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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색 갈매기 날다 손 정 모
3. 결속의 몸부림
순식간에 이틀이 지났다. 춘천의 효자동에 있는 K대학교. 6월 하순의 화요일 오전 11시 무렵이다. 북쪽에 위치한 농생학관 2호 강연회장. 거기에선 2번째의 발표자가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중이다. 오전 10시부터 진행된 강연회에선 그 동안의 연구 성과들이 발표된다. 주로 박사과정의 대학원생들이 발표자들이다. S대 화학과에선 심 교수와 제자들인 현준을 포함한 대학원생 다섯이 참석했다. S대 농생명 과학대학에선 W교수를 비롯한 12명이 참여했다. 강연회장에는 모두 87명이 참석한 상태다. 보통의 학술 발표회와는 달리 기밀이 유지되는 모임이다. 그래서 참석자들에게는 20명의 도우미(K대 대학원생)들이 미리 만들어진 명찰을 달아준 상태다. 명찰을 단 사람들만이 발표회장에 참석하도록 한 것이다. 발표회장의 분위기가 현준에게도 자못 숙연할 정도다. 근엄한 자세로 발표에 임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진다. 또한 다른 발표자들의 강연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경청하리라 다짐한다. 평온한 국면에서 변화의 격류를 만난 듯 현준의 가슴이 뒤설렌다.
참석자 명부를 들여다보며 현준은 서울 D대의 참석자 명단을 알아본다. 장은정과 그녀의 지도교수인 T교수의 이름이 실려 있다. 명단을 확인한 순간 현준의 가슴이 설레었다. 은정과 말을 붙여 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르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배부된 강연 초록을 들여다본다. 현준은 오후 5시에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한편, D대의 T교수의 발표 일정은 오후 1시로 예정되어 있다. 박사과정의 학생이 없기에 T교수가 직접 연구 결과를 발표할 모양이다.
현준은 마음을 가다듬고 발표에 실수가 없도록 자료를 준비한다. ‘파워 포인트(power point)’로 제작된 슬라이드 화면을 펼쳐 본다. 24면에 이르는 분량이다. 50분 내에 발표를 마치려면 시간 조절에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행사장 내외로 20명의 도우미들이 부산히 돌아다니며 행사장을 통제하고 있다. 외부 사람들은 들어오려야 들어올 수도 없는 상태다. 그리고 행사장 50m의 외곽으로는 정복 경찰들도 쫙 깔려 있다.
현준은 다른 사람들이 눈치 못 채게 때때로 은정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얼굴에는 까닭 모를 냉기가 서려 있다. 현준이 예상치 못한 일이다. 원래의 표정이 그런지 행사장의 분위기 탓인지 모를 일이다. 현준도 경각심을 높여 자료를 다시 한 번 점검한다. 그런 반면에 강연자가 발표하는 연구 성과도 열심히 경청한다. 노트를 펼쳐 속필로 메모도 하고 장치를 크로키도 한다. 한 마디의 말도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것들이라고 여겨진다.
4번째 강연자가 발표를 마치니 점심시간이다. 줄곧 긴장되었던 마음이 완화되는 시간이다. 현준은 가벼운 심호흡을 하며 심 교수와 식탁에 마주 앉는다. 사제간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마주친다. 심 교수가 유전공학 개발의 선구자로서 새삼 우러러 보인다. 그러면서 현준도 힘차게 도약하리라 결의를 다진다. 헌데 식사를 하다가 현준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순간적으로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식당에는 은정과 외모가 너무나 흡사한 대학원생이 눈에 띈다. 부착된 명찰을 보니 춘천 F대학교 주선영(朱善英)으로 되어 있다. 춘천의 K대학교는 국립이고 F대학교는 사립이다. 신장과 골격 및 나이까지도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은정은 장 씨이고 선영은 주 씨이다. 어쩜 쌍둥이처럼 닮을 수 있는가 싶어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현준은 아무리 은정과 선영을 번갈아 바라봐도 구분할 자신이 없다. 너무나 미모가 빼어난 두 여인. 참석자들의 숱한 시선이 두 여인의 주위로 오가는 느낌이다.
현준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근래에 너무 잠을 못 자서 생긴 착시 현상은 아닐까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봐도 착시 현상은 아닌 듯하다. 성씨가 다른 데도 외모가 그처럼 비슷한지 다들 놀라는 눈치다. 헌데 선영의 외모는 너무나 매혹적으로 비친다. 누군가를 유혹하지 않고는 못 배길 듯한 싱그러움. 질식할 때까지 상대를 매혹시키지 않고는 못 배길 듯한 교태가 한껏 실린 인상이다.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인가? 현준에게는 선영의 매혹적인 아취가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진다. 차라리 얼음같이 차가운 은정에게 더 마음이 끌려들려고 한다. 자신이 생각해도 묘하기 그지없는 느낌이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은정에게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여 서성거렸지만 그럴 틈이 없다. T교수가 은정에게 뭔가 쉬지 않고 얘기를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전에 들은 강연들에 대해 논평을 내리는 듯하다. 그들 사제간의 대화의 장면을 지켜보는 순간. 그들의 탐구 열정에 현준의 가슴이 뭉클해진다. 촌각의 시간도 쪼개어 저렇게 갈고 닦다니! 현준도 새롭게 탐구 의욕을 드높인다.
오후 1시가 되자 예정대로 T교수가 연단으로 올라선다. 제작된 슬라이드의 영상이 스크린 위에 차례대로 나타난다. 하나하나 막대기로 짚어가며 성의 있게 T교수가 강연한다. 현준이 느끼기에도 가슴이 벅찰 정도로 강연에 열정이 실려 있다. 강연을 들을수록 사람을 깊숙이 빨아들이는 듯하다. 연속적으로 세포를 분화시키기 위해서는 배양액에 필수 아미노산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기에 관련된 자료가 슬라이드에 그대로 실려 있다. 꽤 유용한 자료로 여겨져 현준은 열심히 메모를 한다. T교수가 강연을 마치고 연단을 내려온다. T교수는 이내 은정과 나란히 앉아 다음 발표자의 강연에 귀를 기울인다. 반시간쯤 흘렀을까? 오줌이 마려워 현준은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현준이 다시 발표회장에 들어서서 가만히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한동안 발표자들의 강연에 몰두하여 메모를 한다. 어느 순간에 고개를 들어 은정의 자리를 살핀다. 의외로 은정과 T교수가 안 보인다.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바쁜 일이라도 생겨 도중에 되돌아간 걸까? 묘하게도 현준의 마음이 불안해진다. 짧은 시간마저 탐구의 대화에 할애하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그들의 부재는 현준에게 아무래도 심상찮은 일로 비친다.
오후 5시 무렵. 예정보다 10분쯤 늦게 현준이 연단에 오른다. 기본 설명에 이어 준비된 시청각 자료를 제시한다. 노트북 컴퓨터에 빔 프로젝터를 연결하여 대형 화면으로 영상을 제시한다. 배양액을 만드는 과정은 실물 화상기로 촬영하여 편집한 동영상 테이프를 틀어 보여준다. 실물 화상기로 촬영하여 편집된 자료는 무비 카메라로 촬영된 자료 이상의 선명도를 보여준다. 액정 카메라로 촬영한 줄기세포의 사진들은 응용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으로 처리되어 컴퓨터에 저장된다. 이런 영상을 노트북에 연결된 빔 프로젝터를 통해 연속적으로 스크린으로 내보낸다.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된 10만 배율의 DNA의 영상이 제시되자 실내엔 감탄소리가 터져 나온다. 세포분열의 중기에서 시료의 색소가 고스란히 유지된 깔끔한 영상이기 때문이다. 후반부에는 노트북의 파워 포인트로 제작된 24면에 이르는 슬라이드의 화면을 스크린으로 내보낸다. 50분 동안 충분히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연구 성과를 제시했다. 강연을 마치자 박수갈채가 요란하다. 현준이 인사를 마치고 연단을 내려선다. 심 교수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연단을 내려서서 청중석에 앉는 순간부터 은정의 영상으로 머리가 뒤설렌다. 문득 비슷한 얼굴의 선영이 생각나자 그 편으로 머리를 돌려본다. 어찌 된 영문인지 선영의 얼굴도 안 보인다. 불쑥 의아심이 인다. 학술회의의 성격이 국가적 장래를 건 기밀 회의가 아닌가? 그럼에도 중도에 사람들이 빠져 나가는 사태가 벌어지다니? 혹시 돌발 사고가 발생한 건 아닌지 현준에게 궁금증이 인다. 빠져 나간 자리가 많은지 다른 곳도 현준이 점검해 본다. 다른 곳은 오전과 그대로다. 빈 자리는 대여섯에 불과하다. 세 자리는 확실히 미리 떠난 것 같다. 그 나머지는 화장실에 갔으리라 여겨진다.
그 이후로도 강연회가 계속 진행되다가 오후 7시에 폐회를 한다. 7시에 K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저녁 식사가 삼계탕으로 제공된다. 피로를 풀도록 하려는 건지 식탁마다 인삼주도 충분히 비치되어 있다. 인삼주를 보는 순간. 현준은 K대학교의 배려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과학도들의 긴장 상태까지 해소시키려는 배려 때문이다. 현준은 식사를 하면서도 연신 주변을 살피느라 두리번거린다. 혹시 은정과 T교수가 되돌아와 있지나 않은가하고.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은정은 보이지 않는다. 은정과 T교수뿐이랴? 선영의 얼굴도 끝내 보이지 않는다. 가슴속이 허전하지만 묵묵히 견뎌낼 수밖에는 없는 답답한 심정이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며 식당 여기저기를 기웃거려 본다. 그럴수록 상대를 못 찾으니 가슴만 공허할 따름이다.
두어 번 넓은 식당을 오갈 무렵. 은정만큼이나 빼어난 외모의 여인이 현준에게 다가서며 입을 연다. 얼굴이 너무나 수려하여 현준에겐 대번에 호감이 갈 정도다.
“현준 씨죠? 강연 잘 들었어요. 준비한 시청각 자료도 남들보다 신경을 많이 썼더군요. 아주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서울 J대학교 화학과 석사과정의 성소연(成蘇姸)이라고 해요. 지금 누굴 찾고 있나 봐요?”
현준은 미소를 띠며 응답한다. 이전에 만난 적은 있지만 인사를 나누기는 처음인 것 같다고. 만나서 얘기를 나누게 되어 기쁘다고. 그러면서 강연회에서는 더러 들을 만한 내용이 있었느냐고 소연에게 묻는다. 소연도 흔쾌히 대답한다. 배울 게 아주 많았다고. 앞으로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덧붙인다. 둘은 강연회의 내용에 대해 자연스레 의견을 나눈다. 그러다가 소연이 소책자를 현준에게 건네면서 말한다.
“취미 동아리인 ‘돌풍’의 팸플릿이에요. 오늘 대면한 기념으로 드릴게요. 거기엔 제 작품과 연락처도 실려 있어요. 다음에 시간이 나거든 전화 한 번 주세요. 맛있는 차를 사 드릴게요. 차의 맛은 서울의 인사동 만한 데가 드물 거예요.”
소연은 맑은 눈으로 현준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듬뿍 짓는다. 현준도 덩달아 씽긋 웃고는 고개를 숙여 잠시 팸플릿을 들여다본다. 현준이 팸플릿을 펼쳐보니 한국화가 잔뜩 뒤덮여 있다. 소연의 취미가 그림이라니? 그것도 꽤 흥미 있는 사실로 여겨진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던 소연이 현준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 현준은 손을 가볍게 흔들어 응답한다. 소연도 손을 가볍게 흔들더니 자신의 동료들이 있는 식탁으로 건너간다. 현준도 심 교수가 있는 식탁으로 되돌아간다. 다음 날이 토요일인 관계로 심 교수는 하루를 춘천에서 묵겠다고 한다. K대학교의 몇몇 교수들과는 출신대학 동문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과 어울려 하루를 보내겠다고 한다. 후배 대학원생 넷은 춘천의 야경을 구경하겠다며 길을 함께 떠났다. 현준도 따로 길을 나서려고 발길을 옮긴다.
작별 인사를 하고 대학의 정문을 막 벗어나려 할 때다. 경적을 울리며 흑색 소나타가 다가선다. 차량번호를 보니 친구인 용수의 차다. 화들짝 반가운 마음에 손을 번쩍 들며 달려간다. 접근하는 현준을 향해 용수가 소리치듯 말한다.
“야, 사태가 심상치 않아. 빨리 차에 올라타.”
현준이 탑승하자 차는 정문을 곧장 지나 남춘천역 방향으로 달린다. 병무청 근방을 지날 무렵. 용수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주위를 가리킨다. 도로변의 곳곳에 사람들이 길가에 주차시키고는 아무렇게나 졸고 있다. 일부는 차에 기대어 졸기도 하고 일부는 가로수에 기대어 존다. 드물게 보는 기현상이 아닐 수 없다. 현준이 사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다수가 학술회의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이다.
현준에겐 직감적으로 뭔가 일이 발생된 느낌이 든다. 용수와 함께 졸고 있는 사람들을 깨우며 그들에게 언제부터 졸음이 왔는지를 묻는다. 하나같이 K대학교의 정문을 통과할 때부터 졸음이 갑작스레 몰려왔다고 한다. 시간을 따져 보니 단순한 식곤증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30여 명에 달하는 집단 졸음 현상이라니! 현준에겐 아무래도 심각한 사태가 벌어진 느낌이 든다. 위기의식을 느끼며 현준은 즉시 119에 전화를 건다. 금세 구조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하더니 조는 사람들을 K대 병원으로 실어 나른다.
병원에선 환자들의 가검물(可檢物)을 채취하여 부유성 알칼로이드에 의한 중독 현상이라고 밝힌다. 병원측의 원인 규명에 따라 경찰에서도 긴급 수사에 나선다. 수사본부를 K대 본부에 세우고 정문을 비롯한 주변을 샅샅이 수사한다.
한편, 현준과 용수는 사람들이 병원으로 실려 간 뒤. 잠시 남춘역 부근의 카페에서 진행되는 수사 속보에 귀를 기울인다. 매스컴은 연이어 속보를 발표한다. 부유성 알칼로이드는 미세한 분말로 공기 중에 퍼져 사람들에게 수면증세를 일으킨다고 한다. 알칼로이드가 주로 살포된 장소는 교내의 주차장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대부분 승용차를 타고 정문을 나서려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다행히 피해자들에게 커다란 부작용은 없으며 2시간이 경과되면 정상상태로 되돌아오게 된다고 한다. 알칼로이드란 식물에서 추출되는 물질로서 적은 양으로도 강력한 약리작용을 나타내는 물질이다. 예컨대, 코카나무의 코카인이나 커피나무의 카페인, 살구나무의 아미그달린 등이 알칼로이드이다. 이 번의 알칼로이드는 해조류에서 채취된 거라고 당국에선 추측한다.
여기까지의 속보를 듣는 순간. 현준은 돌연 군산의 심포항에서 만났던 5명의 사내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해초의 줄기에서 분출되는 가루를 채취하지 않았던가? 현준에겐 그 사내들이 이 번의 사건과 연루된 건 아닐까 부쩍 의심스럽다. 현준은 자신의 견해를 용수에게 말한다. 용수의 눈빛이 반짝이더니 자신의 생각으로도 의심스럽다고 밝힌다. 화면에 제시된 피해자들 속에는 심 교수가 들어 있지 않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는 찰나. 카페의 대형 모니터에서 또다시 속보가 흘러나온다.
“방금 들어온 소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춘천 K대학교의 학술회와 관련된 사건입니다. 의식을 잃었던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연구 성과물을 도난당했다고 합니다. 국내의 기술을 노린 외국 스파이들의 범죄로 추측되는 가운데 경찰은 수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용수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살벌하군. 학술 회의장까지도 스파이가 침투할 정도라니!”
현준이 용수의 차에 오르자 용수는 춘천호 가장자리의 춘천역을 감돌아 56번 국도를 달린다. 느랏재 터널을 지나 동면의 상걸리에서 지방도를 타고 신이리에 도착한다. 신이리 선착장에 주차시키고는 선착장에서 동면의 품안리 잉어골까지 둘은 배를 탄다. 잉어골은 소양호의 동쪽에 위치한 곳으로 붕어와 잉어가 잘 잡히는 낚시의 포인트다. 현준이 궁금하여 용수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K대까지 왔어?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물어볼 경황이 없었어.”
용수는 빙긋 웃더니 또렷한 음성으로 응답한다.
“지금 방학 기간이잖아? 사흘 전부터 너를 기다리며 소양호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어. 학술회의가 끝나는 대로 너를 데려가려고 K대학교를 찾았던 거야. 너도 낚시라면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잖아?”
“아, 그랬어? 나도 여기까지 온 김에 너랑 낚시질을 해 봐야겠군.”
배가 잉어골에 도착하자 둘은 사뿐히 호반에 내린다. 호수의 깊숙한 곳이어선지 낚시꾼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현준은 잠시 심 교수에게 전화를 건다. 뉴스를 듣고 궁금하여 전화를 한다면서 심 교수의 안부를 묻는다. 심 교수가 반가운 목소리로 응답한다.
“백군! 나랑 술친구들은 모두 잘 있네. 내일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데 과연 견뎌낼지 걱정이네. 자네도 같이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군. 자네도 며칠 쉬겠다고? 실험에 영감을 주는 데에는 휴식도 커다란 역할을 하거든. 염려 말고 자네도 즐겁게 쉬다가 돌아오게. 그만 끊겠네.”
잉어골 주변의 지세는 평탄하며 야영장까지도 갖춰져 있다. 호수를 건너 잉어골의 북쪽에는 산막골이 있으며 동쪽으로는 곧은골, 서쪽은 소양댐에 연결된다. 잉어골 남쪽 1km 떨어진 지점에는 새골 선착장이 있다. 새골의 서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산악으로 연결된다. 현준과 용수는 그 가파른 지형에 탄성을 터뜨린다. 신이리에서 잉어골까지는 좁고 길쭉한 형상으로 소양호가 돌출되어 있다.
현준은 시계를 들여다본다. 밤 10시 무렵이다. 라디오를 통해 저녁 뉴스를 듣는다. 입원했던 30여 명의 환자들은 전원 퇴원했고 후유증은 아직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입원했던 사람들 이외에도 귀가하던 중에 수면에 취한 사람들에 대한 제보가 있었다고 한다. 추가 피해자는 십여 명에 이르는데 다들 연구물을 수면 중에 탈취당했다고 한다. 지난 1주일 동안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탐문 수사를 진행한다고 한다. 현준과 용수는 라디오를 끈다. 그러면서 한숨을 내쉰다. 탐문 수사를 한다는 건 수사는 이미 물 건너간 걸 의미하기 때문이리라. 둘은 가벼운 울분마저 느꼈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태다. 당시에 학술 회의장 외곽의 경비를 맡았던 경찰들은 뭘 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지만 참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야영장에 텐트를 치고 용수와 취침 준비를 한다. 야영장에는 10여 채의 텐트가 가지런히 줄을 잇고 있다. 어수선한 정국이지만 잠을 자야 할 상태다. 펄떡이는 심장 박동을 추스르며 현준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날이 새면 세상이 평온해지길 바란다. 현준과 용수는 이내 수면 상태에 빠져든다.
새벽 4시에 현준과 용수는 기상했다. 텐트를 살며시 빠져 나와 호반의 포인트를 찾아 자리를 잡는다. 6개의 릴낚싯대에 지렁이를 끼워 호반에 나란히 펼쳐 세운다. 형광 찌의 움직임만 주시하면 된다. 둘은 낚시용 간이의자에 앉아 물 건너 북쪽의 산막골을 바라본다. 새벽 공기가 이를 데 없이 청량하기만 하다. 현준은 멀리 떨어진 야영지를 흘깃 바라본다. 인기척이라곤 없다. 다들 한창 깊이 잠든 모양이다. 낚싯대를 그대로 둔 채 둘은 호반을 따라 새벽 산책을 하기로 한다. 주위가 캄캄하여 소형 랜턴을 켠다. 전지로 작동되는 거라 2시간가량은 겨우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둘은 길쭉하게 남쪽으로 내리뻗은 호반을 따라 거닐기로 한다. 20분만에 새골 선착장에 닿는다. 둘은 잠시 새골 선착장의 지형을 살핀다. 물길이 시원하게 뚫려 있으며 남북 상하의 이동에 불편이 없는 자리. 선착장의 지형으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곳이라 여겨진다.
둘이 선착장에서 시선을 거둘 무렵. 어디선가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미약한 소리였지만 분명한 사람들의 소리다. 현준은 의혹에 잠긴다. 아니 이렇게 이른 시각에 누가 몰려다닐까? 둘은 조용히 주변을 둘러본다. 랜턴도 곧바로 꺼 버린다. 이내 사방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인다. 현준과 용수는 일단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몸을 감춘다. 10여 분이 지나도록 사방은 고요할 뿐이다. 혹시 아까 잘못 듣기라도 한 걸까? 현준과 용수는 잠시 시선을 교환한다.
난데없이 물 가르는 소리가 들리며 고무보트 한 척이 선착장에 도착한다. 7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고무보트에서 내린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반으로 보인다. 신장과 체격으로 볼 때 모두가 거구들이다. 첫눈에 조직 폭력배 같은 느낌이 든다. 보트에서 내리자마자 일제히 주위를 휘둘러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사내들의 눈빛이 현준에겐 서슬 퍼런 비수의 날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사내들이 날렵한 동작으로 짐을 부리기 시작한다. 현준과 용수는 숨소리도 죽인 채 그들을 지켜본다. 사내들이 짐들을 다 부린 뒤다. 1명은 짐을 지키고 6명이 보트를 두 팔로 받쳐 든다. 5분쯤 지나자 사내들이 되돌아온다. 보트는 어디에 두었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되돌아온 사내들은 짐들을 챙겨들고 신속히 새골의 서쪽 산기슭으로 이동한다. 현준과 용수도 살금살금 그들을 미행하기 시작한다. 헌데 20여 분쯤 미행했을 때다. 사내들의 자취가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마치 액체가 증발한 듯하다. 혹시 미행을 눈치 채고 몸을 숨긴 건 아닐까도 싶다. 그렇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준과 용수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도 있다. 현준과 용수는 눈빛을 교환한 뒤 십여 분간 엎드려 있었다. 십여 분의 시간이 어떻게 길게 느껴지는지 모를 정도다.
마침내 십여 분의 시간이 지난 뒤. 현준과 용수는 사내들이 사라진 곳을 향해 다가간다. 숨었던 사내들이 일시에 내달을까 봐 두렵다. 둘은 청각신경을 최대로 팽팽히 긴장시킨 채 주위를 조심스레 살핀다. 20여 분간을 살펴도 사내들이 일제히 사라진 곳을 찾을 수가 없다. 둘은 돌발 상황에 대비하면서도 꼼꼼히 주변을 살핀다. 하늘로 치솟지 않고 바다로 사라지지 않은 다음에야 뭔가 흔적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주변을 탐색하느라고 어느새 1시간이 지났다. 다시 1시간을 더 찾아본다. 하지만, 보트를 숨긴 곳도 사내들이 사라진 곳도 찾을 수가 없다.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둘은 날이 밝자 새골 선착장으로 내려와 잉어골로 돌아왔다. 둘은 새벽에 설치해 둔 낚싯대로 다가간다. 2개의 낚싯대에는 미끼인 지렁이가 뜯기고 없었으며 4개의 낚싯대에 손바닥만한 붕어가 걸려 있다. 건진 붕어는 물을 채운 플라스틱 통에 담근다. 6개의 낚싯대에 새로운 미끼를 달아 호수에 담근다.
둘은 텐트로 돌아가서 라면을 끓여 아침식사를 간단히 마친다. 라디오를 틀어 보았지만 더 이상은 춘천 학술회의에 대한 뉴스가 언급되지 않는다. 떠들어대던 뉴스가 잠잠해지자 현준에겐 오히려 불안감이 밀려든다. 폭풍 전야의 고요라 할까? 뭔가 더 큰 일이 터질 듯한 기분이 든다. 둘이 잠시 긴장 상태에 있다가 용수가 먼저 입을 연다.
“오늘 새벽의 일이 혹시 꿈은 아니었지? 어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
현준도 마치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라고 응답한다. 그러면서 용수에게 점심 먹고 나중에 다시 가 보자고 말한다. 용수는 잠시 생각을 하는 눈치더니 응답한다.
“솔직히 우리 둘만으론 대단히 위험해. 만약 그들이 아까부터 우리를 지켜보며 미행한다고 생각해 봐. 그래서 우리를 은밀히 제거하려고 한다면 어쩔 거야? 어쩌면 우리의 행동은 녀석들의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아닌 게 아니라 현준에게도 불안한 느낌이 잔뜩 든다. 잠시 용수의 물음에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뭔가 모르게 자꾸만 의구심이 치솟는다. 아무래도 사내들의 행적이 춘천의 학술 회의건과 관련이 있을 것만 같다. 사건이 발생된 춘천에서의 낯선 사내들의 수상한 행적이기 때문이다. 현준의 응답이 없자 연이어 용수가 가라앉은 음색으로 제안한다.
“혹시 경찰에 신고하면 어떨까? 상대의 신원을 모르니까 일단은 의심스럽잖아? 혹시 알아? 무장공비라든지 고정 간첩단일지도 모르잖아?”
현준이 이의를 말한다. 아무런 단서도 못 찾은 채 신고한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무려 2시간이나 탐색했어도 단서를 찾지 못한 터다. 이런 상태로는 신고할 명분조차 없다는 현준의 견해다. 신고를 한다고 치더라도 경찰에서마저 단서를 못 찾는다면? 그 땐 현준과 용수는 정신 이상자나 허위 신고자로 내몰릴 수도 있으리라. 현준의 견해를 들은 뒤. 용수가 의견을 내놓는다. 상황이 어떻든 그냥 지나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모험을 걸고서라도 둘이 다시 부딪쳐 보는 건 어떠냐고 용수가 말한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현준이 용수에게 묻는다. 용수의 무술 경력의 유무에 관하여. 용수는 대학 시절에 유도 2단을 땄다고 밝힌다. 그렇지만 유도를 이용해 남들과 싸운 일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현준이 고개를 끄떡이더니 자신의 무술 경력도 밝힌다. 현준은 석사과정 때에 태권도 공인 3단을 땄다고 들려준다. 현준도 순수한 체력 단련용으로 수련했음을 밝힌다. 그랬기에 남들을 상대로 무력을 휘두른 적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둘은 다시 서로에게 묻는다. 근래에도 계속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지를? 의외로 둘 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떡인다. 용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현준에게 새로운 제안을 한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려면 당연히 자력으로 해결해야지. 언제까지 망설이고 있을 거야? 텐트 친 곳으로 가자구. 거기에 여벌의 체육복이 2벌이 있거든. 둘 다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뒤에 저기 언덕 뒤쪽의 모래사장으로 가자. 거기에서 서로를 적이라 생각하고 실제 상황처럼 겨루는 거야. 다양한 경우를 대비하여 실력을 숨김없이 털어내야 돼. 모래가 두껍게 쌓인 곳이니까 내가 널 던져도 부상은 없을 거야. 우리에게 마우스피스가 없기에 너는 내 얼굴만 빼고 맨발로 공격하면 어떻겠냐?”
현준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흔쾌히 대답한다. 마침 둘의 체격이 비슷하기에 별 무리가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
오전 11시 무렵이다. 잉어골 뒤편 언덕 아래에는 모래가 두껍게 쌓인 백사장이 있다. 거기는 낚시터와는 반대 방향이어서 사람들의 출입은 거의 없는 곳이다. 마침내 현준과 용수는 체육복 차림으로 마주 선다. 10분 동안 겨루고 3분씩 휴식을 취하기로 약속한다. 예정에 없던 둘 간의 격투기 시합이 열리려는 순간이다. 둘은 부상을 막기 위해 충분히 체조를 통해 몸을 푼다. 이윽고 서로를 마주보며 목례를 한다. 겨루기를 시작하자는 뜻이다.
현준은 오른발 후굴서기 자세로 섰다가 왼발을 연속으로 내밀며 신속히 용수에게 다가선다. 용수는 양 손을 앞으로 펴서 태클을 걸 자세를 취한다. 현준은 왼발로 용수의 중단을 날렵하게 걷어찬다. 바로 이 순간 용수가 양손으로 현준의 왼다리 바지자락을 기민하게 움켜쥔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상한 듯. 현준은 왼다리를 용수에게 붙잡힌 채 오른발로 뛰어 현준의 턱을 걷어차 버린다. ‘퍽’ 소리가 나며 용수가 턱을 움켜쥐며 백사장으로 나뒹군다. 다시 용수가 일어나서 현준의 엉덩이 뒤로 손을 돌리는 순간에 현준이 백사장으로 나뒹군다. 다시 현준이 일어서며 옆으로 손 짚어 돌더니 양발 앞차기로 용수의 가슴을 찬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용수가 다시 백사장으로 나뒹군다. 반시간가량을 숨 가쁘게 수련한 뒤였다. 둘은 상대로부터 공격당한 충격으로 정신이 멍한 상태다.
다시 반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 뒤. 둘은 텐트 친 곳으로 간다. 용수는 밥을 짓고 현준은 붕어 매운탕을 장만한다. 붕어의 비늘을 칼날로 털어내고 배를 따서 창자를 빼낸 뒤. 몇 차례 맑은 물로 씻은 다음. 칼자루로 마늘을 찧고 고춧가루도 풀어 넣고 파도 썬 다음 함께 넣는다. 그런 다음 냄비의 3분의 2가량 물을 채운 뒤에 간장을 두어 숟갈 넣는다. 밥 냄비를 내린 뒤에 매운탕 냄비를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올려 점화시킨다. 냄비에 매달린 물방울이 흘러내리느라고 ‘쉬익’하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린다. 5분쯤 지나자 냄비 뚜껑이 들썩거리며 증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증기에 휩싸여 매운탕의 알싸한 냄새가 퍼져 흐른다. 매운탕이 끓자 잠시 식힌 뒤에 둘은 식사를 시작한다. 오랜만에 밥 구경을 하는 듯. 둘에겐 밥맛이 혀에 감기는 느낌이다. 용수가 매운탕을 떠서 한 입 삼키더니 감탄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언제 매운탕 끓이는 법을 익혔느냐고 현준에게 묻는다. 현준은 빙그레 웃음을 띠며 그냥 끓여 봤을 뿐이라고 대꾸한다. 그러면서 용수가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고마울 따름이라고 들려준다.
다시 옷을 갈아입은 후. 텐트를 떠나기에 앞서 둘은 행동 방향에 대해 재차 상의한다. 용수가 먼저 입을 연다.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이 잘 하는 일인지 모르겠네? 괜히 설치다가 회복할 수 없는 불상사가 생기면 어떻게 하지? 예컨대 놈들과 겨루다가 눈이 빠지든지 살해되는 일이라도 생기면 끝장이잖아? 그냥 못 본 체 지나치면 어떨까도 싶어.”
현준의 얼굴에도 잠시 불안한 기색이 스친다. 현준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뭔가 생각하는 눈치더니 입을 연다.
“불안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야. 가장 안전한 방식은 우리가 그대로 손을 떼는 일일 거야. 헌데 왠지 자꾸만 춘천의 그 사건과 관련이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런 걸 예감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느낌이 묘해. 정 네 마음이 탐탁치 않으면 나도 손을 뗄게. 만약 조금이라도 진상을 밝힐 마음이 있다면 함께 거기로 가고 말이야.”
용수는 현준에게 잠시 생각할 기회를 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다. 생각에 잠긴 용수를 바라보며 현준도 마음을 정하려고 작정한다. 아무래도 그냥 물러설 일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모험을 하더라도 탐색해 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다. 부딪쳐서 뭔가를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다. 생각에 잠긴 용수를 바라보며 현준은 나름대로 판단한다.
‘이상한데? 이전에는 용수가 대범하기 이를 데 없는 성향의 사내였는데 그 새 변했나? 하긴 세월이 흐르면 성향이 바뀔 수도 있겠지.’
10여 분이 흘렀을 때다. 마침내 용수가 마음을 정한 모양이다. 신중한 목소리로 용수가 말한다. 모험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부딪쳐 보자고. 괴한들이 춘천 사건과 혹여 연계된 거라면 묵과할 수 없다는 견해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리라며 눈빛을 번쩍인다. 그러다가 현준에게도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지를 묻는다. 현준도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자 용수가 현준에게 하나의 제안을 한다.
용수에겐 춘천에서 합기도 도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두어 명 있다고 한다. 그 친구 두어 명에 무술 잘 하는 수련생 서너 명을 부르겠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1시간은 너끈히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만약 용수의 친구들이 용수의 도움을 거절하면 그 때엔 둘이라도 탐색해 보자고 한다.
일단은 낚시터로 가기로 한다. 거기에서 일의 진행 방향을 정하기로 한다. 일단 둘의 소지품들이 텐트 속에 있기 때문이다. 텐트 주변의 어망에는 20여 마리의 낚인 붕어들이 헤엄치고 있다. 포획된 상태를 초연한 붕어들의 유영에는 자유로움이 남실댄다. 현준이 낚싯대를 둘러보며 미끼를 갈아 끼울 때. 용수는 핸드폰으로 춘천 시내의 친구들을 향해 전화를 건다. 의사가 잘 전달이 안 되는지 역정을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목소리를 낮춰 달래기도 하면서 끈기를 갖고 용수가 전화를 한다. 용수가 열심히 친구들의 도움을 청하는 동안. 현준은 그 동안의 라디오의 보도를 바탕으로 춘천의 사건을 추측해 본다.
학술회의가 진행 중일 때 누군가가 주차장에 부유성 알칼로이드를 살포했으리라. 알칼로이드를 살포한 사람은 한국인의 연구 성과물을 탈취하려는 목적을 지녔으리라. 분사된 알칼로이드로 인해 사람들이 수면에 잠길 때 범인들은 성과물을 탈취했으리라. 범인들은 아마도 외국인들의 교사를 받은 내국인들이었으리라. 외국인들이라면 경찰에 의해 통제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련된 외국이 어디일지가 미지수로 남겨진 상황이다. 유전공학의 기술은 미래의 유력한 자원이다. 어느 나라에서 먼저 유전 공학 기술을 체계화하느냐에 따라 자본의 대이동이 예상된다. 따라서 그 기술에 관한 한 세계의 중요 관심사가 되어 있으리라.
“뭐라고? 그런 일로는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그런 일이 뭔데? 야,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나 했냐? 그래도 내 친구란 놈이 왜 그래? 뭐가 뒤틀려 그렇게 시시콜콜히 따지는 거야? 그냥 좀 도와주면 안 돼? 알았어. 아, 글쎄 알았다구. 우리의 교류의 깊이가 고작 이 정도였냐? 네 뜻 충분히 알아들었으니 그만 끊자.”
용수의 얼굴에 격분의 빛이 서려 일렁인다. 자존심이 무척 상한 표정이다. 다시 다른 데로 전화번호를 눌러댄다. 의례적인 안부 인사가 오간다. 핸드폰의 음량을 최대한으로 올려놓았는지 상대방의 목소리까지 깔끔하게 들린다.
행여나 싶어 볼륨을 낮춘 채 라디오를 켠다. 기다렸다는 듯이 뉴스가 흘러나온다.
“어제 발생한 춘천 학술회의에 관한 소식입니다. 행사가 끝난 지 하루가 지나도록 서울 D대학교 T교수와 장은정 양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수사본부에서는 일단 납치에 따른 실종으로 보고 탐문 수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발적인 다른 사고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종자를 본 사람은 수사본부나 저희 방송국으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현준은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연구 성과만 탈취된 게 아니라 사람까지 납치되었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라 여겨진다. 2사람은 점심 식사시간 이후부터 안 보였는데 그 때부터 납치당했단 말인가? 분명 실내엔 도우미들도 있었고 외곽엔 정복 차림의 경찰들도 깔려 있지 않았는가? 치안에 구멍이 뚫린 건 확실한 일이었다. 현준의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다. 그렇게도 당국에서 치안 유지에 애썼건만 실종 사건이 발생되다니? 결코 단순한 실종 사건일 리가 없는 상황이다. 사람과 유전 관련의 기술의 실종으로 연결되는 사건이 아닌가? 현준에겐 뇌혈관이 파드득거리며 줄줄이 곤두서는 기분이 든다. 당국에선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려는가?
“야, 영복이냐? 요즘 네 얼굴이 텔레비전에 많이 뜨더라. 친구로서 정말 축하한다. 그런데 너 잠깐만 나 좀 도와줄래?”
“뭔데? 이야기를 들어 봐야 알지, 안 그래?”
도장의 친구들이 협조하지 않으니까 이 번에는 격투기 선수한테까지 도움을 청하는가 보다. 현준은 용수를 다시 한 번 살펴본다.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줄기차게 밀고나가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협조를 얻으려 애쓰는 용수를 지켜보다가 현준은 감탄했다. 결단을 내리고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열정적인 용수가 아닌가? 저런 열정에서 뭔가의 결실이 얻어지리라 현준은 생각한다. 용수가 저렇게 애쓰는데 자신은 정작 불러들일 친구가 없을까하는 생각이 현준에게도 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현준도 친구들의 협조를 구하려고 작정한다.
현준도 낚싯대를 설치해 놓고는 핸드폰을 연다. 춘천역 부근에서 도장을 운영하는 용호에게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밀려가자 용호가 전화를 받더니 무척 반기는 기색이다. 현준은 차분하게 춘천 학술대회의 사건과 실종 사건을 연관시켜 용호에게 설명해 준다. 그리곤 잠시 뜸을 들인 뒤에 용호의 잠재된 의리를 부추기는 말을 한다.
“너도 생각해 봐라. 우리나라 학자와 여학생이 어떤 못된 외국인들에게 납치되어 지금도 곤욕을 치른다고 생각해 봐? 만약 네 형님이나 여동생이 그렇게 됐으면 가만히 있겠냐?”
“현준아, 좀더 자세히 애기해 봐. 납치했다는 놈들을 네 눈으로 직접 봤어? 그 놈들이 외국인들이었냐구? 항상 일은 신중하게 처리해야 뒤탈이 없다는 건 너도 잘 알지?”
현준은 잠시 심호흡을 한 후에 용호의 물음에 대답한다.
“내가 오늘 새벽에 본 녀석들이 외국인은 아니었지만 행동이 매우 수상했어. 어쩜 납치하라고 지시한 외국인의 끄나풀일지도 모를 일이야. 시간을 다투는 매우 중요한 일이거든. 내가 이전에 너한테 무슨 부탁한 일이 있냐? 이 번이 처음이지? 그것도 내 개인적인 부탁이 아니란 말이야. 어지간하면 나 좀 도와 줄 수 없겠니?”
“좋아, 알았어. 나까지 7명 정도면 되겠냐? 일단 상대의 감춰진 숫자가 얼마일지 모르니까 대비는 충분히 해야 돼. 1시간 내에 거기로 달려갈게. 기다려!”
합기도 4단의 관장인 용호가 마침내 현준을 도와주기로 약속한다. 선선히 응하는 용호의 태도가 믿음직스러워 순간적으로 현준의 눈에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다.
용수도 7명이 도와주기로 했다고 현준에게 말한다. 1시간이 지나자 거의 때를 같이 하여 14명의 조력자들이 나타난다. 용수의 친구인 영복은 세계적인 격투기 선수다. 영복은 동료 격투기 선수들 6명을 설득하여 함께 달려온 거였다. 용호도 자신의 무술 친구 6명을 불러들여 함께 왔다. 이제 탐색 인원은 도합 16명에 이른다.
오후 3시 무렵. 새벽에 낯선 사내들이 행적을 감춘 곳에 이르러 탐색을 하기로 한다. 낯선 사내들의 행적이 사라진 최종 지점에 16명의 사내들이 모인다. 2인 1조가 되어 8개 방향으로 분담하여 탐색해 나가기로 한다. 지형의 약도와 탐색을 분담할 방향은 용수가 일행에게 제시한다. 현준과 용호가 1조, 용수와 영복이 2조. 이런 방식으로 도합 8개의 조로 편성이 된다. 각 조는 호루라기를 지참하고 유사시에는 2차례 연이어 불기로 한다. 해산하여 탐색하기 전에 유의점을 잠깐 의논한다. 일행은 보트를 머리에 인 채 이동한 점을 중시한다. 보트를 머리에 이고 이동했다면 주변의 잡목들에 그런 흔적이 있으리라는 점이다. 또한 낯선 사내들의 은신지점(隱身地點)은 최종 목격지점으로부터 절대로 멀리 떨어지지 않았으리라고 추정된다.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점으로 볼 때엔 지하로 드나드는 비밀 출입구가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일행은 의견을 서로 교환한다. 비밀 출입구가 되기 쉬운 곳은 어떤 지형일까에 관하여. 금세 유력한 의견들이 제시된다. 지상으로 드러난 암벽의 표면 주위에 위장된 출입구가 있으리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다음으로는 출입구가 작은 바위나 고사목으로 가려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견해다. 잡초로 밀집된 지역에 비밀 통로가 은폐되어 있으리라는 견해도 제시된다. 충분히 의견 수렴을 한 뒤에 일행은 일제히 사방으로 흩어진다.
의심을 하려고 드니 지상에 노출된 암벽이 너무 많다는 느낌이 든다. 일행은 조심스레 하나하나 살펴나간다. 바위를 건드려도 보고 밀치기도 해 본다. 어지간한 나무도 밑동을 살며시 밀쳐본다. 수목의 나뭇잎의 변형 상태나 땅바닥에 생긴 흔적들도 면밀히 살핀다. 강렬한 폭포수가 여러 갈래로 흩날리듯. 탐색조의 발걸음들이 신속히 주변의 산야로 흩어진다. 돌출된 지형마다 건드려도 보고 밟아도 본다. 16명의 마음이 한 가닥으로 연결되어 산야를 뒤지는 것이다. 결속과 단합의 의미를 떠올리며 현준은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8개 조 16명의 탐색 팀들은 잔뜩 긴장한 차림으로 주위를 면밀히 살핀다. 마치 맞춰 둔 산삼을 찾기나 하려는 듯 열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들 핸드폰도 진동으로 전환시켜 둔 상태다.
느닷없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흩어져 있던 탐색 인원들은 즉시 소리 난 곳으로 내달린다. 현준과 용호도 지체 없이 달려간다. 호루라기를 분 사람은 용수였다. 일행이 탐색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곳은 의심스런 사내들의 은신지점이다. 용수가 호루라기를 불었던 위치는 탐색의 출발점에서 북서쪽으로 20여m 떨어진 곳이다. 사람의 키를 훨씬 넘어서는 억새숲 속에 고무보트가 뒤집힌 상태로 감춰져 있다. 억새숲 속에 감춰진 것이라 좀처럼 눈에 띄지 않은 터다. 헌데 고무보트만 보였을 뿐. 주변에는 비밀 출입구나 통로 같은 건 안 보인다. 일행은 활기를 띠려다가 허탈해지는 심정이다. 현준이 의견을 제시한다.
“보트를 찾았으니 비밀 출구는 여기서 가까이에 있을 겁니다. 여기를 출발선으로 삼고 아까 정했던 방향으로 조별로 탐색해 봅시다.”
용수가 잠시 의견을 나누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녀석들이 왜 여기다 보트를 숨겼을까요? 아마 이동거리도 짧고 눈에 잘 안 띄는 장소이기 때문일 겁니다. 일단 녀석들은 보트를 숨겨두고는 비밀 출입구를 통해 몸을 숨겼으리라 생각됩니다. 보트를 여기에 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유사시에는 언제라도 보트를 점검할 수 있는 거리에 녀석들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어요? 하지만 억새숲은 잎이 푸를 때나 말랐을 때나 무성한 건 변함이 없죠. 바로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녀석들의 은신처는 의외로 멀리 있을 수도 있겠죠. 적어도 여기서 사방 200m까지의 거리는 샅샅이 찾아보기로 합시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어떤 결과가 손에 잡히리라 여겨집니다.”
일행은 용수의 의견에 동의하여 고개를 끄떡이면서 탐색 작업에 나선다. 보트를 찾았기에 탐색 작업은 활기를 띤다. 보트는 칠흑 같은 밤중에 발견된 횃불과도 같은 존재다. 탐색 작업에 이처럼 뚜렷한 서광이 있을까 싶어 현준의 마음은 뒤설렌다. 미지의 탐색로가 얇은 망사로 슬쩍 가려져 있는 느낌이다.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단서를 얻으리라 여겨진다. 저마다 고사목의 나뭇가지를 꺾어 손에 쥐고는 수목이며 바위를 툭툭 쳐 본다. 길길이 자란 풀숲도 일일이 나무 막대기로 헤치며 살펴본다. 더러 풀숲에 숨어 있던 꿩이며 산비둘기가 활개를 치며 날아오르곤 한다. 우뚝 치솟은 너럭바위도 나무 막대기로 일일이 쑤시며 건드려 본다. 그러다가 어느 한 군데가 구멍을 드러내며 열리지는 않을까 기대해 보며. 일행은 각자 한시도 쉬지 않고 탐색 작업에 여념이 없다. 다들 탐색의 출발점에서 방사선이 분출되듯 사방으로 흩어져 산야를 뒤지고 있다. 마치 숨겨진 산삼이나 찾는 듯한 흥분마저 감도는 듯하다. 다들 탐색의 출발점에서 50 ∼ 60m쯤 떨어진 거리에서 분주히 산야를 뒤진다. 현준과 용호도 남들에게 뒤질세라 한시도 허리를 펴지 않는다. 나무 막대기가 부러지면 새로운 나뭇가지를 꺾어 나무 막대기로 삼는다. 산야의 사방에서는 바스락대는 소리와 돌 구르는 소리가 연이어진다. 곳곳에서 ‘꿕꿕’ 소리를 내지르며 수꿩이 하늘로 날아오른다. 산야가 오랜 세월에 걸쳐 동면하다가 깨어나는 듯하다.
마침내 현준과 용호는 탐색의 출발점에서부터 100m쯤 떨어진 능선 위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풍경은 완연히 달라 둘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현준과 용호가 타오른 동쪽의 비탈면과 펼쳐지는 서쪽의 비탈면은 경사도가 완연히 다르다. 능선 서쪽의 경사면은 완전히 수직면을 이룬 까마득한 절벽이다. 더구나 아래에는 자욱한 안개로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여태껏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고 동쪽 비탈면만을 더듬었으니 어찌 상상이나 했을까? 서쪽 비탈면 건너편에는 남북으로 대략 2km에 달할 웅장한 산줄기가 내뻗쳐 있다. 고도가 400m는 되어 보이는 우람한 산줄기다. 능선 서편 수직면의 산비탈과 건너편 서쪽의 웅장한 산줄기 사이. 거기에는 거대한 계곡이 남북으로 형성되어 안개에 휩싸여 있다. 계곡의 폭은 100여m로 추정된다. 계곡 건너편 산의 경사면은 70?에 이를 정도로 가파른 모양새다. 계곡 아래의 지형은 안개로 뒤덮여 추측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래도 작은 폭의 강줄기가 흐르리라고 유추된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으로 인해 현준과 용호는 넋을 잃을 지경이다. 잠시 자연의 풍광에 취했다가 둘은 탐색 작업에 몰입한다. 이내 둘의 시선은 주변을 쓸 듯이 살핀다. 둘은 능선을 따라 걸으며 깎아지른 절벽을 이룬 서쪽 비탈면도 내려다본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다. 현준의 눈에 사람의 손때가 전 소나무 둥치가 드러나 보인다. 현준은 잠시 소름이 끼치는 느낌에 휩싸인다. 수직 절벽인 서쪽 비탈면에 돌출한 소나무 둥치이기에 그런 느낌이 든 거다. 그 소나무 둥치를 잡고 누군가 수차례 나다녔다는 얘기가 아닌가? 혹시 잘못 본 건 아닐까 싶어 현준은 자세히 소나무 둥치를 살펴본다. 틀림없이 사람의 손때가 묻어 반들거리는 상태다. 현준은 용호에게도 확인해 보라고 권한다. 용호도 곧바로 고개를 끄떡이며 말한다.
“거의 단서를 잡은 것 같군. 이 소나무 아래로 내려가면 반드시 녀석들의 비밀 통로가 나타날 거야. 소나무에 전 손때를 보니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이 나다닌 것 같애.”
현준도 그럴 거라고 동의한다. 그러면서 현준은 호루라기를 부는 게 어떻겠냐면서 용호의 의견을 묻는다. 용호는 고개를 저으며 반대 의견을 말한다. 어쩌면 호루라기 소리를 괴한들이 듣고 경계를 취할지도 모르리라는 견해다. 그럴 위험을 피하려면 동편 산비탈까지는 내려가는 게 낫겠다는 의견이다. 그래서 소나무 둥치 주변의 위치를 기억해 둔 후. 이윽고 둘이 동쪽 산비탈의 중간 지점에 이른 뒤다.
잠시 숨결을 고른 뒤. 현준은 호루라기를 강하게 두 번 분다. 각 방향의 탐색 조원들이 일제히 현준에게로 달려든다. 풀숲과 수목이 흔들리며 탐색 조원들의 몸놀림이 날렵하게 움직인다. 탐색원(探索員)들에게 어떤 포상이나 금전이 약속된 것도 아닌 터다. 이들은 단지 현준과 용수를 돕는다는 일념으로 움직일 따름이다. 풀숲에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내닫는 탐색원들을 바라보는 순간. 현준은 가슴에 싸한 물결이 일며 눈물마저 핑 돈다. 현준은 중얼댄다.
‘그래, 이게 진정한 결속의 몸부림이 아닐까?’
몰려든 탐색원들은 하나같이 모두 긴장한 얼굴들이다. 16명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뒤다. 현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행에게 말한다.
“저기 능선 위쪽에 굵직한 소나무가 보이죠? 거기에 사람의 오랜 손때가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문제는 그 소나무 밑이 까마득한 수직의 절벽이란 점이에요. 아마 그 절벽의 어디엔가 비밀 출구가 있으리라 여겨져요. 다들 그리로 가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