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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떼들의 잔영
손정모
거친 금속성을 토해내며 바닷바람이 연신 암벽으로 달려든다. 귓바퀴까지 얼얼할 정도로 매서운 바람결이다. 희연은 잠시 섬 주변을 둘러본다. 경남 통영시의 한산도 남쪽 해상으로 5km가량 떨어진 해상의 무인도다. 둘레가 10여km에 이르는 무인도인 ‘돌섬’은 온통 솔숲으로 뒤덮여 있다. 해풍이 일 때마다 솔잎은 깃털처럼 부풀어 오른다. 치솟는 솔잎들의 물결에 휩쓸리던 희연의 눈동자에 새벽의 잔상이 밀려든다.
악몽에 허우적거리느라고 진땀을 뺄 때였다. 핸드폰의 신호음이 예리하게 울어댔다. 눈을 뜨지도 못한 채였다. 가까스로 손을 뻗쳐 핸드폰을 귓가에 갖다대었다. 그러자마자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이런 처지에도 잠이 와? 정말 훌륭한 여자로구먼. 날이 밝거든 달라진 세상이 어떤지를 보여 줄게.”
희연에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억해 낼 수 없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목소리에 담긴 음산한 분위기가 가슴을 짓눌렀다. 하지만 의식은 금세 밀려드는 수마에 휘감겨 버리고 말았다.
일행 몰래 텐트를 빠져 나온 희연이다. 낚싯대가 연신 휘청대며 물고기의 입질을 알려준다. 침착한 자세로 낚싯대의 릴을 감아올린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우럭과 감성돔이 낚싯줄에 매달려 요동친다.
희연은 함께 온 일행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다들 희연과 동갑인 32살의 2여인이다. 희연은 잠시 쓴웃음을 짓는다. 다들 만난 지 불과 2개월도 못 된 처지가 아닌가? 그럼에도 함께 여행을 나선 처지가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희연은 어망(魚網)에 갇힌 물고기의 수를 잠시 헤아려 본다. 족히 십여 마리는 되어 보인다. 그 정도면 셋이 매운탕을 끓여 먹어도 충분하리라 여겨진다. 희연은 흘깃 시계를 들여다본다. 막 새벽 5시를 넘어서고 있다. 새벽의 해변을 거닐며 정리되지 못한 상념으로부터 희연은 자유로워지고 싶다. 돌섬의 둘레가 10여km에 이른다는 것을 희연은 미리부터 알고 있다. 여행을 나서기 전에 여행지의 정보는 최대한 알아두는 희연이다. 돌섬 남쪽으로 틘 3km의 백사장 구간. 거기에서만 산책이 자유로운 유일한 지형이다. 그 범위를 벗어나면 수직으로 치솟은 암반 때문에 산책길이 끊긴다. 안간힘을 쓰는 듯한 바닷바람으로부터 희연은 그리운 얼굴을 떠올린다.
영우는 석 달 전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공계 연구소의 책임 연구원이던 38살의 사내. 사내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아직도 희연에게는 믿기지 않았다. 희연은 담배를 꺼내 물고는 연기를 내뿜었다. 3년째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부터 새롭게 익힌 흡연이었다.
국내 최고의 권위를 갖는 대학의 박사 학위 소지자인 사내. 언제나 새로운 연구로 매스컴에서조차 유명세를 떨치던 사내. 그러면서도 언제나 겸손하여 자신을 밝히기를 꺼려하던 사내였다. 그를 알게 된 지도 벌써 3년째에 이르렀다.
사내는 첫 느낌이 이를 데 없이 단아한 용모였다. 취기로 얼굴은 다소 불콰했지만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자세였다. 희연이 노래방 3호실에 들어서자마자 환한 미소로 손을 내밀었다.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얘기를 나누자며 희연을 곁에 앉혔다. 그러면서 내뱉은 첫 마디가 희연에게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제가 왜 노래방을 찾는지 모르시죠?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는 혼자 죽어 가는 존재거든요. 그래서 누구를 막론하고 사람이란 고독한 존재예요. 그 처절한 외로움을 잠시나마 떨쳐 버리려면 노래를 불러야 해요.”
외로움을 들먹이던 영우는 곧바로 지폐를 꺼내 팁으로 내밀었다. 희연은 당연한 듯이 받아들면서도 고마움을 표했다. 그리고는 영우 역시 다른 사내들처럼 자신의 상체를 더듬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영우는 희연의 몸에는 일체 손대지 않았다. 처음에는 영우가 술이 많이 취해서 그러려니 여겼다. 하지만 매달 한 번씩 찾는 영우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었다. 팁을 건네고서도 희연의 노래에만 깊은 관심을 드러냈다.
영우가 성 불구자이기에 노래를 불러 스트레스를 풀려는지도 모르리라 여겨졌다. 헌데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심신이 건강한 사내였었다. 같은 30대여서인지 희연은 영우의 깔끔한 맵시에 이끌렸다. 영우가 세상을 떠나던 날에 희연은 하도 슬퍼서 눈물을 흘렸다.
어디선가 어선의 엔진 소리가 귓전으로 밀려든다. 새벽 바다를 가르며 내닫는 음향에 희연은 포근함을 느낀다. 해변 백사장이 끝나는 발치엔 가파른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갑자기 밀물이 밀려들기라도 한다면? 밀물 못지않게 희연의 가슴에 여운을 남긴 새벽에 들렸던 목소리.
“이런 처지에도 잠이 와? 정말 훌륭한 여자로구먼. 날이 밝거든 달라진 세상이 어떤지를 보여 줄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목소리였다. 게다가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아는 사내의 목소리라니? 희연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는 상대는 신뢰심이 가는 사람들이다. 결코 아무한테나 번호를 알려주지는 않았다. 도우미로서는 손님을 불쾌하게 한 일이 없었다. 희연은 고개를 흔들며 입술을 깨문다. 도우미로 나서기 전의 과거까지 더듬어야 되는 현실이 아팠기 때문이다.
3년 전의 여름철의 일이었다. 그 때도 집중 호우가 전국을 강타할 때였다. 충주댐과 소양강댐의 수문을 열어 엄청난 양의 물을 방류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그 무렵에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연락을 받고 희연이 근무하던 지방의 잡지사로부터 미처 출발하기도 전이었다. 잡지사 주변의 도로와 교량에는 강물이 넘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곧바로 빠져 나가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바로 그 때 희연을 데리러 그녀의 남편이 승용차로 달려왔다. 잡지사 주변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희연의 앞에서였다. 곧바로 달려오던 남편의 승용차를 빗길에 브레이크가 파열된 화물차가 덮쳤다. 화물차에 부딪혀 승용차가 전복되면서 희연의 남편은 숨을 거두었다. 순식간에 발생된 참사였다. 항간에서는 희연의 시아버지가 아들마저 저승길로 데려갔다고 했다. 어쨌든 눈 뜨고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생긴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랬기에 희연의 정신적인 충격은 이를 데 없었다. 그 날 이후로 3살 난 딸애와 홀로서기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랬기에 도우미로 나서기 전에도 희연에게는 적(敵)이 없었다. 그랬음에도 새벽에 귓전으로 밀려들던 사내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협박으로 느껴졌다. 희연은 답답한 마음에 자신도 몰래 고개를 내흔들었다. 마음속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만 집착하게 되는 터였다.
느닷없이 금속이 쾅쾅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희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해변의 백사장 부근의 가건물에서다. 가건물은 함석지붕의 소형 목재 건물이다. 지붕의 귀퉁이가 훼손된 곳에 나무막대가 밧줄에 매달려 있다. 바로 이 건물에서 바튼 기침을 토해내며 노파가 일어서 나온다. 금속성은 함석지붕에 매달린 나무막대가 바람결에 지붕과 부딪혀 나는 소리였다.
노파가 가건물에서 빠져 나온 뒤다. 퀭한 눈빛의 노파가 모래바람을 가르며 느닷없이 희연에게로 다가온다. 노파의 흰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어지럽게 나풀거린다. 노파의 눈빛에는 괴기마저 서린 듯하다. 둘은 백사장의 중간쯤에서 서로 마주 바라보고 선다.
“히히히. 몸매가 잘 빠진 색시구려. 새벽부터 무슨 사연으로 해변을 서성거리냐? 어디 속 시원히 말해 봐. 내 말이 도움을 줄지 모르잖아?”
노파의 나이는 대략 일흔 살가량으로 보인다. 햇빛에 찌든 얼굴이라 실제보다는 나이가 더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하여 희연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노파를 응대한다.
“할머니는 새벽잠도 없으신가 봐요? 언제부터 가건물에서 사셨어요? 분명히 어저께는 할머니를 뵌 기억이 없거든요.”
노파가 토해 놓는 말에는 생기가 넘친다.
“나와 같은 사람도 살아가는 세상이잖아? 색시한테 생긴 걱정거리가 뭐야? 있는 그대로 말해야 내가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
“할머니, 그럼 여기 모래바닥에 둘이 마주 앉아서 얘기해요. 제 얘기가 좀 길더라도 괜찮겠죠?”
노파는 하얗게 샌 머리카락을 바람결에 나부끼며 묵묵히 고개를 끄떡인다. 희연에게는 노파가 어쩌면 도인일지도 모르리라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단지 행색이 지극히 초라하다고 느껴질 뿐. 눈빛이나 거동의 어느 면에서도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노파를 향해 희연의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노파는 시종 희연의 눈을 들여다보며 귀를 기울여 듣는다. 그러다가도 때때로 손에 쥔 숯 막대기로 백사장을 때리기도 한다. 노파의 입에서도 수시로 한숨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희연에게는 새로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상태다. 학력이 중졸이다 보니 마음에 맞는 일자리마저 쉽지 않다. 파출부나 간병인도 신경이 쓰여서 아무나 못 할 분야라고 여겨진다. 얼굴이 반반하고 목청이 깔끔한 그녀에게는 노래방 도우미가 적격으로 생각된다. 올해 서른두 살의 그녀. 세월은 흘러가게 마련이다. 남자 손님들은 나이 든 여자는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젊은 도우미를 찾으려고 할 뿐이다. 그런 추세에 희연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본다. 언제까지나 노래방 도우미로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딱 10년간만 노력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 동안 돈을 벌어서 구멍가게라도 차려 노후를 대비할 작정이다. 그녀는 지난 1년간의 생활을 더듬어 본다. 하루 동안의 평균 벌이가 대략 20만원 정도다. 시간당의 고정 팁 2만원 말고도 2만원 정도는 더 받는다. 하루 평균 5시간은 손님과 함께 노래를 하게 된다. 의상비와 화장품 비용과 교통비를 공제한 순 소득을 따져 본다. 월 평균 450만 원가량이 된다.
2주 전이었다. 희연은 다른 젊은 도우미들의 소득 상황을 듣고는 충격을 받았다. 20대 중반의 속살이 야들야들한 도우미들의 얘기였다. 그녀들은 마음에 드는 단골을 정한다고 했다. 단골에게는 섹스까지 흔쾌히 제공하는 터였다. 단골의 숫자에 따라 월 소득이 달라진다는 거였다. 직업이 공무원 계통일수록 성병 감염률이 낮아 좋은 고객이라는 터였다. 상대가 당당히 신분을 밝히고 신분이 확인되면 고객으로 유도하려고 애썼다. 섹스를 하고 분위기를 띄워 주면 팁의 액수가 달라진다고 했다. 미모의 젊은 도우미들의 월 평균 소득은 2,000만원에 이르기도 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에 희연은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20년간을 번다고 생각했을 때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희연 자신도 뭔가 새로운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작정했다. 그래서 새로운 분위기 마련을 위해 남도로 여행을 나선 거였다.
노파는 희연의 얘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 듣더니 고개를 내젓는다. 그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언할 뿐이다.
“욕망이 지나치면 그 자체가 무덤을 파는 일이라구. 그렇게 돈을 모아서 뭣에 쓸 거야? 세상의 일은 찰나간의 환상일 따름인데 너무 집착하지 말았으면 해. 내가 더 이상 들려줄 말은 없네. 나는 집이나 점검하겠네. 잘 가요, 색시.”
희연은 잠시 고개를 뒤흔든다. 그런데 정작 노파의 신상 얘기를 듣지 못한 걸 깨닫는다. 노파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노파는 벌써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노파를 향해 손을 흔들어 준 뒤다. 희연은 백사장을 따라 해변을 산책하며 생각에 잠긴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딸애인 3살짜리 은정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애가 자라면 양육비와 학비가 엄청나게 들 것이다. 그 때를 대비하여 이를 악물고 돈을 벌어야만 할 상황이다.
희연은 생각에 잠긴다. 자신에게도 성교를 하자고 덤벼드는 사내들이 셋이나 있다. 36살의 카센터 사장과 42살의 격투기 도장의 관장.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있다. 38살의 대그룹 부장이 있다. 한결같이 사내들은 체격이 크고 얼굴이 잘 생긴 사람들이다. 또한 빠뜨릴 수 없이 중요한 것은 나긋나긋한 심성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상대를 배려해 주는 친절한 마음을 가졌는지 놀랍다.
“세월이 더 이상 흘러가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지. 내가 살아갈 길은 이것밖에는 없고 내 마음에도 드는 일이잖아? 그렇다면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아랫도리를 열어 주어야지. 당장 마음이 좀 신산스럽다고 해도 참고 견뎌야겠지.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으면 마땅히 최선을 다해야겠지?”
“희연아! 희연아!!”
“최희연!”
희연이 고개를 돌려보니 여행에 동참한 여인들이 백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손을 머리 위로 세워서 크게 흔들어대며 희연을 부르고 있다. 텐트에서 이제야 일어난 모양이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6시 반이다. 날이 밝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성큼 흘렀던 모양이다. 희연도 동행인인 그녀들을 향해 팔을 흔든다.
이윽고 희연과 2여인들이 백사장에서 만난다. 서서히 안개더미가 바다로 밀려가고 있다. 동쪽 수평선 위로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흩날리고 있다. 백사장의 변두리에 원호로 배열되어 벌려선 키 큰 동백나무의 군락들. 하나같이 10여 미터의 높이로 치솟아 성곽처럼 줄지어 서 있다. 나무의 둘레가 세 뼘쯤 되는 동백나무 고목 위에서다. 바람결에 떠밀려 매달린 검정 비닐봉지가 나뭇가지에 걸려 버둥댄다. 비닐봉지가 바람결에서 벗어나려고 해 보지만 나뭇가지가 놓아 주지를 않는다. 그리하여 연신 날카로운 음향을 토해 내며 울부짖고만 있다.
희연은 비닐봉지의 신세가 어쩜 자신과도 닮지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불안감에서 헤어나려고 몸부림쳐 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이 아닌가?
“희연아, 무슨 생각에 그리 골똘히 잠겨 있니? 네 눈엔 아예 우리들이 안 뵈는 모양이구나. 그렇지?”
티켓 레지인 연주가 희연을 향해 장난스레 말문을 연다. 상아 빛깔의 반바지에 연보라 색 민소매 티를 걸친 연주다. 홈이 깊게 팬 민소매 티를 거쳐 돌출된 젖가슴이 내비친다. 움직일 때마다 젖가슴이 흔들거린다. 탄력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정경에 희연도 감탄할 지경이다.
희연이 막 뭐라고 응답하려고 할 때다. 이번에는 퇴폐 이발소의 여성 면도사인 윤지가 말을 거든다.
“설마 새벽부터 발정 난 건 아니겠지? 혹시 암내를 풍겨 사내들을 불러들이려는 건 아냐?”
희연이 곧바로 응답한다.
“얘들이 왜 아침부터 진한 농담이람? 혹시 너희들이야말로 발가벗겨지고 싶니? 내가 홀랑 벗겨 줘?”
세 여인들은 한동안 깔깔거리며 서로를 바라보다가 그녀들의 텐트로 되돌아선다.
텐트 내에서 밥과 우럭 매운탕과 아침 식사를 끝낸 뒤다. 여인들은 한결같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연주가 커피를 탄다. 커피 향이 후각을 자극하여 침이 넘어갈 정도다. 이윽고 커피를 입술에 대자마자 감미로움에 전신이 떨릴 지경이다. 윤지가 참지 못해 탄성을 내지른다. 역시 티켓 레지의 커피 솜씨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담배를 피우면서 희연은 카 센터의 사장인 은호를 떠올린다. 은호가 노래방을 찾을 때는 언제나 술에 많이 취한 상태다. 은호는 마이크를 잡기에 앞서서 지폐 두어 장의 팁을 내민다. 그리고는 곧바로 희연의 전신을 황홀하게 애무해댄다. 그런 은호가 모텔에서의 섹스에 응해 주겠느냐고 희연에게 물었다. 희연은 빙긋이 웃어넘기고만 말았다. 은호는 부쩍 2개월 전부터는 노골적으로 섹스 타령을 해대었다. 수표 2장을 줄 테니 함께 어우러질 수 없느냐고 채근이다. 희연에게 은호는 마음에 들지만 성병 감염이 무서운 터다.
면도사인 윤지가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말한다.
“산다는 게 뭘까? 성병 걱정만 없어도 이렇게 살아도 괜찮겠는데 성병이 문제야. 특히 에이즈에 감염되는 순간에는 그 날이 바로 끝장이잖아?”
희연과 연주도 동감이라는 듯 눈을 내리감고는 생각에 잠긴다. 성경험이 가장 풍부한 윤지가 경험담을 털어 놓는다. 희연과 연주는 어느새 청중이 되어 윤지의 경험담에 귀를 기울인다.
윤지에 의하면 사내들은 콘돔을 착용하기를 싫어한다는 거였다. 콘돔을 착용할 바에야 왜 여자를 찾겠느냐는 거였다. 윤지는 매독에도 감염되어 혼났다고 한다. 사내들이 설사 성병 환자라 할지라도 겉으로는 식별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남자들과의 성교는 불안 체험의 연속이라고 했다. 남자들을 상대하다가 피부과와 비뇨기과도 수시로 들락거리게 되었다. 임질, 매독, 연성하감 등의 성병의 지식도 늘어만 갔다. 치료 중인데도 성교를 원하는 남정네들과는 어울려야만 했다. 남정네들이야 성병이 감염되는 줄도 모르고 희희낙락한 표정들이곤 했다.
연주도 비슷한 정황을 얘기했다. 티켓 다방이라는 데에 근무하는 레지들이 티켓 레지였다. 외부 손님으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따끈한 차를 들고 간다는 거였다. 상대의 직업 여하를 불문하고 상대를 만나면 옷을 벗는다고 했다. 그리고는 상대의 욕구를 잘 만족시켜야 했다. 그래야 티켓 다방의 마담으로부터 신뢰받을 수가 있다. 마담으로부터의 신뢰는 곧바로 개인 소득과 직결되는 터였다. 여자로서는 남자가 콘돔을 착용하길 간절히 바라는 터였다. 하지만 남자가 거부하면 어쩔 수가 없었다. 연주도 임질에 감염되어 치료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희연은 윤지와 연주의 얘기를 듣고는 더욱 갈등이 커진다. 소득을 위해 몸을 연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는 터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하루 빨리 자립하기가 어렵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희연 자신이 성병에 걸려 사망할 경우를 생각해 본다. 자신이 죽는다면 우주에 무슨 의미가 남을 것인가? 생각할수록 세상 일이 부질없게만 여겨질 따름이다.
바다에 뱃고동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오후 1시 무렵에 이르렀다. 여인들은 낚싯대를 챙겨 들고는 갯바위를 찾아 나선다. 여인들은 적어도 10여 미터씩은 떨어져 자리를 잡는다. 서로에 의해 낚싯줄이 뒤엉키는 걸 막기 위해서다. 릴이 장착된 낚싯대를 들고서도 희연은 금세 생각에 잠긴다. 자꾸만 떠오르는 상념의 물결에 휩쓸려 희연은 한숨을 내쉰다. 왜 남자들은 콘돔을 그리도 싫어하는 걸까? 남자들이 위험 부담을 안고서도 여인들을 껴안는 심리가 난해하기만 하다.
희연이 생각에 잠긴 동안 낚싯줄에 감응이 온다. 뭔가 낚싯줄을 강하게 채는 느낌이 실려 온다. 두 번씩이나 강하게 전달되어 온다. 적어도 2마리는 물렸으리라 여겨진다. 그 이전에 못 느낀 것도 있을 테니까. 릴의 손잡이를 침착하게 감기 시작한다. 점차 수면 가까이로 허연 형체의 물고기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기를 직접 잡아 건져 올리는 데서 느끼는 쾌감. 바로 이런 맛으로 낚시를 하지 않겠느냐고 희연은 자위해 본다. 20cm가량의 볼락 2마리가 잡혀 올라왔다. 굼틀대는 물고기의 입을 벌려 낚싯바늘을 꺼낸다. 그런 다음에 물고기를 어망으로 옮겨 물에 담가 둔다. 낚시가 끝날 때까지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포플러나무로 제작된 갯지렁이 보관함을 열고 갯지렁이 4마리를 꺼낸다. 다리가 수없이 달린 갯지렁이가 귀엽게 느껴진다. 회충을 닮은 민물 지렁이와는 다르기 때문에 혐오감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신체 내에서 꼬물거리며 단물을 빨아내는 회충은 생각하기조차 끔찍스럽다.
희연이 볼락을 잡아 올릴 때 연주와 윤지도 환호성을 터뜨린다. 그녀들도 물고기를 움켜쥐고는 희희낙락한 표정이다. 그녀들의 손에 들린 건 노래미와 보리멸이다. 심심치 않게 물고기가 낚이는 맛에 여인들은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한 시간가량을 낚시질한 뒤다. 여인들은 암벽을 내려서서는 백사장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희연은 잠시 딸애인 은정을 떠올린다. 이웃 아파트에 사는 언니에게 잠시 맡겨 둔 상태다. 누구한테든 얼굴을 가리지 않고 사교성이 좋은 은정이다. 그래서 이모를 유달리 잘 따르는 아이다. 주거지인 서울로 되돌아가면 맛있는 물고기를 듬뿍 구워 먹일 작정이다.
희연은 텐트 주위에서 물고기 매운탕을 끓인다. 연주는 쌀을 씻어 밥을 짓는다. 휴대용 가스 레인지의 불길이 금세 살아 치솟는다. 윤지는 반찬 그릇을 꺼내 반석 위에 반찬을 진열한다. 바다는 말할 수 없이 청정하다. 하늘은 너무 맑아 태양열로 살갗이 델 정도다. 무인도여서인지 하루 종일 있어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다. 음식만 충분하다면 평생 눌러 살아도 즐거우리라 여겨진다.
윤지가 반석을 물로 부어 씻어내며 말한다.
“어쩜 바위틈에서 식수도 저렇게 풍부하게 나오는지 모르겠네. 아마 이전에는 여기에도 사람들이 살았을 거야. 이 좋은 환경을 두고 누군들 그냥 지나쳤겠니?”
윤지의 말에 희연과 연주도 고개를 끄떡인다. 고기도 잘 잡히며 식수도 잘 나오지 않는가? 이런 섬이 무인도라니 여인들에겐 쉽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설거지마저 끝낸 뒤다. 연주가 일행에게 제안한다.
“우리가 섬에 머문 지 벌써 사흘째가 되었잖아? 그런데도 우리는 돌섬의 윤곽조차 모르잖아? 로빈슨 크루소처럼 식후에는 섬을 둘러보는 건 어떨까? 혹시 여자들만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식인종은 없는지도 알아봐야겠지?”
윤지가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대꾸한다.
“우와, 갑자기 오금이 저리네. 여자만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식인종이라? 섬의 산에 올랐다가 식인종을 만나면 누가 먼저 생명을 내놓겠니? 내가 먼저 죽고 싶지는 않거든.”
희연이 시원스런 목소리로 응답한다.
“걱정 마. 그처럼 여자를 밝히는 식인종이라면 내가 먼저 생명을 주고 싶어. 잡아먹힐 때의 오르가즘이 어느 정도나 될지 그걸 맛보고 싶어. 흥분하여 오줌을 질금거리느라고 팬티에 구멍이 뚫리지는 않겠지?”
윤지와 연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깔깔거린다. 여인들은 이내 등산복 차림새로 섬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구급약과 지팡이까지 휴대한 상태다. 지팡이는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독사를 피하려는 수단이다. 섬의 산은 높지는 않지만 경사가 가파른 지형이다. 여인들은 천천히 산을 오른다. 배낭에는 다들 식수를 준비한 상태다. 해발고도가 200여 미터가량이 되는 섬의 정상에 올랐을 때다. 여인들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에 취해 환호성을 터뜨렸다. 청정한 푸른빛으로 남실대는 바다로 둘러싸인 돌섬. 돌섬 주변으로는 숱한 무인도들이 바다에 떠서 물결에 남실대고 있다. 여인들에게는 정녕 돌섬의 풍광이 선경은 아닌지 착각이 들 지경이다.
섬은 남쪽을 향해 ㄷ자 형으로 열린 지형을 갖추고 있다. ㄷ자 안의 만을 따라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여인들이 텐트를 친 곳은 바로 거기다. 정체불명의 노파가 사는 가건물이 있는 곳도 백사장이다. 여인들은 은밀히 노파의 행동을 조심스레 지켜보고 있다. 돌발 사고에 대처하려는 마음가짐 때문이다. 들뜬 가슴으로 여인들은 산을 조심스레 오른다. 산의 여기저기를 꼼꼼히 둘러보려니 꽤나 시간이 흘렀다.
오후 4시 무렵이었으리라. 섬의 경치를 둘러보고 내려온 여인들이 막 백사장에 도착했을 때였다. ㄷ자로 파인 만(灣)으로 어선 한 척이 들어섰다. 배에는 선장을 포함한 낯선 사내 둘만이 보였다. 선장이 배를 만에 정박시킨 뒤였다. 40대 초반의 행색이 초라한 한 사내가 백사장으로 달려들었다. 한여름에 어울리는 흰색 면티와 검정색 면바지 차림새였다. 그러면서 여인들 중의 희연을 향해 달려들었다. 희연의 앞에 다가설 무렵이었다. 3여인들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한 걸음씩 물러섰다. 그러면서 여인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질렀다.
“함부로 다가오지 마세요!”
여인들의 기세에 주눅이 든 듯. 사내는 잠시 우뚝 섰다. 그것도 잠깐일 뿐. 사내는 느닷없이 괴성을 질러대며 희연에게 달려들었다. 희연에게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내가 낯설기만 했다. 그래서 희연은 사내를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을 대비해 쇠 지팡이를 단단히 움켜쥐고 사내를 노려보았다.
“이봐요, 아저씨. 다가오지 말고 거기에 서세요. 제발 거기 좀 서세요. 저를 안다면 제가 누구인지 말해 봐요. 아무래도 저는 아저씨가 초면이거든요.”
사내는 눈을 휘둥그레 치뜨고는 품속에서 사진을 꺼내 희연에게 내밀었다. 희연은 찰나간에 깜짝 놀랐다. 사내가 내민 사진의 얼굴 주인은 그녀 자신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착한 표정으로 사내의 사진을 건네받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희연을 흡사하게 닮은 다른 여인이었다. 덤벼들 듯 기승을 부리던 사내의 기세가 급격히 수그러져 버렸다. 수그러진 정도를 넘어 탈진한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사내는 풀죽은 목소리로 희연을 찾은 경위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희연을 닮은 여인의 이름은 미영이었다. 미영과 사내는 중국 연변 자치구의 주민이었다. 생활이 어려워 둘은 따로 서울에 와서 체류하게 되었다. 사내는 구로 공단의 공원으로 여자는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게 되었다. 사내와 미영이 알게 된 지는 불과 석 달째였다. 그것도 서울에 체류한 뒤의 일이었다. 그 이전에는 둘이 전혀 알지 못하던 사이였다.
생활이 고달픈 사내가 애환을 해소하기에는 노래방이 적격이었다. 남구로 전철역 주변의 노래방에서는 연변풍이나 중국 가요가 인기를 끌었다. 남구로 전철역 주변에는 화교들과 연변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어느 날 사내가 도우미를 불렀다. 그 때 사내를 환상적으로 감동시킨 여인이 미영이었다. 서로 비슷한 나이의 독신자들이라 둘은 쉽게 어울렸다. 그러다가 사내는 급여 통장까지 미영에게 맡기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느닷없이 한 달 전에 미영이 자취를 감춘 거였다. 서울의 노래방이란 노래방은 다 뒤졌어도 미영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심정으로 사내는 흥신소에다가 미영의 사진을 맡겼다. 그리고는 어디에서건 반드시 미영을 찾아 달라고 흥신소 직원에게 부탁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야 연락을 받게 되었다. 사진과 얼굴이 너무나 흡사한 여인의 행적을 파악했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희연의 행선지와 핸드폰 번호까지 알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말을 마친 뒤에 사내는 땅바닥에 넋 나간 모습으로 주저앉았다. 어느새 눈시울 가득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렸다. 사내가 흘리는 눈물을 대하자 여인들은 고개를 돌렸다. 너무 애틋한 느낌이 들어 차마 바라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고만 있던 사내가 급기야 통곡을 해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한동안 설움을 추스르지 못해 울고 난 뒤였다. 기운 빠진 목소리로 여인들에게 정중한 자세로 사과했다. 그리고는 탈진한 표정으로 돌아서 걸어갔다. 그리고는 타고 온 발동선으로 돌섬을 떠나고 말았다. 사내를 바라보는 희연의 심정은 이를 데 없이 착잡하기만 했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 사방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한다. 휩쓸리는 해풍에 휘감겨 저녁 안개가 파랗게 굽이친다. 희연은 사내의 손에 들렸던 사진의 영상에 마음이 흔들린다. 그녀가 봐도 자신을 너무나 닮은 여인의 모습이다. 희연의 눈에도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했을 정도다. 한동안 광분하다가 이성을 되찾아 떠나는 연변족의 사내가 안타깝기만 하다. 하필이면 미영이란 여인이 자신을 빼닮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나이나 외모로 봐도 누구든 착각할 지경이 아닌가? 그랬기에 희연의 가슴은 더욱 애잔하기만 하다.
창졸간의 일이다. 희연에게 안개로 암벽 지대에 머리를 부딪고 죽어가는 새떼들이 연상되었다. 앞으로 날아나가야 할 판에 느닷없이 나타난 암벽 지대. 비행 속도를 조절하기엔 너무 늦은 시각임에랴? 비행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채 수없이 절벽에 충돌하는 새떼들. 차례차례 이마가 갈라지면서 피를 쏟아내는 새떼들의 환영이 희연에게 떠올랐다. 희연은 끔찍한 느낌에 자신도 몰래 고개를 내젓는다.
희연은 잠시 생각해 본다. 연변의 사내와 미영과 희연은 어쩌면 새떼일 수도 있으리라고.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현실 자체가 암벽 지대는 아닐는지? 언젠가는 안개더미에 휩쓸리다가 암벽에 부딪혀 목숨을 잃고 말 새떼들. 희연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 끓어 치솟는 슬픔을 느낀다. 덩달아 희연의 눈시울에서는 어느새 뽀얀 안개가 피어오른다. 마음만 열렸다면 미영이 아니어도 사내를 안아줄 수도 있었으리라 회상한다. 생각할수록 희연의 가슴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느낌이다. 이대로 살다가는 무슨 큰일을 저지를 것 같기만 하다. 언젠가는 안개로 인해 암벽에 부딪힐 운명을 새떼들이 가졌다면? 돌출하는 안개가 세상사에 비유된다면 암벽 지대는 현실이 아닐까도 싶다. 사내의 고민에 보다 귀를 기울이지 못한 자신이 한스럽게 느껴진다.
터질 듯한 가슴을 억제하지 못한 탓일까? 바닷바람에 휩쓸리는 안개더미에 취해 희연이 느닷없이 허청댄다. 불현듯 희연의 귓전으로 연변의 사내가 흘린 눈물방울이 되살아난다. 완전히 탈진되어 냉동 인간이 되기 직전의 눈물이었다. 그 한숨을 떠올린 순간이다. 희연의 뇌리로 섬광처럼 어떤 상념이 자리 잡는다. 그녀의 육체를 갈망하는 사내가 그녀의 영혼까지 사랑한다면? 이런 경우엔 굳이 콘돔에 연연할 필요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그녀의 영혼을 사랑하는 사내라면 성병을 감염시키지는 않으리라고 그녀에게는 여겨진다. 희연은 거듭 생각한다. 극단적인 생명 연장의 수단이라 할지라도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할지라도 나름대로 마음을 순화시켜야겠다고 작정한다. 성병을 경계하기는 하되 마음을 정화해야겠다고 작정한다. 마음의 정화가 육신의 질병보다 우선됨을 깨닫는다. 비로소 남해 고도에까지 온 보람을 느낀다. 마음의 정화라는 확실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여 황홀해진 어떤 순간이다. 희연은 돌연 괴성을 내지르며 백사장에서 바닷물로 내달린다. 연주와 윤지는 일순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러면서 잠시 희연의 안색을 살핀다. 연주와 윤지는 희연의 밝게 상기된 표정을 확인한다. 이내 연주와 윤지는 은밀한 눈빛을 교환한다. 그러더니 연주와 윤지도 일제히 고함을 내지르며 희연을 쫓아간다. 3여인들의 움직임에서 커다란 생동감이 느껴진다. 생동감과 어우러진 환희마저 내비치는 느낌이다. 안개더미에 휩쓸려 내달리는 여인들의 모습이 흡사 새떼를 닮은 듯도 하다.
(200자 원고지 90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