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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색 갈매기 날다 손 정 모
6. 미사일 발사
세월이 성큼 흘러 10월 초순에 이르렀다. 유전공학에 있어서 S대의 연구는 국가적 관심사다. 유전공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려는 측면이기도 했으리라. S대는 지난 8월 12일에 의생명공학 연구동의 착공에 들어갔다. 2006년 10월에 완공 예정인 시설물은 지하 2층, 지상 5층의 건물이라고 보도됐다. 유전공학에 대한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의 결과였다. 그 동안 유전공학에 관련된 논문들은 꾸준히 발표되었다. 세계적으로는 영국의 ‘Nature(자연)지’와 미국의 ‘Science(과학)지’가 논문 발표의 유명한 창구다. 국내의 학술지로는 대한화학회지와 의학회지, 생화학회지 등의 학술지가 그 역할을 맡는다. 국내 학술지의 대다수는 영문 판으로 인쇄되어 세계의 대학 도서관으로도 매달 발송된다. 이른바 학술 논문의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이다.
2005년에 접어들어 현준은 심 교수와 공동 이름으로 2편의 논문을 Science지에 발표했다. 논문이 발표되자마자 세계 각국으로부터의 질문이 현준의 전자 메일로 접수되었다. 현준은 꼼꼼히 답장을 작성하여 심 교수의 동의를 거쳐 질문자들에게 전송하곤 했다. 이들 논문을 통해 현준은 우주관마저 바뀌게 되었다. 참으로 생명체는 오묘한 단위임을 통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는 다른 대학과도 꾸준히 토론해 온다. 춘천 F대학의 고혁진과도 서울 J대학의 성소연과도 부단히 교류를 지속한다. 한편 서울 D대학의 T교수와 은정의 소식은 3개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단절된 상태다. 세상에서는 납치범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리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문은 소문일 뿐. 그 누구도 실종자들에 대한 소식을 안다는 사람은 없다.
10월 초순이 되자 관악산 기슭의 곳곳에서는 단풍의 색조가 남실대기 시작한다. 긴긴 여름날부터 햇살을 받아온 결과가 나뭇잎마다 태깔 곱게 나타나는 것이리라. 잎사귀마다 물결치는 색조를 바라보는 순간. 현준에겐 유전공학에 미래를 거는 국가의 지원 정책이 떠오른다. 근래에 들어서 과학에 대한 자긍심이 배가되는 기분이다. 햇살에 의해 나날이 축적된 카로틴과 크산토필의 색채 변화가 단풍을 이루듯. 유전공학에 대한 세계적인 탐구 열풍이 커다란 결실을 빚으리라 예상된다. 덩달아 현준의 마음도 벅차오르는 느낌이다. 근래에도 심 교수는 토요일마다 제자들을 데리고 관악산을 오르곤 한다.
스승인 심 교수가 제자들에게 입을 연다.
“혹시 너희들한테 토요일마다 산행을 하는 게 싫은 건 아닌지 모르겠군. 싫다는 사람이 있으면 다른 걸로 조절할 수도 있으니까 자유로이 말해 봐.”
신장이 190cm로 제자들 중에선 제일 큰 호준이 응답한다.
“선생님! 혹시 술값이 모자라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 아니죠? 토요일마다 관악에 올라 세상을 관조하는 기분마저 들거든요. 선생님의 동양 철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저희들은 언제나 황홀한 기분이 듭니다. 어떤 위기 상황마저도 한 번 해 볼 만한 일이라고 여겨지거든요.”
비쩍 마른 체격의 인태도 의견을 말한다. 매주 아늑한 산행의 시간마저 없다면 질식할지도 모른다고. 말이 학문 연구의 수련장이지 살벌한 지식의 전쟁터가 대학원이 아니냐고 덧붙인다. 그러면서 자신의 말이 심한 건 아닌지 주위의 눈치를 흘끔 살핀다. 심 교수가 싱긋이 웃자 주변의 일행도 껄껄거린다. 165cm의 작은 키에 근육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의 준영도 입을 연다. 관악과 스승과 제자들의 조화로움을 산행을 통해 느낀다고 들려준다. 캠퍼스 내의 다른 학생들마저 사제간의 산행을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더라고 말한다. 중키에 귀티 나는 얼굴형을 지닌 운석도 말을 거든다. 제자들이 유년 시절부터 심 교수를 만나게 되었다면 다들 선비의 풍모를 갖추었을 거라고. 물론 지금도 선비의 아취를 본받으려 노력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심 교수가 운석을 향해 말한다. 운석의 말이 심 교수를 너무 띄우는 것이 아니냐고. 그러면서 곱게 봐 주어서 고맙다며 싱긋이 웃는다.
불시에 떠오른 어떤 생각에 현준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 순간. 심 교수가 현준을 향해 껄껄대며 말한다. 다른 애들은 뭐라고 논평을 했는데 현준만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어디 불만이라도 있느냐고 묻는다. 현준은 일행의 얼굴을 둘러본 뒤에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세월이 훌쩍 흘러 심 교수가 할아버지가 될 때를 생각해 봤다고. 그 때 제자들이 할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릴 방법을 찾았다고 말한다. 심 교수가 현준의 말을 듣더니 무릎을 탁 치며 묻는다. 그것은 참으로 반가운 얘기로 들린다고. 할아버지를 어떻게 기쁘게 해 주려는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현준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두어 번 긁적이더니 대답한다. 세상의 할아버지들한테는 손자?손녀만큼 아름다운 존재가 없지 않느냐고? 나중에 제자들의 손자?손녀를 부대로 편성하여 할아버지한테 안겨 드리고 싶다고 들려준다. 현준의 말을 듣자마자 심 교수는 배를 쥐며 껄껄거리더니 말한다.
“눈물나게 고마운 얘기이군. 예끼, 이 사람아! 양육비 좀 아끼려고 돈도 없는 할아버지한테 손자들을 다 맡기려고? 그리고 자네들은 아내들 데리고 놀러나 다니려는 심보지?”
심 교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제자들은 허리를 굽혀 깔깔거린다.
10월 초닷새 날이다. 현준에게 모처럼 수업이 없는 수요일이다. 거의 매일이다시피 수업과 연구로 분주하던 시간들. 격류가 평평한 물줄기로 변한 듯. 현준에겐 마음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기도 하다. 하지만, 같은 S대에서도 수의학과와 같은 다른 학과와도 연구 실적을 따져 경쟁해야 한다. 이런 관계로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긴장 상태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향상을 위한 도약이길 바라면서 현준은 연구의 열정을 가다듬는다.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며 현준이 실험일지를 작성하고 있을 때다. 핸드폰이 울어댄다. 폴더를 열어 귀에 대자 혁진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요즘 잘 지내? 석회동굴이 무너진 지 석 달째인데도 선영의 얼굴은 캠퍼스에 아예 안 보이네. 혹시 보이면 구슬려 경찰에 자수를 시킬까 했는데 영 안 보여. 아마 외국으로 달아나지 않았다면 현 순간에도 정보를 입수하여 미국으로 내보낼 거야. 어쨌든 청화와 선영은 꽤 삼삼하게 생긴 미인들이었는데 못 보게 되니 서운한 느낌이야.”
현준에겐 혁진의 목소리가 무척 반갑게 느껴진다. 춘천에 대한 소식을 곧바로 접할 수 있는 소식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뜸했던 소식들이 현준의 귓전으로 물결처럼 흘러든다. 혁진의 말에 따르면 당국에선 단서를 찾아내려고 무너진 동굴이나마 발굴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너진 동굴의 영역이 엄청나게 컸다는 평가다. 막대한 경비 때문에 한때는 발굴에 반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고 한다. 갈등 끝에 겨우 발굴은 했지만 T교수와 은정의 종적은 묘연했다고 한다. 더 이상 탐색할 만한 단서를 못 찾았다는 얘기다.
혁진의 말을 듣는 순간. 현준은 또다시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낀다. 동굴이 무너지던 그 날. 곧바로 경찰에만 신고했더라도 T교수와 은정은 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미는 일이기도 하다. T교수와 은정의 생사가 명확하지 않기에 겪는 현준의 마음고생은 극심하다. 어떨 때엔 꿈에서조차 돌에 깔려 정신이상자가 된 은정을 만나곤 한다. 두개골이 빠개져 뇌수를 흘리며 저주를 퍼붓는 T교수의 환영에 시달릴 때도 부지기수다. 악몽으로 시달리다 꿈에서 깨는 날이면 실종자들을 위해 합장하여 기도하곤 한다. 편견에서 벗어나려고 종교를 갖지 않는 현준이다. 하지만 실종자들을 위해선 대자연에게라도 기도하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이다. 삶을 영위하면서 실수라곤 거의 없던 현준이다. 이런 현준에게 실종자의 발생은 중대한 실수라고 여겨진다. 그리하여, 현준의 잠재의식 속에는 실종자의 잔영이 명멸한다. 연구를 하다가도 실종자가 생각나면 그만 침울해지는 현준이다.
현준의 상념을 깨뜨리며 핸드폰이 울어댄다. 혁진으로부터의 전화다. 시간이 나면 바람이나 쐬자고 혁진이 전화로 제안한다. 현준은 실험 일정도 바빴지만 춘천까지 일부러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적당히 대답을 둘러대고 만다. 막 혁진의 전화를 받고 난 뒤다. 용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핸드폰을 귀에 대니 맑은 목소리가 흘러든다.
“연구는 잘 돼 가? 너만큼 연구에 있어서 열정적인 사람도 드물 테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믿어. 내일 시간 나냐? 네게 보여줄 게 있어.”
현준은 기쁜 음색으로 응답한다. 보여준다는 게 뭔지 궁금하다고 들려준다. 그랬더니 용수의 흔쾌한 목소리가 현준의 귓전으로 밀려든다.
“그래? 그렇다면 잘 됐네. 내일 새벽 5시에 너희 집 앞에서 날 기다려. 승용차로 널 태우러 갈게.”
현준은 흔쾌히 응답한다. 그럼 내일 만나자고. 오랜만에 용수를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렌다. 언제나 선의의 경쟁 상대로서 서로를 격려해 주는 친구. 삶에 있어서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현준은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현준은 선의의 경쟁 상대인 용수를 떠올리며 실험일지를 꼼꼼히 정리한다. 현준에게도 축적된 결과는 적지 않은 편이다. 지난 3월 이후부터 9월 말까지의 연구로 간과 지라의 분화과정을 확연히 정립했다. 5대 장기 중의 간과 지라에 대한 연구는 국제적으로도 놀라운 성과였다. 종래에는 손상된 간에 줄기세포만 넣어 손상된 세포를 재생시키려 했다. 문제는 줄기세포를 넣어 준다고 하여 반드시 손상된 세포가 재생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에 연구의 쟁점이 실린 터다. 마침내 현준이 힘든 노력을 통해 간과 지라로 분화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한 거다. 기다란 DNA 사슬 중에서 어느 부위의 유전자가 분화과정을 조절하는지를 밝혀낸 거다.
심 교수는 연구된 2개의 분화과정에 대해선 보안을 유지하라고 현준에게 당부했다. 현준은 심 교수의 지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밝혀진 2개의 분화과정에 관한 한 심 교수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비밀에 붙이기로 했다.
이제 현준은 허파, 콩팥, 심장의 분화과정에 대한 연구에 돌입한 상태다. 가속화된 분화과정의 연구는 유사한 패턴에 의한 소담스런 결과를 안겨 줄 것이리라. 불과 몇 개월만에 현준의 국제적 위상이 달라진 상태다. 그럴수록 현준은 누구를 대하더라도 항시 겸손한 자세로 임한다. 실력 있는 자는 겸손할지라도 주변인들을 떨게 만드는 법이다. 이게 바로 겸손의 미학으로 통하는 것이리라. 그렇지만 여전히 남은 과제는 많은 상태다. 재현성 있는 핵 치환 방법의 터득이 커다란 과제다. 다음으로는 줄기세포로부터 장기로의 자동화 분화 방식을 정립하는 등의 과제다.
용수와는 평소에도 전화 통화가 빈번한 상태다. 평소의 통화 내용으로 미루어 용수도 적지 않은 연구 성과를 지닌 모양이다. 용수가 맡은 분야는 국지전이 벌어질 경우 초기에 상대를 초토화시키는 일이다. 초토화시키는 방법은 전자 유도장치를 이용하여 명중률을 절대 수준으로 높이는 거다. 특히 사정거리가 먼 탄도탄에도 정밀 유도장치를 달아 명중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다. 만약 용수의 뜻대로만 되면 아무리 군사 강국이어도 초기에 진압할 수 있게 된다.
현준에겐 용수의 연구는 한국을 세계의 군사 강국으로 부상시키리라 생각된다. 용수가 역점을 기울이는 분야는 고성능의 유도탄의 개발이다. 적은 비용으로 명중률 높은 유도탄을 만들려는 거다. 명중률 높은 유도탄을 만들려면 탄두에 인간의 두뇌에 해당하는 탐색기를 달아야 한다. 탐색기는 전자기파를 발출하고 감지하는 장치와 자료를 처리하는 컴퓨터로 되어 있다. 탐색기의 성능이 유도탄의 성능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전파를 표적물에 내보내어 되돌아오는 전파에 의해 비행하는 유도탄의 위치를 인식해야 한다. 프로그램으로 미리 설정된 예정 비행로와의 이탈 정도를 계산하여 곧바로 비행 궤적을 수정한다. 이러한 미사일 유도 방식이 능동 호밍(active homing) 방식이다. 이런 유도 방식은 표적물로 내보내는 전파를 자유로이 증폭시킬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미사일의 호밍 거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는 길은 미사일의 탐색기가 신속히 표적물의 지형도를 읽게 하는 것이다. 제한된 인식 능력의 컴퓨터가 목표물의 지형을 쉽게 판독하게 하는 길. 이것을 위해서는 적은 양의 정보량으로도 고감도의 지형도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분야에 용수가 집중적인 연구를 해 왔다. 현준은 아마도 여기에 관한 중간 결과를 용수가 말해 주겠거니 여긴다.
현준이 실험 성과를 정리하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작업이 밤까지 지속되었다. 그 동안 축적된 성과가 적지 않은 탓이리라. 밤 9시가 되자 비로소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작업이 마무리되자 한껏 성취감에 젖은 현준은 시내버스를 타고는 흑석동에 내린다. 뚜렷한 산책의 목적지는 없었지만 J대학의 소연이 매일 지나다닌다는 고갯길을 걷기로 한다. 춘천에서 만났을 때 소연은 현준에게 흑석동의 고갯길을 매일 지나다닌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소연이 지나다니는 흑석동의 고갯길. 그 고갯길을 거닌다고 하여 소연을 만나기는 어려운 처지다. 그럼에도 현준이 고갯길을 택한 것은 삶의 의미를 새겨 보기 위해서다. 인생에 있어서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도 있기 마련이리라. 현준은 자신의 현 위치를 삶의 오르막이라고 여긴다. 고개를 넘어 내리막길을 걸을 때다. 의외로 오르막이 시작되는 차로의 가장자리에는 철근 토막과 쇠못들이 수북하게 흐트러져 나뒹군다. 이렇게 쏟아진 물건들이 내깔린 거리가 50m 정도는 될 것 같다. 물건을 싣고 달리던 차가 넘어지면서 내쏟은 것이리라. 빨리 치우지 않으면 사고의 위험도 있으리라 여겨질 정도다. 헌데, 내리막길을 달리던 백색 승용차가 자꾸 덜컹거리더니 멈춰 선다. 내리막과 평지가 마주치는 지점에서다. 먼발치로 현준의 눈에는 여인이라고만 식별이 된다. 여인은 우측 뒷바퀴를 들여다보더니 안색이 변한다. 그러다가 지나가는 차를 향해 도움을 청하려는 듯 손을 번쩍 든다. 여인은 지나는 차마다 달려들어 도와 달라고 손을 흔들지만 하나같이 그냥 지나치고 만다. 오르막길에서부터 내리막길까지 현준이 걸어갈 때까지도 여인은 그저 손을 내흔들 뿐. 어떤 차량도 멈추지 않고 지나쳐 가기만 한다. 현준이 마침 그 차량 부근으로 접근할 무렵에야 여인은 핸드폰으로 구조를 신청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안내 전화도 잘 연결이 안 되는지 여인은 종종걸음을 쳐댄다.
현준에게 차량은 없지만 친구의 차바퀴를 두어 번 갈아 끼워 준 경험은 있다. 현준은 도와 줄 마음으로 여인의 차량에게로 다가선다. 한참 핸드폰에 매달려 있던 여인이 현준을 보더니 기쁨에 들떠 말한다.
“어머, 현준 씨 아니에요? 어쩜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혹시 바퀴 갈아본 적이 있으세요?”
현준도 여인이 소연일 줄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도 순간적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게 되네요. 그 동안 잘 지내셨어요?”
현준은 바람 빠진 차바퀴를 쓱 둘러본 뒤에 흔쾌히 대답한다. 현준이 바퀴를 한 번 갈아보겠다고. 현준은 이전에 친구들의 차바퀴를 몇 차례 갈아 끼운 적이 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연의 차 트렁크를 연다. 트렁크에서 스페어타이어(spare tire)와 공구 주머니를 꺼내든다. 그리고는 자키를 프레임 밑에 반듯이 받치고는 레버를 꽂아 서서히 돌린다. 차바퀴가 땅바닥에 닿을 위치만큼에서 차바퀴를 갈아 끼운다. 공구 세트를 꺼내어 볼트와 너트를 단단히 죈다. 레버를 돌리며 타이어에 실리는 압력 평형을 체크한 뒤에 자키를 빼낸다. 빼낸 폐타이어와 자키는 차의 트렁크에 싣는다. 작업을 마치며 현준이 소연에게 말한다. 나사가 제대로 죄어졌는지는 카센터에 들러 점검하라고 알려준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다고.
차바퀴를 갈아 끼운 뒤다. 소연은 현준에 대해 고마운 마음으로 어쩔 줄 모를 지경이다. 길가에 정차시키고 소연이 차 한 잔을 사겠다고 한다. 현준에겐 차량의 흐름과 시각을 볼 때 완곡히 사양하는 게 미덕일 것만 같다. 현준은 소연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 신림동으로 돌아왔다. 침상에 눕기 전. 현준은 고갯길에서 만난 소연을 떠올린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만남이었기에 더욱 반가웠다. 청순한 이미지와 고운 심성의 여인. 생각할수록 점차 빨려드는 매력을 느낀다. 현준은 홀가분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새벽에 용수를 만날 걸 생각하며.
자명종 소리에 현준이 눈을 뜨니 새벽 4시 40분이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몸단장을 하고 아파트 입구에 내려서니 새벽 5시 무렵이다. 이미 용수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용수가 창문의 유리를 내리며 손을 흔든다. 용수의 조수석에 앉자마자 차는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한다. 차가 도착할 예정지는 강원도 양평의 야산의 기슭이라고 한다.
차를 달리며 용수는 미사일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우리말로 유도탄이라 불리는 미사일은 자동 추진 장치를 갖고 고속으로 비행하는 무기라고 한다. 세계 최초의 로켓식 무기는 1232년에 중국의 금(金)나라가 타타르와의 전쟁에서 썼던 비화창(飛火槍)이다. 이것은 창끝에 화약을 채운 대나무 통을 묶어 굉음과 함께 화염을 분출하는 무기였다. 그러다가 근대에 이르러 독일이 1944년 9월에 2,700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 중에서 영국에 명중된 건 517발에 이르렀을 뿐이라고 한다. 당시의 미사일의 추진 장치는 알코올을 연료로 삼고 액체 산소를 산화제로 사용한 거였다. 그리하여, 당시의 미사일은 중량이 12.5t에 이르고 사정거리는 350km에 이르렀다.
현대까지 알려진 미사일의 추진 방식은 크게 로켓과 제트엔진으로 분류된다. 로켓의 경우에는 내장된 연료를 산화제로 연소시킨다. 이 때 생긴 연소가스가 분사되는 반동에 의해 미사일이 추진되는 것이다. 제트엔진의 경우에는 공기를 흡입하여 연료를 연소시켜 미사일을 추진시킨다. 제트엔진의 경우에는 대기권 밖을 비행하는 탄도 미사일에 비해 속도가 느린 편이다. 제트엔진은 저공으로 비행하여 공격하는 순항 미사일에 많이 사용된다.
용수의 얘기를 듣다가 보니 차는 동서울 톨게이트를 거쳐서 곤지암 사거리에 이르렀다. 거기서 좌회전하여 양평을 향해 달린다. 차가 양평의 세월리에 진입하여 평야가 남한강 지류에 합류하는 지점 부위다. 미개간의 우뚝 솟은 야산이 강의 지류를 따라 내리달리고 있다. 평야와 야산이 만나는 지형이기에 인가라곤 없는 외진 지역이다.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지형이라 도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주차시킨다. 2개의 가방을 차의 트렁크에서 꺼낸 뒤 각자 하나씩 든다. 용수가 길을 앞서며 말한다. 지금 걷는 곳은 때때로 용수가 다녀가는 지역이라고. 차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어서 더욱 외진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바로 근처에서 연구한 결과를 현준에게 보여주겠다고 한다.
연구 결과를 보여주겠다는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그의 인간적인 성실성에 감동되어 현준의 콧등이 시큰거린다. 소담스런 결과가 축적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을 아끼며 노력했겠는지? 축적된 결과를 소중히 모아 현준에게까지 보여주려는 따뜻한 우정! 생각할수록 정말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운 친구가 아닌가! 현준은 한결 애정 어린 시선으로 용수를 지켜본다.
평야는 넓고 강을 따라 치솟은 야산은 기다란 병풍 같다. 평야는 밭인데 광막한 공간이 잡초로만 어우러져 있다. 아마도 일손이 달려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농지인 모양이다. 현준에겐 곡식을 산출해야 할 곳에서 농지를 놀리다니 안타까운 실정이라고 여겨진다.
용수는 잡초가 어우러진 평야의 중앙에다가 가방에서 빼낸 기구들을 진열한다. 길이가 60cm인 연구용 소형 미사일이 3개다. 미사일 발사대와 이동식 소형 레이더도 설치한다. 소형 레이저 발진 장치도 반듯하게 세운다. 농축된 12V 니켈-카드뮴 전지 10개가 직렬로 연결되어 작동되는 장치다. 여기다 영상 재현용 액정 컴퓨터까지 전선으로 전지와 연결한다. 그런 뒤에 발사대로부터 2km쯤 떨어진 야산의 돌출된 절벽. 거기의 중앙에 직경 1m의 알루미늄 은박지 3장을 10m 간격의 정삼각형의 위치에 설치한다. 최하단의 은박지가 설치된 지점은 절벽 아래의 강바닥으로부터 20m 높이의 위치다. 은박지가 설치된 절벽 밑에서 용수가 망원경으로 건너편의 미사일 발사대의 위치를 확인한다. 적절한 위치임을 거듭 확인한 뒤다. 다시 목표물에서부터 원래의 발사대가 설치된 지점으로 현준과 용수가 되돌아간다. 발걸음을 옮기며 용수가 현준을 향해 말한다.
“지난번에 헤어진 뒤. 미사일 탄두에 장착된 탐색기의 기능을 대폭 보완했어. 탄두에 장착된 탐색기는 미사일 발사와 동시에 레이저 광선을 목표물로 분출해. 목표물에서 되돌아오는 반사파는 탐색기 내의 컴퓨터의 정보를 곧바로 수정하거든. 장착된 컴퓨터를 통해 미사일의 비행 궤적과 목표 궤적간의 오차를 수정하게 돼. 이와 함께 탐색기의 컴퓨터는 발사대의 컴퓨터로 폭발 직전까지의 장면을 전송하게 돼. 바로 이 부분이 최근에 내가 새로 개발한 영역이야. 은박지의 기능이 뭐냐고? 그건 레이저 광선의 반사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야.”
발사대에 도착하자 용수는 망원경으로 목표물의 위치를 재차 점검한다. 여기까지의 작업을 일사천리로 끝낸 용수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입을 연다.
“원래 장거리 탄도 미사일은 대기권 바깥으로 빠져 나갔다가 다시 대기권으로 진입하거든. 사정거리 자체가 지구의 반경보다 먼 경우야. 먼 거리를 포물선 궤도를 그리며 진행하다가 보니 대기권 바깥까지 나가게 돼. 오늘 가져온 장치들은 완전히 어린애들의 소꿉놀이 도구에 불과해. 하지만 이렇게 작은 단위에서 성공해야만 미사일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어. 이 작은 장치는 수평면에서 45도의 각도로 일단 허공으로 치솟거든. 그랬다가 허공에서 방향을 꺾은 뒤에 목표물로 달려들게 돼.”
절벽의 언저리는 가을이라 잡목마다 단풍으로 태깔이 무척 곱다. 용수는 2개의 쌍안경을 꺼내 1개는 현준에게 건넨다. 그러면서 현준에게 나름대로 자세하게 설명한다.
“쌍안경으로 알루미늄 은박지를 확인해 봐. 내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순간. 탐색기와 지면의 레이저 발진기에서는 은박지로 레이저를 쏠 거야. 그러면 은박지에서 반사된 레이저를 미사일 탄두의 탐색기가 읽게 돼. 프로그램으로 내장된 예정된 비행로와 미사일의 실제 위치의 편차가 있게 마련이야. 탐색기에 내장된 소형 컴퓨터가 신속히 편차를 계산하여 미사일의 비행로를 수정하는 거야. 이런 정보가 광속도로 주고받게 되어 목표물을 정확하게 명중시키게 돼.”
보다 더 부언 설명을 한 뒤. 용수는 잠시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전 10시 무렵이다. 현준도 다소 긴장한 얼굴로 용수의 행동을 지켜본다. 마침내 표적물을 향해 미사일을 돌린 다음. 용수가 발사대의 스위치를 누른다. 순식간에 폭음을 내며 미사일이 하늘 위로 치솟았다. 용수와 현준은 쌍안경을 통해 2km 떨어진 절벽의 알루미늄 표적물을 바라본다. 하늘 아스라이 치솟았던 미사일이 방향을 돌려 절벽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한다. 용수와 현준은 자신도 몰래 꿀꺽하고 침까지 삼킨다. 정삼각형으로 배열된 3곳 중의 좌측 아랫부분의 은박지에 미사일이 내리꽂힌다. 폭음과 더불어 은박지가 있던 부분에는 커다란 구멍이 펑 뚫린다.
현준에게는 감탄할 만하다는 느낌이 부쩍 든다. 연이어 또 하나의 미사일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역시 아스라한 상공에서 방향을 꺾더니 절벽을 향해 돌진한다. 어쩜 그렇게도 경쾌하며 날렵한 느낌이 드는지 현준에겐 그저 놀랍기만 하다. 연이어 폭음을 내며 또 한 군데의 구멍이 뚫린다. 굴삭기를 가지고 판 듯한 웅덩이가 쌍안경으로 관측된다. 정삼각형 위치 중의 우측 하단 부분이 뚫린다. 다음으로 3번째의 미사일이 폭음을 일으키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둘은 열심히 소형 레이더로 미사일의 비행 궤적을 더듬는다. 마침내 아스라한 공중의 전환점에서 방향을 바꾼 미사일이 절벽을 향해 돌진한다. 이것마저도 명중된다면 그야말로 백발백중이 되는 셈이다. 마침내 미사일의 탄두가 절벽에 박힌다. 요란한 굉음이 터지리라고 여겼는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쌍안경으로 바라보니 정삼각형의 최상단의 위치에 정확히 탄두가 꽂혀 있다. 현준은 이 장면까지 확인하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어쩌면 오차도 없이 정확한 지점에 명중될 수 있는지 감탄스럽다.
용수가 쌍안경을 내리며 말한다. 마지막 미사일이 하필이면 불발이 되고 말았다고. 불발탄의 수거는 폭약 전문가가 아니고선 어렵기에 골치 아프다고 한다. 그러다가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가 펴며 용수가 말을 잇는다.
“이제 너한테 보여줄 건 다 보여 준 셈이야. 아직도 과제로 남은 점은 엄청나게 많아. 서둘지 않고 진행한다면 좋은 성과를 얻으리라고 믿어.”
용수의 말이 끝날 무렵. 현준은 또 한 번 감격한다. 소신을 갖고 목표를 성취한 친구가 한없이 자랑스럽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현준은 용수에게로 다가가 왈칵 용수를 끌어안는다. 용수도 환한 미소를 띠며 현준을 힘껏 끌어안는다. 서로의 등을 두어 번 두드려 준 후. 둘은 물러서며 서로를 격려한다.
현준과 용수는 설치된 장비를 다시 거두어 가방 안에 넣는다. 마치 장난감 같기만 하던 이런 장비들에서 엄청난 위력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한편 불발탄의 처리 문제로 절벽 부분으로 가 보기로 한다. 타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출입 금지 조치를 해야만 할 판이다. 마치 강기슭에 기다란 천이 떠내려가다 수초에 걸린 게 보인다. 용수는 그 천을 끌어내어 불발탄 주위에 테두리를 치려고 한다. 현준도 함께 거들기로 한다. 둘이 조심스레 흰 천으로 불발탄 주변을 원형으로 둘러싼다. 하늘에서 봐도 금세 알아볼 정도로 표시를 해 두려고 한다. 그런데 불발탄이 박힌 곳은 경사가 80?에 이를 만큼의 가파른 지형이다. 조심스레 흰 천으로 표시를 하던 중이다. 구부린 용수의 좌측 팔꿈치에 걸려 돌출된 작은 바윗돌이 떨어져 내린다. 그 소형 바윗돌은 목표물 위쪽에 살짝 돌출되었던 거다. 용수가 순간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찰나. 현준도 어안이 벙벙하다. 미끄러진 작은 바윗돌이 불발탄을 때리게 되면 터질지도 모를 일이다. 가슴에 섬광이 일며 둘이 숨을 죽이는 찰나. ‘펑’ 소리를 내며 불발탄이 터져 버린다. 현준과 용수가 위기의식을 느끼는 찰나 몸은 절벽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바로 그 때 언덕 위에서 거대한 양의 흙더미와 바윗돌이 마구 떨어져 내린다. 와르르 쏟아지는 흙더미에 떠밀려 용수와 현준은 의식을 잃는다. 둘은 불발탄이 터지면서 내놓은 토사물에 휩쓸려 땅에 매몰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현준의 오른팔은 흙더미에 깔려 움직일 수가 없다. 왼팔만 겨우 움직여 주머니 속을 더듬는다. 고개조차 아예 돌릴 수 없는 상태다. 약간의 의식을 되찾은 현준은 눈에 보이지도 않건만 핸드폰의 폴더를 연다. 바로 그 순간. 현준은 울컥 치솟는 설움에 눈물을 흘린다. 폴더를 열기만 했을 뿐. 그의 손가락이 버튼의 위치를 식별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통화’ 버튼과 ‘숫자’ 버튼의 위치가 어딘지 알 길이 막막하다. 핸드폰이 무용지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섬뜩할 정도로 죽음의 공포가 왈칵 밀려든다. 현준은 공포에 떨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현재의 시각을 더듬는다. 대략 오전 10시 반쯤이 되리라 추측한다. 오전 10시에 미사일을 발사했고 2km의 거리를 걸어와 확인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통화가 될까 궁리하던 중 어디선가 전화가 걸려온다. 급히 응답하며 상대가 누군지 목소리를 더듬는다.
“여보세요?”
상대가 이내 반색하며 응답한다.
“소연이에요. 어젯밤에 너무 고마웠어요.”
소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현준은 기적을 맞는 느낌이다. 너무 기뻐 울컥 목이 멘다. 통화가 안 되면 생명을 잃을 상황이다. 어느새 줄줄 눈물이 흘러내린다. 울음소리가 날 듯하여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러 소연에게로 음성을 흘려보낸다.
“소연 씨! 절 좀 도와줘요. 사고로 흙더미에 깔렸어요. 고개도 못 돌리고 오른팔도 쓸 수 없어요. 전화번호를 불러줄 테니 친구한테 전화부터 걸어 보세요. 통화가 되든 안 되든 곧바로 제게 연락 주세요.”
긴급한 상황임에도 머릿속을 더듬어 사고의 위치를 되도록 자세히 알려주었다. 소연은 알았다며 곧바로 119에 도움을 청하겠다고 한다. 소연도 곧장 현준에게로 차를 몰고 가겠다고 말한다. 또한 용수한테도 곧바로 전화해 보겠으니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전화를 끊고서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힘을 전혀 쓸 수가 없다. 조금도 힘이 먹혀드는 조짐이 안 보인다.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이라도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싶다. 그렇다면 당장 구조 작업이 벌어질 것이리라. 흙더미에 깔린 채 땅속의 산소의 양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해 본다. 지금껏 숨을 쉬고 있는 건 쌓인 흙더미가 두껍지 않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아마도 흙의 틈새를 통해 산소가 계속 유입되는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땅속으로 유입되는 산소의 속도와 콧속으로 흡입되는 산소의 속도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려고 한다. 용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아직도 의식을 잃고 있기 때문이리라. 강의 수면으로부터 대략 30여m쯤 치솟은 가파른 비탈면에서 굴러 떨어진 거다. 몸이 절벽 밑바닥까지 굴러 내렸는지? 도중의 잡목에 걸린 채 흙더미에 뒤덮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준이 이런 상황을 떠올리자 아무리 가벼워도 중상을 면하지는 못하리라고 여겨진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이 된 건가를 생각하니 그저 아찔하기만 하다. 혹시 용수가 사망을 한다거나 현준도 중상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할수록 기가 찰 일이다. 또한 폭발물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던가? 깊이가 3m, 넓이가 8m 정도의 구덩이를 팔 정도였지 않은가? 현준에게는 이 정도라면 파 헤쳐진 흙더미의 양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 금세 핸드폰이 울린다. 굵직한 40대 중반의 사내의 목소리다. 신고를 받아 출동했다고 자신을 밝힌다. ‘양평군’이라는 팻말이 서 있는 국도에서 전화한다고 한다. 위치를 상세히 알려달라고 한다. 찰나 간에 현준의 뇌리로 고뇌의 빛이 번쩍 스친다. 지나쳐 온 길의 위치를 말로서 알려준다는 게 쉽지 않을 듯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준은 침착하게 전화를 받는다.
“곤지암에서 양평 방향으로 진행할 때 나타나는 팻말이죠? 그 팻말에서 10여m만 지나면 Y교라는 다리가 나타날 거예요. 그 다리를 지나면서 도로가 좌측으로 크게 구부러지거든요. 구부러지는 부위의 우측 논을 끝(산 아래)까지 통과하여 좌측을 보세요. 거기서부턴 황량한 목초지가 펼쳐질 거예요. 거기서 대략 500m 정도만 걸어오시면 가방 2개가 보일 거예요. 가방의 정동 방향으로 2km를 가면 강을 따라 치솟은 가파른 산기슭이 보일 거예요. 거기에 이르면 무너진 흙더미가 보일 테고 거기가 사고지점이에요.”
두어 번 더 확인 질문을 하더니 사내는 금방 도착하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현준의 의식이 가물거리면서 전신에 오한이 일기 시작한다. 흙더미에 묻혀 있다 보니 지속적으로 체열을 빼앗겨 그러려니 여겨진다. 현준이 막 핸드폰을 내릴 무렵. 재차 핸드폰이 울어댄다. 귀에 대니 소연의 목소리다. 동서울 요금소를 막 지나 남하하는 중이라고. 아마 잠시 후면 구조대원들이 현준에게로 몰려들 거라고 한다. 용수한테는 전화를 해도 전화를 못 받더라고 말한다. 불안하겠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라면서 잠시 후에 소연이 도착하겠다고 한다.
현준은 눈을 뜰 수조차 없는 게 너무나 불편하다. 계속 왼팔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뒤덮인 흙더미의 두께가 얇다는 뜻이리라. 현준에게 가장 불안한 건 현재의 위치다. 비탈에서 굴러 내린 거리가 조금인지 아니면 강의 수면에 해당되는 바닥까지 떨어진 건지? 만약 추락 도중에 나무나 돌에 임시로 걸려 있는 경우라면? 제발 별다른 재앙은 없기를 현준은 간절히 빌어본다. 현준이 비는 대상은 대자연이다. 종교를 갖지 않은 그가 빌 곳은 오로지 대자연이다. 대자연의 원대한 아량으로 이 번의 사고가 치명적이 아니기를 빌 따름이다.
초조한 마음으로 구조를 기다릴 때다. 핸드폰 배터리의 충전량이 얼마인지 걱정스러워진다. 그 날 따라 유달리 통화량이 많았던 터다. 혹여 구조대원이 도착할 때 배터리가 다 소진된다면? 그 때엔 죽음밖엔 길이 없을 테리라.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자 현준의 전신에 오한이 엄습하기 시작한다. 몸을 떨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몸이 떨릴 따름이다. 오한에 시달릴 때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었는지 모를 지경이다.
마침내 20여 분이 지나자 웅성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흙더미가 수북하게 깔린 곳부터 먼저 뒤져 보자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면서 괭이와 삽 등의 도구류와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밀려든다. 웅성대는 말소리와 신발 소리로 미루어 보아 현준에게는 십여 명은 될 것 같다고 느껴진다.
“흙더미가 저 위쪽에서 시작되었는데? 저 위쪽과 산비탈의 바닥. 양쪽에서부터 동시에 발굴하는 게 좋을 것 같네. 일부는 여기 바닥에 남고 나머지는 위쪽으로 가서 뒤져 봐.”
구조대의 작업반장의 목소리인 듯하다. 웅성대는 소리와 흙을 조심스레 뒤지는 기척이 인다. 이 때 핸드폰이 울어댄다. 현준이 즉시 받는다. 작업반장인 듯한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흘러든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느냐고? 지금 발굴 중이니 움직이지 말라고 강조하는 소리가 거듭 울린다. 현준이 알았다고 간결하게 응답한다.
쓱쓱 땅의 흙더미가 밀리는 소리. 도구가 지면에 부딪히는 소리. 흙이 떠밀리는 소리. 온갖 소리들이 뒤엉켜 현준의 의식계로 파고든다.
“반장님, 여기 한 사람 있어요.”
연이어 금방 그리로 가겠다는 반장의 말이 들린다. 이들의 대화는 현준에게 구명의 빛줄기처럼 느껴진다. 반장의 말을 듣는 순간. ‘아, 이제야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며 현준의 눈시울이 젖어든다. 찰나 간에 현준은 ‘사자(死者)의 환생(還生)’이란 말을 떠올린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서서히 흙더미가 벗겨져 나간다. 현준의 얼굴이 노출되자 구조대원들이 담가를 가져온다. 현준은 눈을 뜨려고 해도 좀체 눈을 뜰 수가 없다. 마치 눈꺼풀을 다스리는 근육이 끊겨 나간 것처럼. 작업반장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전화를 받은 사람 맞느냐고? 억지로 눈을 뜨려 하지 말고 그대로 있으라는 얘기다. 작업반장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준은 눈을 감은 채 한 사람이 더 묻혀 있다고 목청을 높여 말한다. 사방에서 흙더미를 뒤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린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현준에게서 가까운 장소에서 용수를 찾았다는 구조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찾을 사람은 다 찾았다는 쾌활한 목소리들이었다.
일단 현준과 용수가 발굴되자 구조대원들이 신속히 구급차에 싣는다. 구급차에 실려 막 출발할 무렵. 소연의 승용차가 도착했다. 현준은 볼 수는 없었지만 귀로 듣는다. 소연의 목소리가 현준의 귓전으로 밀려든다. 좀 어떠냐며 마음을 편안히 가라앉히라고 한다. 그러면서 소연도 병원까지 함께 가겠다고 들려준다.
오전 11시 무렵. 현준과 용수는 양평읍의 종합병원 응급실에 입원하게 된다. 곧바로 X선 촬영을 비롯한 몇 가지의 검사를 받는다. 오후 1시 무렵에는 용수와 현준의 지도교수와 대학원 선후배들이 병원에 도착했다. 그 때까지도 현준은 눈에 안대를 찬 채 검진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병 온 사람들이 누구란 걸 듣기만 할 뿐. 아직 면회가 허용되지 않은 상태다.
오후 2시가 지나서야 정밀한 진단 결과가 나왔다. 둘 다 비탈면에서 굴러 떨어지던 과정에 서 나무둥치에 걸린 상태로 흙더미에 덮인 거였다. 그랬기에 비교적 커다란 상처는 입지 않은 편이었다. 용수는 오른팔에 골절상을 입었으며 현준은 발목에 찰과상을 입고 각막이 약간 부었다. 의사는 용수에게 퇴원 후 2달간 통원 가료(通院加療)를 받으면 될 거라고 했다. 현준에게는 1주일의 통원 치료만 받으면 문제가 없으리라고 말했다. 용수와 현준은 문병 온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 둘은 누구보다도 소연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소연이 제 때에 조처를 취해 주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현준에게는 생각만 해도 끔찍스럽게 느껴졌다. 폭발물로 인한 사고여서 경찰에서 파고드는 바람에 뒤처리가 만만치 않을 뻔했다. 그렇지만 무기 연구를 하는 용수의 신분과 지도교수의 보증으로 쉽게 마무리되었다.
양평으로부터 돌아와 2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벌써 10월의 하순에 접어들었다. 현준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었다. 반면에 용수는 석고로 오른팔을 감고 다니며 통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현준은 수시로 전화를 하여 용수를 위로해 준다. 용수의 말에 의하면 골절 상태가 심하여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뒤에도 흙더미로 뒤덮일 때 부어 오른 부기가 잘 안 빠진다고 한다. 현준은 소연에게도 전화를 건다. 대번에 수화기로 소연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반갑네요. 요즘 잘 지내시죠? 가을인데 바람 좀 안 씌워 줄래요? 차는 제가 몰 테니까요.”
현준은 생각에 잠긴다. 양평의 사고 때에 소연이 도와준 일을 떠올린다. 그 때 조금이라도 구조의 시각이 늦었다면 목숨마저 잃을 뻔했다. 눈을 뜨지도 못한 상태에서 핸드폰만 들고 쩔쩔 매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 때 기적처럼 걸려온 소연의 전화. 그건 틀림없는 생명의 전화였다고 생각된다. 만약 그 때 어느 누구와도 통화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대로 흙더미에 묻힌 채 세상과 고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현준은 선뜻 소연에게 응답한다.
“네, 좋아요. 내일 금요일인데 수업 있으세요? 없다구요? 그럼 잘 됐네요. 내일 오전에 포천에 있는 산정호수로 가면 어떨까요? 괜찮다구요? 어디로 나가서 기다리면 되죠? 제 집 앞까지 오겠다구요? 그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지도 모르잖아요? 차라리 제가 내일 오전 8시에 상도 전철역 2번 출구에서 기다릴게요. 그럼 내일 봐요.”
현준은 관악의 연구실에서 진행된 실험 자료들을 꼼꼼히 정리한다. 항시 계획표와 진행 실적을 비교해 가며 연구의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현준은 항시 마음으로 느끼곤 한다. 대부분의 일은 정신자세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하겠다는 마음을 품으면 결과도 거기에 상응된다는 걸 경험으로 느끼곤 한다. 밤 10시까지 연구를 하다가 관악의 정문을 나선다. 신림동의 집으로 돌아와 세수와 간단한 청소를 마치고는 곧바로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아침. 현준은 전철에서 내려 상도역 2번 출구로 나서면서 시계를 들여다본다. 8시 10분 전이다. 약속 시간은 아직도 10분이 남은 셈이다. 그런데도 2번 출구에 내려서니 운전석에서 소연이 손을 흔들고 기다린다. 소연만큼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도 드문 편이다. 현준도 반가이 손을 흔들며 소연의 백색 소나타로 다가선다. 소연이 문을 열어 준다. 출발하기 전부터 마음이 따스한 느낌이 든다.
조수석에 앉아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매니 차가 부드럽게 미끄러진다. 속도를 내기 전에 잠시 현준을 바라보며 소연이 입을 연다. 산정호수는 대학 신입생일 때 MT 장소로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랬는데 현준과 단 둘이 드라이브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들려준다. 산정호수까지는 70km쯤 떨어져 있기에 금세 도착할 거라고 현준에게 말한다.
현준에겐 소연의 수려한 외모와 서글서글한 인상이 매혹적이라고 느껴진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고마운 여인이라고 여겨진다. 그 날의 사고 때. 그녀의 적절한 조치가 없었다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끔찍한 날의 기억이다. 현준은 달리는 차와 더불어 생각에 잠긴다. 눈앞에 대화의 상대를 두고서도 잠깐씩 생각에 잠기는 게 현준의 습성이다. 현준에겐 소연의 차바퀴를 갈아 끼워 주게 된 것도 무슨 인연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양평의 일은 따뜻한 마음이 없고서는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단순한 신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차를 몰고 문병까지 오지 않았던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마음을 타고 상대에게도 전해지는 모양이다. 진정으로 상대에게 따스한 감정을 품어야만 상대도 그걸 느끼게 되는 모양이리라. 현준의 마음에는 따스한 감정의 기류가 형성되어 움직이려는 터다. 우선 그녀의 외모부터가 친근감으로 밀려든다. 맑은 눈빛. 탄력 있어 보이는 입술. 오뚝한 콧날과 깔끔한 눈썹. 전체적으로 갸름하여 조화를 이룬 얼굴의 모습. 보면 볼수록 마음이 끌려드는 얼굴형이다. 다음으로 소연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흑백이 선명하여 신령스런 기운마저 발출되는 듯한 눈동자. 현준 자신의 눈동자도 살펴봐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을 지나 의정부를 거쳐 포천으로 차가 달린다. 의정부를 지나 포천 쪽으로 우회전하면서부터 차량의 소통이 원활하다. 38선 휴게소를 지나 조금 더 달리니 산정호수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보인다. 국도에서 지방도로 들어서서 8km를 달리니 산청호수 매표소가 보인다. 현준이 신속하게 소연을 앞질러 주차료와 입장료를 지불한다. 매표소를 지나 산정호수 주차장으로 진입하여 주차시킨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무렵이다. 둘은 잠시 주차장에 세워진 화장실에 다녀오기로 한다. 화장실에 다녀온 뒤에 둘은 주차장에서 만난다. 소연을 향해 현준이 말한다. 아직 식전이 아니냐고 현준이 소연에게 묻는다. 소연이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떡인다. 현준 자신도 식전이라고 밝힌다. 현준의 눈에 호수의 입구에 음식점이 몇 군데 눈에 띈다. 음식점을 발견하자 현준이 소연에게 제안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호수를 둘러보기로 하자고.
소연도 흔쾌히 대답하며 맛있는 걸 사 달라고 조른다. 현준이 싱긋 웃으며 소연에게 묻는다. 좋아하는 식사의 종류는 어떤 거냐고? 소연은 간단히 대답한다. 뭐든 다 괜찮으니까 선택은 현준에게 맡기겠다고 말한다. 현준은 잠시 마음속으로 생각해 본 뒤. 발걸음을 시원스레 내딛으며 소연을 음식점으로 데려간다.
둘은 가까운 음식점에 들러 온돌식 자리에 평온한 마음으로 마주 앉는다. 순두부 백반과 파전을 주문한다. 잠시 후 음식이 배달되자 둘은 나란히 숟가락을 든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순간. 둘의 가슴은 새삼 뒤설레기 시작한다. 현준에게 소연은 지금까지 부단히 연구에만 매진했던 결과로 대자연이 내린 선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세상이 아무리 격변해도 소연과 함께라면 언제나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산정호수는 현준이 대학 시절에 학과 친구들과 더러 놀러온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준에게는 마치 새로운 별천지를 찾는 양 황홀할 지경이다. 이런 현상이 소연으로 인한 것임에랴! 현준이 평온한 표정으로 말한다.
“여기는 참으로 아늑한 장소라고 여겨져요. 특히 소연 씨와 함께 오니 호수가 더욱 아름답게 단장한 것 같네요. 아마 지금 호수가 한창 화장을 하고 얼굴을 어루만지고 난리일 거예요.”
“어머, 세상에! 호수가 화장하는 줄은 어떻게 아셨어요? 마치 본 것처럼 얘기하네요.”
현준은 대답 대신에 미소를 지을 뿐. 표정이 환하여 밝기만 하다.
순두부와 함께 밥을 깨끗이 비우고는 둘은 노릇노릇이 굽힌 파전마저 먹어 치운다. 둘 다 식성이 꽤 좋은 모양이다. 둘은 식사를 마치자 음식점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는 산정호수의 폭포 왼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해 나란히 걷는다. 현준은 보랏빛 등산 잠바와 상아 빛깔의 코르덴바지 차림이다. 소연은 연두색 등산 잠바와 청바지 차림이다. 둘 다 복장이 간편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등산로로 올라서서 5분쯤 걸으니 산뜻한 이미지의 호수가 드러난다. 호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등산로 입구 쪽으로 흘러내려 폭포를 이룬다. 수량이 많지 않기에 그렇게 위용스런 모습은 아니지만 둘에겐 운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폭포 위로 연결된 다리를 지나 김일성 별장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옛 날 전시 중에 김일성 별장이었다는 건물이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그 건물을 지나면 몇 가구의 음식점이 줄지어 서 있다. 수족관엔 살아 있는 물고기들이 헤엄을 친다. 음식점을 지나니 몇 군데의 벤치가 호수를 향해 나란히 배열되어 있다. 주차장을 향한 쪽의 호수의 기다란 둑. 그 둑은 인공의 힘에 의하여 축조된 거라고 한다. 둑이 축조되지 않았다면 산정호수의 물은 다 빠져 내려가 버릴 것이리라. 고개를 드니 수려한 호수의 풍광이 현준의 가슴에 물결친다. 호반을 거닐면서 현준은 다시 한 번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만약에 양평에서 구출되지 못했다면 이런 시간이 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