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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색 여로

                                                                                         손 정 모

   닫힌 창틈 사이로 아카시아의 향기가 꿈결처럼 감미롭게 밀려든다. 아카시아 꽃만 피면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눈시울이 젖어들려고 한다. 꽃은 실연기처럼 너울대며 십 리까지도 그윽한 향기를 날려 보낸다. 만물(萬物)을 홀리려는 듯 꽃은 눈부신 자태로 연신 요염하게 나부댄다. 성스러울 만큼 하얀 색상의 꽃. 바람이 불 때마다 간들거리며 교태를 부리는 매혹적인 몸짓. 아카시아 꽃만 떠올려도 선경(仙境)에 이끌리는 듯한 정취를 느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구실 창문을 활짝 연다. 줄곧 부담으로 여겨졌던 연구 과제에 대한 근심들이 구름송이처럼 흩어진다. 갈증에 시달리다가 시원한 석간수(石間水)를 한 모금 마신 듯한 기분이다. 건물 북쪽의 산야를 말끄러미 바라본다. 하늘을 향해 길길이 치솟은 아카시아의 숲이 널따랗게 펼쳐진다. 아카시아나무마다 매달린 꽃송이가 설원(雪原)에 펼쳐진 눈송이처럼 눈부시다. 이제 꽃은 절정기를 벗어나 차츰 시들어 가는 모양이다. 5월 하순을 맞았기 때문이다.

   잠시 잊었다는 듯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구성지게 밀려든다.

뻐꾹! 뻐어꾹! 뻐꾸욱!

   아무리 생각해도 묘한 일이다. 아카시아 꽃이 떨어질 무렵이면 뻐꾸기들이 산야로 몰려들어 울음을 내쏟는다. 그 울음소리는 들을수록 애절하다. 그냥 흘려버리려 해도 귓전에 몰려들면서 서러운 정감을 자아낸다. 뻐꾸기 울음소리만 들으면 그만 어깨에 힘이 빠진다. 하던 일도 멈춰지고 눈길은 멍하니 허공을 더듬게 된다.

   작년 3월 26일에 남한 초계함인 천안함이 어뢰에 맞아 침몰했다. 북한 어뢰(CHT-02D)에 맞아 두 동강이가 난 채로 가라앉아 버렸다. 천안함에는 수중 음파 탐지기가 분명히 장착되어 있었다. 공격한 북한 잠수함은 길이가 25미터에 중량이 130톤에 이른다고 했다. 또한 어뢰의 크기는 7.35미터에 이른다고 했다. 바늘 크기도 아닌 25미터 크기의 잠수함을 탐색해 내지 못했다. 그랬으니 어뢰는 더더구나 찾아내지 못했으리라 여겨진다.

   그 날 이후로 남한의 바다는 안심하지 못할 장소가 되었다. 초계함이 적의 잠수함마저도 못 찾는 바다가 어떻게 안전하겠는가? 국방 과학 연구소와 과학 기술원과 해양 연구원에서도 비상이 걸렸다. 군함에 제공된 음파 탐지기의 기능이 부실했던 탓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단순히 근무하는 장병의 판독 미숙으로 돌릴 바가 아니라 여겨졌다.

   해양 연구원의 ‘해양 탐사부’에서 근무하는 선임 연구원인 나다. 그 사건 이후로 나에게도 국가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20개월 이내에 첨단 수중 음파 탐지기를 만들라는 명령이었다. 내 아래에 소속된 연구원이 다섯 명이다. 여섯 명이 머리를 짜내어 신형 탐지기를 개발해야 한다. 물론 명령은 국방 과학 연구소나 과학 기술원에도 하달되었음을 안다. 그만큼 수중의 안전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각 연구소 단위로 연구를 완성하여 국가에 보고하기로 했다. 해양 연구원에서도 대책 회의를 열었다. 영역과 직책상 내가 연구 책임자가 되었다. 해양 탐사부 6명에게 골고루 업무를 할당했다. 탐지기의 원리 파악에서부터 장치 설계에 이르기까지 6명이 줄곧 매달렸다.

   한 해를 넘기면서부터 상당히 많은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신형 탐지기에서 비중을 둔 영역은 교란파(攪亂波)의 발생이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어뢰를 쏜 잠수정에서는 교란파를 발신했다고 추정된다. 교란파란 탐지기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전자기파(電磁氣波)를 의미한다. 북한 신형 잠수함에는 교란파를 발신할 장비가 장착되었다고 간주된다. 교란파를 발신하면 기존의 탐지 장치로는 탐색하기가 어려워진다. 초계함이 고스란히 당했던 핵심 원인이 교란파 탓이라 여겨졌다.

   내 나이 서른하나다. 아직까지 총각의 상태로 미국에서 건너오자마자 중책을 맡고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태평양 동쪽의 버클리대학교에서 연구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해양학(海洋學)과 전자회로(電子回路)에 관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내로 건너왔다.

   나는 책상 위에 그리다 만 도면을 잠시 훑어본다. 그리고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물을 끓여 커피를 마실 작정이다. 소형 물통이 담긴 전열기를 전원에 연결시킨다. 그리고는 기지개를 켜듯 팔을 크게 벌려 좌우로 흔들어 본다. 이내 몸이 개운해짐을 느낀다. 따르르 소리가 들리며 금세 물이 끓기 시작한다. 찻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커피를 탄다. 금세 향긋한 커피 냄새가 실내를 적신다. 나는 찻잔을 들어 커피의 맛을 음미하며 창 밖을 내다본다.

   ‘나를 괴롭힌 영역이 교란파와 뒤엉킨 정상파의 분리였지? 여기에 대해서는 기초 실험도 여러 번 실시했어. 그랬는데도 매끄러운 결과를 얻지 못해 답보 상태이잖아? 잠시 영감을 떠올리려면 뒷산을 산책해야겠군.’

   공휴일인 토요일인데도 연구를 위해 연구원에 출근했다. 건물의 다른 연구실에도 이따금씩 연구원들이 오가는 것이 눈에 띈다. 기일 내에 연구를 마치기가 힘든 부서일수록 주말에는 철저히 쉰다. 오히려 연구 기간에 여유가 있는 부서에서는 휴일에도 더러 출근한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심리 탓인 모양이다. 탐사부에서도 아마 오후가 되면 다들 출근하리라 예상된다. 지금껏 줄곧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탐사부에는 나 혼자 출근한 상태다. 연구실의 출입문을 잘 잠그고는 건물 뒷산으로 올라선다.

   건물을 벗어나자마자 곧바로 산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펼쳐진다. 뒤엉키는 파동을 원래의 진행파와 교란파로 분리시켜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하등의 어려움도 없는데 실제 기계로 재현하기가 만만치 않다. 관련 실험을 수행한 횟수만 해도 수백 차례가 넘는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개선되기는 했지만 만족한 결과는 아직 얻지 못했다. 그래서 속이 탄다. 이론과 실험이 부합되는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타연구 기관에 뒤져서는 안 될 일이다. 타연구 기관이 못 이룬 것일수록 꼭 성취해야만 한다. 명성에 따른 강력한 경쟁 요인 때문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고향 마을을 떠올린다. 고향의 생가(生家)에는 폐허가 된 슬레이트집만 흔적으로 남아 있다. 유년시절의 꿈을 불태웠던 아름다운 마을은 삶의 강력한 에너지의 근원이다. 전남 진도읍 산월리의 산월마을이 내 고향이다. 마을 북동쪽 700미터의 직선거리에는 연대산 주봉이 치솟아 있다. 차도로 마을 북서쪽 1.5킬로미터의 거리에는 쉬미항이란 항구가 있다. 진도의 북서쪽에 놓여 있으며 유람선 항구로 알려져 있다. 진도대교가 놓이기 전까지만 해도 진도에서 목포로 드나드는 대표적인 항구였다.

   마을 앞에는 논으로 이루어진 평야지대가 드러누워 있다. 길이가 1.8킬로미터이며 평균 폭이 600미터에 이르는 면적을 차지한다. 유년시절의 마을에는 37가구가 살았다. 마을 서쪽으로 300미터 거리에는 소쿠리처럼 산으로 파고든 골짜기가 있다. 그 골짜기를 마을에서는 방화곡(芳花谷)이라 불렀다. 거기에는 논과 경계를 이루며 밭도 몇 마지기가 펼쳐져 있다.

   방화곡에는 내 부모가 잠들어 있다. 방화곡에는 햇살이 잘 들어와 예전부터 철쭉들이 골짜기 가득 우거졌다. 그래서 봄철이면 골짜기 일대가 벌겋게 물들곤 했다. 연대산(해발 257m)은 마을 뒷산으로서 영역이 자못 광활하다. 겨울이면 매서운 바람을 막아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길을 오를수록 산은 점차 가팔라지고 있다. 온 사방에는 소나무와 아카시아나무가 길길이 치솟아 있다. 수목이 뒤섞여 절반은 소나무이고 절반은 아카시아나무로 여겨질 정도다. 시야에는 눈송이처럼 하얀 아카시아 꽃들이 온통 산야를 뒤덮고 있다. 꽃이 질 무렵인데도 워낙 넓게 깔려서 향기가 전신을 휘감는다. 오솔길 위로 시들어 떨어진 아카시아 꽃송이가 이따금씩 보인다. 허리를 굽혀 떨어진 아카시아 꽃송이를 주워 냄새를 맡아 본다. 여전히 향긋한 냄새가 머물러 있다. 가슴에 아릿한 감동이 밀려든다.

   고향을 떠올리면 내겐 세 사람의 얼굴이 동시에 밀려든다. 아버지와 어머니 및 장천수(張泉水)라는 마을의 이장(里長)이다. 내 유년시절 내내 영향을 주었던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내게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은 아버지다. 아버지, 아버지! 긴 세월 동안 이 단어만큼 두려우면서도 버거웠던 단어는 없었다.

   어디선가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 제발 내가 산에 올랐을 때만은 울지 말았으면 해. 왜냐고? 울음소리만 들리면 전신의 기운이 금세 다 빠져 버리기 때문이야.’

   괜히 가슴이 확 달아오르면서 금세 눈시울이 가려워진다. 눈물샘이 또 자극을 받는 모양이다.

   대학생 시절에 교양과목으로 조류학(鳥類學)을 수강한 일이 있었다. 수강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뻐꾸기는 자신이 직접 새끼 부화를 시키지 않는 새다. 주로 오목눈이나 박새나 방울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는다. 자신의 알을 제외한 다른 새의 알은 둥지에서 떨어뜨려 버린다. 심지어 이미 부화된 다른 새의 새끼들마저 둥지에서 떨어뜨려 버린다. 둥지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다른 새의 새끼들은 죽게 된다. 이런 일을 해치운 뒤에 뻐꾸기는 멀리서 둥지를 지켜본다. 그러다가 다른 새가 둥지에 들어가 부화를 시작하면 울어대기 시작한다.

   뻐꾸기가 알을 다른 새의 둥지에서 낳는 일은 떳떳하지 못하다. 게다가 다른 새의 알이나 새끼를 떨어뜨리는 것은 가증스러운 행위다. 아무리 날짐승이라고는 하지만 상대적인 판단 기능은 있게 마련이다. 숙명적이어서 피치 못할 괴롭고 참담한 정서를 울부짖음으로 나타낸다고 한다. 뻐꾸기의 울음소리에는 슬픈 정감을 유발하는 저주파의 음파가 내재되어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뻐꾸기의 울음소리에 혼미(昏迷)해지는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한다.

   조류학을 통해 뻐꾸기의 생태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 때까지 신비하게 여겨졌던 뻐꾸기 울음소리의 궁금증이 풀렸다. 정확한 지식을 갖췄음에도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더욱 처절한 울림으로 전해졌다. 아버지를 버렸던 할머니의 영혼이 뻐꾸기가 되어 처절하게 울부짖는 듯했다. 아버지를 미칠 정도로 울렸던 서러운 정감이 나한테까지 전달된 모양이다. 그래서 뻐꾸기의 울음소리만 들리면 전신이 나른해지면서 기력이 떨어지는 기분이다.

   어릴 적에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날짜를 손꼽아 기다렸다. 37가구 중에서 내 또래의 아이들은 다섯 명이 있었다. 다섯 중에서 넷은 사내이고 하나는 계집애였다. 넷은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고 있었으며 나만 빠져 있었다. 입학할 무렵에 내가 장기간 혹독한 몸살을 앓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쨌건 다른 애들은 학교에 다니는데 나만 뒤쳐져 집을 지켰다. 또래 친구들이 늘 부러웠던 나였다. 그랬기에 학교에 입학할 날을 간절하게 기다리곤 했다.

   봄이 되었어도 날씨가 쌀쌀한 입학식 날이었다. 나는 가슴 부푼 심정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학교에 들어섰다. 운동장을 처음 본 순간이었다. 그 넓은 면적에 눈알이 팽 돌 지경이었다. 그렇게 넓은 마당은 생후 처음 봤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 웅장한 크기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야 아주 작은 운동장일 따름이었다고 인식되었지만. 입학 전에는 산 고개를 넘어서 학교에 갈 일이 없었다. 그랬기에 입학식 날에 운동장으로부터 받은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입학식을 시작한 뒤에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귀가해 버렸다. 당시에 한 학년은 두 학급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학년 1반의 담임은 여선생님이었고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나저제나 내 이름이 불리겠거니 여기고 차례를 조심스럽게 기다렸다. 선생님이 출석을 다 불렀는데도 내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출석을 부른 뒤에는 다른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말없이 대열에서 벗어나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 날 오후였다. 아버지가 대나무 뿌리를 주워 들고는 나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집 울타리가 대나무였기에 대 뿌리는 흔했다. 평소에도 무섭던 아버지라 고함도 못 지른 채 마구 얻어맞았다. 어머니가 말렸지만 어머니마저도 나 때문에 매를 맞았다. 아무튼 그 날의 기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맞을 때엔 이유도 모른 채 마구 맞았다. 어렸지만 너무나 분해서 치를 떨며 울었다. 우니까 울음소리를 낸다고 해서 아버지한테 재차 맞았다. 그래서 입학하던 날은 이유도 모른 채 엄청나게 맞았다.

   세월이 아무리 흘렀어도 그 날의 일은 생각할수록 끔찍스런 악몽이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렸어도 그 시점을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하기 마련이었다. 이유도 모른 채 마구잡이로 매를 맞은 것은 충격적인 대사건이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그 날부터 나는 아버지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집 안팎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건 아버지의 위치부터 파악하곤 했다.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아버지와는 경계선을 반드시 그었다. 아버지는 가족이라기보다는 외계에서 온 무서운 존재로 여겨질 정도였다.

   뻐꾹! 뻐뻐꾹!

   하염없이 우는 뻐꾸기의 머릿속으로 할머니의 영혼이 정말 파고들었을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전신의 기운을 잃게 만드는 애절한 울음소리. 뻐꾸기의 목에서 피가 끓어 넘치는 듯하여 뇌수가 흔들릴 지경이다. 아카시아나무 사이로 치솟은 자작나무의 둥치를 붙들고는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방향이라도 알아두고 싶어서다. 최소한 그 방향이 남쪽이었는지만이라도 알고 싶어서다. 하지만 도무지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다. 방향마저 알아낼 길이 없어지자 나는 손바닥으로 자작나무의 둥치를 두들긴다.

   탁! 탁탁탁!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아카시아의 향내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아카시아의 향기로 서서히 마음을 추스른다. 유년시절부터 들어오던 뻐꾸기의 울음소리에 잠시 길을 잃었던 느낌이다. 고개를 힘껏 두어 번 흔들고는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은 뻐꾸기 울음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더 이상 뻐꾸기의 울음소리로부터 아버지와 할머니를 연상시키고 싶지 않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단순한 음향으로 자연에 되돌려 주고 싶다. 손바닥을 쳐 소리를 내어 그런 내 마음을 허공으로 띄운다.

   매를 맞은 다음 날부터 나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진호야, 선생님이 어제 널 본 기억이 있어. 네가 원래 2반에 편성되어 있었거든. 네 어머니가 1반으로 바꿔 달라고 입학식 전날 내게 부탁했었어. 그걸 깜빡 잊고 네 이름을 그만 빠뜨렸더구나. 나중에야 알아차리고 반 친구들과 함께 네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어. 하지만 너는 사라지고 없더구나. 선생님이 실수했으니까 애들과 잘 어울리도록 해, 알겠지?”

   얼굴이 곱상한 처녀 선생님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첫 날 겪은, 학교와 집에서의 충격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나중에 정신이 이상해지더라도 그 날의 충격 탓으로 돌릴 지경이었다. 원래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손가락을 꼽으면서까지 기다리던 나였다. 그랬는데 첫 날의 충격으로 모든 학업에서 흥미를 잃고 말았다. 선생님을 대하거나 친구들을 대하여도 전혀 감흥이 일지 않았다. 마치 자갈밭에 나뒹구는 돌조각을 바라보듯 심드렁해질 따름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여겨졌다.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호주머니에서 떨어댄다. 귀에 갖다 대니 상희의 목소리가 밀려든다.

   “어디야? 휴일이라 집으로 갔더니 옆집 아주머니가 직장에 나갔다더구먼. 그래서 연구원으로 왔는데 여기도 없기에 전화하는 참이야. 오늘은 휴일이잖아? 오늘은 나랑 같이 있어 줄래?”

   울적한 기분에 젖어 있었는데 연인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서 반갑다. 모든 걸 떨치고 상희에게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았어. 여기는 연구원 뒷산이야. 구내 주차장에서 기다려. 내가 금방 내려갈게.”

   나는 곧바로 발길을 돌려 오솔길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상희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 우주공학과(宇宙工學科)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여인이다. 나보다 세 살 연하이며 항공 우주 연구원의 선임 연구원이다. 미국에 머물면서 비슷한 지역이라서 자주 만나다 보니 연인이 되었다. 얼굴은 수수하고 성품은 소탈하여 서민적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따스한 느낌을 주는 상희가 내겐 소중하기 그지없다.

   내가 상희에게 매력을 느낀 근원적인 이유가 따로 있다. 가정 형편으로는 도저히 고등학교나마 졸업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력하여 눈부신 성취를 이루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신속히 어려운 여건의 실상을 파악하고는 돌파의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했다. 고교 재학 중에 학력을 고도로 높여 실력을 키웠다. 그런 다음에 등록금이 싼 국립대학에 진학했다. 입학하면서부터는 입시 학원을 찾아 강사로 취직하면서 학비를 자력으로 조달했다. 이렇게 하여 대학을 자력으로 졸업하는 데 성공했다.

   상희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는 두 가지 종류의 시험을 치렀다.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 대학원 등록 시험)와 TOEFL(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외국어로서의 영어 시험). 두 개의 시험 성적만 좋으면 미국 국비 유학이 가능하다. 숙소도 제공되며 일정한 장학금이 미국의 대학 당국에서 매달 제공된다. 이 과정을 거치고도 미국에서 사력을 다해 노력하여 학위를 취득했다. 역경을 돌파하겠다고 마음먹기보다는 경제 탓으로 돌려서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대다수의 길을 피해 당당히 노력하여 관문을 통과한 상희였다.

   상희가 미국에 건너간 방식이 나의 방식과 마찬가지였다는 점. 이런 방식은 개인에게는 조금의 재산이 없어도 유학이 가능한 방식이다. 실력을 갖춘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내용이다. 누구든 아는 내용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실제로 돌파했다는 점이 돋보였다.

   내가 연구원 주차장에 내려섰을 때다. 주차장에 기다리던 상희가 활짝 웃으며 손을 번쩍 든다. 반가운 마음에 서로 달려가서 손을 맞잡고는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 상희를 향해 입을 연다.

   “대부도로 나가는 게 좋겠지? 거기에 가서 맑은 바람을 쐬는 게 좋겠어.”

   상희가 고개를 끄떡이며 흔쾌히 동의한다. 내 차의 조수석에 상희가 오른 뒤에 차를 대부도로 몬다.

   초등학교의 입학식을 맞이하기 하루 전날이었다. 내 이름이 2반에 편성되어 있더라는 얘기는 친구들이 마을에 전했다. 마을의 또래 친구들은 2학년들이었기에 쉽게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다. 마을 친구들의 얘기를 전해들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는 거였다. 입학할 때부터 2반으로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학교에 가서 학급을 바꾸도록 말하라고 어머니한테 시켰다고 한다. 그래서 입학식 전날에 어머니가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말했다. 반을 바꿔 달라고. 이런 얘기를 나중에 듣고 나는 그만 마음이 허탈해지고 말았다.

   우열반 편성도 없는 시골 초등학교가 아니었던가? 1반이면 어떻고 2반이면 어떻겠는가? 1반에 속해야 공부를 잘 하리라 여긴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학급의 변동으로 인해 출석부에서 이름이 빠뜨려지지 않았던가? 끝내 호명되지 않았기에 극도의 실망감과 분노를 느꼈던 나였다. 나는 소외감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곧바로 학급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렇게 하교했다가 아버지한테 엄청나게 맞았다. 왜 학급을 떠났느냐고 한 마디만 물어봤어도 덜 억울했을 것이다. 무작정 대 뿌리를 들고 고함을 치며 후려 패던 아버지였다.

   그 날 이후로 학교의 모든 수업에 흥미를 잃어 버렸다.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충분히 적극적으로 잘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도 엉뚱한 생각으로 출발 시점의 활기(活氣)를 꺾어 버린 아버지였다. 그 날 이후로 5학년 때까지의 성적은 하위권에 머물게 되었다. 나로서는 피를 토하고 싶을 만큼 원망스런 부분이었다. 거기다가 사정없이 매질까지 당하여 나도 모르게 반항아가 된 거였다. 적극적 반항이 아닌 소극적인 반항의 형식을 취했다. 구체적인 형식으로는 학업에 집중하지 않으려는 방식을 취했다. 무슨 말이건 건성으로 흘려듣곤 지나쳐 버리려 했다.

   이런 학습 방식에서 무슨 성적이 향상되겠는가? 나날이 학력은 퇴보의 길을 치닫곤 했다. 소리 없는 반항이란 나를 점차 비참한 상태로 내몰았다. 아버지의 매질 탓에 활기라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다. 누구를 만나도 무덤덤한 얼굴로 대하곤 했다. 좀체 웃을 일이 사라진 거였다. 하필이면 인생의 출발점인 입학식 날에 그 난리를 친 아버지였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했다. 누가 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외향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서도 당연히 외향성의 기질이 나타나야 했으리라.

   하지만 내가 판단하기로는 전혀 그게 아니었다. 삶을 시작하는 순간에 반항의 길로 걷게 만든 아버지였다니! 세월이 흐를수록 치가 떨리며 정나미가 떨어졌다. 도저히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호명 대상에서 내가 제외되었음을 느꼈을 때부터 반항은 시작되었다. 그 반항이 아버지만에 대한 반항이었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이다. 순기능의 활기찬 내 운명에 대한 반항으로 변질됨을 느끼기 시작했다. 점차 학년이 높아질수록 나 스스로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무도 대신하지 못할 삶을 더 이상 격하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는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리라 벼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아버지의 매만 비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도 어쩌다가 실수했으려니 여기고 지나치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의 작용은 어쩌다가 생긴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었다. 아버지를 대하거나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본능적인 반항심이 금세 끓어올랐다.

   해양 연구원으로부터 시화 방조제까지는 차도(車道)로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방조제를 건너 대부도 공원 언저리의 해변을 거닐기로 한다. 대부도 공원 일대는 연구원 동료들이 즐겨 찾는 모임의 장소이다.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과 해변으로 드리워진 솔숲. 여기에 와 닿는 청정한 빛깔의 바닷물. 해변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다.

   해변에 차를 세운 뒤에 나란히 걸으면서 상희가 내게 말한다.

   “탐지 장치의 설계는 잘 되어 가니? 나는 2단 로켓에 부착될 정밀 전자기기(電子機器) 설계로 머리가 지끈거려. 과학 기술원 출신의 과학자들이 결성한 M산업과도 몇 차례 만났어. 거기는 위성 제작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회사거든. 서로 도우며 연구를 진행하고는 있지만 보다 참신한 착상이 필요해. 이래저래 너도 만나고 싶기도 해서 너를 찾았어.”

   말을 마치면서 그녀가 내 손을 잡는다. 나도 그녀와 손을 잡고는 나란히 해변을 걷는다. 길이가 1.5킬로미터에 이르는 백사장과 730미터에 이르는 해안의 솔숲이 장관이다. 파도가 밀려와 출렁일 때마다 하얀 포말이 해변으로 흩날린다. 크기가 손가락 마디보다도 작은 게들이 산발적으로 백사장 위를 나다닌다. 물결에 떠밀려 미역과 파래 토막이 여기저기로 흘러 다닌다. 백사장의 곳곳에 작은 게 구멍이 펑펑 뚫려 물이 들락거린다. 후각을 상쾌하게 꿰뚫는 갯냄새가 정신을 맑게 해 주는 듯하다.

   상희의 맑은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든다.

   “내가 미국까지 건너갔기에 소중한 너를 얻었어. 그렇지 못했다면 나는 너 같은 인물을 못 만났을 거야.”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에 잠겨 내심으로 중얼댄다.

   ‘소중한 인물이라고? 소중하다는 근거가 뭐니? 혹시 너의 눈에만 그렇게 비치는 게 아닐까? 짚신도 짝이 있다는데 변변치 못한 나를 그처럼 높이 평가하다니? 지금도 내겐 헤어나지 못할 늪지대가 드리워져 있어. 그 늪지대를 탐색하려고 수시로 길을 떠나는 내 심정을 이해하겠니?’

   매사가 짜증스럽고 울적한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랬는데도 첫 미술 시간이 되었을 때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 보라는 얘기를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크레용이나 크레파스도 마련하지 못한 내 처지였다. 너무나 쪼들리는 가정 형편이라서 도화지를 사 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주변 친구의 도화지와 크레파스를 빌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눈만 뜨면 눈에 보이던 것을 떠올려 그렸다. 슬레이트 지붕 뒤쪽으로 대숲이 울창하게 펼쳐진 집(生家)을 그렸다. 대숲이 바람결에 일렁이는 것을 나타낸답시고 녹색과 연두색을 섞어서 색칠했다. 하늘은 그냥 파란 색으로 진하게 칠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며 쑤군대었다.

   “우와, 진호 집 그림이잖아?”

   “정말이네? 진짜처럼 잘 그리네.”

   “우리 반에서 그림 제일 잘 그리는 것 같다.”

   어느새 선생님도 내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칠하지 않은 공간을 찾아 색칠을 계속했다. 색칠을 마치고 크레파스를 친구에게 돌려줄 무렵이었다. 선생님이 내 그림을 두 손에 들고 바라보며 말했다.

   “정말 잘 그렸어. 아낌없이 강하게 색칠하는 것부터가 다른 애들하고는 다르네.”

   그 날 이후부터였다. 나는 초등학교 전교생 중에서는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고 알려졌다.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아이’. 초등학교 시절에 나를 대표하던 별칭이었다. 숫기라곤 없이 멍청한 나였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은 자신이 있었다. 내가 그림을 그리면 곧바로 선생님에 의해 뒤쪽 게시판에 부착되었다. 그림은 내가 학교를 다니는 데 대한 위안거리가 되었다.

   마을에 들어서도 즐거움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3명의 또래들은 나보다 높은 학년인 2학년들이다. 1명인 여학생은 이장의 딸로서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다. 서울에 있는 이장의 친척이 여학생을 키우는 모양이었다. 나이만 같았지 함께 노는 데엔 뭔가 거리감이 있었다. 또래들은 그림에 대한 나의 명성을 시샘하여 트집을 잡곤 했다. 나도 불만이 많은 아이라 그들에게 만만치 않게 굴었다. 비위가 상하면 달려가서 두들겨 팰 듯 험악한 표정으로 서성거렸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으리라. 학교 운동장으로 차력사(借力士)가 초빙되어 무술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누구보다도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지켜보았다. 차력사가 시연한 무술은 외나무다리에서 적을 만났을 때의 격퇴법이라고 했다. ‘외나무다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차력사가 시연한 동작을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차력사가 보여준 숱한 동작들 중에서 두어 동작이 인상에 남았다. 그 날 이후로 그 동작만을 되풀이하여 남모르게 틈틈이 연습했다. 어쩌다가 다른 동네에 가게 되면 흔히 아이들이 시비를 걸어왔다.

   당시에는 그런 현상이 왜 생기는지 몰랐다. 나중에서야 그런 현상들이 인류의 생존 초기의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생존경쟁으로 일단은 겨루기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겨룬 뒤에 정해지는 서열에 의해 집단이 형성되는 거라고 했다. 얕잡아 보고 덤벼드는 아이들에 대해 나는 피하기만 했다. 손바닥으로 콧등을 내려치기만 해도 제압할 자신이 있었음에도 나는 피했다. 싸움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을 때까지는 피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 둘이 나한테 달려와 트집을 잡았다. 내가 잘못한 일도 없는데도 괜히 트집을 잡는 거였다. 둘 다 나보다는 한 살 위였다. 둘이 괜히 트집을 잡더니만 주먹으로 나를 치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입학식 날에 아버지한테 죽도록 얻어맞은 일이 떠올랐다. 온 몸에 경련이 이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들고 있던 책가방을 땅바닥으로 힘껏 내팽개쳤다.

   마침 땅바닥에 손에 잡힐 만한 돌멩이가 보였다. 곧바로 주워 들고는 닥치는 대로 둘의 머리통을 찍어 버렸다. 둘의 머리가 찢겨 금세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둘이 머리통을 움켜쥐고는 자기네 집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나는 돌멩이를 버리고 책가방을 주워 들고는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도 생각했다. 그 날도 흠뻑 두들겨 맞겠거니 여겼다. 엄청나게 두려웠지만 달리 도리가 없었다.

   집으로 가서 사실대로 애기할 수밖에는 없었다. 맞아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마당에 들어서니 아버지가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다. 어머니를 통해 간접적으로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내로서 당당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한테 다가가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아버지가 차가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알았으니 나중에 보자고 말했다.

   ‘나중에 보자고? 나중에 또 뭘 어쩔 건데?’

   전신에서 일시에 피가 식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달리 별 도리가 없었기에 집을 벗어나 연대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불안한 마음으로 저녁 무렵에 집으로 들어섰다. 조금이라도 야단치는 기미가 보이면 달아나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날 밤 잠들기 전까지도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애들 엄마들이 다녀갔어. 없는 돈에 치료비까지 다 물어 주었어. 다음부터는 그렇게 하면 못써.”

   내가 몹시 불안한 목소리로 아버지가 뭐라고 말하지는 않더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학교에 가기 전에 아버지한테로 걸어갔다. 그만 주눅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잘못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떨어뜨렸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의외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됐어. 그만 학교로 가 봐. 그 놈들은 당연히 맞을 짓을 한 거야.”

   전연 뜻밖의 반응이라고 여겨졌다. 매질은 아니더라도 최소한도로 야단은 맞겠거니 여겼다. 그랬는데도 의외로 나를 용서해 준 거였다. 나도 뭔가 큰 혼란에 휩싸인 채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3년 전 여름철이었다. 상희와 내가 나란히 박사학위 논문 심사에 통과한 해였다. 상희와 나의 학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50킬로미터 이내의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남쪽으로 60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산타 모니카(Santa Monica)’가 있었다. 태평양 해변의 전형적인 휴양 도시였다. 산타 모니카를 향해 새벽 4시에 차를 몰아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했다. 정오 무렵에 상희와 나는 산타 모니카 해변에 도착했다. 미국에서는 승용차가 기본 교통수단이었기에 둘 다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다.

   내 차에 상희를 태워 해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둘은 해변을 향해 걸어갔다. 산타 모니카에서 북쪽으로 6킬로미터, 남쪽으로 6.7킬로미터에 걸쳐서 백사장이 펼쳐졌다. 산타 모니카 백사장의 폭은 300미터가량이었다. 해변은 서경 118.5도, 북위 34도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수만 명에 이르는 피서객들이 해변에 깔려 있었다. 태평양의 청정한 물빛을 미국에서 보게 되니 나의 가슴이 달아올랐다. 상희도 감격한 눈빛으로 그윽이 태평양을 굽어보았다. 둘이 수영복 차림으로 서서 해변의 백사장을 바라보았다. 북쪽으로도 남쪽으로도 백사장의 끝이 안 보였다. 글자 그대로 광막(廣漠)하기 그지없는 백사장이었다.

   몇 차례 바닷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한 뒤였다. 상희와 나한테는 연인으로서의 첫 나들이였기에 시종 가슴이 설레었다. 내 마음이 쿵쿵거릴 때마다 상희도 마음이 마구 설렌다고 속삭였다. 젊은 나이에 수영복만을 걸친 채, 함께 걷는 해변이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온통 시야에 들어서는 것은 새파란 물빛이었다. 수평선 위로는 이따금씩 허허로운 구름장과 갈매기들이 눈송이처럼 떠다니곤 했다. 편안히 드러누워 끝없이 굽이치는 수평선이었다. 그 광막한 수평선을 바라보자니 저절로 왜소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느껴졌다.

   ‘정말 인간이란 너무나 왜소한 존재일 뿐이야. 우주와 자연이 이처럼 광막하고 웅장하지 않은가? 내 아무리 고함치며 날뛰더라도 대자연에 표시나 날까? 이처럼 무한한 공간을 두고도 어느 날에는 죽는 날이 있겠지? 내가 죽더라도 우주와 자연은 끝없이 세상을 지켜 나갈 것이리라. 내 존재란 것도 모래 알갱이보다도 미미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세상을 노려보며 스스로를 당당하다고 여기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거대한 우주와 광막한 세상에서 내 존재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물이 날 정도의 막막한 느낌이 들었다. 묘하게 그 때에도 머릿속을 파고들었던 것은 뻐꾸기의 울음소리였다. 태평양을 건넌 미국에서까지도 내 귓전을 파고든 것은 뻐꾸기의 울음소리였다. 환청으로 밀려든 울음소리를 떠올리자 금세 전신에 힘이 빠졌다. 도저히 계속해서 해변을 거닐 자신감이 사라졌다. 나는 그 날만큼은 상희의 의사에 나를 맡길 작정이었다. 상희는 이전부터 나와 가까이 지내기를 원하고 있었다. 협의된 둘의 의지로 지금까지도 육정(肉情)을 나누는 것만큼은 피해 왔다.

   하지만 당시의 상희는 너무나 정감이 섬세한 상태였다. 굽이치는 파도에 감동해서 모텔에 가자는 눈빛을 보일 정도였다. 인간이 신(神)의 품격을 갖는 의식이 결혼이라고 나한테는 여겨졌다. 이런 의식은 유년시절부터 내게 잠재되어 왔다. 그런 내 관점이 상희의 충동으로 쉽게 흔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상희는 그 날 내내 달뜬 정감으로 교태를 부렸다. 그랬어도 끝내 관점을 지킨 근원은 뻐꾸기의 울음소리였다.

  같은 마을 아이 둘의 머리통을 돌로 찍은 이후였다. 나는 학교에서도 그 아이들 곁을 지날 때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눈빛만 달라져도 뒤엉켜 겨룰 작정이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그들은 내 눈빛을 피했다. 나도 그런 애들과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당당히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 날 그 애들이 왜 나를 쳤는지는 궁금했다. 그들이 먼저 나를 때렸기에 나한테 돌멩이로 찍힌 거였다. 졸업할 때까지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그들을 나는 경멸해 버렸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잠자는 나를 감히 건드렸다고 여기면서.

   마을의 돌멩이 사건이 일어난 이후였다. 나는 내가 사는 마을임에도 마을에 드나드는 것이 도무지 불안했다. 사소한 일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 내향성의 기질이라 여겨졌다. 아무리 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향성 성품이 아니었다. 부모가 외향성 성품이라면 나도 외향성의 성질을 갖는 게 보편적이다. 그런데 움츠리고 경계하는 심약한 내향성의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이런 점은 사회성의 관점에서 봐도 지극히 불행한 현상이었다.

   어쭙잖은 마을 애들과 어울리느니 차라리 연대산이 낫다고 생각되었다. 산에 오르면 계절별로 마음에 푸근히 밀려드는 게 있었다. 산골짜기를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더듬어 내려가면 곳곳에 너럭바위들이 눈에 띄었다. 너럭바위들은 평평하며 넓기에 누구든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도록 유혹했다. 나도 너럭바위를 만나면 반갑다는 듯 앉았다가 가곤 했다.

   내가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 때도 여전히 숫기라곤 없는 조용한 소년으로 지냈다. 산딸기가 열매를 맺을 무렵이었다. 덩굴로 땅바닥을 기는 딸기 이외에 수직으로 치솟는 나무딸기가 있었다. 내가 즐기는 것은 나무딸기의 빨간 열매였다. 제대로 익으면 벌건 열매에서 발산되는 냄새가 무척 향긋했다. 글자 그대로 딸기의 향기였다.

   딸기를 따 먹으려고 산등성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실제로 제법 많은 딸기 맛을 보았다. 그랬는데 하늘에 서서히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는 지형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산등성이를 더듬었다. 그랬는데 오리나무의 고목 위쪽에서 새 떼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하도 소리가 시끄럽기에 나무둥치 부근에서 위쪽으로 올려다보았다. 새가 지저귀는 곳에는 둥근 새집이 보였다. 별다른 일도 없겠다 싶어 고개를 돌리려는 때였다. 기다란 몸체의 물체가 새집 안팎으로 드나드는 것이 느껴졌다. 직감적으로 뱀이라 여겨졌다.

   새들이 뱀에게 시달린다고 느꼈다.

   ‘뱀이 새들을 괴롭혀?’

   순간적으로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살아 있는 오리나무의 가지를 꺾어 작은 몽둥이로 만들었다. 꺾어서 잎만 훑어 버리면 만들어지는 몽둥이였다. 몽둥이를 들고는 운동화를 벗고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무 위를 오르는 것쯤이야 누구나 쉽게 하는 일이었다. 마침내 높다란 위치의 나뭇가지에 올라섰다. 내가 나무 위로 오를수록 새들이 격렬하게 울부짖었다. 그 때의 새 소리는 확실한 울부짖음으로 느껴졌다. 평소 때에 듣던 은은하고도 평온한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위기에 처해 절박하게 토해 내는 음향이었다. 나는 마침내 새의 둥지가 있는 곳까지 올라섰다. 둥지 안에는 물뱀이라 불리는 무자치가 새의 새끼들을 잡아먹는 중이었다. 물뱀이 나뭇가지를 오르는 현상은 이전에도 종종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일단 몽둥이 끝으로 뱀을 들어 올리려고 했다. 뱀이 이내 시커먼 혀를 날름거리며 몽둥이를 물려고 했다. 몽둥이를 점점 뱀의 입 가까이로 들이밀었다. 여전히 혀만 빠르게 날름대며 몽둥이를 물지는 않았다. 급기야 나는 몽둥이 끝으로 뱀의 머리를 쳤다. 뱀이 반사적으로 몽둥이 끝을 바싹 물었다.

   나는 신속히 몽둥이 끝에 힘을 실어 뱀을 밀었다. 뱀이 둥지에서 똬리를 풀더니 몽둥이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마침내 내가 바라는 장면이 벌어진 거였다. 그런 중에서도 새의 둥지 안을 흘끔 들여다보았다. 알에서 갓 깨어난 듯한 새끼 세 마리가 우짖고 있었다. 애초에 몇 마리였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일부의 새끼들은 뱀에게 삼켜졌으리라 생각되었다. 그 무렵에서야 어미 새가 오목눈이임을 알아차렸다. 둥지 부근의 나뭇가지 주변을 날아다니며 우짖고 있었다. 나는 어미 새를 바라보고는 몽둥이에 감긴 뱀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잠시 생각했다. 몽둥이를 그냥 땅바닥으로 던지면 뱀이 달아나 버릴 것 같았다. 땅바닥으로 던지기 전에 손을 좀 봐야겠다고 작정했다. 몽둥이에 칭칭 감긴 뱀의 몸뚱이를 나무둥치에 힘껏 문질렀다. 두어 번 힘껏 문지른 뒤에 땅바닥으로 내던졌다. 그리고는 신속히 나무를 타고 땅바닥으로 내려섰다. 뱀이 몽둥이에서 똬리를 풀고는 막 달아나려던 참이었다. 새의 새끼를 삼킨 뱀을 살려둘 일이 아니었다. 주변의 돌을 들어서 뱀의 머리통을 내리찍었다. 머리통이 완전히 으깨질 때까지 돌로 내리쳤다. 그래도 뱀이 살아날까 봐 몽둥이로 땅을 파서 묻었다.

   뱀을 땅에 묻을 무렵부터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에 오르내리고 뱀을 돌로 찍느라고 옷에 흙이 묻었다. 손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천을 찾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물이 흘러내리는 개천이 보였다. 개천으로 내려가니 상여를 태웠던 잿더미와 덜 태운 만장(輓章)이 보였다. 전신에 소름이 끼쳐 손도 씻지 않은 채 산을 내려왔다. 옷과 신발에는 흙이 엉망으로 튀겨져 있었다. 마침 빗줄기도 굵어져 그대로 집으로 들어섰다.

   마침 마당에 서 있던 아버지가 나한테 말했다.

   “대나무가지를 꺾어 와.”

   나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울타리를 이루는 대나무가지를 하나 잡아챘다. 힘껏 잡아채야만 대나무가지가 몸체로부터 찢겨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꺾인 대나무가지를 아버지에게 내밀었다. 그랬더니 다짜고짜 대나무가지로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노여움과 짜증이 치밀어 올라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아버지, 때리지 마세요! 훗날 내가 아버지를 먹여 살릴 텐데 왜 때립니까?”

   이유 없이 매를 맞는 것에 대한 당찬 반발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돌연 머쓱한 표정을 짓더니 그냥 사립문 밖으로 나갔다. 찰나 간의 일이라곤 하지만 마음이 영 불안했다. 세숫대야에 물을 길러 얼굴과 발을 씻는데도 가슴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나를 때렸을까? 때리다 말고 사립문 밖으로 나간 이유는 뭘까?’

   산의 정취에 취해 딸기를 따 먹고 내려와서는 매를 맞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매질이었기에 속에서 불덩이가 마구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아버지가 왜 저럴까? 생각할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너무 많았다.

   입학식 날부터 헤아려 내가 아버지한테 맞은 회수는 두 번이었다. 어린 나이라고는 하지만 당시의 시점에서도 판단 능력은 있기 마련이었다.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로 해석되었다. 그랬기에 내심으로 반항심은 더욱 커졌다.

상희가 내 손을 놓고는 대부도의 모래바닥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기 개펄에도 바지락이 있을까? 호미를 가져 왔으면 한 번 캐 봤으면 좋겠어.”

   내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들려준다.

   “개펄이니까 분명히 있기는 있겠지. 하지만 거의 없을 거야. 조개를 캐려면 차라리 태안의 해변으로 가는 게 훨씬 나아.”

   기름 유출 사고 이전까지만 해도 조개가 많이 잡히던 몽산포였다. 그런 몽산포에서조차도 꾸준히 개펄을 파야만 조개를 캘 수 있었다. 내 말을 들었음에도 상희가 개펄에 쪼그려 앉는다. 아무래도 개펄을 헤쳐 보고 싶은 모양이다. 해양 분야에 대해서는 내가 전문가다. 전문가의 말을 믿지 않고 쪼그려 앉다니? 하지만 내겐 그녀가 한없이 정답게 느껴진다. 만약 다른 사람이 전문가의 말을 무시했다면 자존심이 상했을지 모른다.

   나는 즉시 주변을 휘둘러보다가 철근 토막을 발견한다. 40센티미터가량의 철근 토막이다. 나는 즉시 그것을 상희에게 건네주며 말한다.

   “정 파 보고 싶으면 이것을 사용해 봐. 깊이는 손가락 길이만큼 파면 돼. 한 장소에서부터 이웃으로 가면서 연속해서 파야 돼. 여기 팠다가 저기 팠다가 하면 하나도 못 찾기 십상이야.”

   상희가 즉시 철근 토막으로 개펄을 파기 시작한다. 갯벌과 개펄은 의미가 조금 다르다. 개펄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개흙을 뜻한다. 물결에 휩쓸리지 않는 널따란 개흙이나 백사장은 갯벌로 불린다. 나도 주변에서 나무토막을 구하여 상희 곁의 개펄을 파기 시작한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생일 때에 어머니는 내게 말했다.

   “그 동안 우리가 사는 게 너무 힘들었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말의 서두를 꺼내 놓고는 한숨을 쉬더니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그 동안 전혀 듣지 못했던 얘기였다. 만약 그 때라도 듣지 못했다면 영원히 묻혔을 얘기였다. 마침 아버지는 볼일이 있어서 광주로 나가고 없을 때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동갑이며 나보다는 마흔 살이 많았다. 아버지가 5살 때에 할머니가 집을 나가 버렸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았을 때엔 할머니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닭 쫓던 개가 된 심정으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혼자서 키웠다. 그런 할아버지마저 아버지가 7살 때에 사망했다. 건설 공사장에서 일하던 중에 신축 건축물이 붕괴되어 압사(壓死)했다. 할아버지는 4대째의 독자였다. 그랬기에 아버지한테는 가까운 친척이라곤 없었다. 그 때부터 아버지는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녔다.

   그랬어도 앞날이 암울하여 11살의 나이로 일본으로 건너가는 밀항선을 탔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사방으로 떠돌면서 삶을 영위했다. 그러다가 청년 시절부터는 공사장 노무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이가 서른 살이 되자 짐을 꾸려 귀국했다. 귀국할 무렵에는 돈도 어느 정도 번 상태였다. 아버지가 도착한 곳은 부산이었다. 번 돈으로는 항구 부근에 집을 한 채 샀다. 그 때부터 부산항에서 노무자로 일했다. 당시에 어머니는 부산항 공사장에 딸린 음식점의 주인으로 일했다.

   어머니의 경우는 2살 무렵에 어머니의 외할머니가 잠시 돌보고 있었다. 어머니의 아버지가 집을 수리하느라고 딸인 어머니를 처가(妻家)에 맡겼기 때문이었다. 여름철 폭우가 장기화되던 날에 마을 뒷산에 산사태가 났다. 그 때 토사물이 마을을 뒤덮어 밤중에 부모를 잃고 말았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무 교육마저 받을 처지가 못 되었다. 그랬음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용케 한글과 산수 정도까지는 터득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부산항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결혼했다. 그 때의 나이가 서른 살이었다. 마흔 살이 되어서는 정착할 마을을 찾아 진도로 찾아 들어섰다. 정착하던 그 해에 내가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라는 사람이 진도를 찾아왔다. 하룻밤 내내 대화를 하더니 사랑채에서 묵고 다음 날에 떠났다. 친구라는 사내가 사업 자금을 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내에게 부산에서 모았던 대부분의 돈을 빌려 주었다.

   그 이후로 사내한테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중에서야 사내가 곧바로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 버렸음을 알아차렸다.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돈을 긁어다가 외국으로 달아난 거였다. 그 사실을 안 뒤부터였다. 아버지는 극도로 실망하여 한동안 폐인처럼 침묵하고 지냈다.

   어머니는 잠시 찻잔에 물을 따라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번 돈은 제법 거액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을에 오면서 집을 샀다. 마을의 논 세 마지기와 방화곡의 밭 다섯 마지기도 샀다. 그리고는 낚시점과 배를 두 척 정도 살 예정이었다. 부산에서 노무자 생활을 그만둘 시기였다. 해상 화물을 부리던 중에 화물에 척추가 부딪혔다. 그 결과로 척추 넷째 마디가 심하게 탈골이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완치는 어렵다고 했다. 다시는 산업 현장에서 일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얘기였다.

   그 길로 노무자 생활을 접게 되었다. 그 날 이후부터였다. 아버지는 무거운 짐을 옮기는 일에서는 몸을 사리게 되었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격렬한 통증이 치밀어 올라 견디기가 어려웠다. 아버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게 된 것은 어머니의 얘기를 들은 이후였다. 보다 일찍 듣게 되었으면 더 빨리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리라 여겨진다. 아무튼 어머니의 얘기는 나한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런 연유를 알았더라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되었다.

   “어머, 이거 조개 맞지? 작은 게 참 이쁘게 생겼네?”

   상희가 캐낸 조개를 치켜들고 꽤나 호들갑을 떨어댄다. 싱긋 웃으며 추켜 주지 않을 수 없다.

   “이야, 정말 잡았네. 조개 캐기 쉽지 않은데 대단해, 정말.”

   조심스레 개흙을 긁어도 흙이 옷에 튀어 오른다. 오래 들여다볼 일은 아니라 생각된다. 하지만 상희가 달떠 좋아하는 데야 지그시 기다리고 볼 일이다. 썰물로 빠져 나갔던 바닷물이 밀려드는 시각이다. 나는 상희에게 조심스레 알린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이라서 서서히 뭍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상희가 알았다고 하면서도 연신 철근 토막으로 개펄을 후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밀려드는 바닷물을 가만히 지켜본다.

   아버지가 매를 접은 시점은 나중에야 확연히 밝혀졌다. 아버지를 먹여 살릴 텐데 왜 때리느냐며 대든 이후였다. 이후로 매는 들지 않았지만 언제나 무서운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가 매를 거두었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다. 아버지한테 때리지 말라며 짜증을 부렸던 날로부터 며칠 지난 시점이었다. 이웃집 영수의 어머니를 마을의 공터에서 만났다. ‘모산댁’이라는 영수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의 아주머니였다. 아주머니는 뒷산 언덕에 매 놓았던 염소를 몰고 내려오던 길이었다. 아주머니가 나를 향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진호야, 네가 아버지를 먹여 살리겠다고 말했다면서. 기특한 녀석 같으니라구. 그랬으니 다시는 안 때리겠다고 나한테까지 얘기했지.”

   나는 아버지의 말을 믿기로 했다. 무서운 성격인 만큼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유년의 시간은 잘도 흘렀다. 내가 초등학교 4학생이 되던 가을철의 일이었다. 산월 마을의 평야에는 내 집의 논이 세 마지기가 있었다. 마을 앞의 평야의 크기는 길이가 1.8킬로미터이며 폭이 600미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마을 사람들의 논이 깔려 있었다. 내 집 논은 방죽에 가까운 곳에 놓여 있었다. 방죽에는 원두막을 닮은 농막(農幕)들이 세워져 있었다. 농막들 중에는 아버지가 만들어 세운 것도 있었다.

   농막이란 논의 참새 떼를 쫓으려고 세운 가건물이다. 햇살을 피하기 위해 볏짚으로 지붕을 덮은 원두막 모양의 건물이다. 참새 떼가 논으로 몰려들 떼마다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그래야 겨우 참새 떼들이 도망을 가곤 했다. 참새를 방치하면 벼는 껍질만 주렁주렁 매달게 되곤 했다. 참새 떼들은 수확 시기의 무서운 적이었다. 감시를 소홀히 했다가는 논의 벼를 쭉정이 상태로 만들기 십상이었다.

   오후 3시 무렵에는 마을 아이들이 새를 쫓으러 방죽에 모였다. 새 쫓는 고함소리가 작으면 새들은 논으로 내려앉아 벼들을 쪼았다. 새 떼들이 워낙 많아 잠깐만 내려앉아도 벼는 쭉정이로 변했다. 논의 곳곳에는 새들을 내쫓는 위협용의 도구인 허수아비들이 서 있다. 허수아비의 얼굴은 보통 삶은 박으로 만들어졌다. 식물인 박을 삶아 속을 파내면 오래까지 썩지 않았다. 삶은 박의 껍질을 숟가락으로 긁어서 벗기면 고운 표면이 나왔다. 박의 표면에 그려진 사람 모양의 그림들은 거의 내가 그렸다.

   그림 솜씨는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 선생님을 따라 광주에 갔다. 도내 어린이 그림 대회를 실시한다고 해서였다. 나는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했다. 대회 현장에서 시골 풍경을 그리라는 진행자의 지시를 받았다. 나는 농부가 소를 몰며 쟁기로 논을 가는 풍경을 그렸다. 그림을 그려 제출하고는 학교의 인솔 선생님과 함께 귀교했다. 2주일쯤 지나서 도내 최우수상인 교육감상을 받았다. 그 날 이후로 그림에 대한 내 위상은 대단히 높아졌다.

   그림 분야에 있어서는 무섭기 그지없는 아버지까지 내 실력을 인정했다. 내 집 논에 세워진 허수아비의 얼굴들은 죄다 내가 그렸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당신의 얼굴을 그려 보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망설일 내가 아니었다. 나는 당당한 자세로 연필을 들었다. 전라남도가 인정한 그림의 꼬마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도 아버지는 반듯한 자세를 취해 주었다. 그림이 완성된 뒤였다. 아버지의 얼굴에 만족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러더니 물감으로 색칠까지 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좀 어렵다고 말했다.

   물감으로 얼굴의 살결을 나타내는 데까지는 내 실력이 미치지 못했다. 수채화로 원하는 색상을 나타내기는 상당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색칠까지는 곤란하다고 하자 아버지는 잠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그 그림을 방의 벽에 당장 붙였다. 집을 방문하는 마을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고는 대다수가 감탄했다. 마을 사람들이 감탄할 때마다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을 짓곤 했다.

   유년시절 내내 아버지는 내게 연구 대상의 인물이었다. 섬뜩하도록 무서우면서도 선선히 실력을 인정하는 면이 더러 보였다.

   상희가 계속해서 철근 토막으로 개펄을 파고 있다. 내가 그녀를 향해 말한다.

   “계속 개펄을 팔 거야? 철근 토막을 움켜쥐고 작업하면 나중에는 손에 물집이 생길지도 몰라.”

   상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떡인다. 갯벌 주변으로는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나는 ‘대양수산’이라는 음식점에 가서 호미 두 자루를 빌린다. 그리고는 상희와 함께 본격적으로 개펄을 파기 시작한다. 상희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고 생각된다. 도구가 달라지니 당장 실적부터도 다르다. 십여 분이 지나자 둘이서 일곱 마리의 조개를 캤다. 조개를 캘 때마다 상희는 보물을 캐듯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나도 보조를 맞춰 부지런히 호미질을 한다.

   볍씨를 뿌리면 어린 벼가 촘촘하게 올라왔다. 사람들은 어린 벼를 모라고 불렀다. 모가 집단으로 자라는 곳은 못자리라고 불렀다. 봄이 되면 모를 서너 개씩 모아 논에 옮겨 심었다. 이런 작업을 모심기라고 불렀다. 한 뼘 간격마다 표시를 해 놓은 기다란 줄. 이런 줄을 못줄이라 하는데 모심기에 있어서 중요한 장비였다. 두 사람이 못줄을 잡고는 줄에 맞춰 사람들이 모를 심었다. 모심기는 동네 잔치 수준의 행사였다. 마을 사람들이 번갈아 이웃을 도와 공동으로 모 심기를 했다.

   모심기 날의 식사 시간에는 항시 성황을 이루었다. 일꾼들이 아니더라도 논 곁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죄다 식사에 초대되었다. 그래서 따끈따끈한 밥과 국물로 대접받았다. 누구의 집에서 모심기를 하더라도 비슷한 양상이 연출되었다. 그래서 다들 모심기 날은 당당하게 식사 시간에 참여했다. 섬일지라도 어느 집에서건 물고기 반찬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잡히는 물고기의 대부분을 시장에 내다 팔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심기 날에는 맛있는 물고기 반찬이 넘칠 지경이었다. 노릇노릇 굽혀서 감나무 잎사귀 위에 담겨 제공되곤 했다.

   오늘날의 은박지를 대신한 도구가 널따란 감나무 잎이었다. 구운 고기를 잘 씻긴 감나무 잎에 얹으면 접시가 되었다.

   학교가 파한 뒤의 오후 시간에는 못줄을 아이들이 잡았다. 초등학교 2학년생부터는 누구든 못줄을 잡을 수 있었다. 모심기에 공급되는 국물로는 들깨 국물이 주종을 이루었다. 들깨를 갈아서 끓인 국물은 향기뿐만 아니라 맛이 탁월했다.

   모심기가 끝난 넓은 논에 모가 간들거릴 무렵이었다. 모가 심긴 논에는 우렁이들이 많았다. 우렁이를 백로가 날아다니다가 발견하고는 잡아먹곤 했다. 바람결에 남실대는 모가 펼쳐진 평야는 아늑하기 그지없었다. 탁 틘 넓은 공간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우렁이가 물에 헤엄칠 무렵이면 논에는 개구리들도 엄청나게 많이 들끓었다. 우렁이와 개구리는 백로나 뜸부기들을 불러들였다.

   뜸뜸뜸! 뜸뜸뜸뜸!

   뜸부기들이 울어대면 시골의 정취는 마냥 평온해졌다. 단조로운 울음소리가 심장 박동처럼 사람들에게 아늑한 정감을 자아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박동소리와 같은 단조로운 음향들. 뜸부기와 쏙독새의 울음소리는 시골의 어린이들에게 아늑한 정서를 제공하던 음향이었다.

   아버지가 짐을 실어 나르는 데는 손수레(rear car)를 이용했다. 손수레에는 서너 지게 분량의 나뭇단도 실리곤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지게에 무거운 짐을 지지는 않았다. 지게를 지더라도 작은 부피의 짐만을 지곤 했다. 평야에는 농로가 잘 뚫려 있었다. 그래서 거름이나 비료 및 농산물까지도 손수레로 실어 날랐다.

   아버지는 형편이 어려워서 배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바다로 나갈 때엔 이웃집 영수의 아버지 배를 탔다. 함께 작업에 참여하여 얼마간의 어획물을 배당받곤 했다. 배당받은 어획물을 읍내 시장에 팔아서 생계비에 보탰다.

   내가 부모의 얼굴을 제대로 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 탓에 부모는 새벽부터 거의 논밭에서 살았다. 내가 학교에 갈 때에는 혼자서 일어나 밥을 챙겨 먹었다. 수업을 마치고 귀가했을 때에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통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바다로 갔거나 어머니와 함게 읍내 시장으로 갔기 때문이었다. 농작물과 해산물을 거두느라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늦게 시장으로 갔다. 얼마 안 되는 수확물일지라도 다 팔고서야 귀가했다. 그러자니 귀가 시간이 늦을 수밖엔 없었다.

   보통 저녁나절이면 집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다수가 땔나무로 불을 피워 밥을 지었다. 방은 구들을 사용한 온돌 구조였다. 지붕만은 볏짚에서 슬레이트로 개량한 상태였다. 내겐 저녁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함께 놀던 친구들도 저녁 시간이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다들 부모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게 마련이었다. 내 경우만 애달플 따름이었다. 집은 텅 비었으며 부엌에도 먹을거리라곤 없었다. 부엌을 뒤져 봐야 먹을거리는 아예 없었다. 되풀이된 경험으로 알게 된 거였다.

   온기라곤 없는 방바닥에 앉으면 구멍 뚫린 창호지로 햇살이 날아들었다. 햇살 자국의 흔적으로 벽에는 점 모양의 원들이 일렁거렸다. 뒷문으로 스며드는 것은 대숲이 바람에 휩쓸리는 소리였다. 바람소리를 들을 때마다 전신에서 힘이 빠지는 듯했다. 벽에서 한동안 맴을 돌던 빛의 점들도 사라지면 적막에 휘감겼다. 멍하니 뜬 눈에 졸음이 밀려들 무렵이면 현기증에 시달렸다. 허기진 뱃속이라 현기증이 쉽게 일었다. 몸이 앞뒤로 흔들리다가는 기력이 떨어져 방바닥에 쓰러져 잠들곤 했다.

   한참 자다가 보면 귓전에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일어나 저녁 식사에 동참하곤 했다. 그러다가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나 혼자였다. 학교에 가려면 혼자서 밥을 챙겨 먹어야 했다. 이런 생활의 흐름이었기에 평시에 부모의 얼굴을 대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휴일이나 주말이 되어야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유년시절에 어머니의 얼굴을 자주 못 본 것은 공허감의 근원이었다. 숫기도 없는데다가 가슴에 쌓이는 공허감으로 정서는 삭막해지기만 했다.

   개펄을 판 지 한 시간이 너끈히 지났을 때였다. 둘이 합쳐서 스무 마리가량의 조개를 팠다. 너무 작은 것은 다시 개흙에 묻으니 겨우 13마리가 남았다. 13마리의 조개를 들고는 음식점에 가서 주인 아주머니에게로 건네준다. 호미를 빌린 대가로 치르려는 터다.

   내친 김에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승용차 앞에 섰을 때다. 상희가 나를 향해 말한다.

   “오후에는 연구 업무 때문에 과학 기술원에 가 봐야 해. 아까 내 차 봤지? 내 차까지 좀 태워 줘.”

   나는 고개를 끄떡인 뒤에 조수석에 그녀를 태운다. 그런 뒤에 차를 몰아 해양 연구원으로 달린다. 차를 달리면서 생각에 잠긴다.

   ‘내일도 공휴일이잖아? 내일은 어떻게 보내지?’

   내가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7월 초순이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선단(船團)을 이루어 가거도 해상으로 고기잡이에 나섰다. 가거도에서 서쪽 100킬로미터 일대가 여름철 조기 떼가 몰리는 어장(漁場)이었다. 기상청 일기예보에 따르면 서해에 약간의 풍랑이 일 거라고 했다. 약간의 풍랑 정도는 어민들한테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14척의 배가 가거도로 고기잡이에 나섰다. 아버지는 영수의 아버지 배에 올라타고 바다를 향해 떠났다.

   오후 3시 무렵에 긴급한 뉴스가 전해졌다. 서해 해상에 돌발적으로 태풍이 발생하여 밀려든다는 소식이었다. 기상청에서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기상 이변이라고 했다. 순간 풍속이 초속 40미터를 넘어선다고 했다. 14척의 배도 긴급히 뱃머리를 가거도로 돌려 대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태풍에 휩쓸렸다고 한다.

   그 날의 사고로 마을에서는 23명의 어민들이 실종되었다. 끝내 시신도 찾지 못한 채였다. 가족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합동 장례식을 치렀다. 아버지를 잃은 뒤부터였다. 집안의 경제 사정은 더욱 쪼들리게 되었다.

   어머니는 너무나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급격히 살이 빠지며 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두 달 후였다. 하도 힘을 못 쓰기에 어머니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몇 가지의 검사를 한 뒤였다. 의사가 나를 불러 어머니의 병명이 폐암이라고 했다. 암 세포가 많이 전이된 상태여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단지 마지막까지 환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도록 하라고 말했다. 길어야 한 달가량 생존하리라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에 처참했다.

   해양 연구원 주차장에서 상희가 그녀의 차를 몰고 떠난 뒤다. 나는 내 숙소인 연구원 아파트로 발길을 옮긴다. 아파트로 들어서서 내 방의 책상 위에 앉는다. 고개를 들어 서가(書架)를 올려다본다. 거기에는 지난 4월 20일에 찍힌 사진 액자가 진열되어 있다. 고향의 방화곡 부모의 묘소 일대가 촬영된 사진이다. 사진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벌써 한 달이 지났구나. 내일도 쉬는 날이니까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봐야겠어. 옮겨 심었던 배나무가 잘 자라는지 확인해 봐야지.’

   액자에 든 사진의 고목에서는 배꽃들이 막 피어나 간들대고 있다. 고목인 배꽃나무는 부모의 묘소 앞에 심겨 있다. 대형 액자 사진을 들여다보며 확실하게 진도로 내려가기로 작정한다. 힘들게 옮겨 심은 나무가 제대로 자라는지 확실히 궁금해졌다.

   지난 3월 하순의 일이었다. 구입한 연구 서적들을 옮겨 놓기 위해 서가를 정리할 때였다. 서가의 귀퉁이에, 올해 초에 생가(生家)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물품이 보였다. 생가에서 찾은 물품들은 주로 어머님의 유품(遺品)이었다. 장례식 때에 대부분의 유품은 태워 버렸다. 그랬는데도 일부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유품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위해 보자기를 풀었다. 표지를 비료 부대 종이로 만든 공책 2권과 책들이 보였다. 책은 불경 2권과 족보 1권과 관광 지도책 1권이었다. 혹시 책갈피 사이에 숨겨진 게 있을까 싶어 세심하게 살폈다. 책 4권에서 발견된 삽입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책 2권 중의 하나를 펼쳤다. 표지의 필체로 볼 때 어머니의 것이었다. 어머니는 검정 사인펜으로 글씨를 즐겨 썼다. 30여 장의 종이로 엮인 공책의 내용을 훑어보았다. 인근 마을에서 빌렸던 돈과 갚은 날짜들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얼마나 힘들게 삶을 살았는지 한 눈에 알아볼 정도였다. 돈을 빌릴 때마다 아쉬운 소리는 얼마나 했으며 속이 탔을까? 첫 장에서부터 공책의 중앙 부분까지 기록이 이어져 있었다. 기록의 마지막 장에는 빚을 모두 갚았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다른 한 권에는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필체를 대한 것은 생소한 일이었다. 평소에 아버지가 글을 쓰는 것을 자주 보지 못했다. 하지만 2월초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이나 ‘건양다경(建陽多慶)’이란 글을 붓글로 적는 것은 간혹 보았다. 아버지의 공책에는 비료나 농기구를 구입한 일자들이 적혀 있었다. 간혹 농기구의 수리 일자나 승선(乘船)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공책 종이들을 넘기다가 보니 담배의 은박지로 덮어씌운 부분이 드러났다.

   은박지로 덮어씌운 종이를 차근히 살펴보았다. 종이 넓이의 1/3가량을 은박지로 덮어씌워 놓았다. 은박지를 벗겨 볼 작정으로 은박지 아래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종이와 분리할 수 없게 풀로 접착시켜 놓았다. 은박지는 시선을 끄는 용도로만 부착시킨 모양이었다. 은박지 아래에는 약도(略圖)로 보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왠지 약도의 모양이 눈에 익다고 여겨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진도의 생가 주변의 방화곡 (芳花谷) 일대가 그려져 있었다. 약도의 북서쪽 귀퉁이 부분에 붉은 점이 삼각형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약도 아래로는 ‘내력의 실마리’라고 적혀 있었다. 내력의 실마리라? 은근히 호기심을 자아내는 글이라 생각되었다. 약도 속에 표시된 장소가 아버지와 무슨 연관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마침 이튿날이 일요일이었기에 곧바로 고향에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실내 정리를 간단히 하고는 목욕실로 들어섰다. 일단 간단히 몸을 씻고는 승용차를 몰고 갈 작정이었다.

   남도에서는 4월 초순부터 중순에 이르기까지 배꽃이 눈부시게 만발했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부터의 내 기억에는 아버지의 정기적인 외출이 기억났다. 배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부터 2∼3주간을 어디엔가 다녀오곤 했다. 당연히 무슨 볼일이 있겠거니 여겼다. 아마 볼일이 배꽃 필 시기이겠거니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는 아버지나 배웅하는 어머니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랬기에 늘 가까운 인근 마을에 다녀오는 정도로만 여겼다.

   배꽃의 꽃잎은 화사할 정도로 하얗다. 뽀얀 색상을 들여다보면 세상의 온갖 번민이 사라지는 듯하다. 게다가 향기는 얼마나 그윽한가? 배꽃을 아는 사람이라면 꽃의 자태와 향기에 마음이 푸근해질 정도다.

   고향인 산월 마을 주변에는 과수원이 서너 곳 있었다. 달빛이 고운 밤이면 아버지가 인근의 배꽃 구경을 나가곤 했다. 아버지처럼 무서운 사람도 꽃을 좋아하구나 싶어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다.

   아버지가 일하는 곁에는 어머니가 거의 함께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했다.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런 점은 나에 대한 배려임이 분명했다. 다른 아이들의 경우에는 부모들이 일을 시키려고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공부보다는 일하는 것을 즐기는 기색이었다. 내 경우에는 어쩌다가 일을 할 경우도 있었다. 소코뚜레를 잡고 소를 끌 때에는 내가 끌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쟁기로 논이나 밭을 갈아엎었다.

   그런 경우 이외에도 잠깐씩 일을 할 경우는 있었다. 예컨대 무더운 여름철에 콩팥에 난 잡초를 뽑는 일이 있었다. 여름철에 반시간만 콩밭에 들어가 있으면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머리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은 눈으로 흘러들면서 눈이 급격히 따가워졌다. 풀 뽑는 것이 고통스럽다기보다는 여름의 열기와 땀방울의 자극이 끔찍스러웠다.

   3월 하순의 연휴라 진도로 내려가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나서 몸을 닦으며 거실로 들어섰다.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차를 곧장 달리면 저녁나절에는 진도에 닿으리라 예상되었다. 마음을 정하자 외출 준비를 하여 아파트 주차장으로 향했다.

   출발하기에 앞서서 위성 탐색기(navigation)로 거리를 계산했다. 연구원에서 서해안 고속도로의 매봉 분기점까지는 차도(車道)로 7킬로미터의 거리였다. 매봉에서 목포까지의 서해안 고속도로의 길이는 317킬로미터였다. 목포에서 진도대교까지는 46킬로미터의 거리였다. 진도대교에서 산월 마을까지는 22킬로미터의 거리였다. 안산의 해양 연구원에서 진도의 산월 마을까지는 392킬로미터의 거리였다. 대략 4시간 반의 시간이 소요되리라 예상되었다.

   이윽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서해안고속도로에 올라타고부터는 마음을 편안하게 취했다. 목포를 거쳐 진도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탐지 장치에 있어서 결정적인 부분은 뒤엉킨 파동을 분리하는 일이다. 탐지기로부터 정상적으로 발신된 전자기파와 외부에서 들어온 교란파와의 뒤엉킴 현상. 교란파를 발신하는 이유가 파동을 뒤엉키게 하는 데 있다. 탐지기의 개선된 성능은 뒤엉킴 현상을 최단 시간에 벗어나도록 만든다. 뒤엉킨 교란파와 탐지기의 원래 발신파는 가까스로 분리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해양 연구원 내의 연구원들의 모든 아이디어를 다 받아들인 결과였다.

   다음 단계로는 극도로 약화된 원래 발신파를 증폭시키는 문제였다. 그것도 최단 시간 내에 파동을 증폭시켜 분석기로 내보내야 한다. 이 때에 시간이 많이 걸리면 탐지 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되면 적이 쏜 어뢰를 피해 내지 못한다. 한 마디로 탐지기의 기능이 상실되고 만다. 이 문제를 두고 해양 연구원에서는 연속해서 사흘간을 모여서 협의했다. 돌파의 실마리를 찾기가 무척 어렵다고 여겨졌다. 탐지 장치를 개선할 책임은 내게 부여되어 있었다. 책임자로서의 고뇌가 만만치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았다. 궁지에 몰려 있는 처지라서 고향에서라도 영감을 얻고 싶었다. 빛은 직교(直交)하는 전기파(電氣波)와 자기파(磁氣波)의 합성파로 이루어진다. 전자기기(電子機器)에서 내보내는 모든 파동은 전자기파(電磁氣波)이다. 전기파에 변화를 주면 곧바로 자기파에도 변형이 가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파동의 진폭과 진동수가 일정한 값을 지녀야 한다. 파동이 진행하는 도중에 진폭이 들쭉날쭉하게 변해서는 안 된다. 시간을 길게 주면 간단히 파동을 안정화시키게 된다.

   문제는 제한된 시간 내에서 신속히 파동을 안정화시키는 방법이 필요하다. 숱한 이론적인 방식이 머리에 떠오르지만 실제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머리에 경련이 일어날 지경이다. 마음 같아서는 대외 연구 기관을 찾아서 협조를 구하고 싶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원과 항공우주 연구원에 따로따로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각 연구 기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에 열기(熱氣)가 수시로 치솟는다.

   아버지가 사망한 지 세 달 뒤에 어머니마저 폐암으로 숨졌다. 그 때가 10월 초순이었다. 아버지가 외지에서 들어온데다가 독신이어서 친척이라곤 없었다.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 시신도 못 건진 아버지의 가묘(假墓)는 방화곡에 만들어 세웠다. 어머니의 유해도 아버지 곁에 묻었다. 사망 신고에서부터 장례를 치르는 데까지 이장의 도움이 컸다. 이장의 조언을 받아 장례식을 마치고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막상 어머니까지 땅에 묻고 나니 세상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당장 수능을 치르려고 준비해야 할 상황에서 앞길이 막힌 터였다. 내 나름대로 밤을 지새워 번민하며 돌파의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맞춰 보려고 해도 대책이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광주 시내의 모교로 가서 휴학을 신청했다. 휴학하고서도 며칠간 번민한 뒤였다.

   도저히 내키지는 않았지만 이장을 찾아가 하소연했다. 제발 난관도 극복하고 공부도 나중에 계속할 길은 없겠느냐고 물었다. 이장은 말이 없이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그의 아내를 만나 한동안 의견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십여 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이장이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나를 향해 말했다.

   “다들 사는 처지가 비슷해. 그래서 누구를 돕는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내겐 네가 남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너희 아버지와 나와는 상당히 친한 친구였기 때문이야. 휴학했다니까 여기서 숙식을 하며 내년 2월말까지만 일을 돕도록 해. 그러면 일정한 금액을 통장에 넣어 줄게. 나중에 네가 대학에 진학하는 데에 도움이 될 거야.”

   당장 공부를 해서 진학의 길을 열어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당장 생계유지도 어려운 여건에서 이장을 찾은 거였다. 마음속으로 모든 공부를 일시적으로 접기로 했다. 가슴이 당장 쓰리고 아프더라도 책을 잠시 덮어야 했다. 만약 이장마저도 탐탁찮게 대했더라면 고향을 떠날 작정이었다.

   고맙게도 이장이 의외로 나를 받아 주었기에 나는 진심으로 고마웠다. 40대 후반의 머리가 벗겨지고 어깨가 넓으며 몸집이 탄탄한 이장이었다. 이장의 아내는 낚시점을 주로 운영했다. 이장은 낚시꾼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맡았다. 나는 이장의 곁에서 배를 몰거나 엔진을 점검하는 법을 익혔다. 엔진이 고장이 나도 웬만한 정도는 응급 처치할 수준까지 익혔다. 이장은 누구를 대하든 평온한 표정으로 대했다.

   내가 배를 몰고 이장이 곁에서 지켜볼 때였다. 위성 탐색기(navigation)에 따라 배를 모는데도 자꾸만 항로를 이탈하곤 했다. 나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어져 안절부절못하여 허둥거렸다. 이장은 미소를 띠며 나를 향해 말했다.

   “세상에 자신의 마음대로 되는 것은 극히 드물어. 중요한 것은 마음을 편안하게 다스리는 일이야. 항로를 조금 벗어날 수도 있어. 벗어났다고 곧바로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야. 차후에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 돼.”

   배를 모는 거나 엔진을 점검하는 데에서 나는 많이 버거웠다. 원래부터 해 오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랬지만 이장의 지도를 받으면서부터 상당히 많이 나아졌다. 나는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반시간씩은 규칙적으로 아령 운동을 했다. 기초 체력을 키우려는 뜻에서였다. 운동을 마치면 곧바로 샤워를 하고 마당으로 나갔다. 곧바로 비를 들고는 마당을 쓸었다. 하루 중에서 마당을 쓸 때가 가장 마음이 심란했다. 마당에는 별로 어질러진 물건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당을 쓰는 일은 중요한 일과였다.

   간혹 나뒹구는 낙엽이나 나무토막 부스러기 같은 것을 쓸곤 했다. 어질러진 물건들을 쓸어서 치울 때마다 부모의 얼굴이 떠올랐다. 부모의 죽음이 세상에서 쓸려 버린 현상으로 느껴지곤 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내게서 부모를 강제로 쓸어가 버린 듯했다. 무서웠던 아버지는 무서웠던 대로 그리웠다. 자상했던 어머니는 섬세한 그리움의 파도가 되어 밀려들곤 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어머니로부터 들은 얘기였다. 아버지가 일본에서 귀국하여 부산항에 막 들어왔을 무렵이었다. 할머니의 생사가 궁금하여 할머니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그러다가 경남 김해의 낙동강 나루의 마을에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버지가 귀국하기 두 달 전에 사망했다고 한다. 낙동강 강변의 고사목에 올라 삭정이를 잘라 나뭇짐을 꾸릴 때였다. 물가로 휘늘어진 나무에 올랐다가 나뭇가지가 찢기면서 익사했다고 한다. 그 때가 4월 중순이어서 사방에는 배꽃이 지천으로 만발한 시기였다.

   3월의 산하(山河)를 가로지르며 나는 곧바로 저녁나절에 진도에 도착했다. 이장과 마을 사람들을 찾아 인사를 한 뒤에 읍내로 나갔다. 생가(生家)는 그간 사용하지 않아서 폐가(廢家)가 되었기에 이용할 수가 없었다. 읍내 여관에서 숙박하며 이튿날 아침에 방화곡을 찾을 작정이었다.

   여관 가까운 곳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였다. 나는 누르스름한 비료 종이로 표지를 만든 아버지의 공책을 펼쳤다. 담배 은박지를 부착한 곳을 면밀히 살폈다. 혹시 그 사이에도 새로운 정보가 드러났을지도 모르리라 여겼다. 그랬기에 조심스러우면서도 꼼꼼하게 공책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공책은 첫 날 봤던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다만 약도에서 명시한 장소가 보다 구체적인 지점으로 파악되었다. 그림으로 봐서 부모의 묘소로부터 북서쪽 산기슭이라 여겨졌다. 어지러운 생각으로 마음이 뒤숭숭했지만 숙소로 돌아가서 잠들었다.

   이장의 식구는 셋이었다. 이장 내외와 딸이 있었다. 딸의 나이는 나와 동갑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서울에서 공부했다. 그랬기에 나는 딸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거의 몰랐다. 이장의 아내는 대범하면서도 인정이 많은 여인이었다. 여러 면에서 내게 불편한 일은 없는지 배려하려는 면이 강했다.

   내가 이장을 알고 난 이후부터였다. 한 번이라도 짜증을 내거나 노여운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배를 몰다가 스크루에 밧줄이 감겨 밧줄을 풀 때였다. 물에 익숙하지 않아서 상당히 두려운 빛으로 수면을 굽어볼 때였다. 이장이 내게 말했다.

   “내가 고무보트에서 지켜보고 있잖아? 자신감을 가져. 스크루에 감긴 밧줄을 제거해야만 배가 움직이게 돼. 현재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이럴 때는 이 세상에 너 혼자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돼. 아무도 네가 하는 일에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고 여기면 돼. 그러면 보다 쉽게 문제가 해결될 거야.”

   확실히 이장의 말은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난관을 헤쳐 가는 격려의 말로 작용했다. 이장과 함께 지내던 어떤 순간부터였다. 내게는 이장이 스승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의지할 대상이 없는 나한테 하늘이 스승을 보내주었다고 여겼다. 학력을 갖추기에 앞서서 품격을 갖추라고 대자연이 보내준 스승이라고 여겼다. 이장을 스승이라고 여긴 순간부터였다. 이장의 조수로서 내가 하는 일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적극적으로 이장을 도울 거리가 없는지 찾아서 대비할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장은 내가 하는 일을 많이 신뢰했다. 때에 따라서는 나 혼자서 낚시꾼들을 해안에 실어 날랐다. 그만큼 이장이 나를 신뢰한다는 징표였다. 이장을 대할 때마다 내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의 얼굴이 일렁였다. 입학식 날부터 매질을 해서 나의 활기를 앗아갔던 아버지. 수시로 얼굴에 노기(怒氣)를 드러내며 고함을 질러대던 아버지였다. 매는 들지 않았지만 수시로 얼굴에 드러나던 감정의 변화가 극심했다. 그런 아버지의 얼굴을 대하는 일은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언제나 얼굴에 미소를 띠고 나를 격려해 주던 이장이었다. 내가 조수로서 하는 일이 아무리 서툴러도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랬기에 나는 빠른 시간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자신감으로 대하는 일은 이미 성취가 예정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어떤 새로운 환경에 처해서도 나는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이런 점은 나의 생애에 엄청난 힘을 실어준 거와 같았다.

   반면에 무슨 일을 시작하더라도 눈빛에는 날카로움이 잔뜩 실렸던 아버지였다. 심지어 웃는 얼굴에서조차도 냉기(冷氣)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아버지한테서도 소중하게 느껴진 점은 강력한 관철의 의지였다. 무엇을 하건 반드시 이루고 만다는 정신이 사물을 제압할 정도였다. 아버지가 착수한 일은 반드시 이루고야 말았다. 제한된 시간 내에서 집요하게 성취해 내는 아버지였다. 나는 아버지의 장점과 이장의 장점을 함께 본받고 싶었다. 그래서 보다 품격이 견실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중학교 때까지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내부에서 마구 들끓었다.

   ‘왜 아버지가 저럴까? 남의 아버지처럼 나를 좀 살갑게 대해 주면 뭐가 덧날까? 만날 눈에 힘이나 주고 인상이나 퍽퍽 쓰니 정나미가 떨어지지. 나 같으면 자식한테는 절대로 그렇게 대하지 않겠어.’

   한 번도 마음 편히 아버지를 대했던 때가 없었다. 아버지가 부를라치면 반가움보다는 언제나 두려움이 앞섰다. 심부름을 제대로 하고 왔을 때에도 칭찬이나 격려의 말이 없었다. 마치 시한폭탄을 가슴에 안고 생활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였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관점이 자신도 모르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운했다거나 노여웠다는 감정에서부터 점차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점차 아버지의 노여움이나 짜증의 근원에 대해 관심이 증가되었다. 정보 입수의 근원으로는 어머니가 적합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워낙 바빴기에 모자간에 얘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고등학생이라 학업에만 신경을 써도 지칠 정도였다. 거기다가 성품 내력까지 연구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를 반항심으로 대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아버지보다도 나 자신에 대한 놀라운 변화라 여겨졌다. 두려움과 반발심의 이중 구조로 들여다보던 아버지의 세계가 다채롭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2학년 봄철에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었던 말이 있었다.

   “아버지가 청년 시절에는 일본 공사판에서도 꽹과리를 쳤던 한량이었어. 여기 사진을 좀 들여다 봐. 이 분이 아버지야. 나를 만나기 전이었는데 참 잘 생겼지? 나도 사진을 보고는 꽤 놀랐어.”

   어머니는 불경 책에서 두 장의 흑백 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내가 보기로도 아버지의 모습은 한결 깔끔하고 단아하게 보였다. 사진에는 꽹과리를 치며 농무(農舞)를 추는 광경이 찍혀 있었다. 일본에 건너간 한국 사람들끼리 만나서 더러 농무를 추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관점과 어머니의 견해가 달랐다. 어머니에게 비친 아버지는 신명이 많고 다정다감한 남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나는 어이가 없어 전신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내 눈에 드러난 아버지는 다혈질이며 불만투성이의 사내라고 비쳤다. 도대체 정감과는 거리가 먼 외계의 인간으로까지 느껴졌다. 그런 아버지가 신명이 많고 다정다감하다니? 내 귀에 잘못 들린 것 같아 어머니에게 재차 물었다. 그랬는데도 어머니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추며 시원스런 남자였다고 한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어머니의 견해를 도저히 수용하기 힘들었다.

   ‘세상에 다정다감하며 신명이 많은 남자의 씨가 말랐던 모양이지? 어머니마저 아버지의 진면목을 오판하고 있다니? 어디 오판이라도 이만저만이라야지! 차라리 내가 입을 다무는 게 낫겠어.’

   하지만 어머니의 말은 내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어떻게 동일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처럼 다를 수가 있을까? 남편으로서의 역할과 아버지로서의 역할이 달랐던 탓일까? 아니면 어머니의 의식이 근래에 무슨 충격으로 변했을까?’

   그 날 이후로는 어머니의 관점으로 아버지를 관찰하기로 했다. 선입관념 탓인지 몰라도 어머니의 관점이 옳았던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놀라운 현상을 경험했을 때였다. 나의 전신에서 힘이 소진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정신에 무슨 이상 징후가 발생한 듯하여 진저리를 쳤다.

   ‘세상에 이럴 수가? 내가 제 정신이야? 도대체 판단의 근거가 뭐야?’

   점차 나는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나한테는 이렇게 느껴져도 다른 사람한테는 다르게 비치지 않겠는가? 이럴진대 내 판단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 때처럼 당혹감에 시달렸던 때는 없었다. 절대로 아버지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점들이 아버지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게 된 동기(動機)로 작용했다.

   3월 하순의 기온은 여전히 서늘했다. 나는 승용차를 몰아 산월 마을에 들어섰다. 동네의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방화곡을 향해 걸었다. 마을 앞의 평야 지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넓은 공간으로 느껴졌다. 길이가 1.8킬로미터에 폭이 600미터에 이르는 평야 지대였다. 평야의 대부분이 논이었다. 평야에 드러누운 논에는 못자리판마다 모가 촘촘히 자라고 있었다. 못자리판을 제외한 논에는 바다처럼 거대한 물결만 출렁이고 있었다. 못자리판의 모에서 모로 실연기처럼 나풀대며 지나가는 바람결이 간지러울 지경이었다.

   나는 방화곡이 있는 연대산의 기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을에서는 3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방화곡 일대는 눈을 감고도 오를 지경으로 정이 든 곳이었다.

   휴학한 이후에 이장의 조수를 하며 그 해를 보냈다. 이듬해 2월 중순쯤의 어느 날이었다. 이장이 나를 불렀다. 당시에 내가 스승으로 여기던 이장이었다. 이장의 호출에 나는 나 자신을 되돌아 봤다.

   ‘아직 배를 몰고 나갈 시각은 멀었는데 왜 부를까? 혹시 내가 잘못한 일이라도 있을까?’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이장을 향해 달려갔다. 내가 곁에 다가가기를 기다렸다가 이장이 입을 열었다.

   “진호야, 그 새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한창 공부할 나이에 조수 일을 하느라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니? 내가 오늘 네가 휴학한 학교에 다녀왔어. 새 학기 등록금도 납입하고 복학 절차도 밟아 놓고 왔어.”

   말을 하다가 호주머니를 더듬더니 통장을 꺼내면서 말을 잇는다.

   “왠지 너는 나한테 남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 마을에서는 선미 말고는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없잖아? 너한테서는 대학에 진학할 만한 충분한 가능성을 느꼈어. 이것은 네 임금 몫으로 만들어진 통장이야. 1년간 광주에서의 하숙비와 국립대학 등록금 정도는 될 거야.”

   통장을 받고 보니 예상 밖으로 큰 금액이었다. 내가 놀라서 이장을 바라보자 이장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런 줄 알고 받아들이라는 의사로 전해졌다. 나는 진심으로 고개를 숙여 감사하다는 뜻을 나타냈다.

   솔바람 소리가 그윽하게 밀려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방화곡에 들어섰다. 골짜기 입구에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묘소가 눈으로 밀려들었다. 묘소에 닿자 경건한 마음으로 두 번 절을 했다. 그런 뒤에 무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꽃의 궁전을 이루던 철쭉 무리는 여전히 번성한 상태였다. 철쭉은 4월말부터 5월 하순까지 활짝 피어나곤 했다. 작은 바위, 풍화되는 퇴적층의 암반, 골짜기를 뒤덮듯 우거진 싸리나무들. 무엇보다도 뚜렷한 상징인 울창한 솔숲에서 발산되는 솔바람 소리. 방화곡의 향취에 젖어 골짜기 주변을 둘러보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이장 댁에서 숙식을 시작한 그 해를 넘긴 이듬해 2월말이었다. 나는 광주 시내의, 복학한 학교 옆에 하숙집을 정했다. 그래서 한 해를 꼬박 공부에만 몰입했다.

   이듬해 정월에 경쟁률이 센 광주의 국립 C대학교 우주공학과에 합격했다. 합격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대학 교정을 돌아다니며 마구 환호성을 질러대고 싶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내가 함부로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일생에 있어서 눈물을 흘릴 만한 날이라고 여겼다.

   3월의 입학식 날이었다. 입학식장으로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사람들 틈에서 이장과 이장의 딸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나를 축하하기 위해 미리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을 본 순간에 콧등이 시큰대며 알싸한 감동을 느꼈다. 이장이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정말 축하하네. 앞으로 열심히 해서 꿈을 이루기 바란다.”

   이장의 딸인 선미는 꽃다발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진호 씨, 진심으로 축하해요. 형설의 공을 이루었기에 감동이 크네요.”

   나도 곧바로 응답했다.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장님이 보살펴 주신 덕분으로 오늘의 결실을 거두었습니다. 오늘의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장이 소탈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 격려하며 말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와 자네 선친과는 서로 아끼는 친구였어. 자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로 나도 막막했어. 그랬는데 이처럼 난관을 헤쳐 낸 자네가 아무래도 대단해. 계속 거리낌 없이 노력하여 자네의 뜻을 펼치도록 하게.”

   나와 동갑인 선미는 서울의 명문사학인 R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이장의 딸로서 순수한 감정으로 축하해 주러 광주로 내려온 거였다. 선미와 나 사이에는 다른 요소가 개입될 여지가 애초부터 없었다. 둘은 거의 만난 일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선미를 만나러 그녀의 부모가 보통 상경하곤 했다. 나는 초등학교 입학도 늦었고 고등학교에서 휴학까지 했다. 그래서 동갑인데도 선미와는 2학년만큼의 차이가 생겼다. 나는 거듭 이장과 선미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나는 방화곡에서 약도를 펴서 지형을 면밀히 살폈다. 적색 삼각점이 그려진 곳은 방화곡 북서쪽 골짜기 일대였다.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속삭였다. 저승과 통하는 교신 수단은 언어가 아닌 마음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아버님과 어머님, 무척 오랜만에 제가 돌아왔습니다. 어떻게 제가 돌아왔는지 알아보시겠습니까? 방화곡 유택은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제가 속이 차지 못해서 어릴 때에 저한테 무척 서운하셨죠? 세월이 흐르니까 두 분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자주 찾지는 못하더라도 두 분이 정답게 잘 지내세요. 객지에 떠나 있어도 제 마음은 방화곡을 자주 드나듭니다. 발길을 옮기려니까 그만 서글퍼지려고 하여 눈시울이 젖어듭니다. 두 분 안녕히 계세요. 다음에 또 찾아뵐게요.’

   부모의 묘지에서 발길을 돌린 뒤였다. 나는 약도에 표시된 삼각점의 위치를 찾으려고 발걸음을 옮겼다. 묘지에서 대략 50미터의 거리쯤에 작은 동굴(洞窟)이 하나 보였다. 어른이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높이이고 길이는 6미터 정도에 불과했다. 굴이라기보다는 농기구의 임시 보관소 같은 지형이었다. 고작 소나기를 피할 정도의 용도로나 쓰였을 것 같다. 동굴 입구는 싸리나무로 뒤덮여 있어서 동굴의 존재마저도 잊힐 정도였다. 휴대용 손전등을 비추며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를 넘어서자 의외로 천장의 높이가 키 높이를 넘겼다.

   굴의 벽면을 살펴보니 흙을 인공적으로 판 흔적이 역력했다. 아마도 전시에 방공호를 파다가 만 듯했다. 안쪽 끝에까지 들어가니 화강석 재질의 석상(石床)이 구석에 놓여 있었다. 석상은 한 변이 1미터에 달하는 정방형으로 생겼다. 석상 옆의 벽면에 붉은 색 페인트칠로 삼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직감적으로 약도에 명시된 장소라고 판단되었다. 붉은 색 삼각형은 흰 바탕에다 그려진 거였다. 그래서 삼각형 부분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보았다. 웅웅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스레 붉은 색 삼각형을 살펴보았다.

   두 뼘 길이의 정방형 판자에 페인트칠을 해 놓았다. 바탕은 백색으로, 삼각형은 적색으로 나타낸 거였다. 판자의 뒤쪽 벽면에 축구공이 드나들 만한 구멍이 보였다. 구멍 속에는 보자기에 싸인 뭔가가 눈에 띄었다. 내 가슴이 급격히 설레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못 느끼던 현상이었다. 보자기는 황색 보자기였고 오래 되어 삭아서 건드리자 찢길 정도였다. 나는 보자기의 내용물이 아버지의 유품이라고 단정했다. 약도의 그림이 입증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보자기를 풀기에 앞서서 아버지를 대한 듯 보자기를 향해 절했다.

   그런 다음에 조심스레 보자기를 풀었다. 내용물은 이중의 보자기로 싸여 있었다. 의외로 한 권의 공책이 눈앞에 드러났다. 표지에는 ‘방화비록(芳花秘錄)’이라고 적혀 있었다. 하단에는 신공권(申功權)이란 아버지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공책의 두께는 30여 장에 불과했다. 공책을 펴자 세필(細筆) 붓글씨로 쓴 한글 글자가 자욱이 펼쳐졌다. 하도 정자체로 정성을 들여 쓴 글씨라 저절로 숙연해졌다.

   방화비록은 아버지의 요약된 일기였다. 아버지의 일생에 기억할 만한 일들만 적어 놓은 공책이었다. 얼마 안 되는 분량이기에 나는 동굴에서 공책을 읽기 시작했다. 공책에 기록된 글씨는 모두 붓으로 쓴 거였다. 공책의 분량은 32장이었으나 촘촘히 글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중요한 시기에만 일기를 썼다는 게 드러났다. 그리고 각 기간마다 서체가 조금씩 달랐다. 어느 기간의 서체에서도 정성을 기울여 쓴 흔적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나를 버리고 떠났어도 내겐 한없이 소중한 어머니다.

   어머니가 떠난 지 일 년 만이었다.

   영산강 강변의 장자골에 어머니가 산다는 소문이 들렸다.

   형편이 어려워 몇 해가 지나서야 어머니를 찾아 나섰다.

   장자골에 갔을 때엔 어머니는 마을을 떠나고 없었다.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는 강 건너 뻐꾸기 소리만 하염없이 들렸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어도 찾아 볼 어머니가 있어서 덜 서러웠다.

   어머니마저 이사 간 뒤로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머니조차 못 찾는 이 땅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일이면 일본으로 가는 밀항선을 타게 된다.

   내가 나중에 우리나라로 돌아오기나 할까?

   설사 그 때까지 어머니가 살아 계시기는 할까?

   산다고 해도 영 재미가 없다.

   일본에 가는 것도 마냥 두렵다.

   말을 못 알아들으면 벙어리가 될 텐데 그게 두렵다.

   그래도 슬퍼서 고개를 못 드는 것보다는 낫겠지.

   어머니, 그렇게도 저와 아버지가 싫었어요?

   그렇게나요?

   글을 읽던 중에도 가슴으로 서러움이 짙게 차올랐다. 어머니의 정을 상실한 어린 소년의 피끓는 정감이 남실대는 글이었다. 나이에 비해서는 상당히 조숙했다는 게 드러났다. 사용하는 용어와 관념의 세계가 그 나이의 소년을 초월했다고 여겨졌다. 어린 나이임에도 처절한 상실감을 체험하여 처연한 심정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런 어린 소년이 내 아버지였다니? 아버지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여전히 반항적이었던 내 관점이 붕괴되는 느낌이었다. 아버지가 환생한다면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진정으로 따뜻이 포옹해 주고 싶었다.

   ‘이런 아버지인 줄도 모르고 내 관점에서만 아버지를 적대시했다니? 무조건 무서워서 떨 게 아니라 한번이라도 아버지한테 다가서 봤어? 아버지도 숱한 결점을 지닌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지 않았겠어? 나조차도 당당하지 못하면서 아버지의 결점만 기억해서 반항심을 키웠다니? 아무리 나이가 어렸어도 내가 참 못난 철부지였어. 아버지, 정말 미안합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이해하지는 못하고 미워만 했기에 말입니다. 아버지, 저승에서나마 소자를 용서해 주세요. 거듭 용서를 구합니다.’

   어머니, 어쩌다가 다시는 소리 내어 부를 수도 없게 되었습니까?

   어쩌다가 낙동강 소용돌이에 휘말려 상봉조차 못하게 되었습니까?

   그렇게도 제가 싫었어요?

   그래도 저는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일본까지 건너가 마음을 다스렸습니다.

   끝내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건지요?

   정말 이러고도 속 편히 이승을 떠날 수 있었나요?

   어머니와 저의 인연은 도대체 뭐였던가요?

   어쩜 이렇게까지 가혹할 수 있습니까?

   이렇게까지나 말입니다.

   필체가 상당히 세련된 것으로 봐서 시간이 꽤 경과된 모양이었다. 공책을 뒤로 넘기자니 낯익은 그림이 나타났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렸던 아버지의 초상화가 꽂혀 있었다. 오래 전에 사라졌던 그림이라고만 여겼다. 그랬던 것을 의외로 대하니 가슴이 마구 떨렸다. 요즘의 관점으로는 무척 조잡한 그림이었다. 그런 그림을 지금까지 기지고 있었다니! 아버지에 대한 여태까지의 반발심이 숭배의 감정으로 전환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다가 놀랍게도 그림의 뒤에는 아버지가 쓴 글귀가 보였다.

   어머니, 진호 앞에 제가 앉았던 이유를 아십니까?

   진호가 그림에서는 저마저도 충분히 실력을 인정하는 자식입니다.

   제가 어머니 자식이기에 제 얼굴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남았으리라고 여깁니다.

   진호가 애비의 얼굴에서 할머니의 얼굴을 그려 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진호 앞에 서서는 할머니의 관점으로 줄곧 진호를 바라보았습니다.

   진호가 그림을 그리는 내내 저는 줄곧 진호의 할머니였습니다.

   제 얼굴에 깃든 할머니의 모습을 진호가 일부라도 그리기를 소망했습니다.

   마침내 진호가 그림을 다 그렸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슴이 떨려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그림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저는 가슴이 벅차 눈물이 차올랐습니다.

   놀랍게도 그림에는 제가 마음속으로만 찾아 헤맸던 어머니가 살아 있었습니다.

   너무나 기뻐 진호를 업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림에서 상봉(相逢)시켜 준 진호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쩜 이럴 수가? 내가 아버지를 몰라도 너무나 몰랐구나. 아버지, 당신의 속내를 너무 몰랐던 자식을 이제라도 용서해 주세요. 정말 드릴 말씀이 ?.’

생각에 잠기다 말고 눈시울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흔들리며 울음이 터졌다.

   “죄송합니다. 아버지이! 흐흐흑! 으흐흐흑!”

   내 머리의 두뇌 조직에 경련이 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도대체 내가 아버지에 관해 아는 게 뭐였던가? 얼마나 아버지를 안다고 내 마음대로 아버지를 저울질했단 말인가? 바보 같으니라구, 바보 같으니라구.’

바로 이 때 어떤 영감이 내게 실려 왔다. 나는 그 길로 보자기를 챙겨 곧장 동굴에서 벗어났다.

   내가 동굴을 찾았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뒤였다. 나는 아버지가 할머니를 찾아 나섰던 경로를 세밀하게 탐색했다. 유난히 그런 일에 감각이 탁월하다는 사람을 사서 동행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할머니가 고사목에서 실족했다는 낙동강의 위치까지 확인했다. 강나루에서 멀지 않은 거리였고 물줄기가 합류되어 소용돌이가 드센 지점이었다. 실족한 지점 부근의 강변에는 고목이 된 배나무가 치솟아 있었다. 그 배나무 아래에는 주막집이 얼마 전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배꽃이 필 무렵이면 넋 나간 듯 집을 나서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길게는 한 달씩이나 머물던 곳이 그 주막이라고 했다. 나루터 주변에 현재까지 살던 노인이 내게 들려준 내용이었다. 노인은 아버지와 주막에서 자주 만나 우정을 나누었다고 들려주었다. 노인은 내 얼굴을 보더니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거듭 말했다.

   노인으로부터 충분히 설명을 듣고는 나루터를 떠나왔다. 그러다가 지난달인 4월 중순경이 되었을 때였다. 나루터 마을에 일정 기금을 낸 뒤였다. 고목이 된 배나무를 굴삭기로 팠다. 할머니가 실족되었던 강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의 고목이었다. 그것을 화물차로 진도의 대연산 방화곡으로 날랐다. 이장을 찾아 조언을 구하여 부모의 묘소 곁에 배나무를 심었다. 막걸리를 물에 타서 뿌리에 뿌리라고 이장이 내게 말했다. 그래야 이식한 나무가 시들지 않는다고 했다. 이장의 조언대로 막걸리를 충분히 희석시켜 천천히 뿌리에 뿌렸다.

   배나무는 고목이었지만 가지마다 꽃봉오리가 수없이 달려 있었다. 이식할 때까지는 고목의 봉오리가 터지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식하고 막걸리를 탄 물을 뿌리고 난 뒤였다. 이장의 집에 들러 이장의 가족과 오랜만에 푸근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뒤에 이장의 집을 나섰다. 곧바로 안산으로 올려가려다가 차를 다시 방화곡으로 돌렸다.

   방화곡을 떠나면 한동안 찾기 어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부모의 묘소에 절을 하고 떠나리라 작정했다. 그래서 다시 묘소를 찾았다. 이식한 지 벌써 네댓 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아직 바람결이 차가운데도 고목의 여기저기에서 꽃봉오리가 터지기 시작했다. 하얀 안개의 물결이 밀려들듯 청아한 배꽃송이가 눈송이처럼 깨어나고 있었다.

   나는 개화하는 꽃송이들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중얼대었다.

  ‘아버지! 이제는 배꽃 필 시기가 되어도 여기서 어머니랑 같이 보내세요. 낙동강 주막 앞의 배나무가 바로 앞에 있잖아요? 어머니! 그 동안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으셨어요? 이제라도 아버지와 함께 배꽃 그늘 아래서 오붓이 함께 지내세요. 이제 소자는 떠날게요. 내년 봄 배꽃 필 무렵에 다시 올게요. 그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정작 발길을 돌리려고 하자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머물러야 할 곳이 방화곡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며 눈시울이 젖어들었다. 점차 눅눅한 저녁 안개마저 나를 가두려고 몰려드는 듯했다. 승용차를 향해 걸으면서도 내 시선은 배꽃송이에 매달려 허청거렸다. 공허한 가슴속으로 쉬미항에 들어서는 유람선의 뱃고동 소리가 은은히 밀려들었다.

   지난 4월의 회상에서 깨어난 뒤다. 나는 서가에 놓여 있던 고목의 사진을 찬찬히 지켜본다. 5월 하순이라 방화곡에는 철쭉꽃이 만발할 시기라 여겨진다. 배나무의 생존 여부도 확인하고 꽃의 궁전을 둘러보리라 작정한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을 때에 휴대전화가 떨어댄다. 귀에 대니 상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과학 기술원에서의 내 용무는 끝났어. 내일 계획은 어때? 괜찮다면 너랑 함께 네 고향 마을에 가 보고 싶어.”

   혼자서 오후에 진도로 갈 작정이었는데 일정을 바꾸어야겠다. 상희와 이튿날 오전에 안산을 출발하기로 약속한다.

   이튿날 오전 8시 무렵에 상희와 함께 안산을 출발했다. 마침내 정오 무렵에 고향인 진도의 산월 마을에 도착한다. 먼저 방화곡의 묘소부터 둘러본 뒤에 마을 사람들을 찾기로 한다.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고맙지만 부모의 묘소가 우선순위라고 여긴다. 상희와 함께 방화곡에 들어설 무렵이다.

   방화곡 골짜기 일대가 바람결을 타고 벌겋게 물결친다. 활짝 피어난 철쭉들의 군영으로 방화곡이 빨갛게 불타는 듯하다. 철쭉을 바라보며 방화곡으로 들어설 때다. 상희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밀려든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부모님을 뵙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려. 나를 좀 예쁘게 봐 주셨으면 좋겠어.”

   내가 곧바로 응답한다.

   “혼자 올 때와는 달리 나도 가슴이 무척 떨렸어. 방화곡에 들어선 순간부터 이미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보고 계셨을 거야. 너를 아주 만족스럽게 여기는 듯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 같애. 다음에는 내가 너희 마을을 찾아 인사 올리러 갈게.”

   상희의 얼굴에 감격하는 기색이 역력히 내비친다. 달뜬 목소리로 상희가 외치듯 말한다.

   “우와, 여기가 진짜 꽃 대궐이네! 노래로만 듣던 꽃 대궐도 실제로 있구나. 저 꽃들이 모두 철쭉이야? 정말 너무너무 대단해. 이만저만한 장관이 아니야.”

   이윽고 부모의 묘소 앞에 도착했다. 나와 상희가 나란히 서서 묘소의 봉분을 둘러본다. 봉분에 난 잔디 이외의 잡초를 간단히 제거한 뒤다. 나는 상희와 함께 무덤을 향해 두 차례의 절을 한다. 컵에 막걸리를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봉분에 차례로 뿌린다. 그리고는 내가 무덤을 향해 낭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 어머니!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며느리와 함께 왔습니다. 곱게 봐 주시고 앞날에 복을 많이 주세요.”

   상희도 이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님과 어머님! 며느리로서 인사 올리러 왔어요. 예쁘게 잘 봐 주세요. 앞으로 애비랑 호흡 맞추어 잘 살게요.”

   말을 마치자 상희가 나의 손을 쥔다. 둘이 손을 맞잡은 채 이식한 배나무를 살펴본다. 배나무의 잎에 녹색의 윤기가 흐른다. 배나무 가지마다 풋풋한, 작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뿌리 둘레로는 원형으로 땅이 파여 퇴비가 뿌려져 있다. 아마도 이장이 신경을 써서 돌봐 준 모양이다. 나중에 마을에 내려가면서 인사를 하리라 마음먹는다.

   상희가 사진기를 꺼내 방화곡 일대를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다. 나는 봉분을 향해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아버지! 그 동안 배꽃 아래에서 어머니랑 잘 지내셨어요? 저승에서나마 할머니를 만나 행복하게 잘 지내세요. 어머니! 오늘 며느리 본 느낌이 어떠세요? 저랑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이에요. 앞으로 힘든 일이 생길지라도 저희들을 잘 보살펴 주세요. 앞으로는 명절 때와 배꽃과 철쭉이 필 때마다 내려올게요. 이렇게 함께 있으니 정말 행복해요.’

   송이송이 무리를 지어 골짜기를 뒤덮은 철쭉을 둘러볼 때다. 상희가 꽃송이마다 입맞춤을 하듯 정성스레 살펴본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통꽃에 선홍의 색조를 띤 철쭉이다. 솔바람에 떠밀려 꽃송이들이 바람에 간들댄다. 간들대는 바람결 사이로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밀려든다. 안산의 아카시아나무 숲 속에서부터 줄곧 들리던 울음소리다. 그 울음소리가 진도의 방화곡까지 이어지지 않는가?

   ‘어제 안산 뒷자락에서부터 들렸던 뻐꾸기의 울음소리가 나를 여기까지 내몰았을까? 할머니와 아버지의 영혼의 교신이 줄곧 뻐꾸기의 울음소리로 내게 전해졌을까? 그 울음소리가 아버지의 영혼에서부터 내 발길까지의 여로(旅路)를 탐색했던 근원이었을까? 머리가 다른 날과 달리 어질어질한 것이 아무래도 좀 이상하네?’

   생각에 잠기는 중에서도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쉼 없이 흘러든다. 골짜기를 뒤덮은 나뭇잎들이 밀려드는 바람결에 연신 물결처럼 남실댄다. 나뭇잎에 이는 파동(波動)마저도 영혼들의 쉴 새 없는 속삭임으로 느껴진다.

   골짜기에서 분출되는 은은한 파동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전신으로 밀려든다. 그러면서 묘하게도 자꾸만 내부로부터 울음이 터질 듯한 기분이다. 바람결에 간들대며 일어서는 만발한 철쭉의 군영을 바라볼 때다. 홀연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환영(幻影)으로 밀려든다. 근엄하면서도 당당한 아버지와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이 시야에 밀려든다. 상희와 나를 활짝 웃으며 반기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그러다가 환영이 시야에서 서서히 스러진다. 아쉬운 마음이 뭉클 치솟는다.

   어느새 상희가 내 손을 맞잡으며 나의 눈을 들여다본다. 내 영혼을 다스리던 부모의 숨결이 상희의 손길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콧등이 시큰대며 눈시울에 이슬이 맺혀 흐른다. 창졸간에 일어난 환상적인 정경으로 가슴이 온통 먹먹하다. 세상은 고요에 잠겨 청량한 솔바람 소리만 산자락 가득 파드득거린다.

<200자 원고지 261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