가렸다가 노출시키곤 한다. 빼어난 미모에 몸매마저도 관능적이어서 여자인 나까지도 가슴이 설렐 지경이다. 새벽에 만나자고 뱉어내던 그녀의 목소리에선 세상과의 단절감마저 느껴졌다.

   잠시 업무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셀라위치가 화제를 바꾸었다. 탈리세이 섬에서 60km 남서쪽에 떨어진 로콘(Lokon) 화산에 관한 얘기였다. 올해 2월 2일에 술라웨시우타라 주의 로콘 화산이 8차례나 분출했다. 이때의 화산재의 높이가 2km 상공까지 치솟았다. 그 날 오후에 셀라위치가 로콘 화산을 찾았다. 화산 산기슭에 그의 생가(生家)가 있었기 때문이다.

   밤새 흘러들어온 용암에 생가 마을이 녹아서 사라졌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이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셀라위치의 마음이 절망의 극점으로 치달았다. 이때부터 마음이 하루에도 수시로 불안감으로 술렁거렸다.

   셀라위치의 마음에는 원천적인 절망감이 휘몰아쳤다. 생가의 부모를 잃었다는 것만이 슬픔과 절망의 근원은 아니었다. 슬픔의 근원은 유년시절부터 마음을 다스려 주었던 고향의 상실이었다. 거리에 무관하게 고향이 셀라위치에게 활력의 근원이었다.

   셀라위치가 말레이시아로부터 우주 센터에 돌아온 그 날이었다. 셀라위치와 내가 우주선 발사대의 우주선을 점검한 뒤였다. 연료와 산화제의 주입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셀라위치가 다몽크를 만나기 전에 나랑 먼저 해변에서 산책하자고 제안했다.

   퇴근한 직후에 셀라위치와 해변의 백사장을 거닐 때였다. 해변에는 석양의 저녁놀이 사방에 드리워져 황홀하게 굽이치고 있었다. 셀라위치가 무거운 가슴을 해변을 향해 내려놓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인간에겐 누구에게나 고유한 가치관이 있지 않겠어요? 올해 초에 발생한 화산 폭발로 고향을 잃은 상실감이 컸어요. 이런 상실감은 단순히 가족들 간의 상실감인 줄로만 알았거든요. 하지만 단순한 가족들 간의 상실감이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나의 산책의 배경이었던 것이 고향이었어요. 집 뒷산과 골짜기와 개천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소중한 정서의 근원이었어요.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셀라위치의 말이 해변으로 내려 깔리자 내 가슴으로 파동이 밀려들었다. 친부모의 얼굴조차도 모른 채 성장해 온 유년의 설움이 솟구쳤다. 어머니를 생모(生母)로 알고 살던 시기는 아름다웠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폐암으로 입원하면서 나의 출생 내력을 알려주었다. 끝까지 비밀로 했더라면 더 좋았으리라 여긴다. 출생은 우주의 고유한 흐름이라는 어머니의 관점이 비밀을 털어놓게 만든 모양이었다. 출생 내력은 알았지만 차라리 몰랐을 때가 좋았으리라 여겨졌다. 나 자신은 못생겼지만 생모가 미인이었다는 자긍심을 가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셀라위치의 공허함을 내 나름으로서는 달래준다고 노력했다. 하지만 셀라위치의 얼굴에서는 슬픔이 전혀 스러지지 않은 기색이었다.

   셀라위치와 해변 산책을 한 이튿날에는 다몽크가 산책하자고 요청해 왔다. 석양의 저녁놀을 바라보며 다몽크와 백사장을 거닐 때였다. 다몽크가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에서야 셀라위치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 결정적인 원인을 알았어요. 올해 초에 발생했던 화산 폭발로 인한 고향의 상실이었음을 알았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목이 메어 흐느끼면서 다몽크가 나를 껴안았다. 같은 여인끼리 나도 그녀를 달래주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마음이 추슬러질 거예요. 그때까지만 참고 견디면 될 거예요.”

   나의 가벼운 조언에도 다몽크가 설움을 토해 내며 통곡을 했다. 나는 그녀의 등을 두드리면서도 나의 시선은 수평선에서 오르내렸다.

   오늘 새벽에 전화로 걸려온 다몽크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내가 길을 열어 주겠다고 해도 끝내 이탈하려는 그가 두려워요. 더 이상 그를 말릴 만한 열정마저 고갈되는 느낌이에요. 그가 물거품처럼 우주의 공간으로 스러져 갈지도 모르리라는 위기감을 느껴요. 어쨌든 그와의 연결 고리를 끝까지 지속하고 싶은데 말이에요.”

   너무나 참담함이 실린 목소리였다. 셀라위치와 동침하려니 여겼지만 탈리세이 섬에서는 동침한 적이 없다고 했다. 나마저도 세상이 허옇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연인이라면서 외빈 숙소에서 그만큼 기다렸는데도 동침하지 않았다면? 셀라위치가 다몽크를 연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로도 여겨졌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셀라위치와 나랑 둘만 해변에서 산책할 때였다. 셀라위치에게 다몽크에 대한 연정의 정도를 물은 적이 있다. 셀라위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세상에서 그의 마음이 가장 순수하게 쏠린 이상적인 연인이라고. 그런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가엔 쓸쓸한 빛이 드리워졌다. 그냥 알 수 없는 공허한 표정이려니 여기고 무시해 버렸다.

   로콘 화산이 폭발했던 나흘 후의 밤이었다. 그 날도 셀라위치는 내게 해변을 함께 산책하자고 제안했다. 그에게 애인이 있음을 아는 나로서는 부담스러운 제안이 아니었다. 그저 연구 동료로서 해안을 산책할 수 있는 처지로 받아들였다.

   출렁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셀라위치가 내게 말했다.

   “활력의 근원이 그처럼 소중한 줄을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어요. 내가 꿈결에서조차 즐겨 거닐던 고향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거대한 용암이 흘러내려 아예 마을을 송두리째 삼켜 버렸어요. 그것도 한밤중에 일어난 일이라 대피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겠죠. 지진 연구소에서조차 폭발 징후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데 어쩌겠어요.”

   듣고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저절로 솟구치는 말이었다. 어떤 위로를 해 주려고 해도 적당한 언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세상에 그러한 언어는 어쩌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저께 밤에 셀라위치와 나는 툴룽다리 해변의 백사장을 둘이서 거닐었다. 산책하자는 제안은 셀라위치가 먼저 내게 했다. 나로서도 그의 제안은 반가운 터였다. 혼자 쓸쓸히 숙소에 드러눕는 것보다는 산책하는 게 더 좋았다. 그래서 그의 제안에 전혀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반가워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광막한 백사장을 천천히 거닐면서 셀라위치가 말했다.

   “사람의 가슴에 담긴 정감의 실체가 참 궁금하게 여겨져요. 은빈 씨랑 오랫동안 우주선 연구를 공동으로 해 왔잖아요? 러시아처럼 1단 로켓의 제조 기술은 한국이 공개하지 않았지만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의 대화에서 은빈 씨는 좋은 친구였어요. 세상에서 은빈 씨만한 친구는 다시는 없을 것 같아요.”

   나는 미소를 지으며 금세 응답했다.

   “별 말씀을 다 하시군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잖아요? 친구들도 많이 사귀실 거구요.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저와의 기억조차 희미해질지 모르잖아요?”

   내 말을 듣고 나서 셀라위치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것도 아주 천천히. 그러면서 해변 상공에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을 가리켰다. 말은 하지 않으면서도 두어 차례나 하늘의 별을 손으로 가리켰다. 혀가 아닌 영혼을 매체로 내게 말을 전하려는 듯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작스럽게 전신에 무서움증이 밀려들었다. 마치 무당에게 영혼을 탐색당하는 느낌이 들어 소름이 확 끼쳤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그에게 숙소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내 말을 듣자 그는 무척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할 얘기가 많은 듯한 표정임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 체념의 색조가 처연히 드리워졌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돌아가겠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울음을 삼키려는 듯 그의 어깨선이 경미하게 출렁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발길을 연구원 숙소로 돌리면서부터는 둘은 침묵의 밤길을 걸었다. 마치 적국의 기지를 폭파하러 가는 비밀 요원들처럼. 각자의 사원 아파트 입구에서 둘은 손을 흔들고 헤어졌다.

   그 날 밤.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물기를 닦으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셀라위치가 내게 더 말하려던 것이 있기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어떤 얘기였을까? 조금만 인내심을 지니고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으면 좋았으리라 생각해. 하지만 이미 우리는 헤어져 돌아온 뒤잖아? 무슨 얘기를 할 작정이었는지를 몰랐기에 상당히 찜찜해. 그렇다고 이제 휴대전화를 걸어 물어보기도 우스꽝스럽잖아?’

   잠이 쉽게 올 것 같지 않아 창문을 열었다. 초롱초롱한 별빛이 금세 우르르 침실로 밀려들었다. 나는 잠시 현기증에 떠밀려 침대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마음이 개운해지며 세상이 한없이 정겹게 느껴졌다.

   문득 애인도 없는 내 처지가 서글프게 여겨졌다. 일부러 사내들을 피한 내가 아니었다. 아직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상대를 못 만났기 때문이다. 어쨌든 연결되지 못한 연분으로 내게는 연인이 없었다. 비록 연인이 없다고 할지라도 서둘러 연인을 구하고 싶지는 않았다.

   닷새 전 오후 2시 59분 45초였다. 마침내 우주 센터에서는 우주선 발사체의 초읽기를 시작했다. 자동 제어 장치를 통하여 진행되는 초읽기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셀라위치가 주도하는 2단 로켓의 개발 과정을 틈틈이 살펴보았다. 간혹 허점이 발견될 때엔 내가 허점을 지적해 주었다. 셀라위치가 크게 고마워하며 즉시 허점을 보완하곤 했다. 허점 보완 관계의 일은 셀라위치와 나만 아는 비밀 사항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엄연히 2단 로켓은 셀라위치가 단독으로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관계로 2단 로켓의 개발 현장에는 공개적으로는 참석하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셀라위치와 나만의 개인적인 협조로만 현장을 둘러볼 따름이었다. 당초의 우려보다는 인도네시아의 과학적 집결력이 대단한 셈이었다. 나의 판단 기준으로 거의 오차가 없이 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예상 정황을 수없이 검토해 봤지만 발사 실험은 성공하리라 여겨졌다. 인도네시아에서 의외로 한국의 연구 자료를 많이 확보해 두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런 준비가 우주선 발사의 정밀성을 구축한다고 간주되었다.

   마침내 초읽기가 완료되는 시점에서 우주선이 발사되었다. 정확히 오후 3시 정각이었다. 굉장한 폭음과 함께 거대한 연기가 구름처럼 치솟았다. 그러더니 탈리세이 호가 지상에서 수직으로 치솟았다. 전 세계의 이목이 매스컴으로 발사 현장에 쏠렸다. 200여 명에 달하는 인도네시아 과학자들이 발사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를 비롯한 십여 명의 한국 과학자들의 마음도 심하게 요동쳤다. 최초로 착수한 해외 우주 산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실패로 끝난다면 국민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에 직면할 터였다.

   나와 셀라위치는 위성 분석실에서 발사체의 궤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발사한 지 20초 만에 고도 900m까지 치솟았다. 거기에서 북동 방향으로 우주선이 몸뚱이를 기울여 날았다. 필리핀과 팔라우 사이를 지나는 공해로 내보내는 궤도였다. 3분 14초 만에 고도 100km의 대기권을 돌파했다. 3분 37초 만에 177km까지 치솟으면서 위성 덮개를 분리시켰다. 3분 50초 만에 고도 194km까지 치솟아 1단 엔진이 정지되었다. 연이어 고도 197km에서 1단 엔진이 우주선에서 분리되었다. 이때의 시각은 발사 후 3분 53초가 경과된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2단 로켓이 무동력 상태로 304km까지 치솟았다. 1단 로켓이 제공한 관성에 의한 추진이었다. 마침내 고도 304km에서 2단 로켓이 점화되었다. 발사 후 6분 34초 만이었다. 이때부터 1분간의 연소로 우주선이 306km까지 치솟았다. 발사 후 7분 32초에 2단 로켓의 엔진이 정지되었다. 이후 1분 30초를 날아, 마침내 위성이 분리되었다. 발사 이후부터 정확히 9분 2초가 경과된 시점이었다. 위성은 장대한 태평양 상공을 거쳐 타원 궤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까지의 추적 과정이 공개되자 우주 센터에서 환호성이 폭음처럼 터졌다. 전 세계가 인도네시아의 위성 발사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셀라위치와 내가 감동하여 서로 달려들어 포옹한 채 눈물을 쏟았다. 정말 우주에 대한 장쾌한 정복감과 승리감이 가슴을 뒤흔들었다.

   위성의 예상 경로로는 태평양과 멕시코와 브라질과 대서양을 지나는 길이었다. 연이어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인도양을 거쳐 인도네시아로 되돌아오는 경로였다. 위성은 단반경 300km와 장반경 1,500km의 고도로 지구를 돌게 되었다. 지구 한 바퀴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40분이었다. 발사 후 45분 뒤에는 멕시코 상공을 지나게 되어 있었다. 멕시코 위상청에 협조를 구한 지 1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정상적으로 위성이 하늘을 타원 궤도로 날아가고 있음이 입증되었다.

   이때부터 세계가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우주 산업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다시 한 번 환호성을 크게 터뜨렸다. 앞으로 좋은 협조 국가가 되리라는 점이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우주선 발사가 성공을 거둔 날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요청이 들어왔다. 2주일을 더 머물러 기술을 지원해 달라는 거였다. 한국 정부가 승인했기에 나의 체류는 자동적으로 결정되었다. 다몽크는 셀라위치와 동침하지도 않으면서 줄곧 외빈 숙소에 머물렀다. 그녀의 마음에 만족을 얻기까지 줄곧 머물려는 눈치가 역력해 보였다. 내 눈에 비친 다몽크의 미모는 매혹적일 정도로 빼어났다. 거울 속의 나의 너무나 못생긴 외모와는 천양지차였다. 어쩜 그렇게 잘 생겼는지 같은 여자의 입장으로서도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셀라위치는 다몽크와 일정한 거리감을 두는 눈치였다. 다몽크가 애교를 부리며 다가서는데도 공허한 눈빛으로 뒷걸음질 치는 셀라위치였다. 그 원인이라는 게 고향을 잃은 공허감이라고 예전에 내게 들려주었다. 고향을 잃은 공허감이라니? 문득 공허감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게 여겨졌다.

   다몽크가 나한테 전화를 한 것은 오늘 새벽이었다. 나와 셀라위치가 마지막 해변 산책을 한 것은 어젯밤이었다. 그저께 밤에 말하려다 그만둔 얘기가 뭔지 궁금했기에 흔쾌히 응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젯밤의 야간 산책은 별스런 분위기였다고 여겨졌다. 우주선 발사에 있어서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반복해서 내게 들려주었다. 나는 김빠진 맥주를 대하는 기분이어서 마음이 삭막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을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분명히 정신적으로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기 때문이다. 남들 같으면 아무런 일도 아님에도 집착하여 괴로워하곤 했다.

   셀라위치의 눈엔 내가 정신과 의사라도 되는 듯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거론하기는 뭣하지만 내 정신 영역도 그리 편한 상태가 아니었다. 학력과 실력이 빼어나도 얼굴이 못 생겨서 주의를 끌지 못했다. 맞선으로 여자들한테 딱지를 맞았던 사내들도 나를 바라보면 비웃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런 얼굴로 세상을 살아 나가려 마음을 굳혔느냐고? 어릴 때부터 나는 거울 속의 나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눈, 코, 입, 귀 등 있을 것은 다 갖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열된 형상미가 엉망진창이라 거울을 볼 때마다 참담했다.

   연구원으로 취직하고서는 성형수술을 할까도 생각해 보았다. 그냥 예상 비용만 알아보려고 강남의 큰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최소한 7천만 원은 소요되리라 말한다. 그 정도라야 겨우 사람들의 혐오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리라 들려주었다. 열이 차올라 당장 의사의 뺨을 갈겨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내 모습이 그 정도라고 체념하며 조용히 병원에서 물러났다. 반면에 다몽크는 어느 누구와 견주어도 환상적일 정도의 미인이라 여겨졌다. 어쩌면 얼굴이 그처럼 아름다울 수 있는지 눈물이 빠지게 부러웠다.

   어제 해변의 산책에서 내가 농담 삼아 셀라위치에게 물었다.

   “하필이면 못생긴 나와 공동 연구자가 되어 억울하지 않았어요? 한국에서도 잘 생긴 여인들이 많은데 항상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요.”

   셀라위치가 내 눈을 응시하며 곧바로 응답했다.

   “누가 은빈 씨를 못생겼다고 하던가요? 누군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눈이 문제라 여겨져요. 미모가 당당한 사람들한테는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입니다. 은빈 씨의 입이 비뚤어졌어요? 콧날이 없어요? 그렇다고 눈썹이 없습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예요? 제 눈엔 은빈 씨가 참 아름답게 보여요. 저한테 애인이 없었다면 당장 구애하고 싶을 정도예요.”

   내게 들리는 셀라위치의 말은 셀라위치의 마음이 빚어낸 소리였다. 셀라위치의 말에 감동하여 순식간에 눈물이 치솟으려 했다. 여태껏 세상을 살면서 내게 아름답다고 말한 최초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살갗으로 이루어진 입술이 만든 말이 아니라 마음의 말이었기에 감격스러웠다. 못난 여자의 마음도 다스릴 줄 아는 사내가 있다니? 내 일생을 살면서 그 날처럼 감동에 취한 적이 없었다. 내게도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느꼈다. 내가 가진 희망도 결코 사치품은 아니라는 위안마저 느꼈다.

   어젯밤에 셀라위치와 해변의 산책을 마치고 연구원 숙소로 돌아올 때였다. 셀라위치와 내 앞으로 다몽크가 느닷없이 나타났다. 다몽크가 흥분하여 돌진하며 다짜고짜 셀라위치와 나의 뺨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그러면서 발악적으로 냅다 고함을 질렀다.

   “뭣이 이런 것들이 다 있어? 애인을 놓아두고도 다른 여자랑 싸돌아 다녀? 애인을 기다린다고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이럴 수가 있어? 은빈이라는 당신의 정체가 도대체 뭐야? 남의 애인을 가로채려고 한국에서 여기까지 왔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어도 분수가 있지 이게 뭐야? 이게 무슨 짓이냐고?”

   셀라위치와 내가 다몽크를 달래느라고 애를 썼다. 전혀 다몽크를 골탕 먹이려는 취지가 아니었음을 진정을 담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분노하여 길길이 날뛰는 다몽크에겐 먹혀들지 않았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다몽크가 셀라위치와 나의 멱살까지 잡고 흔들었다. 셀라위치도 참는다고 참다가 인내의 한계점을 상실하고는 격분하여 고함을 질렀다.

   “내 마음이 공허하다고 수없이 말했잖아? 누가 널더러 나를 찾아오라고 했어? 나도 숨을 쉬고 싶어서 상담자로서 은빈 씨를 불렀을 따름이야. 세상에 연인이라고 무조건 함께 있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에 있니? 원천적인 공허함 때문에 은빈 씨한테 자문을 구했어. 무엇이 그렇게까지 잘못된 거야, 응?”

   다몽크가 폭음처럼 고함을 내지르며 말했다.

   “오늘만이 아니잖아? 어젯밤에도 이 여자랑 산책했잖아? 가슴이 얼마나 답답하다고 연이틀씩이나 산책한다고 난리야?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내 말이 틀렸어? 답답하다고 하면서도 왜 나한테는 털어놓지 못해? 나보다도 이 여자가 더 가까워? 정말 그래?”

   둘의 싸움에 내가 휘말린 느낌이 들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다몽크의 울화를 달래 주려고 애썼다. 마음이 너무 괴로운 듯 하늘을 향해 포효하며 셀라위치가 떠났다. 나도 거듭 다몽크를 달래다가 내쫓기듯 나의 숙소로 돌아왔다. 더럽고 치사스러워서 세상이 귀찮아졌다.

   점차 해변에는 안개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광막한 백사장이 죄다 안개로 뒤덮여 세상이 안개로 굽이치는 느낌이다. 다몽크의 자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도 한참 동안 안 보인다. 슬그머니 내 마음이 불안해진다. 오늘 새벽에 내게 전화를 걸었던 동갑의 여인이다. 내가 평생을 부러워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의 미인이기도 하다. 그녀가 안 보이자 예전의 잠수부였던 사내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바다를 향해 자맥질하다가 결국은 시신으로 변했던 청년 잠수부였다.

   손을 입에 갖다 대고는 크게 다몽크의 이름을 불러댄다. 몇 차례 불러대자 기다란 휘파람 소리가 응답으로 밀려든다. 내가 백사장에 들어서자 다몽크가 안개 장막으로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둘이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자 달려들어 서로를 포옹한다. 반가운 마음에 어젯밤의 분노는 깡그리 사라진 느낌이다. 잠시 숨을 헐떡이며 서로를 끌어안았던 둘이 포옹을 푼다.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젯밤에는 정말 미안했다고 다몽크가 내게 사과한다. 나는 용서하는 의미로 다몽크의 등을 말없이 두드린다. 어느새 다몽크의 눈시울에 이슬이 맺힌다. 다몽크가 나를 향해 말한다.

   “위치 추적 장치를 통해서 셀라위치의 행적이 끊긴 곳을 알아내었어요.”

   다몽크는 얘기를 마치자마자 나의 손을 이끌고 어딘가로 달려간다. 5분가량 백사장을 다몽크와 달린 뒤다. 바닷물에 인접한 백사장의 어느 장소에서다. ‘시옷(ㅅ)’자 모양으로 3m가량 길이의 마른 대나무 2개가 세워져 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섬뜩해진다. 이러한 구조물은 수장(水葬)하는 곳에서 취하는 인도네시아의 표식이기 때문이다. 그 대나무 밑에서 바다로 걸어간 발자취가 또렷이 보인다. 대나무 밑에는 30cm 높이의 돌멩이에 종이가 깔려 나풀댄다. 마른 대나무는 섬의 해변에서는 흔히 눈에 띄는 물체들의 일부다.

   돌멩이를 밀치니 글자가 적힌 종이가 눈에 띈다. 다몽크와 내가 급히 종이를 펼쳐 든다.

   생명의 활력을 제공하던 꿈결 같은 고향의 숨결이여.

   근원을 상실한 현실에선 삶은 허망한 궤적일 뿐.

   비상할 꿈과 의미마저 사라진 현실을 원점으로 반납하련다.

                              - 셀라위치 -

   글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다몽크와 내가 울음을 터트린다. 직감적으로 이미 셀라위치가 익사했음이 드러난 셈이다. 둘이 서로를 얼싸안고 통곡을 해댄다. 다몽크는 연인을 상실한 슬픔 때문에 오열한다. 나는 마음이 통하던 좋은 동료를 잃었기에 슬퍼 울부짖는다.

   한동안 넋을 잃고 통곡하다가 생각난 듯 해양 경찰에 신고한다. 십여 명의 잠수부들까지 동원하여 3시간씩이나 수색했지만 셀라위치의 자취는 묘연하다.

   경찰들마저 돌아가 버린 백사장에서 다몽크가 다시 통곡한다. 세상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모양이다. 그녀마저 바다로 걸어 들어갈까 염려스럽다. 정황으로 봐서 오늘만은 다몽크랑 함께 지내야 하리라 여겨진다. 그녀를 달래면서 상념에 잠긴다.

   내가 나를 비하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셀라위치의 말에 마음이 흔들린다.

   “누가 은빈 씨를 못생겼다고 하던가요? 누군지 모르지만 사람들의 눈이 문제라 여겨져요.”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를 인정해 준 사내였다. 다몽크가 그의 애인이었다는 연분만으로도 그녀를 보호해야 하리라 여긴다.

   아침부터 점심도 굶은 채 바닷가에서 둘이 슬픔에 잠겼다. 그러다가 해변에 석양이 질 때까지도 해변에 엎드려 있었다. 가까스로 다몽크가 마음을 추슬러 백사장에서 일어선다. 그런 그녀가 나를 향해 말한다.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이네요. 세상 사람들이 은빈 씨 같았으면 좋겠어요. 셀라위치의 마음도 은빈 씨를 닮았더라면 저를 울리지 않았을 거예요. 따스한 숨결이 너무나 그리워요. 오늘 하루만 더 저랑 숙소에서 머물 수 없겠어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다몽크의 눈시울 가득 눈물이 줄줄 흐른다. 어슴푸레한 해변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는 다몽크를 끌어안는다. 다몽크도 나를 끌어안으며 급기야 통곡을 한다. 맞닿은 뺨을 통해 흘러내리는 서로의 눈물을 느낀다. 세상이 이처럼 공허하고 적막할 줄은 미처 몰랐다. 내가 왜 울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나도 울음을 터뜨린다. 울음의 색채가 붉은색에서 하얀색으로 바뀔 때까지 둘이 흐느낀다.

   바닷바람이 앙칼진 위세로 달려들 무렵에야 둘이 외빈 숙소로 향한다. 외빈 숙소에서 다몽크랑 밤을 세워 얘기를 나눌 작정이다. 내 마음속에만 묻어 두었던 어머니(養母)의 얘기까지 털어놓고 싶어진다. 그리하여 우주의 숨결로 생부모의 흔적을 찾고 싶다. 그들이 어디에 머물든 조용한 숨결로 안부를 묻고 싶다. 그래야만 셀라위치처럼 주변 사람을 울리지 않을 것 같다. 피를 나눈 자매처럼 둘이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둘의 치맛자락을 구름송이처럼 말아 올린다. 넋이 빠진 듯 허청대는 다몽크와 나를 밤안개가 차갑게 감싼다.

<200자 원고지 10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