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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초 지대

                                                                                                                                                                    손정모

   파도소리가 시린 선율로 밀려들던 자정 직후의 새벽이었다. 요란한 벨 소리에 눈조차 뜨지 못한 채 받은 전화에서였다. 청량한 음색의 희연의 목소리가 귓전에 밀려들었다.

  “만나서 얘기할 게 있어요. 오늘 석양 무렵에 통영 해변으로 내려갈게요.”

   워낙 잠에 취했던 모양이다. 왜 그녀가 새벽에 전화했는지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 그냥 할 말이 급히 생겼거니 여겼을 뿐. 곧바로 침상에 나뒹굴고 말았다.

   통통거리는 뱃고동 소리가 해안 자락까지 밀려드는 새벽이다. 새벽 5시를 갓 넘긴 시각이다. 동력선에서 내밀리는 물결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다. 나는 습관대로 갑판을 둘러본다. 새벽 낚시꾼들이 아직도 여섯 명이나 남아 있다. 이미 하선(下船)한 낚시꾼들은 7명에 이른다. 하선한 7명의 낚시꾼들은 모두 한산도에서 내렸다. 다음에는 용초도에 3명, 죽도에 1명, 비진도에 2명을 내려주어야 한다. 발동선의 엔진 소리를 꿰뚫고 문득 희연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만나서 얘기할 게 있어요. 오늘 석양 무렵에 통영 해변으로 내려갈게요.”

  만나서 내게 들려줄 얘기는 뭘까? 왜 하필이면 해변에서 만나자고 했을까? 잠시 생각에 잠길 무렵이다. 느닷없이 빈 냄비가 갑판 위로 나뒹구는 소리가 들린다. 휩쓸리는 파도로 일시적으로 배가 기울었던 모양이다. 냄비는 귀청이 시릴 정도의 청량한 음향을 토해낸다. 청량한 음향에 연상되어 빛살 속을 가르는 불사조(不死鳥)의 영상이 밀려든다. 일정한 주기마다 불에 타서 새롭게 태어난다는 영물(靈物). 어떤 번민마저 태워 버리고 불사조처럼 새롭게 비상할 수는 없겠는지?

  부우웅 부웅! 도착지가 근접했음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터져 나온다. 한산도 남쪽의 고기가 잘 잡힌다는 용초도다. 용초도에서 3명의 낚시꾼들이 내린다. 낚시꾼들이 내리자 배는 곧장 죽도로 향한다. 죽도는 용초도에서 800m의 거리만큼 동쪽에 떨어져 있다. 청록색으로 파드득거리는 물결에 휩싸여 발동선이 몸체를 흐느적거리며 빠져 나간다. 배가 수면을 가를 때마다 하얀 포말들이 길길이 치솟는다. 눈발처럼 나부끼던 포말은 금세 파란 색채로 수면으로 휘감겨 버린다.

   물결의 파동(波動)만 보면 가슴이 설렌다. 파동에는 사람의 정감을 뒤흔드는 힘이 내재된 듯하다. 파동이 가슴으로 느껴질 때다. 안개더미로 밀려드는 엔진 소리처럼 희연에 대한 추억이 은은히 떠오른다. 희연은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설레는 연인이다.

   희연을 처음 만나던 날의 정경이었다. 노량진의 겨울은 가슴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였다. 취직 시험에 재수하느라고 찾았던 대형 학원에서였다. 교원 임용 고사반에는 희연이 수강 신청을 했다. 반면에 공무원 채용 고사반에는 내가 수강 신청을 했다. 3월을 며칠 앞둔 2월말의 추위는 너무나 극성스러웠다. 수강 신청을 하느라고 길게 늘어서서 교차된 줄이 엇갈릴 때였다. 희연의 몸에 부딪혀 내 손에 들렸던 가방과 책자들이 나뒹굴었다. 당시에 나의 마음은 극도로 처참했었다. 수강 신청을 하는 날에 가방과 책자들을 떨어뜨리게 되다니? 불길한 조짐 같은 게 느껴졌기에 발작할 지경이었다. 나의 얼굴이 낭패한 기색으로 엄청나게 구겨졌던 탓이었을까? 희연이 책자들을 주워 주려고 허리를 굽혔다.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순수한 표정이 내 마음의 미세한 정감을 뒤흔들었다. 몇 시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나는 학원의 계단에서 수강을 마치고 내려오는 그녀를 기다렸다. 잠시 후에 둘은 카페에서 헤이즐넛 커피를 마시며 마주 앉았다. 커피 향기에 이끌렸음일까? 둘은 서로의 신세를 서서히 털어내기 시작했다. 이야기 도중이었다. 문득 둘의 전신이 혹여 불사조는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가슴에 휩쓸리는 정감의 기류가 너무 흡사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첫날은 간단히 그렇게 헤어졌다. 서로에게 이끌리는 여운을 남기며.

   죽도에 배가 닿자 1명의 낚시꾼 사내가 내린다. 선장이 배를 서서히 남서쪽으로 돌린다. 죽도에서 5.3km 떨어진 비진도를 향해 배를 몬다. 비진도에서 2명만 내려주면 새벽의 나의 일은 끝난다. 시선을 돌려 죽도를 돌아본다. 볼록하게 치솟은 죽도의 능선을 올려다볼 때다. 문득 사흘 전의 중년 여인이 발버둥질치던 정경이 떠올랐다. 줄지어 흐르던, 44살의 여인의 눈물 방물도 잠시 생각났다.  

   바다는 새벽의 여명으로부터 서서히 물빛을 되찾고 있다. 청정하기 그지없는 청록색의 물무늬가 아침 바다에서 남실댄다. 섬에 드리워진 솔숲에서도 파동이 인다. 수목의 잎사귀들이 바닷바람에 휩쓸릴 때마다 빛살이 어지럽게 반사된다. 먼 바다를 가로질러 이따금씩 뱃고동 소리도 밀려든다. 쿵쿵거리는 진동음을 토해 내며 달리는 발동선의 몸짓이 허허롭다.

  문득 지나간 시간의 궤적이 떠오른다. 재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다시 낙방했다. 낙방의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삼수(三修)하기 시작했음에도 충격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충격의 수렁에서 헤어나기 위해서였다. 한 달간을 기약하고 통영을 찾았다. 그 날이 7월의 말일이었다. 선장을 만나게 된 것은 낚시점을 통해서였다. 선장을 만나면서부터 발동선에 동승하여 선장의 일손을 돕기 시작했다. 일한 만큼 수당도 주겠다는 선장의 배려가 고마웠다.

  나는 근래의 일상생활을 잠시 더듬어본다. 새벽 4시 반에서 5시까지는 흩어진 섬들로 낚시꾼들을 실어 나른다. 단골 낚시꾼들은 갯바위의 벼랑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다. 새벽에 낚시꾼들을 섬에 내려준 뒤에는 저녁에 데리러 가야 한다. 낚시꾼들은 평균 12시간가량 갯바위에서 낚시질을 한다. 낚시꾼은 개인당 8만원의 배삯을 낸다. 선장의 생계 운영 방식은 낚시꾼들을 유치하여 수익을 얻는 것이다. 물고기를 잡는 일은 부수적인 일로 비친다.

  출렁대는 물결에 몸을 맡기며 수평선을 그윽이 바라볼 때다. 새벽의 공간을 가르는 갈매기의 날갯짓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나에겐 왜 날개가 없는지? 날개 말이다. 황당한 안타까움이 잠시 의식계로 밀려든다. 갈매기의 비상과 더불어 희연과 두 번째 만남의 기억이 떠오른다.

   두 번째의 만남은 첫 만남으로부터 3주일 뒤에 이루어졌다. 행정법을 듣느라 정신이 쇠진된 채로 학원 층계를 내려올 때였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의 어깨를 탁 쳤다. 희연이었다. 첫 만남 이후로 다시 만나기를 바라던 여인이었다. 나보다 2살 아래인 24살의 여인이었다. 둘 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취직 공부하려고 재수하던 처지였다. 둘은 민속주점에서 네 뚝배기의 동동주를 단숨에 마셨다. 그리고는 달뜬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둘은 마음이 통해 애인이 되자고 했다. 당시의 느낌으로는 아득한 지평선까지라도 함께 날 수 있을 듯했다. 암담한 현실의 구름장을 날기 위해서는 날개를 가꾸어야만 했다.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나의 입이 열렸다.

  “우리 함께 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당신과 함께라면 어디든지 날아오를 수 있어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흘러나온 희연의 응답이었다. 나는 갑자기 세상이 불타는 빛살에 휘감기는 기분이었다. 희연과 함께라면 그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 같았다.

   새벽 바다를 뒤덮던 여명이 점차 걷히고 있다. 바다의 멀고 가까운 데가 청록색의 물결로 남실댄다. 청록색의 선명한 색조가 온 바다 가득히 풋풋한 생기를 일깨운다. 점차 중도가 눈앞으로 다가온다. 중도를 연상하기만 해도 내겐 아찔한 추억이 밀려든다.               

   사흘 전의 중도에서였다. 새벽에 중도에 내려주었던 여인을 저녁에 데리러 갈 때였다. 여인은 유독 미태(美態)가 흐르는, 44살의 요염한 얼굴형을 지녔다. 여인은 귀항 길의 승선을 거부했다. 귀항시킬 다른 낚시꾼들 때문에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재차 들르기로 하고 죽도에서 배를 출발시켰다. 여러 섬에서 승선한 낚시꾼들을 충무항에 내려준 뒤였다. 미선과 나는 죽도로 곧장 배를 되돌렸다.

  53살의 선장은 중키의 심성이 후덕한 사내다. 통영시 미륵도(彌勒島) 서쪽의 연화리(蓮花里)에 선장의 자택이 있다. 나의 자취집은 선장의 집에서 300m가량 떨어져 있다. 내가 자취방을 정한 집은 단독 주택이며 선장의 동생의 집이다. 선장의 동생 가족은 직장 관계로 해외에 체류 중이다. 그래서 선장이 동생의 집을 관리하고 있다. 선장의 배려로 나는 선장 동생의 집을 자취집으로 쓰고 있다. 나는 발동선에서 일을 마치면 언제나 자취집으로 간다.

   여인을 항구로 데려다주려고 밤 7시 무렵에 죽도를 찾은 날이었다. 마침 그 시각에 선장은 선주 총회에 참석하러 가야만 했다. 그리하여 방학이라 집에 머물던 장녀를 내게 딸려 보냈다. 장녀인 미선은 능숙하게 엔진을 가동시켜 배를 몰았다. 해안에서 미선을 기다리게 하고 나만 죽도 해안으로 올라섰었다.

   빼어난 미모의 여인은 해변에서 마셔댄 술로 엉망으로 취해 허청대었다. 몰래 재산을 처분한 남편은 애인이랑 호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여인은 갈 데가 없다며 통곡했다. 갈 데가 없다니? 그렇다면 내가 갈 데는 어디인가? 갈 데가 없다는 여인의 말이 내 마음을 여지없이 뒤흔들었다. 여인의 신세와 내 처지가 너무 닮아 발광(發狂)할 듯한 심정이었다.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어 여인과 함께 생을 마감하고픈 충동마저 일었다. 자조적(自嘲的)인 심리의 극한 상태에서였으리라. 상기된 여인이 울부짖으며 달려들어 나의 옷을 벗기려 했다. 창졸간에 나도 처참한 심경(心境)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었다. 극한적인 번민의 순간이었다. 번민에 쌓인 내 눈에 마침 민가가 한 채 띄었다. 나는 70대의 노인 부부에게 여인을 하룻밤만 재워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해안으로 달려갔다. 기다리던 미선이 궁금증을 나타내며 물었다.

  “여자 손님은 어떻게 하고 혼자만 내려오세요?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몇 번 전화를 했는데도 안 받더군요.”

  나는 갑판에 올라 전후의 경과를 얘기했다. 미선이 눈썹을 찡긋거리더니 한숨을 토해 내며 말했다. 말하는 미선의 눈가에는 물기마저 슬쩍 비치는 듯했다.

  “혹시 그 여자가 잘못되면 어쩌죠? 남의 일 같지 않게 가슴이 너무 아파요.”

   미선의 말을 듣고 보니 더욱 가슴이 애잔해졌다. 가슴이 너무 시려 자칫하면 토할 뻔했다. 그 날 배를 선착장에 계류시킨 뒤에 숙소로 돌아온 뒤였다. 세상이 허전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어 그대로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무렵에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날 때였다. 놀랍게도 미선이 자취방 앞의 거실에 앉아 혼자서 술을 마셔댔다. 미선은 얼마나 술을 마셨던지 이미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 나는 잠시 놀라움을 억누르고 미선에게 말했다.

  “아니, 어쩐 일이세요, 이 새벽에? 왔으면 나를 깨우지 그랬어요?”

   미선은 여전히 의식이 혼미한 채 헛소리에 가까운 말만 중얼대었다. 나는 방에서 이불과 베개를 갖다 주고는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을 다녀온 뒤에는 방으로 들어와서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해상 5.3km의 거리를 달려 배가 비진도 선착장에 닿는다. 그러자 2명의 낚시꾼들이 내린다. 낚시꾼들이 갯바위에 자리를 잡는 것을 지켜본 뒤에 배를 움직인다. 해안에서 500m쯤 남서쪽으로 떨어진 지점이 배낚시의 명소다. 낚싯대를 담그기만 하면 5 ∼ 6분 간격으로 물고기가 잡힌다. 바다에 낚싯줄을 담그려는데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군(申君), 물고기를 잡더라도 잔챙이는 살려 주도록 하게. 낚시인들의 묵계 사항이거든.”

   나는 맑은 목소리로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다. 선장과 함께 닻줄을 풀어 닻을 바다에 담근다. 낚싯줄이 뒤엉키지 않을 거리만큼 선장과 나는 거리를 둔 채다. 둘은 낚시 도구를 꺼내 펼쳐든다. 그리고는 네댓 개의 낚시 바늘마다 갯지렁이를 끼운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는 낚싯줄을 수면 아래로 풀어 내린다. 내가 낚싯줄을 풀어 내릴 무렵에 선장은 노래미를 건져 올린다. 나도 질세라 낚싯줄에 서서히 고패질을 하기 시작한다. 낚싯줄의 봉돌을 바닥에서 한 뼘 높이로 오르내리는 동작인 고패질. 고패질을 하면 흙먼지가 일게 마련이다. 이 흙먼지와 갯지렁이야말로 물고기들의 공격 목표가 되는 터다. 시작된 낚시질은 보통은 낮 11시 무렵까지 지속된다. 햇살이 확실히 물속으로 스며들기 전인 오전까지가 낚시의 적기(適期)이다. 낚싯줄에 매달려 파드득거리는 물고기들의 몸짓이 짜릿한 쾌감이 되어 밀려든다.

   선장은 낚시꾼들에 대한 관리 능력이 탁월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리라 생각된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두 달 전의 일이 떠오른다. 그 이전에도 희연과 나는 십여 차례나 만난 적이 있다. 그 날도 희연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다.

   그 날은 학교에는 연휴가 적용되는 넷째 주의 토요일이었다. 마침 학원에서도 쉬는 날이어서 희연과 남한산성에 올랐다. 단장이 잘 된 성곽 옆의 산책로를 거닐며 대화를 나누었다. 희연은 중학교의 사회과 교사인 반면에 나는 취업 공부하는 삼수생이었다. 나의 내면에는 드러나지 않는 열등감이 팽만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상대에 대한 요망 사항을 서로 얘기했다. 장차 결혼과 관련된 청사진들 중의 핵심적인 사항들이었다. 남한산성은 시공을 초월한 대담의 장소로서는 최상의 관광지였다. 

   서로의 품성이나 취향 모두가 서로 마음에 든다고 인정한 상태였다. 그러기에 둘 다 지금껏 연인으로 지냈다. 하지만 나와 희연에겐 난관이 가로 놓여 있었다. 내겐 동생인 종수의 부양과 종손(宗孫)으로서의 봉제사(奉祭祀)할 의무가 부여되어 있었다. 동생은 대학 시절에 골목에서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뇌를 다친 후유증으로 정신 질환을 앓게 되었다. 그래서 정신 병원에 3년째 입원해 있는 상태였다. 종수를 평생 부양해야 한다는 것을 희연은 떨떠름하게 여겼다. 게다가 종손으로서 봉제사해야 한다는 데에는 펄쩍 뛰듯 질색했다. 기독교를 종교로 가진 희연은 제사(祭祀) 자체를 우상으로 여겼다. 희연에게 종교는 갖더라도 제례는 존중해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희연은 그럴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기독교에서는 우상 숭배를 금기(禁忌)한다고 했다. 나는 목이 타는 듯했다. 작년 여름철의 일이 언뜻 생각났기 때문이다. 종중산의 장지(葬地)에서였다. 문중의 사망한 할아버지뻘 되는 어른의 매장을 앞둔 상황이었다. 기독교를 믿는 며느리와 손자가 상례(喪禮)를 거부한 거였다. 망인의 아들은 관(棺)을 향해 절을 올렸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시키는 데도 망인의 며느리와 손자는 절하기를 거부했다. 지켜보던 문중의 어른들은 격분하여 언성을 높였다. 전통의 미풍양속까지 흐트러뜨린다면서 문중의 어른들은 교인(敎人)들을 매도(罵倒)했다. 그 때부터였다. 나는 교인을 배우자로 삼지는 않겠다고 작정했다. 희연에게는 그나마 양보하여 제례만 존중해 주면 종교는 허용할 작정이었다. 그만큼 내가 희연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랬는데도 나의 마음을 너무 몰라주는 희연에게 거리감이 생겼다.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쓰디쓴 마음이었다.        

   희연은 자식은 하나만 낳겠으며 종부(宗婦)로서도 봉제사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희연은 강경한 자세로 말했다. 자식은 딸이건 아들이건 하나만 낳겠다고 했다. 그녀가 종부라고 하여 꼭 아들만을 원해서는 안 된다고 윽박질렀다. 반면에 나는 자식 둘은 갖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희연에게 제례를 존중해 주도록 거듭 간청했다. 친척들 간의 유대에 있어서도 제례(祭禮)를 무시하는 종교는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얘기를 듣다가 희연은 정도가 심한 말이라며 화까지 발끈 내었다. 화를 내는 그녀의 표정을 보자 점차 암울한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도 몇 차례나 서로의 의견을 묻곤 했다. 하지만,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헤어지곤 했다. 그 날도 별다른 진척이 없이 불편한 마음으로 헤어지고 말았다.

  선실에 설치된 자명종이 울어댄다. 오전 11시다. 낚싯대를 거두고 귀항할 시간이다. 선장이 만족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나를 부른다.

  “신군, 자네도 많이 잡았네그려. 자네의 낚시 솜씨도 보통이 아니야.”

   선장의 말은 대단히 간결하다. 반면에 그만큼 믿음직스럽기도 하다. 선장이 릴로 낚싯줄을 감아올린다. 덩달아 나도 갑판에서 일어나 낚싯줄을 감아올린다. 끝까지 도다리와 노래미, 감성돔들이 잡혀 올라온다. 선실 옆의 물칸을 들여다본다. 오전에 잡힌 물고기들이 물칸에서 활기차게 헤엄치고 있다. 적어도 수십 마리는 족히 되어 보인다. 물고기들의 자유로운 유영(遊泳)을 지켜볼 때다. 20대 초반의 자유로운 열기의 발산을 하던 미선의 모습이 연상된다. 지금 생각해도 물고기만큼이나 신선하고도 자유롭게 느껴졌던 미선이다.

  죽도의 여인을 노인 부부에게 맡기고 돌아왔던 날이었다. 자취집에서였다. 새벽에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미선이 눈에 띄었다. 깜짝 놀라 미선을 바라봤을 때 그녀는 많이 취한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술을 가득 채운 채 술잔을 흔들거렸다.

   부산의 P대학 수산학과(水産學科)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녀다. 방학이라 집에 들렀던 그녀다. 배를 몰거나 낚시질을 할 때 선장과 나란히 타던 그녀다. 한 달의 기간 동안에서다. 나는 선장의 가족과 함께 대화도 많이 나누고 해수욕도 즐겼다. 미선은 선장의 무남독녀다. 미선의 인상도 참 고왔지만 내게는 연인으로서의 희연이 더 그립다.

   교사가 된 지 한 달째 되던 날의 희연과의 산책에서였다. 물이 흘러내리던 세검정 계곡을 산책할 때였다. 계곡 언저리의 진달래꽃이 연분홍으로 피어 바람결에 한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희연과의 견해 차이를 좁히려고 진지하게 노력했다.

   내가 종손(宗孫)이 된 것은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일이다. 어느 집안을 막론하고 종손의 중요한 업무는 제례를 올리는 일이다. 나는 희연의 기독교를 이해하려고 성경도 틈틈이 읽곤 했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被造物)이라면 인간의 선조 역시 신의 피조물임에 틀림없으리라. 제사란 선조를 기리기 위한 경건한 의례라 여겨진다. 신의 피조물인 선조들에게 경건한 예절을 표하는 게 잘못이란 말인가? 나는 안타까운 관점의 차이를 희연에게 말했다. 종교에 관한 한 희연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유년 시절부터 길들여진 범위에서는 한 발자국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은 나도 은근히 화가 났다. 평소의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희연에게 늘어놓았다. 서양에서도 추수 감사제(秋收感謝祭)나 사육제(謝肉祭) 같은 제례 의식이 있지 않느냐고. 사육제는 가톨릭 국가에서 행해지며 술과 고기를 먹는 축제가 아니냐고. 왜 제례에 대하여 조금 관대할 수는 없느냐며 따졌다. 설핏 창백해지려는 희연의 안색을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희연을 너무 몰아세운 것 같아 안쓰러웠다. 그날따라 내 마음이 몹시도 착잡했다.

   어느새 햇살이 많이 따가워진 상태다. 닻을 감아 올린 뒤다. 배는 곧바로 통영시의 충무항으로 달린다. 항구를 지나 미륵도의 서쪽의 해변인 연화리의 선착장에 배를 댄다.

   십여 분 후에 나는 자취집으로 들어선다. 마당에는 어느새 선장의 개가 따라와 꼬리를 흔든다. 두어 번 머리를 쓰다듬어 돌려보내고는 현관문을 연다. 서른 평의 독립 주택은 혼자서 휘젓고 다니기에는 대궐같이 넓다. 침실의 침대에 누워 거실을 바라볼 때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떨어댄다. 폴더를 여니 미선이 식사하러 그녀의 집으로 건너오라고 한다. 자취집이라 식사는 보통은 내가 해 먹는다. 하지만 선장은 점심시간에는 곧잘 나를 부른다. 선장은 풍성한 생선회를 만들어 나를 부른 것이다. 특별한 생선회를 함께 먹겠다는 선장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점심을 들며 선장 가족들과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눈다. 대화가 즐겁다.

   미선이 한없이 매력적으로 비치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미선에게 사귀는 애인이 있느냐고 물어 봤다. 미선의 표정이 돌연 굳어지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한 때는 있었지만 결별한 지 반 년이 넘는다고 했다. 괜한 질문을 던져 마음이 상했으면 이해해 달라고 했다. 미선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괜찮다고 했다.

   점심시간 이후부터 오후 5시까지의 네댓 시간은 나의 자유 시간이다. 자유 시간에 나는 곧잘 사진을 찍곤 한다. 주로 통영 바다가 배경이 되는 풍경 사진이다. 때때로 풍경 사진의 일부에 미선이 끼어들곤 한다. 미선은 나의 자유 시간에 나랑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어떤 때는 서로 애인이 되어도 어울리겠다며 미소를 짓기도 했다. 내가 합격할 때까지는 기다려 주겠다고 말하며 응석을 부리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미선의 매력에 점차 이끌리고 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내겐 희연만큼 내 마음을 끄는 여인은 없다. 희연에 대한 그리움이 뭉클 가슴으로 밀려든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나는 선장의 집을 빠져 나온다. 미선도 볼일이 있다며 시내로 나간다.

   어제 오후에 미선과 해변을 산책할 때였다. 사흘 전에 미선이 나의 자취집을 찾은 경위가 나에겐 궁금했다. 미선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 봤다. 미선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그 날 실의에 빠진 여인의 얘기를 들은 뒤였다. 미선은 그 여인에게 한없이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세월을 초월하여 마치 자신이 중년 여인인 듯 마냥 서글퍼졌다. 아마도 자신의 감성이 너무 섬세했던 탓이었으리라 여겼다. 게다가 미선이 애인과 결별한 상태였다는 점도 중요한 원인으로 여겨졌다. 또한 나와 희연도 견해 차이로 불안한 관계라고 들은 미선이었다. 미선도 술에 취해 40대 여인의 심정을 헤아려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밤을 틈타 열쇠로 문을 열고 나의 자취집에 들어섰다. 집에 들어선 후였다. 미선은 나의 침실 문을 살그머니 열어 보았다. 당시에 나는 피로에 쌓여 숙면에 빠진 것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미선은 거실에서 혼자 술을 마시게 되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중년 여인의 입장을 줄곧 떠올렸다. 술이 어느 정도까지 올라 억눌렀던 야성(野性)이 꿈틀대려고 할 때였다. 미선은 다시 나의 침실 문을 살그머니 열었다. 잠든 내 모습을 들여다보자 본능적인 욕정(欲情)을 느꼈다. 나의 이불자락을 들추며 그녀가 내게 파고들려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내심이 원하는 건 연정(戀情)이지 욕정의 발산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더 술을 마시며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의식이 혼미해질 때까지 취하게 되었다. 미선이 자취집을 다녀간 뒤에 나는 죽도의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인은 여인이 그 이튿날 새벽에 무사히 섬을 떠났다고 들려주었다. 가슴을 짓누르던 불안감이 해소되어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모처럼 갖는 혼자만의 자유를 느끼며 카메라를 챙겨 든다. 소형의 디지털 카메라는 깜찍한 외양에 걸맞게 고성능이다. 어디를 향해 찍어도 선명한 사진을 보여 준다. 오후에 해변으로 찾아오겠다는 희연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녀가 무척 보고 싶다.                                                                      

  해변을 거닐며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든지 눈이 피곤할 지경이다. 사진기의 전원을 끄고 가만히 바다를 바라본다. 재수한 지 11개월만인 올해 1월말에 희연은 임용고사에 합격했다. 반면에 나는 낙방하여 삼수에 들어간 상태다. 이런 입장의 차이도 내겐 커다란 심리적 압박 요인이 된다. 혹여 나를 무능한 사내로 간주하여 헤어질 작정을 하는 건지?

   선장을 도와 오후 5시부터 승선하여 낚시꾼들을 모두 귀항시킨 뒤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 어느새 약속된 오후 7시 무렵이다. 나는 자취집에 들러 차림새를 가다듬고는 해변으로 나간다.

   석양의 해변에는 뱃고동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세월에 하얗게 삭은 백사장만이 드러누워 있다. 광막한 해변에는 모래바람이 자욱이 인다. 길 없는 백사장에 희연이 길을 만들며 서성인다. 그녀를 발견하자 마음이 들떠 그녀를 향해 달려간다.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를 안고는 가쁜 숨을 내쉰다. 둘은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반갑게 미소를 짓는다. 한동안 희연과 함께 해변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눈 뒤다. 문득 희연이 나에게 바싹 다가와 긴장한 표정으로 묻는다.

  “저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관점도 바꿀 수 있잖아요? 마음만 바꾸면 되잖아요?”

  나는 희연에게 나의 입장을 재차 뚜렷이 밝힌다. 할 얘기는 죄다 했다고. 관점의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라고. 이전에 해결하지 못했던 관점의 차이를 재차 확인하는 자리다. 오늘의 만남에서조차 서로의 의견이 조절되지 않으면 헤어질 수밖에는 없다. 적어도 해변에서 대화를 나눈 지는 한 시간이 지난 터다. 어쩌겠는가? 서로의 마음과 취향이 다른 것을.

   나는 작별의 악수를 하려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내가 내민 손을 한동안 바라볼 뿐. 그녀는 손을 내밀지 않는다. 대신 차가운 콧숨을 내쉬더니 급기야 소리 죽여 흐느낀다. 그녀의 흐느낌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진다. 숨을 죽여 가만히 희연의 눈을 들여다본다. 시선과 시선이 만나 허공에서 뒤엉킬 때다. 그녀의 시린 눈물을 보는 순간에 그녀의 양 손을 움켜쥔다. 어느새 나도 눈물이 핑 돌며 콧등이 시큰거린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서슬 퍼런 슬픔이 빛살처럼 치솟는다. 어느새 둘은 서로 얼싸안은 채 얼굴을 비벼댄다. 눈물이 흐를 듯한 정황에서다. 나는 돌연 마음을 하얗게 비우고 싶어진다. 예정된 이별이라면 희연의 슬픔을 달래어서 보내 주고픈 생각이 든다. 나는 애써 희연을 달랜다. 너무 슬퍼하지는 말라고. 거듭 뭐라고 더 달래 주려고 할 찰나다. 너무 격해 목소리마저 나오지 않는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더 이상은 감추지도 못한 채다. 나는 하늘의 선녀를 대하듯 희연을 정성껏 달래어 배웅한다. 눈물을 거두지도 못한 채 희연은 어깨를 들먹이며 백사장을 걸어간다. 백사장을 지나 산등성이를 넘기 직전에서다. 희연이 팔을 들어 올려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한다. 덩달아 나도 팔을 높이 들어 올려 크게 흔든다. 가슴에 구멍이 펑 뚫리는 느낌이 들며 그만 주저앉고만 싶다. 그 찰나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시린 바람이 일며 재차 목이 멘다. 거듭 눈물이 흐를 듯하여 나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본다. 목전에 끝없는 암초 지대(暗礁地帶)가 펼쳐진 느낌이다. 암초 지대를 돌파하려고 비상하는 불사조들의 환영이 의식계에 잠시 잡힌다. 나는 절망에 잠긴 낯빛으로 고개를 흔들며 입술을 깨문다. 애인의 마음 하나도 동화시키지 못하는 처지라니? 나는 신음을 삼키며 중얼댄다. 나에겐 애초부터 날개가 없었을까? 무능한 녀석 같으니라구, 무능한 녀석 같으니라구! 마음이 애달파지면서 한없이 가슴이 저려 온다. 그러다가 고개를 숙이면서 마음을 굳힌다. 나도 선걸음에 짐을 챙겨 통영을 떠나야겠다고. 그리하여 재기(再起)하기 위해 다니던 학원에 계속 나가겠다고. 해변에는 더욱 물안개가 짙게 끼면서 바닷바람이 거세어진다. 왈칵 휘몰리는 해풍에 옷자락마다 파드득거리며 부풀어 오른다.

(200자 원고지 70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