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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인도(武人道)의 꿈

                                                                                         손 정 모

   아까보다 바람결이 사뭇 다르다. 수면마다 하얀 포말을 머금고 일렁대기 시작한다. 바다의 수면에선 끝없는 너울이 하늘을 향해 치솟곤 한다. 윤태는 급히 낚시 도구를 걷어 올리려고 한다. 최대한 신속히 걷어 올려야만 안전하게 해변에 닿게 된다.

   동력선으로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윤태가 배를 신속히 갈무리한다. 밤새 폭우가 내리더라도 5톤짜리 동력선이 무사하도록 조처한다. 해변을 벗어나 그의 임시 숙소인 농막(農幕)으로 간다. 농막은 원두막 형식으로 임시로 지은 조잡한 2층 건물이다.

   윤태가 농막에 들어서자마자 낚시 도구를 1층 창고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는 마당의 수돗가에 설치된 임시 샤워장에서 몸을 씻는다. 알루미늄 골격에 비닐 장판지를 둘러서 만든 샤워장이다. 몸을 수건으로 닦으며 2층으로 올라선다. 농막이 세워진 곳은 해수면보다는 50미터가량 높은 지대다. 농막의 위치는 바다로부터 수평 거리로 20여 미터 떨어진 해안이다. 바다를 보고 있으려니까 점차 피로가 몰려들면서 눈이 감기려고 한다. 잠의 수렁으로 빨려들지 않으려고 버텼지만 어느새 코를 골기 시작한다.

   윤태가 잠든 직후인 오전 10시 무렵부터다. 하늘이 온통 새카만 구름장으로 뒤덮이더니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8월의 해변에선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는 듯 굵은 빗줄기가 하늘에서 마구 쏟아진다. 해안으로 흠뻑 비에 젖은 여인 둘이 나타난다. 여인들이 잠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더니 곧바로 농막을 향해 걸어간다.

   우르르 콰쾅! 우르르르 콰콰쾅!

   세상을 뒤흔들 듯한 천둥이 연방 터져 나온다. 거기에 따라 번갯불이 사방으로 흩날려 으스스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밤인지 낮인지조차 분간키 어려울 정도의 암흑 세상이다. 여인들의 얇은 옷은 살갗에 밀착되어 연신 물이 줄줄 흐른다. 한기(寒氣)가 전신을 엄습하는 듯 여인들의 표정이 잔뜩 고통스러워 보인다.

   단잠에 빠져든 윤태의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린다. 윤태가 일어나 농막 아래를 내려다본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인들이 눈에 띈다. 여인들은 170cm가량의 키에 다들 날씬한 몸매의 미인들이다. 초승달처럼 우아한 눈썹에 오뚝한 콧날을 지닌 갸름한 얼굴. 게다가 이목구비가 얼굴에 조화롭게 배치되어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낼 정도다. 검정 원피스 차림의 여인이 입을 연다.

   “폭우가 너무 심해서요. 여기서 잠시 비를 피해도 될까요?”

   여인들에게 자신의 헌 옷을 주어 샤워장에서 갈아입도록 한 뒤다. 이윽고 샤워를 마친 여인들이 농막 2층으로 올라선다. 여인들은 첫눈에 윤태의 가슴이 뒤흔들릴 정도의 미모를 지녔다.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올 지경이다. 윤태가 먼저 입을 연다.

   “폭우가 심하죠? 이렇게 만났으니 통성명을 하는 게 좋겠군요. 제 이름은 황윤태(黃潤苔)예요. 부산 R대학교의 해양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에요. 방학을 맞아 연구용 자료를 수집하는 중입니다.”

   키가 약간 더 큰 여인이 윤태를 향해 자신을 소개한다. 광주의 T대학교 농생명과학대 도예학과를 졸업했다고 밝힌다. 현재는 강진의 도예 마을에서 도예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주은선(朱恩鮮)이라 들려준다. 이어서 곁의 여인도 자신을 소개한다. 이름은 천수연(千穗姸)이라 밝히며 여수 H대학교의 미술학과를 졸업했다고 들려준다. 현재는 잡지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며 휴가를 나왔다고 알려준다. 은선과 수연은 중학 시절부터 친구였다고 들려준다.

   바깥은 더욱 암흑으로 드리워져 어디를 둘러봐도 캄캄할 따름이다. 여인들의 얼굴에 피로한 기색이 담겨 있다. 윤태가 석유난로를 켜서 실내의 온도를 높인다. 그러면서 여인들에게 눈을 붙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1층으로 내려간다. 건물 1층은 글자 그대로 온갖 물품이 쌓인 창고다. 몸 하나 눕힐 공간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여인들을 배려하여 윤태가 1층 창고로 내려왔다. 억지로 물건들을 밀치고 가까스로 몸을 눕힌다.

   양동이로 연이어 물을 쏟아 붓는 듯 폭우가 격렬하다. 어디가 어디인지도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처지다. 헌데 으슥한 절벽 아래에 50대 초반의 사내가 엎드려 있다. 사내를 노려보며 윤태가 생각에 잠긴다.

   사내는 서울 강북의 어느 지역에 ‘설천 기예원(雪天技藝院)’이란 도장(道場)을 차렸다. 대략 7년쯤의 전이었다. 하찮은 무술 실력으로도 주둥이를 잘 놀려 패거리들을 잘 모았다. 당초에는 국가 공인을 받는 무술본원(武術本院)의 지부를 세우려 들었다. 사내의 빈약한 무술 실력과 패거리들의 수준 미달로 본원으로부터 거절당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사내는 지방 자치구로부터의 무술 지원금을 받고 싶었다. 그리하여 마치 그의 도장이 본원의 한 지원인 것처럼 위장했다. 정기적으로 무술 잡지까지 편찬하며 패거리들을 규합하려 애썼다.

   본원에 소속된 회원들 중에서 자신의 관할 구역에 있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겨냥하여 수시로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곤 했다. 사내는 무술을 모르는 젊은 여자들에게 접근하여 무술을 지도하겠다고 유혹했다. 그러다가 여인들이 무술을 배우려 들면 그 때부터는 흑심을 품었다. 기회를 벼르다가 때가 되면 곧잘 여인들을 능욕하곤 했다. 그뿐만 아니라 운영 자금이 필요하다며 거액의 금품까지 갈취했다. 여인들이 순순히 응하지 않을 것에 대비하여 알몸의 동영상까지 촬영했다. 그러다 보니 사내를 무술계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보름 전이었다. 합리적으로 처리하려고 윤태가 회원 공동의 명의로 본원에 진정서를 냈다. 그리하여 본원의 임원들이 보낸 형사들이 설천 기예원을 덮쳤다. 낌새를 느낀 사내가 미리 도주해 버린 뒤였다. 아마도 사내는 다시는 무술계에 얼굴을 들이밀지는 않으리라 여겼다.

   여전히 눈앞에는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다. 지리산의 으슥한 절벽 아래에는 사내가 몸을 숨기고 있다. 처음에는 사내 혼자 몸을 숨기고 있다고 여겼다. 그랬는데 자세히 보니까 사내의 밑에는 알몸의 여인들이 깔려 있다. 여인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에 윤태가 치를 떤다. 조금 전에 농막의 2층에서 인사를 나눈 여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알몸으로 깔린 여인들은 은선과 수연이다.

   은선과 수연의 사타구니를 사내가 음험한 표정으로 더듬어대고 있다. 윤태의 전신에 돌연한 격분이 치밀어 오른다.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도 전남 신안군의 비금도의 농막에 있지 않았던가? 그랬는데 어떻게 여인들과 내가 지리산 칠선계곡까지 왔을까? 또한 사내는 언제 여인들을 능욕했지? 하여간 뭔가 이상하지만 사내만큼은 그대로 둘 수가 없어. 오랜만에 몸을 좀 풀어야 되겠구먼.’

   윤태가 살금살금 접근해서 사내에게 막 달려들 찰나다. 알몸 상태의 사내가 허공으로 치솟으며 앞차기로 공격해 들어온다. 윤태가 비웃음을 날리며 곧바로 양발 차기로 사내의 늑골을 걷어찬다. ‘퍽’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사내가 순식간에 나뒹군다. 쓰러진 사내를 연이어 걷어차려고 윤태가 달려들 찰나다.

   느닷없이 사내가 윤태를 향해 오른손을 홱 뿌린다. 날카로운 두 자루의 단검(短劍)이 순식간에 윤태의 얼굴로 날아든다. 윤태가 본능적으로 허리를 굽혀 피하며 몸을 솟구친다. 그러다가 오른발 뒤꿈치로 쓰러진 사내의 울대를 내리찍는다. ‘헉’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가 곧바로 절명(絶命)해 버린다. 사내가 절명하는 순간에 땅바닥이 짝 갈라진다. 그러더니 사내와 윤태가 함께 끝없는 땅속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한다. 죽음을 의식하며 윤태가 발악적으로 고함을 내지른다.

   “으아앗! 으아아앗!!”

   윤태가 비명을 내지르며 발악한다. 그러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잠에서 깨어난 직후다. 윤태가 넋이 빠진 듯 중얼댄다.

   ‘너무나 실제 상황 같군. 농막 2층의 여인들은 잘 있는지 모르겠네?’

   윤태가 1층 창고에서 나와 2층을 올려다볼 때다. 여인들이 2층 출입문을 열고 윤태를 내려다보다가 은선이 말한다.

   “조금 전에 비명 소리가 들려서 놀랐어요. 혹시 별 일은 없었어요?”

   윤태가 쓴웃음을 지으며 농막 2층으로 올라간다. 윤태가 방에 들어서서 셋이 방에 둘러앉는다. 셋이 둘러앉자 수연이 입을 연다.

   “악몽을 꾸신 모양이죠?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요.”

   윤태가 웃으면서 그냥 개꿈을 꾸었을 뿐이라며 화제를 슬쩍 비껴간다. 애교가 뚝뚝 듣는 간드러진 여인들의 목소리다. 달콤하고도 아늑한 목소리를 듣자 말초신경이 죄다 팽팽하게 긴장되는 듯하다. 수연이 자신의 지나온 일을 은선과 윤태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은선과 윤태가 수연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수연은 인간의 마음을 주제로 화폭에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눈뿐만 아니라 피부로도 충분히 상대의 마음을 느낀다고 한다. 눈을 감고 있어도 상대의 마음이 환히 읽힌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수연이 은선과 윤태에게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라고 한다. 다만 반시간 동안만 생각에 잠기라고 한다. 그러면 은선과 윤태의 생각의 흐름대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말한다. 은선과 윤태는 즉시 눈을 감고 각자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윤태에게서 연필과 A4 용지를 빌려서는 곧바로 그림을 그린다.

   해저 갈조류를 채취해서 우주 식품으로 개발하는 일이 윤태의 과제다. 윤태가 대학 2학년에 다니던 가을 무렵이었다. 중국 북경대학교의 두 명의 여대생들이 부산 R대학교의 해양학과를 찾았다. 동지나해에 관심을 가진 20대 초반의 여인들이라 연구의 열정이 높았다. 여인들 중의 20살의 친샤오핑과 윤태는 자주 만나서 연구를 했다.

   윤태의 지도교수인 정종환(鄭宗煥) 박사가 윤태와 친샤오핑을 공동 연구조로 묶었다. 윤태와 친샤오핑은 둘 다 영어에 능통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며 둘은 연구에 매진했다. 학교가 파하면 둘은 다정한 연인처럼 함께 대화를 나누곤 했다. 둘 다 외모가 수려한 편이었다. 하지만 외모보다는 둘의 취향이 둘을 가까워지게 했다. 당시의 윤태는 친샤오핑과 동갑이었다. 그래서 둘은 한층 정감의 교류에 있어서 자유로웠다.

   수업을 마친 어느 날 오후였다. 친샤오핑을 만난 지 6개월이 경과되는 시점이기도 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문어회와 술을 마신 뒤였다. 둘은 나란히 해안을 거닐며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취흥이 일어 윤태의 마음에도 풍랑이 일 지경이었다. 친샤오핑의 눈빛에서도 그리움의 자락이 아른대고 있었다. 둘이서 해변을 거닐던 중이었다. 윤태의 인간성에 취했다면서 친샤오핑이 윤태에게 연정을 고백했다. 친샤오핑이 국적마저도 바꿀 마음을 먹고 있었다.

   헌데 돌연한 일이 발생했다. 미국에서 위암 수술을 받아오던 친샤오핑의 어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친샤오핑의 모든 가족은 미국에 임시로 머물고 있었다. 친샤오핑도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러 미국으로 가야만 했다. 김해 국제공항에서 친샤오핑과 윤태가 애틋한 작별을 했다. 미국의 공항에 닿아 병원으로 달리던 택시의 바퀴가 터져 버렸다. 그 여파로 택시가 일시에 중앙선을 넘자마자 화물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택시 기사와 친샤오핑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그런 사연을 알게 된 윤태였다. 세상이 다 무너지는 듯한 허무감에 휩싸여 한동안은 실신할 지경이었다. 슬픔을 견디기 너무 힘들어 3학년을 마치면서 입대했다. 군복무를 하면서는 일체의 잡념에서 벗어났다. 오로지 병영 생활에만 내몰리다시피 과거의 시간을 보냈다.

   생각에 잠겼다가 윤태가 수연을 흘깃 바라본다. 수연은 두 장의 종이를 방바닥에 편 채 그림을 그린다. 그림의 내용이 차면 즉시 종이를 바꾼다. 창 밖에는 여전히 쏟아지는 폭우로 사물이라곤 보이지 않는다. 윤태는 7장의 그림들을 보며 내심으로 탄성을 터뜨린다. 윤태가 생각했던 과거의 일상이 그림에 차분히 펼쳐져 있다. 윤태가 은선의 표정을 흘깃 살핀다. 은선도 수연이 그린 그림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15분이 경과되었으니 또 다른 생각을 떠올리라고 수연이 주문한다. 각자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다. 생각을 그림으로 나타낼 정도라면 신성(神性)이 없으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수연의 그림을 보면 귀신처럼 잘 나타내고 있음이 드러난다.

   콰르르 콰캉! 콰르르르 콰쾅!

   천지를 진동시킬 듯 천둥이 높아진다. 고막이 터질 지경으로 얼얼하여 구토가 일어날 듯하다. 갑작스레 섬광이 진하게 밀려들더니 농막이 번개를 맞았다. 일시에 농막이 화염에 휩싸여 스러지기 시작한다. 강한 전기 충격으로 세 사람 모두 순간적으로 실신해 버린다. 불길은 거침없이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든다. 셋 중의 어느 누구도 의식 불명의 상태다. 점차 불길이 세 사람의 살갗으로 번져 온다. 독한 약품 냄새를 풍기며 셋의 옷자락이 불붙기 시작한다. 이내 셋의 살갗이 타 들어가는 소리를 낸다.

   셋의 몸뚱이에 이따금씩 의식이 돌아왔다가 이내 스러지는 일이 반복된다. 그러던 중에 폭우로 불길이 잡히고 만다. 다행스레 셋 모두 살갗에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옷이 검게 탄 채 셋이 땅바닥에 나뒹군다. 폭우가 연신 쏟아져 셋의 피부에 차갑게 밀려든다. 의식이 되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면 동사(凍死)할 우려가 있다. 한여름이어도 체온 차이로 동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가 있다.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버둥거리던 중에 재가 된 옷이 벗겨진다. 무의식의 회로 중에서도 열기를 쫓는 무의식 탓일까? 셋은 알몸뚱이 상태로 서로 뒤엉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무의식 상태라 서로 뒤엉킨 줄도 모른다. 그러던 중에서도 잠깐씩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열기(熱氣)를 느끼곤 한다. 뒤엉킨 상대의 체열 탓임을 모른 채 이내 의식을 잃는다.

   탁탁! 탁탁탁!

   수연이 연속적으로 손뼉을 치며 달뜬 목소리로 말한다.

   “자, 그만 시간이 완료되었어요. 눈을 떠도 좋아요.”

   눈을 뜬 윤태와 은선 앞에 그림들이 펼쳐져 있다. 윤태가 찬찬히 그림을 살핀다. 특히 가상으로 떠올린 15분간의 시간에 그려진 그림들을 살펴본다. 농막에 벼락이 떨어지는 그림이 보인다. 연이어 농막이 화염에 휩싸여 무너져 내린다. 발가숭이의 1남 2녀가 서로 뒤엉켜 비를 맞고 있다. 윤태는 진정으로 수연에게 내재된 신성(神性)의 위력을 실감한다.

   은선도 그녀의 생각을 그린 그림들을 보며 연신 탄성을 내지른다. 무척 감탄하여 말이 잘 나오지 않는 듯하다. 이 때 수연의 맑은 목소리가 매끄럽게 터져 나온다.

   “너무 놀라지 마세요. 후반 15분간의 영상이 다 같은 원인은 제게 있어요. 두 사람의 생각을 동일한 장면으로 연상시키도록 제가 유도했기 때문이에요. 타인의 생각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경지. 제가 자나 깨나 추구해 왔지만 오늘에야 이루었어요.”

   윤태와 은선은 일제히 수연을 향해 박수를 친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축하의 말을 건넨다.

   이번에는 은선의 얘기에 윤태와 수연이 귀를 기울인다. 고려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청자의 비색을 재현한 사람들이 알려져 있다. 은선이 추구하는 색상은 비색처럼 은은하게 펼쳐지는 다양한 색조라고 들려준다. 다양한 색조를 만들려면 흙과 유약과 불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 이런 속성들을 파악하려면 숱한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만 한다. 몸과 마음이 일치되지 않고서는 아무리 꿈꾸어도 이루지 못하고 만다. 이런 현상들을 너무나 오랫동안 지켜본 은선이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은선이 엉뚱한 말을 꺼낸다.

   “아까 후반 15분간의 생각에 잠기던 상황이 마치 실제처럼 느껴져요. 세 사람의 옷이 불타는 장면이 숯이 타는 장면으로 비쳤어요. 그러다가 알몸으로 뒤엉킨 세 사람은 청자로 느껴졌어요. 타오르는 불길의 시련을 거쳐 곱게 굽힌 청자 말이에요. 그 때의 현실처럼 느껴지던 체온의 느낌이 너무 생생해요. 너무나 감미로워 황홀할 지경이었어요. 최상의 예술품을 얻은 느낌이 바로 그러리라고 느꼈어요.”

   은선이 이야기를 잠시 멈추고 일행을 둘러본다. 그러다가 결기가 서린 얼굴로 말을 잇는다.

   “저도 10년의 세월을 청자를 연구하는 데 바쳤어요. 나름대로는 축적된 비술(秘術)도 적지 않아요. 진정 꿈꾸는 다채로운 색조의 세계에 진입하고 싶어요. 불(火)은 열기를 쏟아내죠. 혼음(混淫)처럼 뒤엉킨 체온의 교류에서도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진실로 부탁하건대 가상 공간처럼 알몸으로 함께 뒤엉킬 수는 없을까요?”

   은선의 말에 윤태가 머리를 완강히 내젓는다. 만약 자신이 은선과 비슷한 얘기를 꺼냈다면 누가 동의하겠는지를 헤아린다. 아무도 없으리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은선의 얘기를 흘려 넘기기로 작정한다.

   시간이 어느새 훌쩍 흘러 점심시간이 되었다. 냄비에 라면을 끓여 셋이 둘러앉아 국물까지 들이키며 맛있게 먹는다. 설거지를 마치고는 셋이 2층 방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문득 영감이 떠올라 윤태가 은선을 바라보며 말한다.

   “폭우가 내리고 바람이 사납지만 갯바위 낚시를 하면 어떨까요? 이런 험한 날씨에도 먹이를 찾아다니는 물고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물고기가 어떤 종류인지 한 번 확인해 보지 않을래요? 비가 내린다고 해서 그냥 방에 있기보다는 낫잖아요?”

   은선과 수연이 즉시 좋다고 응답한다. 그러면서 낚시를 마치고 갈아입을 여분의 옷이 있는지를 묻는다. 윤태가 옷은 충분히 여벌이 있다고 들려준다. 여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엄두가 안 나는지 잠시 망설이는 기색이다. 윤태가 커다란 골프 우산 세 개를 펼쳐 든다. 여인들에게 두 개를 건네주고 자신도 하나 든다.

   셋은 폭우를 뚫고 농막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해안으로 간다. 거기는 암석 해안이 높다랗게 발달된 지형이다. 윤태가 개펄에서 익숙한 솜씨로 갯지렁이들을 캐낸 뒤에 깡통에 담는다. 윤태가 낚싯대를 여인들에게도 한 개씩 건네준다. 그리고는 미끼인 갯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끼우는 법을 설명한다. 잡힌 물고기 입에서 낚시 바늘을 돌려서 빼는 방법도 알려준다. 한동안 설명을 자세하게 해 준 뒤다. 셋은 미끼를 꿰어 일제히 낚싯대를 바닷물에 담근다.

   물에 담근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다. 무는 느낌이 온다며 수연이 낚싯대의 릴을 감는다. 바늘 다섯 개가 달린 낚싯줄에 두 마리의 노래미가 물렸다. 수연이 낚시 바늘을 물고기 입에서 간단히 빼낸다. 수연이 미끼를 꿸 무렵이다. 이번에는 은선이 호들갑을 떨며 릴을 감아올린다. 낚싯줄에는 30cm가량의 볼락이 매달려 올라온다. 은선도 맵시 있게 물고기의 입에서 바늘을 빼낸다.

   은선이 물고기를 살림망에 담글 무렵이다. 수연이 어신이 왔다면서 신나게 릴을 감는다. 40cm가량의 감성돔이 낚싯줄에 매달려 흔들린다. 헌데 어쩐 일인지 윤태에게는 전혀 물고기의 입질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시범을 보여 주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는데 예상 밖이다.

   벌써 여인들은 각자 20여 마리를 건져 올렸다. 하지만 윤태의 경우에는 매달린 미끼가 그대로 달려 나온다. 전혀 물고기의 입질이라곤 없었다는 얘기다. 윤태가 여태껏 한 마리도 건져 올리지 못했음을 알았을 때다. 급기야 은선이 킥킥거리며 윤태에게 말한다.

   “거 봐요. 아까 제 제안을 따랐다면 많이 잡았을 거예요. 여자 말을 안 들으니까 물고기조차 거들떠보지도 않잖아요?”

   윤태는 불만스런 표정으로 마음속으로 중얼댄다.

   ‘이상하다? 어째 이런 일이 다 있지? 신참 여자들이 20여 마리씩 잡는데 한 마리도 못 건지다니?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 내가 그래도 낚시에는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아닌가? 정말 똥구멍에서도 뽀얀 한숨이 치솟을 일이로군.’

   우산을 썼지만 폭우의 위력은 대단하다. 어느새 옷은 흠뻑 젖어 우산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그러자 셋은 우산을 던져 놓고 낚시에 매달린다. 문득 윤태의 머릿속으로 친샤오핑과의 추억이 밀려든다.

   아카시아꽃이 눈부시도록 흐드러지게 핀 금정산에서였다. 5월 중순의 여름의 정취를 뻐꾸기가 마음껏 내뿜고 있었다. 금정산 남문을 거쳐서 북문으로 오르는 산길에서였다. 친샤오핑이 발가락이 아파 걸음을 걷기가 거북하다고 했다. 산록에서 흘러내리는 냇가로 그녀를 데리고 가서 발가락을 씻어 주었다. 그런 뒤에 발가락을 손수건으로 말끔히 닦고는 그녀에게 등을 내밀었다.

   그녀를 업고 금정산 산자락에서 범어사 계곡으로 넘어 내려왔다. 윤태의 등에 느껴지는 그녀의 느낌은 청아한 물결처럼 맑게 느껴졌다. 범어사에 닿아 둘은 한껏 아카시아의 향기에 취했다. 가만히 들여다만 봐도 그대로 빨려들 것 같은 여인. 그녀를 대하는 자체가 삶의 커다란 즐거움이자 행복이었던 때였다. 그랬건만 사별한 처지가 된 현실이 가슴 저리기만 하다.

   “호호홋! 윤태 씨, 차라리 저를 낚으세요.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 제겐 윤태 씨가 마음에 썩 들거든요.”

   은선의 웃음소리에 과거의 상념에서 깨어나 윤태가 은선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이상스레 여겨져 낚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자리를 바꾸었어도 물고기는 여인들에게만 잘 물린다. 윤태는 고작 6마리를 낚았는데 여인들은 40여 마리씩 낚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섬의 갯바위 낚시 상태였다.

   은선의 말을 듣는 순간에 윤태가 폭소를 터뜨린다. 그러면서 곧바로 응답한다.

   “은선 씨를 낚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죠? 무슨 미끼를 매달면 저를 물겠어요?”

   수연이 곁에서 지켜보며 킥킥거리며 끼어든다.

   “미끼는 아까 은선이 말했잖아요? 윤태 씨가 발가벗기만 하면 된다구요.”

   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행은 허리를 꺾으며 폭소를 터뜨린다. 윤태도 즉시 응답의 말을 던진다.

   “은선 씨를 낚을 수만 있다면 당장 여기서 벗을게요. 제가 알몸이 되면 수연 씨는 저를 물지 않겠어요?”

   수연이 깔깔거리며 곧바로 응답한다.

   “왜 저는 여자로 안 보이세요? 벗기만 벗으면 은선보다는 제가 먼저 물어 버릴 거예요.”

   윤태가 농담을 나누다가는 온갖 소리를 늘어놓겠다 싶어 슬그머니 자제한다. 그러다가 살림망을 건져 올려 물고기를 들여다본다. 이미 반시간이 지난 상태다. 감기 걸리지 않으려면 돌아가야 하리라 여긴다. 돌아가자는 말을 하자마자 여인들도 몸을 떨면서도 환히 웃는다. 풀이 죽은 윤태를 배려하느라고 돌아가자는 얘기를 참았던 여인들이다.

   다들 샤워를 하고 몸을 닦은 뒤다. 여전히 폭우가 쏟아지기에 여인들에게 2층의 방을 휴식처로 제공한다. 그런 뒤에 윤태는 다시 1층의 창고에서 몸을 눕힌다. 갈조류 배양에 대한 배양액의 조성을 연구하러 비금도를 찾았다. 일단 폭우가 멈추기만 하면 좋겠는데 폭우 때문에 갑갑하다. 해변 폭우에 따른 추위에 노출된 탓일까? 윤태의 전신에 피로가 몰려들기 시작한다. 얼마나 잤던지 창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윤태가 눈을 뜬다.

   피곤한 탓에 저녁도 굶은 채 일행이 잠이 든 거였다. 어느새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7시 무렵이다. 어느새 여인들은 그녀들의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다. 밥을 짓고 어제 오후에 낚은 물고기로 국을 끓인다. 농막 2층 방에 둘러앉아 셋이 식사를 마친다. 목포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에는 몇 시간이 남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인들이 윤태를 바라본다. 마치 그녀들을 즐겁게 해 주지 않겠느냐는 듯한 표정이다.

   수연이 윤태를 바라보며 말한다.

   “여기가 명사십리 해수욕장 부근이죠? 인근의 원평 해수욕장까지를 포함하면 길이가 3.5킬로미터에 이르는 해수욕장이기도 하죠. 저기 북서쪽의 무인도가 우선도라고 들었거든요. 직선거리로는 여기서 3.7킬로미터 떨어져 있죠. 저희들에게 우선도를 구경시켜 주지 않을래요?”

   20여 분 뒤에 일행이 우선도의 선착장에 내린다. 배를 닻으로 고정시킨 뒤에 윤태도 우선도에 내려선다. 길이는 880미터이고 폭은 800미터에 이르는 무인도다. 무인도이긴 하지만 해송이 잔뜩 우거져 있어서 풍광이 수려한 섬이다. 어제까지의 심했던 폭우의 흔적은 좀체 눈에 띄지 않는다. 울창한 솔숲을 향해 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 내리곤 한다. 여인들이 번갈아가며 디지털 사진기로 연신 섬의 풍광을 촬영한다.

   여인들의 제안으로 섬을 거닐며 대화를 나누기로 한다. 은선이 활달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여기는 완전한 무인도죠? 사람이라곤 우리밖에는 없잖아요? 최소한 여기서만이라도 분위기를 좀 살리자구요.”

   은선이 말하면서 오른팔로 윤태의 왼팔을 감싸며 팔짱을 낀다. 그러자 수연이 왼팔로 윤태의 오른팔을 감싸며 팔짱을 낀다. 풋풋한 체향의 여인들이 팔짱을 끼자 윤태의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한다. 마음이 한없이 달아오르며 동화 속의 제왕이 된 느낌이다. 마치 궁녀들의 보좌를 받으며 궁중 뜰을 산책하는 기분이다. 마치 몇 병의 술을 마셔 얼큰히 취한 느낌이다. 세상이 한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도원경이 따로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윤태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아무래도 제가 너무 오래 꿈을 꾸는 것 같아요. 제가 꿈에서 벗어나면 무척 허전할 것 같아요.”

   그러자 수연과 은선이 서로 눈빛을 나누더니 수연이 말한다.

   “꿈에서 깨면 허전할 만큼 저희들과 엮인 게 별로 없잖아요? 분명히 말해 저희들이 싫지는 않으시죠?”

   윤태가 고개를 끄떡이며 그렇다고 대답하자 여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제안한다. ‘무인도(無人島)의 꿈’을 엮어 보자고 말한다. 무인도의 꿈이라? 여인들이 얘기를 꺼내자마자 얼음 상자(ice box)를 꺼낸다. 얼음 상자 안에서는 소주와 캔 맥주가 가득 들어 있다. 무성한 솔숲 아래에 폴리비닐 자리를 깔고는 일행이 둘러앉는다. 어제 오후에 잡은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여 셋이 술잔을 나눈다.

   잠시 소변을 누러 윤태가 솔숲으로 들어섰을 때다. 여인들이 가방에서 수영복을 꺼내 갈아입는다. 그런 뒤에 은선이 손가방으로부터 약 봉지를 꺼낸다. 하얀 가루를 윤태의 술잔에 약간 털어 넣으며 수연에게 말한다.

   “이 정도는 넣어야 윤태 씨가 기분을 내겠지?”

   수연이 곧바로 응답한다.

   “아냐. 조금 더 넣어. 그래야 잠재된 야성(野性)을 들끓게 만들겠지.”

   수연의 말대로 가루를 조금 더 털어 넣는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술잔에도 비슷한 양만큼의 가루를 털어 넣는다. 윤태가 돌아오자 은선이 일행을 향해 말한다.

   “자, 무인도에서의 몽환(夢幻)의 시간이 되기를 빌며 축배를 듭시다. 다들 건배!”

   셋이 술잔을 맞댄 뒤에 일제히 목구멍으로 술을 털어 넣는다. 5분간 서너 잔의 술잔이 오갔을 때다. 여인들이 윤태에게도 수영복으로 갈아입으라고 권한다. 그런 뒤에 바닷물에서 수영하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여인들이 용변을 보고 오겠다며 솔숲으로 들어간다. 윤태도 가방을 열어 수영복을 꺼낸다. 그리고는 곧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이윽고 여인들이 윤태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두어 잔의 소주를 더 비운 뒤다. 냄비와 술병을 갈무리한 뒤다. 셋은 북동 및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백사장으로 내닫는다.

   잠시 준비 운동을 끝낸 뒤다. 수연이 먼저 물속으로 뛰어든다. 다음으로는 은선이 뛰어든다. 윤태가 마지막으로 바닷물에 뛰어든다. 자유형으로 가볍게 물살을 갈라본다. 열기(熱氣)를 순식간에 식혀 주기로는 최상의 여건이다. 그런데 이상스럽게도 자꾸만 윤태에게 색정이 치솟는다. 이전에는 결코 못 느끼던 격렬한 색정이다. 여인들 둘을 한꺼번에 발가벗기고픈 충동이 자꾸만 치솟으려고 한다. 자꾸만 윤태의 시선이 여인의 젖가슴과 사타구니로 휩쓸린다. 취기 탓이려니 여기려고 해도 좀체 납득이 되지 않는다.

   술을 마실수록 마음에 안정을 얻는 윤태다. 여태껏 술에 취해 색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술을 마실수록 마음이 가라앉으면서 청정한 세계에 몰입한 적은 많았다. 그랬는데 어쩐 일인지 자꾸만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른다. 어느 순간이다. 은선이 호들갑을 떨며 외친다.

   “어머, 발밑 모래에 조개가 있어요. 여기 보이죠?”

   조개를 한 마리 건져 올려 일행에게 보인다. 용케 발바닥 감촉으로 조개를 찾아낸 모양이다. 이 때부터 여인들이 바닷물 속으로 자맥질을 시작한다. 윤태도 몸을 굽혀 모래바닥으로 잠수해 들어간다. 물밑이 너무나 맑다. 멸치 같은 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게 보인다. 물구나무를 선 자세로 바닥을 더듬다가 다시 물 위로 치솟는다. 이런 동작을 되풀이하면서 색정을 가라앉히려 용을 쓴다.

   모래 바닥의 감촉이 좋아서 윤태가 물구나무 자세로 입수(入水)했을 때다. 물구나무 자세로 양 손바닥으로 모래 바닥을 마냥 더듬는다. 더듬을수록 모래의 감촉이 좋아 손바닥으로 마냥 모래를 어루만진다. 헌데 어느 순간이다. 여인들이 수영복이 귀찮다며 수영복마저 해변으로 벗어 던진다. 그리고는 알몸의 여인들이 윤태에게 달려들더니 윤태의 수영복마저 벗겨 버린다. 윤태가 창졸간에 난감한 표정을 짓는 찰나다.

   여인들이 윤태를 물속으로 끌어들이면서 윤태의 사타구니를 어루만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여인들이 윤태의 얼굴에다가 그녀들의 젖가슴을 번갈아 들이댄다. 그러자 번개에 감전된 듯 윤태의 성기에 강한 충격이 가해진다. 윤태도 색정을 지닌 평범한 수컷일 뿐이다. 여인들이 그 지경에까지 달려드는 데야 더는 견딜 수가 없다. 손길에 닿는 대로 여인들의 젖가슴과 사타구니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수연의 사타구니부터 벌려 그의 성기를 삽입하여 몸을 흔들어댄다.

   그럴 때 은선이 윤태의 입속으로 그녀의 혀를 밀어 넣는다. 바닷물을 방패로 삼아 셋이 뒤엉켜 혼음(混淫)을 되풀이한다. 희열과 절정감이 너무 커서 셋이 교성을 내지르며 반복해서 뒤엉킨다. 마구 뒤엉키면서도 윤태가 잠깐씩 생각해 본다. 무인도의 꿈이 환상적이기는 한데 후유증이 두려워진다. 두 여인 중의 하나와 성교를 했다면 그녀랑 결혼하면 된다. 하지만 두 여인과 혼음했으니 한 여인과는 부득이 헤어져야 한다. 누구를 취하고 누구를 버린단 말인가? 하지만 걱정할 겨를도 없이 여인들이 윤태의 성기를 주물러댄다.

   셋은 혼절하는 듯한 심정으로 연신 격정의 소용돌이로 휘몰리곤 한다. 한 시간가량 바닷물에 잠겼다가 셋은 백사장으로 올라선다. 거기에서 셋은 수건을 둘러쓰고 정신없이 단잠에 빠져든다. 두 시간쯤 낮잠을 잔 뒤다.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나눈다. 여인들이 거듭 윤태에게 말한다. 윤태가 마음에 들었기에 잠재된 색정을 풀어 본 거라고. 그녀들의 연인들은 따로 있기에 절대로 마음에 부담감을 갖지 말라고. 그냥 윤태라는 인간이 좋아 보였기에 마음을 열었을 뿐이라고 들려준다. 그러면서 무인도의 꿈을 소중한 추억으로 함께 간직하자고 말한다.

   뭍으로 떠나는 여인들을 비금여객터미널에서 전송한 뒤다. 허전하고 안타까운 듯한 심정에 휩싸여 윤태가 농막에 쓰러져 잠든다. 마치 봄날의 꿈을 꾼 듯한 황홀함에 취해 감미롭기만 하다.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멋진 추억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송두리째 요동친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라 여겨져 편안히 눈을 감고 잠든다.

   느닷없이 휴대전화가 큰 소리로 울어댄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니 전화가 끊기고 메시지가 도달했다는 전자음(電磁音)이 들린다. 연속해서 두 건의 메시지가 수신된다. 수신된 메시지엔 동영상이 펼쳐진다. 첫 번째는 무인도의 바닷물에서 수연과 뒤엉킨 성교 장면이다. 두 번째는 은선과 뒤엉킨 동영상 장면이다. 메시지 확인을 막 끝냈을 때다. 휴대전화가 또 다시 울어댄다.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 대니 사내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흐흐흐! 내 목소리 잊지 않았겠지? 네가 무인도(武人道)의 꿈을 이루겠다고 했냐? 대낮에 비금도 근방의 바닷물에서 아가씨들과 혼음을 했다면서? 아가씨들은 평소에 내가 데리고 놀던 애들이야. 일부러 내가 너한테 보냈지. 어떻게 기분은 째지게 좋았겠지? 그런 주제에 무술인의 최고의 경지인 ‘무인도(武人道)의 꿈’을 이루겠다고? 야 이 미친놈아, 꿈이나 깨고 무술계에서 꺼져 주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혼음 동영상을 퍼뜨려 너를 강제로 매장시켜 버리겠어. 잘 꺼지게나.”

   전화를 받고서야 윤태가 모든 정황을 확연히 깨닫는다. 윤태가 그토록 꿈꾸던 무술계의 목표가 바람결로 스러짐을 느낀다. 피를 토하도록 절규하고 싶지만 겸허하게 운명으로 받아들이려고 마음먹는다. 농막 2층의 유리창으로 핏빛으로 들끓는 낙조가 하염없이 흘러든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윤태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바다를 굽어본다. 발동선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즈넉한 석양의 정경이 굽이친다.

<200자 원고지 8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