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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몰의 파동

                                                                                          손 정 모

   연거푸 비수 같은 냉기로 머리카락 바깥까지 분출되었던 악몽 탓이리라. 새벽에 풋잠에서 깨어나 베란다 창문을 열고 멍든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깥 공기가 실내로 왈칵 밀려들며 냉기를 마구 쏟아낸다. 시린 눈발처럼 뒤엉킨 별들이 나를 사방에서 싸늘하게 노려본다.

   ‘아버지에 대한 꿈만 꾸면 왜 풋잠에서조차 깨어날 정도일까? 한 번이라도 다정하고 따스한 인상을 느꼈던 적이 있었던가?’

   차가운 공기가 연거푸 살갗에 날카롭게 휘감겨 들기에 창문을 닫는다. 그러고는 침상에 올라 잠든 아내를 흘깃 바라본 뒤다. 나는 이불을 얼굴까지 둘러쓰고는 이내 수마에 휩쓸려 든다.

   내게 도달된 편지를 확인한 것은 이틀 전이었다. 시골 종중으로부터 우송된 편지였다. 신설 국도(國道)가 들어서면서 종중산의 일부가 국가에 매각되었다. 그 바람에 종중산 일대의 나의 생가(生家)마저도 팔렸다. 생가 뒤엔 높다란 계곡이 발달되어 있었다. 계곡의 북쪽 가파른 벼랑에는 인공으로 판 동굴이 있었다. 6?25 사변 때 아버지가 방공호로 팠던 곳이었다. 종중의 회장이 동굴에 간직된 물품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하는 통보였다. 물품 정리가 끝나는 대로 건설 공사가 시작될 거라고 했다. 미루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오늘인 토요일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했다. 조수석엔 아내를 태워 오랜 만에 귀향길에 올랐다. 새벽 시간이라 차를 달리자마자 아내는 금세 잠이 들었다. 차는 서해안 고속도로에 들어서자마자 청량한 엔진음을 토해 내며 달린다. 43살이란 내 나이에 실린 생동감이 차체에 실리는 듯하다. 운전대를 잡은 내 머릿속으로 과거의 상념들이 구름장처럼 흩날린다.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내게 무척 버거웠던 단어가 있다. 아버지, 아버지란 낱말이다. 세월이 무척 흐른 근래에까지도 내 마음을 짓눌러 온 말이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일 때의 가을철이었다. 들녘에는 벼가 익어 온통 눈부신 황금물결로 마냥 출렁거렸다. 그 날 방천의 농막(農幕)에는 나 혼자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농막은 원두막 모양의 가건물로 가을 햇살을 가리는 용도로 세워졌다. 마을 친구들인 인수와 태준은 인근의 범골 친구들한테 놀러간 모양이다. 개천의 일부를 막아 물고기를 잡기로 약속했다는 걸 나도 알았다. 사실은 나도 그들과 어울려 물고기를 잡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농막에서 새 떼를 쫓아야만 했다.

   반복되는 일상이어서 지루하고 따분한 느낌이 마냥 들었다. 전신에 맥이 풀려 시무룩한 얼굴로 논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방천(防川)을 따라 마을 사람들의 논이 물결처럼 펼쳐져 있었다. 수백만 개의 자갈돌이 떨어져 내리는 듯한 굉음이 하늘을 뒤덮었다. 참새 떼들이 대규모로 날아들면서 내지르는 소리였다.

   “후여어. 후여어어!”

   몇 차례나 크게 고함을 지른 뒤였다. 갑자기 영문도 모르게 억울한 느낌이 전신을 휘감았다. 화가 나서 논가의 돌멩이를 걷어차면서 논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뭐야? 나는 놀 줄 몰라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만날 나한테만 참새를 쫓으라고? 아유, 따분해서 정말 미치겄네.”

   그렇지만 논은 내게 아무런 응답도 들려주지 않았다. 따가운 햇살만 황금빛 벼이삭을 건너다니며 열기를 내뿜었다. 바로 이 때였다. 논을 송두리째 뒤덮을 정도로 많은 참새들이 논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마치 수천 마리의 땅벌들이 사람의 머리로 달려드는 느낌마저 들었다.

   “짹짹짹짹! 짹째액 짹짹짹!”

   엄청난 숫자의 참새들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놀라서 내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새 떼가 너무 많아 하늘을 구름장처럼 가릴 지경이었다. 그처럼 많은 참새 떼들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돌연 가슴속이 답답해지며 머리에 섬광(閃光)이 일듯 현기증이 일었다. 헛구역질까지 해대다가 너무나 어지러워 나는 방천에서 기진하여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나를 향해 참새들이 마구 달려들지도 모르리라는 공포감마저 일었다.

   “새 쫓으라고 내보냈더니 뭘 하고 있노? 니 눈에는 새가 안 보여? 뭐 이런 멍청한 놈이 다 있어? 새가 안 보이냔 말이야? 새가아!”

   어느새 나타났는지 방천에 드러누운 내 앞에서 아버지가 고함을 질렀다. 화를 내는 아버지의 얼굴이 불덩이처럼 벌겋게 타올랐다.

   ‘아, 이러다가는 정말 호된 매질을 당할지도 모르겠네. 아, 너무 어지럽고 숨이 막혀.’

   자신도 모르게 사타구니가 저릿하더니 급기야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섬뜩한 느낌이 들며 매를 맞을 듯한 두려움이 폭죽처럼 밀려들었다. 한동안 아버지의 광기(狂氣) 실린 듯한 고함소리가 방천을 뒤흔들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른 아버지가 등을 돌려 방천길에 올라설 때였다. 창졸간에 설운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그러자 나도 모르게 알싸한 눈물이 얼굴을 타고 마구 흘러내렸다.

   ‘왜 유독 아버지는 걸핏하면 고함치고 때리려 할까? 친구들인 인수와 태준의 아버지들은 그렇지 않은데 왜 아버지만 그러냐고? 왜, 왜, 왜에?’

생각할수록 설움이 격하게 끓어올랐다.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 마냥 흐느끼면서 허리를 꺾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오전 5시 무렵이 되자 차가 충남의 홍성군을 관통한다. 조수석의 아내는 코까지 골며 단잠에 빠져 있다. 나다니는 차량이 적은 탓인지 고속도로는 탁 틘 상태다. 시선을 되도록 멀리 내보내며 쾌속으로 차를 몬다.

   아버지가 허허로이 운명한 것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일 때였다. 일요일 아침인데도 기척이 없기에 가슴을 죄며 작업실 문을 열었다.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작업하곤 하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작업하던 키 위에 갈대처럼 엎드린 상태로 숨져 있었다. 키는 곡식을 까불어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죽세품(竹細品)이었다. 누적된 피로가 사망 원인으로 밝혀졌다.

   어머니를 깨워 작업실에서 쓰러진 아버지를 대할 때였다. 슬픔보다는 억울한 느낌이 솟구쳐서 저항하기 어려운 격랑으로 가슴이 들끓었다. 부자간에 대화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영원한 앙금으로 남겨지는 듯했다. 가슴을 숯덩이로 만들 듯 암울한 잔영들이 머릿속으로 휩쓸려들었다.

   어머니로부터 띄엄띄엄 들었던 아버지의 과거가 떠올랐다. 4살이 되기도 전에 해난 사고로 부모를 잃었던 아버지였다. 고아가 되면서부터 아버지를 거두어들일 만한 여력의 친척이 없었다. 그래서 7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되면서 13살의 나이로 귀국했던 아버지는 사변 당시에 18살의 나이였다.

   주변의 연고자도 없었기에 일본 전역을 떠돌며 삶의 방식을 익혔다. 해방이 되면서 무조건 국내로 들어왔다. 부산항에 도착하면서부터 부두 노무자로 생활하기 시작했다. 생활은 고달팠지만 미래를 위해 임금을 알뜰히 모았다. 그러다가 돈을 약간 비축했을 때에 6?25 사변이 일어났다. 전국에서 피난민들이 부산으로 밀물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난리통에 고향이 어떻게 변했을지 아버지한테는 안타까울 정도로 궁금하게 여겨졌다. 그리하여 부두 노무자 생활을 청산하고는 진도 산월리의 산월마을로 찾아갔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잘못 찾아들었다는 느낌이 전신으로 밀려들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당장 빨치산이라고 오해받을 지경이었다. 마을 뒷산인 연대산(해발 257m)이 문제였다. 광활한 연대산 곳곳에 빨치산이 지뢰를 매설하여 요새를 구축하고 있었다. 아마도 여수와 순천이 가까웠던 지형 탓으로 여겨졌다.

   연대산 북서쪽에는 광활한 대숲이 깔려 산바람에 하염없이 나부끼고 있었다. 대숲이 끝나는 봉우리 부근쯤이었다. 가파르게 치솟은 절벽 아래로 깊다란 계곡이 음험(陰險)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토벌대와 빨치산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내쫓기던 아버지는 연대산에 들어섰다. 토벌대의 군인 5명이 지뢰를 밟아 폭사했다는 소문도 들은 직후였다. 생명을 하늘에 맡긴 채 조심스레 연대산으로 들어섰다. 도무지 무서워 발걸음마저 쉽게 옮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내밀한 숨소리를 죽이며 가까스로 절벽 아래의 계곡에 들어섰을 때였다. 절벽 아래의 어떤 동굴에서 실연기가 조금씩 새어 나왔다. 연기를 본 순간에 아버지는 느꼈다. 누군가 밥을 짓는 연기라는 사실을. 하도 허기가 진 상태라 생명마저 내건 상태로 동굴로 다가갔다. 컴컴한 동굴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뒤통수에 번쩍 불길이 이는 느낌이 들며 아버지가 혼절해 쓰러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동굴 바닥에 쓰러진 아버지를 내려다보는 세 명의 남녀가 있었다. 아버지 또래의 사내들 둘과 30대 후반의 여인이 있었다. 의식을 되찾은 아버지에게 여인이 물었다. 어떻게 해서 연대산에 찾아들었느냐고? 아버지로부터 과거사를 듣고 난 뒤였다. 여인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얘야, 너도 나한테서 죽세공을 배우도록 해. 종수와 태식이도 다 같은 처지야. 키는 농가의 중요 물품이거든. 전쟁만 끝나면 키가 너희들의 생계 수단이 될 거야.”

   며칠마다 스승을 제외하고 셋 중 하나씩 번갈아 산을 내려갔다. 절박한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담양에서 일가족을 빨치산에게 잃고 홀몸으로 연대산에 들어선 스승이었다. 연대산 주봉(主峰) 근처에는 연중 안개에 묻힌 유령(幽靈) 바위가 있었다. 깎아지른 듯 치솟은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바위였다. 삶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찾아들어와 이따금씩 목숨을 끊는 곳이었다. 스승도 목숨을 벼랑 아래로 던져 버리려 연대산을 찾았다. 바위 위에서도 두 시간을 더 생각한 뒤였다. 아무래도 세상에서는 아무런 보람을 못 느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눈을 감고는 절벽 아래로 몸을 날려 버렸다.

   그러자 머리와 몸통으로 무시무시한 충격이 가해지며 스승은 의식을 잃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스승이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절벽 아래의 개천 가장자리였다. 우측 넓적다리뼈가 부러졌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나뭇가지에 걸렸다가 떨어진 영향이 컸던 모양이다. 하늘의 뜻이라 여기고 새로운 삶을 산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뼈가 부러졌지만 병원을 찾을 여건이 못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부기는 빠졌지만 목발을 짚어야만 이동이 가능해졌다.

   하천 곁에는 과거에 구리(銅)를 캐던 폐광이 놓여 있었다. 스승이 폐광 안을 둘러보니 안전한 주거지가 될 만하다고 여겨졌다. 스승은 원래 죽세품인 키를 만드는 기술자였다. 스승은 동굴에 머물면서 키를 만들며 생활 자금을 마련할 작정이었다.

   동굴에 머문 지 2주일쯤 지난 뒤였다. 빨치산에게 가족을 잃은 18세의 종수와 태식이 자살하러 동굴로 들어섰다. 둘은 서로 이웃에 살던 친구들이었고 같이 죽기로 마음을 굳혔다. 두 사내들이 마주 꿇어 앉아 농약(農藥)을 마시려고 할 때였다. 그들이 동굴에 들어선 이후의 행동을 은밀히 지켜보던 스승이었다. 스승이 사내들을 감화시켜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유도했다. 그 날부터였다. 사내들은 동굴에 머물면서 여인으로부터 키 제조법을 전수받았다.

   청년들은 여인을 깎듯 스승으로 떠받들었다. 미래의 생계 수단인 중요한 기술을 전수해 주는 은인(恩人)이기 때문이었다. 종수와 태식은 스승과 비슷한 사유로 연대산을 찾아들었다. 아버지만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여 찾아왔다가 산으로 내몰렸다. 아버지가 부산에서 벌었던 노임이 넷을 먹여 살린 기반이 되었다. 전시중이라 시장에 키를 내다 팔 처지가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1953년 7월 27일에 휴전이 이루어졌다. 그제야 스승을 비롯한 청년들 셋이 연대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하산하던 길에 스승은 계곡에 묻혔던 지뢰를 밟았다. 폭음과 함께 스승은 사망하고 말았다. 한여름 날. 지뢰로 다리가 절단되고 창자가 파열된 채로 즉사한 스승이었다. 청년들은 계곡 언저리의 땅바닥을 파서 광중(壙中)으로 만들었다. 관조차도 만들 경황이 없던 때였다.

   이윽고 청년들 셋이 광중에 스승을 눕혔다. 다리가 잘리고 창자가 터졌어도 수건으로 스승의 얼굴만은 단정히 닦았다. 감긴 눈의 스승의 얼굴을 아버지가 바라볼 때였다. 키 기술을 가르치던 스승의 낭랑한 목소리가 너울이 되어 밀려들었다.

   “조금 더 대롱으로 치밀하게 쳐 넣어. 엉성하면 제 값을 못 받잖아?”

   이승에선 다시는 못 만날 스승이었다. 맑은 피부와 갸름한 얼굴에는 늘 일렁이던 미소가 스러지고 없었다. 단말마(斷末魔)로 분출되었던 눈물만이 눈시울에 말라붙어 하얗게 엉겨 붙어 있었다. 호수의 물결처럼 남실대던 스승의 자애로운 모습이 창백하게 바스러져 있었다. 일시에 가슴의 바다로 처절하게 울부짖는 바람소리가 아버지한테 휘몰려들었다.

   창졸간에 아버지의 목이 울컥 메었다. 펑 뚫린 가슴으로 서슬 퍼런 슬픔의 불길이 바르르 치솟았다.

   “스, 스승니임! 이렇게 작별하게 되다니요! 으흐 으흐흐흑!”

   할 말은 많았어도 더 이상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말도 못한 채였다. 발성조차 안 되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아버지가 스승의 목을 감싸 안았다. 스승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충혈된 눈알이 금세라도 터질 지경이었다. 세상의 의미가 수증기처럼 증발된 느낌이 알싸하게 청년들의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아버지를 바라보던 두 청년들도 일시에 허리를 꺾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스승의 눈빛만 떠올려도 활력이 치솟았는데 다시는 못 만날 운명이라니! 청년들은 번갈아가며 스승의 얼굴에 뺨을 맞대고 통곡하기에 이르렀다. 청년들의 얼굴은 흘러내리는 눈물로 온통 반죽이 된 상태였다. 그렇게 많은 눈물이 청년들에게 감춰져 있었으리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연대산을 내려선 뒤였다. 청년들은 기약 없는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는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는 죽세공의 명산지인 담양으로 갔다. 거기에서 초가(草家)를 한 채 사서 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숲을 찾아 대나무를 사서 집으로 날랐다. 그러고는 아버지가 1주일에 10개씩의 키를 만들어 도매점에 넘겼다. 아버지가 담양에서 줄곧 일하다가 38살이 되어서야 혼례를 올렸다. 중매를 통해 35살이었던 농촌 처녀를 만나게 되었다. 결혼을 하면서 부모는 고향의 터전을 떠올렸다. 아무런 친척도 없었지만 고향이라는 사실 하나로 산월마을로 찾아들었다.

   아버지가 산월마을에 정착한 그 해에 내가 출생했다. 그 때부터 산월마을은 나의 고향이 되었다. 아버지가 고향에 정착하기 얼마 전이었다. 아버지가 손수레(rear car)에 대나무를 싣고 언덕길을 내려갈 때였다. 대나무를 묶었던 밧줄이 터지면서 대나무가 밀려 내려가 아버지를 덮쳤다. 그때 아버지의 왼쪽 발목뼈가 부러졌다. 곧바로 병원을 찾아 치료했지만 후유증이 남았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다리를 절게 되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아버지를 떠올리기만 하면 나의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 연상되었다. 유년시절의 고향 마을에는 23가구가 살았다. 마을 앞에는 길이가 2km이며 폭이 800m인 광활한 논이 있었다. 논이 여러 마지기로 분할되어 있어서 집집마다 논에 벼를 심었다.

   논에 참새 떼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삶아서 껍질을 벗긴 하얀 바가지를 내게 내밀며 말했다.

   “여기다 허수아비 얼굴 좀 그려 봐. 참새가 놀라서 달아날 정도로.”

   아버지는 검정 페인트가 든 깡통과 붓까지 내게 내밀었다. 페인트는 옆집에 사는 영수의 아버지한테 빌려온 모양이었다. 그림으로는 도내에서 교육감상까지 수상한 경력을 지닌 나였다. 당당한 자세로 다섯 개의 바가지에 눈썹과 코와 입술을 그렸다. 눈썹은 갈래가 져서 위로 치솟았고 코는 커다랗게 두드러졌다. 입은 한껏 벌어져 삼킨 것을 마구 토하는 듯한 형용이었다.

   작업이 완성되었을 때 들판에서 아버지가 돌아왔다. 허수아비의 얼굴 그림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느닷없이 커다랗게 웃었다. 그러더니 부엌의 어머니한테까지 들릴 정도로 크게 말했다.

   “이야, 이만하면 참새들이 알아서 슬슬 뒤로 피하겠는걸. 정말 잘 그렸어. 썩 마음에 들어.”

   아버지의 칭찬은 억눌린 내 가슴을 단숨에 환희의 바다로 휘몰았다. 거기 푸른 바다 위로 자긍심의 새들이 수없이 비상했다. 영롱한 색채로 하늘 높이 치솟는 환희의 포말들로 눈부실 지경이었다.

   바가지에다 허수아비 얼굴을 그려서 아버지한테 전해 준 며칠 뒤였다. 귀가하여 대청마루를 지날 때였다. 아버지의 수첩에서 살짝 얼굴을 드러낸 낡은 사진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의 스승이었다는 여인의 흑백 사진이었다. 삶이 힘들 때에 가끔씩 아버지가 들여다보던 사진이었다.

   그 날 마루에는 박을 삶아 갈라서 말리던 바가지가 있었다. 순간적으로 내게 어떤 착상이 떠올랐다. 흑백 사진의 얼굴을 바가지에 조각 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여인의 사진을 조심스레 빼내어 사랑방으로 들고 갔다. 사랑방은 나의 독방이며 내 유년기의 보금자리였다. 먼저 사진을 보면서 바가지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렸다. 그런 뒤에 심혈을 기울여 공작용 조각칼로 바가지를 후벼 팠다.

   표면이 조잡해지면 사포로 문질러 매끄럽게 다듬었다. 소년의 관점에서 최대한 사진과 닮게 보이도록 사흘간 공을 들였다. 작업에 임한 지 사흘째가 되어 마무리 단계가 되었을 때였다. 내 기준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 꽤 흡족하게 여겨졌다. 별다른 기대감 없이 조각품과 사진을 아버지의 작업실에 갖다 놓았다. 그런 뒤엔 유년의 세월에 묻혀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여보, 군산 휴게소에서 좀 쉬지 않겠어요? 서둘지 말고 여유를 갖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조수석의 아내가 나를 보며 말한다. 나도 미소를 머금으며 응답한다.

   “좋아요, 그럽시다. 화장실에도 좀 다녀와야 할 테니까요.”

   39살의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다. 만날 학생들을 상대해서 그런지 언제나 쾌활하며 활력이 넘친다. 나보다 네 살 연하이지만 생각하는 세계가 넓고도 다양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따사롭고 평온하다. 차를 휴게소에 주차시킨 뒤에 식당을 향해 나란히 걷는다. 여기저기서 군침이 도는 음식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러더니 심부름 좀 갖다 오라고 말했다. 아랫마을로 내려가 사람들이 회의하는 내용을 듣고 전해 달라고 했다. 회의 내용을 제대로 듣겠답시고 귀를 기울였다. 하천 부지 일부를 인근 마을에서 구입하려고 하여 회의한다고 했다. 참석한 마을 사람들의 의견이 너무나 달라 도무지 정리하기 힘들었다. 머리에 정리도 안 된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은 무리라 여겨졌다.

   집으로 돌아와 불안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섰을 때다. 생각이란 생각은 죄다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 고향인 진도보다는 부산에서 청년기를 보냈던 아버지의 영향 탓이리라. 아버지와 나는 전라도 사투리보다는 경상도 사투리에 익숙한 상태였다.

   “심부름은 잘 다녀왔제? 뭐시라 쿠던지 말해 봐, 어서.”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에서 재촉하는 기색이 발출되기 시작했다. 내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희준이 아버지가 돈을 더 많이 내라고 했십니더. 그랬는데 종숙이 아버지는 돈보다도 땅을 얼마나 팔지 정해야 한다고 말했십니더. 그 뒤에는 형찬이 아버지가 ??”

   듣고 있던 아버지가 부근의 세숫대야를 마당에 팽개치며 고함을 질렀다.

   “무신 소리를 씨부랑대고 있어? 결론이 뭔지를 말해 봐. 그래 사람들이 어떻게 하자고 했냐 말이다.”

   나를 노려보는 아버지의 눈에 핏발이 일기 시작했다. 질식할 듯한 기류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도저히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는 매질을 당할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유년기에 아버지한테 대나뭇가지로 사정없이 맞았던 적이 두 차례였다. 위기의식에 잔뜩 주눅이 든 나였다. 마침 밭에서 일하다가 마당으로 어머니가 들어서는 게 눈에 띄었다. 떨어지는 눈물을 추스르며 냅다 집 밖으로 달아나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와의 거리부터 재는 습관이 어느새 붙어 버렸다. 어떤 경우건 아버지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싸늘한 눈빛과 윽박지르는 듯한 얼굴 표정. 아버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상징적인 인상이었다. 유년기에 내 마음에 깃든 아버지의 심상은 바스러진 잔해였을 따름이다. 아버지라기보다는 차라리 외계인 같은 느낌마저 물씬물씬 들 지경이었다. 나의 내면에서조차 안타까운 말이 들끓었다.

   ‘내가 아버지라면 절대로 저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어. 절대로 말이야.’

   묘하게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어머니에게 신기(神氣)가 밀려들었다. 마을에 가까운 바다에서 유람선이 전복되리란 걸 사흘 전에 예측했다. 실제로 사흘 후에는 매스컴에 유람선 침몰 사고가 크게 보도되었다. 몇 차례나 마을 사람들한테 발설한 예측들이 사실로 밝혀질 때부터서였다. 광주 무등산 근교의 무속인들이 어머니를 만나러 오곤 했다.

   어머니가 고등학생인 나에게 물었다.

   “근래에 내게 신(神)이 자꾸만 달라붙어. 신을 피하면 나뿐 아니라 너의 생명까지도 위험하다고 무속인들이 말했어. 이를 어쩜 좋아?”

   어머니의 말을 듣고는 나는 즉시 응답했다.

   “어머이 좋을 대로 하이소. 내가 반대한다고 해서 그만두지는 않을 거잖십니꺼?”

   어머니가 한참 내 눈을 응시하다가 시선을 돌려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한숨을 내쉬더니 세상 떠난 아버지의 얘기를 들려주었다. 아버지 발목의 골수가 썩어서 걷는 일마저 점차 힘들어졌다고 한다.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사흘 일정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뒤였다.

   새벽에 아버지의 흐느끼는 소리가 마당 건너편 별채에서 새어 나왔다. 별채에는 아버지의 작업실이 있었다. 어머니가 잠결에 그 소리를 듣고는 놀라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아버지의 작업실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환기를 위함인지 작업실의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어머니가 작업실 내부를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다. 아버지가 발목을 움켜쥐고는 입술을 깨문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얼마나 고통이 극심했던지 아버지의 이마에서는 땀방울마저 줄지어 흘렀다. 어머니가 문을 막 열려고 할 때였다. 아버지의 독백 소리가 귓전으로 흘러들었다.

   “으으으! 우찌 일키나 발목이 애를 미기노? 통증 때문에 얼마나 시달리는지 마누라도 모를 거야.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야만 하는 내 속내를 우찌 알끼고? 가장(家長)이라서 터놓고 앓지도 못하니 미쳐 삐겄네. 아, 내색하지 말고 견뎌야 하는데도 너무 괴로워.”

   아버지의 독백을 듣고 난 뒤였다. 어머니는 당장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껴안아 달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자존심을 생각할 때엔 그럴 수가 없었다. 창졸간에 방으로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에 휩싸였다.

   어머니는 잠시 뜰로 내려서서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진정으로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아버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금기(禁忌) 중의 금기 사항이었다. 하지만 배우자가 분신(分身)이라는 관점에서는 당장에라도 달려가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었다. 남편을 그녀마저 위로하지 못한다면 누가 위로하겠는가 싶어 가슴이 쓰렸다. 쓰린 정도를 초월하여 피눈물마저 뿌려 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머니는 배우자로서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하여 작업실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자존심에 타격을 받아 통곡하는 아버지의 형상을 상상해 봤다. 그러자 오히려 어머니가 더 통곡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의 자존심마저 보살피지 못하는 아내로 살기에는 어머니가 너무 슬펐다.

   생각이 여기에 미쳤을 때였다. 작업실로 다가가던 발걸음을 멈춰 우뚝하니 섰다. 그러고는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고는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꼈다. 그러자 설움이 불길처럼 훅훅 치밀어 올랐다. 덩달아 흐느끼는 소리마저 높아질 상황이었다. 혹여 소리가 남편에게 들릴세라 발소리를 죽여 안채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돌아가는 발길마다 파르스름한 회한의 잔영이 밤하늘 가득 드리워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였다. 가정 형편으로는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할 입장이었다. 하지만 나도 어머니한테만 모든 짐을 맡길 상태는 아니라 여겼다. 이웃집인 영수의 집을 찾아갔다. 영수의 아버지한테 의논했다. 비닐하우스 재배로 채소를 가꾸되 신선도를 유지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 날 이후로 조언받은 대로 열심히 노력했다. 제대로 된 경작이 될 리 만무했지만 생계는 근근이 이어갔다. 삶을 위해 발악하는 현장을 대자연이 너그럽게 살펴준 덕이라 여겨졌다.

   농사를 짓는 틈틈이 어머니는 인근의 절을 찾아 수행했다. 아무래도 신을 받기가 버거웠던 모양이다. 신을 받는 대신에 사찰에서 수행(修行)을 하기로 했다. 방과 후에 귀가할 때에도 어머니의 얼굴을 못 대하기 일쑤였다. 그러한 날들마다 가슴에는 외로움이 마른버짐처럼 엉겨들었다. 책을 잡을 때나 농작물을 손볼 때에도 고독감이 시리게 엉겨들었다. 어차피 삶은 외로운 과정이라며 스스로를 달래려고 노력했다. 도저히 스스로를 추스르지 못하는 밤마저도 울먹이면서 고독감을 떨쳐 내었다.

   대학 진학을 꿈꾼 것은 일생일대의 모험이었다. 학원 강사로 뛰면서 학비를 스스로 조달하여 대학을 졸업하리라 작정했다. 마음같이 세상 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학비 조달이 어려워 두 차례에 걸친 휴학 생활을 치렀다. 그러다가 겨우 대학을 졸업하기에 이르렀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였다. 어머니의 눈에 비쳤던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어머니한테 어떻게 비쳤는지를 물었다. 어머니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예절 반듯하고 활달하여 어디에서나 인기가 많았어. 게다가 언변마저 유창하여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컸어. 흠이 있었다면 자식인 너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았던 점이었어. 기대감에 못 미치자 자꾸만 역정을 내었던 거야. 자식인 너를 감싸 주지 못했다며 때때로 후회하곤 했어. 세월이 흘렀으니 너도 아버지를 이해했으리라 믿는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보충적인 설명을 했다. 진도에 정착하기 전에 다쳤던 발목 부상으로 수시로 고통받았다고 들려주었다. 뼈를 저미는 듯한 통증이 끓어올라서 참느라고 이를 악물면서 견뎠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쉽게 격분하는 성향을 띠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가 내가 출생한 이후였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누적된 뼛속 질환이라 치료가 근본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통증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면서도 좀체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임종할 때까지도 통증에 시달렸으리라고 말하며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였다.

   그 날 내가 받았던 충격이란 어마어마한 거였다. 아버지 발목의 통증이 그처럼 심했던지를 그제야 알았기 때문이다. 끝내 발목 통증을 자식인 내게까지 내색하지 않았던 아버지였다. 그런 통증이 불붙는 짜증과 격분으로 변해 내게 전해졌던 모양이다. 나를 감싸 주지 못하여 후회했다는 말을 듣고는 콧등마저 시큰거렸다.

   ‘아, 아부지! 제게 왜 진작 얘기하지 않았십니꺼? 제가 알았시모 일케까지 아부지한테 감정이 쌓이지는 않았시낍니더.’

   세상 떠난 아버지를 떠올리자 그만 시야가 흐려지며 몸이 허청거렸다. 도무지 아버지와는 의사소통이라곤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아버지에 대한 사무친 감정이 왈칵 목을 죄는 느낌이었다. 가슴속 밑바닥으로 차가운 회한의 얼음덩이가 마냥 수북이 쌓이는 듯했다.

   그뿐이랴? 아버지를 평가하는 어머니와 나의 관점이 너무 달랐던 점도 충격이었다. 설마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처럼 높이 평가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머니의 언행을 살펴보건대 아버지는 어머니의 절대적인 숭배의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럴 수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가 후한 평가를 내린 건 아니었을까?’

   그 날 이후부터였다. 과거에 아버지한테 내렸던 평가의 관점에 커다란 혼란이 일어났다. 급기야 나의 평가 기준 자체도 극도로 모호했다고 자책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의 배우자인 어머니의 관점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전자회사(電子會社)에서 일하던 중이었다. 직장 부근의 학교에서 근무하던 여교사와 연인으로 사귀게 되었다. 여교사는 나보다 4살 연하였지만 성품이 온화하여 쉽게 정이 들었다. 그러다가 내가 32살 때에 결혼하게 되었다. 내가 개띠이며 아내가 범띠이기에 결혼하면 어려움이 많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산신제(山神祭)를 지내야 한다고 무속인들이 말했다. 만약 절차를 생략하면 횡액(橫厄)이 있으리라는 예언이 잇따랐다. 그래서 산신제를 지낼 무렵이었다. 명망 높은 무당이 어머니한테 말했다고 한다.

   “산신제를 올리면 아들 내외는 무사하겠지만 어머니인 보살님이 위험해질지도 몰라요. 모자간(母子間)의 운수(運數)가 서로를 용납하지 않는 극한 상태예요. 그래도 제를 올릴 거요?”

   어머니는 며칠을 고뇌하다가 산신제를 올리겠다고 대답했다. 그런 뒤에 지리산의 고찰 부근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사찰 뒤의 계곡에서 사흘간의 산신제를 지낸 새벽 무렵이었다. 내가 법당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어머니는 법당의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미동조차 없었다.

   그런 어머니를 발견한 순간이었다. 가슴으로 차가운 기류가 치달아 곧장 숨통을 죄는 느낌이었다. 코에 손을 갖다 대니 이미 숨결이 멎어 있었다. 질식할 듯한 느낌에 어머니를 부둥켜안고는 법당 바닥에 쓰러졌다. 어머니의 오른손에는 사진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 신혼 시절에 촬영된 나의 내외 사진이었다. 거기엔 어머니의 눈물 자국이 하얗게 엉겨 붙어 있었다. 나를 지탱하던 모든 세포가 터져 일시에 폭죽으로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머님, 어머니임!”

   목이 메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나를 지켜주던 세상의 벽이 왈칵 허물어진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의 눈시울에 매달렸던 눈물 자국에 시선이 닿았을 때였다. 일체의 언어마저 대기로 증발한 느낌이 들었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 생명마저도 내놓겠다는 어머니의 결기가 읽혔기 때문이다. 온통 가슴속에서 미친 바람이 써레질을 하며 길길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금세 고막마저 파열될 듯 귓속이 웅웅거리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눈동자가 어머니의 눈물 자국에 머물러 뽀얗게 젖어들 때였다. 인기척에 놀라 무녀도 풋잠에서 깨어 객방(客房)에서 법당으로 들어선 모양이었다. 칠순이 넘은 무녀가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마도 보살님께선 애초부터 생명을 걸고 일을 시작했던 모양이오. 누적된 과로로 건강 상태가 줄곧 나빴었소. 그랬는데도 자식의 장래가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 일을 강행했어요. 일하던 보살들과 함께 객방에서 잠들었는데 언제 법당에 왔는지 모르겠군요. 경찰서에는 내가 연락할게요.”

   잠시 말을 멈춘 뒤에 이번에는 어머니를 향해 무녀가 말했다.

   “어이쿠, 보살님! 아드님을 위해 애 많이 쓰셨어요. 부디 하늘나라에서나 편히 지내세요.”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무녀의 눈가에서도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콧물까지 훌쩍이며 흐느끼는 무녀에게도 어머니는 너무나 안타깝게 비친 모양이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어 정이 많이 들었다는 얘기까지 흐느끼며 말했다. 무녀도 죽음에 임해서는 섬세한 정감을 지닌 여인일 따름인 모양이었다.

   전화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금세 경찰관과 검시의가 도착했다. 검시의에 의해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그 때 어머니의 나이는 66살이었다. 많지도 않은 나이에 아들의 장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은 거였다. 이전까지는 심드렁하게 비쳤던 무속의 세계가 섬뜩할 정도로 무섭게 각인되었다.

   고향에 닿아 문중의 여기저기를 찾아 인사하느라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휴전 이후에 타지에 살던 문중의 몇 가호가 마을로 귀환했었다. 그리하여 생가 뒤편에 종중산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마침내 생가 뒤쪽 계곡으로 아내와 함께 찾아 들어선다. 골짜기 북쪽에는 3m가량의 높이에 5m가량의 길이로 뚫린 동굴이 있다. 아버지 혼자서 은밀히 뚫었다는 동굴이다.

   동굴 맨 안쪽 부분에는 벽에 흰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바닥에서 허리 높이만큼의 위치에 노란 표지가 되어 있다. 가로 세로의 길이가 두 뼘 정도가 되는 정사각형의 표지였다. 노란 부분을 똑똑 두드리니 의외로 진동음이 들린다. 뒷면에 공간이 있다는 것이 드러난 거였다. 지그시 노란 부분의 벽에 힘을 가하니 구멍이 펑 뚫린다. 벽을 가렸던 널빤지에 창호지를 발라 덧칠한 상태였다. 노란 부분만은 널빤지로 가려지지 않은 부분이었다.

   작은 구멍 속에는 노란 보자기가 놓여 있다. 너무나 오래 되어 보자기의 올들이 다 삭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대한 듯하여 아내와 나란히 보자기 앞에 선다. 보자기를 향해 경건하게 두 차례의 절을 한 뒤다. 경건한 마음으로 보자기를 푼다.

   보자기에서 나온 것은 쪼그라든 바가지 하나일 따름이었다. 바가지의 표면에는 어떤 여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마비될 듯이 숨이 가빠진다. 유년기의 추억이 밀물처럼 내 얼굴을 후려치며 밀려든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만들었던 바가지 조각 작품이었다. 만들어서는 아버지의 작업실에 갖다 두고는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그랬는데 그 때의 작품이 내 눈앞에 드러난 거였다. 의식이 마비될 지경으로 충격의 파동이 가슴을 마구 후려친다. 그 조각품에 관하여 일체의 말이 없었던 아버지였다. 그랬는데도 나 몰래 소중히 간직해 두었다는 증표(證票)였다. 이로 인해 가슴에 폭풍이 휘몰아치듯 가슴이 먹먹해진다. 어느새 코끝이 찡해지며 눈시울에 눈물이 맺힌다.

   바가지 속엔 종이 뭉치가 눈에 띈다. 종이를 접어 풀칠을 하여 바가지 뒷면에 붙여 놓았다. 조심스레 종이를 펼치니 아버지의 글이 물결처럼 떠밀려 시선을 자극한다.

   언제나 사무치게 그리운 스승님!

   스승님의 얼굴을 아들 녀석인 명수로 인하여

   재차 대하게 되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바가지에 새겨진 스승님의 얼굴이 하도 실물 같아

   조각품을 대한 순간부터 내내 가슴이 마구 설레었습니다.

   만날 야단이나 맞던 명수가 제게 이렇게 큰 선물을 하여

   며칠간이나 잠을 못 이룰 지경으로 감격스러워 목이 메었습니다.

   스승님을 떠올리며 이제 다시는 명수에게 야단치지 않겠습니다.

   누적된 발목 통증과 기대감으로 소중한 아들을 야단만 쳤던 저였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밝게 키우려고 노력할 테니까 스승님께서도 굽어봐 주십시오.

            제자 최형철 올림

   ‘아, 이럴 수가? 내 마음을 짓눌러 왔던 아버지의 진심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기억 속에서 그토록 오래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던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그런 아버지의 속내가 한 장의 한지 종이에 스며들어 있었다니?’

   느닷없이 가슴속에 광풍이 불어대기 시작한다. 공허하게 내둘리던 유년 시절의 처절한 외로움을 단숨에 쓸어버리려는 듯. 휭휭 새된 소리로 울부짖으며 유년기의 소절(小節)들이 마구 휘몰려든다. 어떤 순간에도 아버지한테 편한 마음을 느끼지 못했던 나였다. 그랬던 나의 영혼이 진정 나의 것이었던가하는 의혹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비상하다가 폭풍에 날개를 다친 날짐승처럼 신음을 발하며 의식이 흐려졌다.

   나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코끝이 시큰거리며 어깨가 흔들린다. 곁에 있는 아내의 존재마저 어느새 의식 속에서 스러져 버린다. 어느새 나의 의식이 날짐승으로 변하여 하늘로 치솟는다. 점점 머릿속으로 휘몰아쳐 포효하는 바람소리가 강도 높게 파고든다. 하늘로 치솟으려는 나의 의지에 햇살같이 포근한 아버지의 미소가 흘러든다. 끝내 자제력으로 평온히 아버지의 미소를 맞으려던 가슴에 구멍이 뚫린다. 창졸간에 울컥 설움이 밀려들면서 허리를 꺾으며 울부짖었다.

   “으흑 으흐흑! 아버지, 아버지이!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너무 몰랐기에 죄송합니다.”

   찰나 간에 눈이 급격히 시큰거리더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쏟아져 흐르는 눈물 줄기로 시야가 금세 흐려진다. 알싸한 슬픔이 가슴을 따갑게 저미며 섬광처럼 휘몰려든다. 뒤통수에 강한 충격을 받기라도 한 듯 의식마저 혼미해지려고 한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은 채 마냥 중얼댄다.

   ‘언제 한 번이라도 아버지께 가슴을 열었던 적이 있었어? 내 처신은 잊고서 아버지 탓만 해댔잖아? 아버지, 환생만 하신다면 진정으로 따뜻이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죄송합니다, 아버지!’

   바가지 앞에 꿇어앉아 먹먹한 슬픔에 취해 있을 때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가만히 두드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젖은 아내의 눈망울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내의 눈시울에서 떨어진 눈물이 나의 콧등으로 흘러내린다. 아내도 울먹이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추스르며 속삭이듯 내게 말한다.

  “여보, 유품을 묘소 앞에서 태워 아버님께 보내 드립시다.”

   숱한 말을 생략한 아내다.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파동 치는 아내의 섬세한 정감이 느껴진다. 나는 유품이 든 보자기를 들고는 아내와 함께 묘소로 오른다. 부모님의 묘소 앞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많이 쌓여 있다. 바람결에 나뒹굴던 나뭇가지들이 묘소 앞에 쌓인 모양이다.

   골짜기로부터 산안개가 실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저녁 6시 무렵의 시각이다. 서녘 하늘에는 낙조가 채색 구름으로 뒤덮여 애잔한 느낌으로 굽이친다. 햇살이 지평선 아래로 서서히 잠기려고 한다. 세상을 비추던 햇살마저 대지를 슬그머니 비껴가려는 순간이다.

   아내와 함께 묘소에 두 차례씩 절을 한 뒤다. 불똥이 숲으로 튀지 않을 장소를 골라 아내와 마주 앉는다. 꿇어 앉아 마른 솔가지와 솔잎에 성냥불을 피워 올린다. 불길이 치솟자 바싹 마른 바가지를 불길 속으로 던진다. ‘타다닥’하는 음향을 터뜨리며 바가지에 서서히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다. 키를 만들도록 지도한 아버지의 스승인 여인의 영혼을 떠올린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평온한 삶을 누리소서.’

   대자연(大自然)을 향해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합장하여 간절히 빌었다. 감았던 눈을 뜨니 아내마저도 합장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있다. 긴 삶의 여정에서 항시 따뜻한 숨결로 지기(知己)가 된 아내다. 아내가 고마워 가만히 아내의 손을 마주 잡는다. 감았던 아내의 눈꺼풀이 열리자 청정한 이슬이 맺혀 반짝인다. 천년의 숨결처럼 솔숲에 휘몰려드는 바람결에 아늑함을 느끼며 나란히 일어선다. 때 맞춰 향긋한 솔향기가 풍경소리처럼 청아하게 후각으로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