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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황색 갈매기 날다 손 정 모
12. 비상하는 갈매기
20XX년 7월.
세월은 밤하늘의 유성처럼 빠른 것일까! 숱한 유전기술이 정립된 2006년으로부터 몇 년이 성큼 지난 시점이다. 한국의 유전기술의 개발로 시샘이 극에 달한 국제 테러단들은 결단을 내렸다. 아무리 기술을 빼내려고 해도 뜻을 못 이룰 바에야 한국을 초토화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의기투합한 국제 테러단들은 7월 9일을 기해 일제히 한국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한다는 거였다. 공격받기 닷새 전인 7월 4일. 마침내 N과학원의 U원장 앞으로 대통령의 특별서한이 도착된다.
국가 비상회의의 의결을 거쳐 귀관에게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전권을 위임합니다. 이후에 귀관으로부터 발생한 모든 사태는 국가 비상회의가 책임을 지고 처리하겠습니다.
20XX년 7월 4일
국가 비상회의장 및 대통령 XXX
어느새 닷새가 지난 7월 9일. 5개국의 테러단으로부터의 선전의 통보를 받은 직후다. U원장은 용수를 불러 말한다.
“이제 국운이 전적으로 나의 손에 달렸어. 이 모든 건 자네를 비롯한 연구원들이 애썼기 때문일세. 이제부턴 서둘러야겠네. 한반도 주변국들의 배치 상태가 위성과 레이더 자료로 대형 컴퓨터 화면에 펼쳐져 있지? 자네는 소백산 발사단장 K중장과 울릉도 발사단장 Y중장에게 즉시 미사일 공격 명령을 전하게. 금후로 자네의 명령은 곧 나의 명령이야.”
용수는 대답한 후에 즉시 소백산과 울릉도 기지로 공격 명령을 내보낸다. 즉시 K중장과 Y중장으로부터 U원장에게로 사실을 확인하는 교신이 들어온다.
중앙 통제실인 ‘국가 관측망’의 대형 화면에는 소백산과 울릉도의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관측망의 우측에는 울릉도 발사단의 장면이 떠오른다. 관측망의 좌측에는 소백산 발사단의 장면이 떠오른다.
우측 화면에서는 Y중장이 미사일 발사단의 5,000여 명의 군인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좌측 화면에서는 K중장이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리는 게 화면에 드러난다. 육해공 3군 본부와 국회 및 정부종합청사에 연결된 대형 모니터 화면. 여기에도 Y중장과 K중장이 미사일 공격의 지시를 내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국가 전체는 한반도를 지엽적으로 공격하려는 외국 특수부대의 공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용수가 과학원 대외 감시망(對外監視網)을 통해 한반도 주위의 정세를 살펴본다. 한국을 공격하려는 외국의 군대들은 그 국가에서도 배척되고 추방당한 세계적인 테러단이다. 그 대표적인 5나라의 조직들은 다음과 같다. W유전센터의 이바노프 소장이 이끄는 러시아 테러단이 있다. 이 군대는 블라디보스토크 동부의 해상에서 한반도를 공격하려고 노린다. Z대 다나까 박사가 이끄는 일본 테러단이 있다. 이들은 독도 동쪽 해상 300km 지점에 진을 치고 한반도를 노린다. 시카고 C대 캘스 교수가 이끄는 미국 테러단이 있다. 이들은 마라도 남쪽 해상 400km 지점에 진을 치고 한반도를 노린다. 테러단 중에는 유럽 세력도 들어 있다. 영국의 X대 총장인 로첸이 이끄는 테러단이 그것이다. 이들은 미국 하와이섬 북부 700km 해상에 진을 치고 한반도를 노린다. 북경대 교수인 무청화가 이끄는 중국 테러단이 있다. 이들은 중국 연운 앞바다 500km 해상에서 진을 치고 한반도를 노린다.
여기에 대응하는 한국의 방위 세력도 만만찮은 편이다. 국립 N과학원 U원장의 유도탄 공격단이 있다. 이들은 최근에 극비리에 개발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보유한 군대이다. 유도탄 공격단의 산하에는 두 개의 별동 부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K중장이 이끄는 소백산 대공 발사단이다. 다른 하나는 Y중장이 이끄는 울릉도 대공 발사단이다. 3개의 국가 방위축인 이들 세 군대가 세계의 거물급 테러단과 결전을 벼른다.
용수의 지난 7개월간의 정보 수집에 의해 몇 가지 사실들이 대외적으로 드러났다. 캘스 교수를 비롯한 5개의 테러단의 수괴(首魁)들은 하와이에 모여서 회의를 가졌다. 지난해 6월에 진행된 모임이었다. 테러단의 수괴들은 그들의 본국에서도 추방당한 국제 테러단의 우두머리들이었다. 수괴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테러단 자체마저 그들의 본국에서는 위험 조직으로 간주되어 해외로 추방되었다. 놀랍게도 이들 테러단의 군대 세력은 그들 본국의 병력을 압도하는 상태다. 이들 테러 부대들과 그들의 본국의 군대가 전쟁을 벌인다면 승리는 테러단의 것이리라 추측된다. 이만큼 테러 부대들의 군세는 절대적인 상태라 평가된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여러 나라의 정부군들도 몸을 사린다. 테러단이 수시로 행정 수도로 미사일을 날려도 감히 응징할 생각도 못한다.
그래서 전세계는 5개의 테러 부대의 등장으로 불안에 떨고 있다. 언제 테러 부대원들이 그들의 본토를 짓밟아 버릴지 다들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에서도 세계의 테러 부대들을 섬멸하려는 국민들의 단합된 뜻이 모인다. 한국의 국민들은 지난 1년 동안. 그들 소득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을 방위성금으로 헌납해 왔다. 헌금의 실무 관리는 국립 N과학원 재정국에서 담당했다. 매달 거두어지는 금액은 전산망을 통해 24시간 내내 투명하게 공개했다. 그러면서 N과학원은 대통령의 재가를 얻어 국가 방위의 영재를 모집했다. 모집되는 영재들은 핵 개발이나 미사일 개발의 전문가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모집된 영재들의 수효는 400여 명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급여는 정부에서 부담하는 상태다. 국가에서 이들 영재들은 대공단(對空團)이라 불린다. 소백산 대공 발사단의 K중장과 울릉도 대공 발사단의 Y중장은 대표적인 대공단이다. 그리고 정부에서는 합동군사 참모회의의 의결을 거쳐 정규군 20만 명을 지원군으로 편성시킨다. 미사일뿐만 아니라 전투기, 순양함, 구축함 등에 이르기까지 정규군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의 3개의 방위축이 국민적인 지원 하에 결성된 거다.
2006년으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난해에 5개의 국제 테러 부대의 수괴들은 하와이에 모였다. 모여서 3시간의 기나긴 회의를 진행했다. 자신들은 본국에서도 외면을 받는 조직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부대는 시간이 흐를수록 병력 운영에 문제점을 느꼈다. 이런 난점을 해결하는 길은 무한한 경제 성장력을 지닌 나라를 탈취하는 일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들의 나라에서 추방된 신세이기에 마땅히 갈 곳도 없는 테러단들이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어떤 나라를 공동으로 탈취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을 내리고부터 테러단들은 엄청나게 조바심을 품게 되었다.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한국은 폭발적인 가능성을 지닌 나라로 판정되었다. 만약 테러단들이 사전에 한국을 공략하지 못하면 자신들이 먼저 공격받을 위험조차 드러났다. 그래서 부쩍 5명의 수괴들은 언제나 모여 쑥떡거리며 한국을 섬멸할 대책을 짜곤 했다.
2004년 2월에 한국이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추출했다는 것은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줄기세포를 장기로 분화시키는 프로젝트를 한국이 완성하는 날. 세계 금융 시장의 통화는 거의 한국으로 몰려들게 마련이리라. 한국이 막대한 경제력을 갖게 되는 날. 한국은 틀림없이 핵 개발을 착수하리라는 게 불을 보듯 뻔한 상태다. 전자 기술과 유전공학에서 이미 세계를 제압한 선진 한국이 아닌가? 한국을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테러 수괴들은 입을 모았다. 수괴들은 비밀리에 한국의 산업계와 기술계를 전복시키려 혈안이 되었다. 테러 수괴들은 소리 없이 한국에 잠입했다. 그런 뒤에 막대한 지원금을 미끼로 한국의 폭력 조직들을 매수했다. 어느 사회나 불평불만을 품은 반항심이 몸에 배인 사람들은 있기 마련이다. 특히 폭력 조직들은 언제나 눈빛이 굶주린 승냥이를 닮아 있었다. 그들에게 제시된 수괴들의 지원금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한국의 폭력 조직들은 말없이 수괴들의 지배권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같은 한국인들이었지만 폭력 조직의 심성은 현저히 다르다. 언제나 피를 봐야 하는 게 폭력 조직의 일과다. 힘이야 있건 없건 마무리되는 과정은 잘 갈린 칼 한 자루다. 조직원들을 통해 구전되는 말이 있다. 칼을 쓸 줄 모르고서는 주먹을 말하지 말라고 한다. 그만큼 폭력 조직은 칼에 의해 다스려지는 집단일 수도 있다.
그래서 테러의 수괴들은 2005년 6월 춘천 학술회의 사건 때에 첨예하게 개입을 했었다. 그들이 노린 것은 돈줄이 될 만한 인사의 납치와 기술의 탈취였다. 수괴들 서로가 이런 기미를 알고 있기에 수괴들 간에 경쟁이 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T교수와 은정이 춘천에서 납치된 거였다. 납치의 시작은 로첸의 시사를 받은 한국의 폭력단이었다. 이를 다시 일본 다나까에 사주를 받은 조직원들이 가로챘었다. 그러다가 청화가 T교수와 은정을 최종 단계에서 가로챈 거였다.
그 후로도 수괴들의 활동은 쉴 새 없었다. 그러다가 2005년 11월에 대덕에서 국책 회의가 열리던 날. 2수괴들이 다투다가 미국의 탐슨이 살해된 거였다. 숨 가쁘게 진행되는 암투는 유전공학 영역만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미사일 발사에 따른 용수와 현준의 실험에 있어서도. 정보망이 탄탄한 수괴들은 한국 조직원들을 매수하여 매사에 대비시켰다. 그리하여 용수와 현준이 3번째로 발사하던 시험용 미사일에까지 레이저 파를 쏘아 불발탄을 만들었다.
테러 부대의 수괴들이 부단히 움직이는 동안. 한국의 각 연구원들도 심혈을 기울인 연구를 해 왔다. 그들 자신이 이루는 성과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국가 차원이라는 걸 언제나 떠올렸다. 용수와 현준, 혁진, 소연, 심 교수 등도 이런 소신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마침내 2005년이 저무는 12월에 한국은 국가적인 유전공학의 성과를 거둔다. 이름 하여 ‘유전비록(遺傳秘錄)’이라는 유전공학 연구의 총결산이 실린 자료다. 이 자료 연구의 핵심 인물은 S대의 심 교수와 W교수 및 현준이다. 비밀리에 만들어진 이 자료를 한국 정부에서 인수하여 보호하려고 할 무렵. 의외로 유전비록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한국 및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대사건이었다. 여기에 관련하여 지휘봉을 휘두른 수괴는 러시아 W유전센터의 이바노프다. 이바노프는 세계적인 성형의사이기도 한 사람이다. 이바노프는 탐슨을 죽인 청화 일행과 유혈 충돌을 벌였다. 이바노프는 우수한 병기로 초반에는 승세를 굳히는 듯했다. 청화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청화의 정부(情夫)가 되었던 T교수가 이 과정에서 사망했다. 이바노프는 청화의 제자이면서 부하였던 주선영(Chafline)도 생포했다. 총격전을 벌이던 중에 이바노프 일행은 청화가 살포한 부유성 콜로이드에 집단 중독을 일으켰다. 부유성 콜로이드가 살포되면서부터 전황은 급변하고 말았다. 이 총격전에서 이바노프는 조직원 20여 명을 잃고 가까스로 도망쳤다. 또한 한국계 여제자인 똘마니치를 청화의 수중에 뺏기는 수모까지 당했다.
잠적한 이바노프는 조직원들을 풀어서 S대 지은하까지 은밀히 유인하여 납치했다. 지은하를 납치한 뒤. 이바노프는 지은하의 엉덩이 살과 넓적다리 살, 앞가슴의 피부까지 얇게 떴다. 이것을 선영의 얼굴로 옮겨 붙여 선영을 지은하의 얼굴로 위장한 수술을 했다. 마취된 은하의 얼굴을 봐 가며 꼼꼼히 진행된 작업이었기에 수술은 대성공이었다. 그만큼 이바노프는 그 분야에 있어선 세계적인 전문가였다. 원래 선영은 총기에 의해 납치되긴 했지만 이바노프로부터 벗어나기란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선영은 무예인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기공의 달인이었기 때문이다. 선영이 마음만 먹는다면 어지간한 사내들 몇 명은 단숨에 제압할 정도였다. 하지만 선영은 탈출하지도 않고 성형수술을 순순히 받기로 했다. 왜냐하면 성형수술을 받기 전에 선영은 이바노프로부터 거액의 생활비를 받은 탓이었다. 그 금액은 선영이 일생 동안 만져 보지도 못할 만큼의 거액이었다. 또한 전환될 얼굴 모형으로서 은하의 미모가 결코 자신보다 떨어지지 않았던 탓이기도 했다.
수술 후에 이바노프는 의도적으로 은하와 선영을 함께 지내게 했다. 그리하여 은하의 습성을 선영이 완전히 모방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이었다. 누구에게나 완전한 모방은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선영의 변모는 나날이 은하를 유사하게 닮아갔다. 어느 정도로 습성이 닮게 된 걸 확인한 뒤. 이바노프는 S대 교수 연구실로 위장된 은하인 선영을 보냈다. 원래 선영은 화학을 전공한 대학원생이었기에 학문에 있어서도 별 문제가 없었다. 이바노프는 납치한 은하를 죽이는 대신 젊은 군인들이 대부분인 테러단의 성 노리개로 삼았다. 성의 노리개가 되면서 은하의 국가적이며 학문적인 생명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바노프는 매사를 이런 식으로 처리하여 언제나 냉혹하며 잔인한 수괴로 알려져 있었다.
선영은 은하로 위장한 뒤. 현준에게 소연이란 애인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현준과 가까이 지내려고 했다. 그렇게 벼르다가 현준을 제주도로 유인하여 그의 동정까지도 우려내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현준의 연구 성과물인 ‘유전비록’을 유출시킬 생각에 골몰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현준의 유전비록은 세계적인 보물로 인정될 지경이었다. 그럴수록 선영은 현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노력했다. 틈날 때마다 교태를 부려 현준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려 했다.
선영이 현준과 어울려 지내며 유전비록에 눈독을 들이던 중. 급기야 2005년 12월말에 술을 한 잔 하자며 유혹을 한 뒤. 현준의 유전비록을 선영이 슬쩍 빼돌렸다. 소위 유전비록을 유출시킨 거였다. 유출한 유전비록을 이바노프에게 건네준 후. 이바노프의 일행이 인천공항을 빠져 나가려다가 한국 경찰에게 적발된 거였다. 그러면서 선영의 자살로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게 되었다.
성형수술을 이용한 기법은 수괴들에게도 의례적인 수단인 모양이다. 이바노프와 청화가 대전의 학술 회의장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날. 시카고 C대의 캘스는 일당을 거느리고 숲 속에서 남몰래 관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총격전이 심해져 쌍방이 어수선해질 때 누군가의 신고를 받고 경찰차가 줄지어 달려들었다. 그러자 테러단은 허겁지겁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이 때를 틈타 캘스는 청화측의 테러단으로부터 숲 속으로 필사적으로 도주하던 장은정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캘스는 며칠 전에 서울 D대 E교수의 여제자인 심자연을 납치한 상태다. D대의 전자회로는 대단한 기능을 가진 복합 회로로 알려져 있다. 이 회로에 관한 정보를 훔치기 위해 자연을 납치한 거였다. 캘스는 테러단 중의 성형의사에게 의뢰하여 은정의 얼굴을 자연의 모습으로 바꾸었다. 자연의 넓적다리와 엉덩이 살을 떼서 입히는 방식의 수술이었다. 그 경우의 수술도 성공적이었다. 수술에 앞서 결사적으로 수술을 반대하던 은정을 테러단의 사내들은 좌시하지 않았다. 몇몇 사내들이 은정의 옷을 난폭하게 찢더니 즉석에서 윤간해 버렸다. 그리고는 마취시켜 강제로 성형수술을 진행시켰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다. 테러단의 사내들은 수술 표본으로 누워 있던 자연마저도 성 노리개로 만들어 버렸다. 어디서든 약자는 비참하기만 한 정황이었다. 수술 후의 은정은 수술 전의 은정이 아닌 자연일 따름이었다. 이제 세상에서는 아무도 은정을 기억할 사람은 없을 터였다. 사망 직전까지 자연은 전자회로와 관련된 정보 제공용으로의 로봇 역할만 행하게 된 터였다.
가까스로 수사 당국으로부터 유전비록을 돌려받은 현준은 보안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참으로 눈물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은하와는 의남매 관계를 맺기로 한 게 버그러져 엉뚱한 결과에 이르고 말았으니! 오로지 자신을 탓할 뿐.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입장의 현준이다. 해변에서 은정과 함께 변사체로 발견된 선영! 다시는 못 만날 운명이다. 생각할수록 애틋한 정감에 휩싸여 마음만 서글퍼지는 현준이다.
실험실 내의 대형 액정 TV를 켠다. 실험할 때는 거의 TV를 켜는 일이 없는 현준이다. 7월 초순의 절기에 테러단들과의 대결이라니! 만일 한반도가 대규모의 미사일 공격을 받게 된다면?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프고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 텔레비전 화면에는 한반도의 지세가 과장된 모습으로 장엄하게 연출된다. 한국 주변에 내리깔린 해외 테러 부대들의 위치가 시간마다 해설된다. 이따금씩 화면에는 N과학원의 용수의 얼굴이 비쳤다가 스러지곤 한다. 아무래도 위기 상황임에는 틀림없는데 주위가 너무 조용하다고 여겨진다.
현준은 1달 전의 텔레비전의 보도 내용을 떠올린다. 국내 첩보 기관에서의 조사 결과라는 발표였다. 거기에서 뜻 밖에 납치된 T교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T교수를 살해한 범인은 러시아 과학자인 이바노프라는 사내였다. 청화와 정부 관계를 유지하던 T교수를 시샘한 이바노프의 질투심 때문이었다. 또한 뉴스에는 실종된 은정은 미국 테러단의 수괴인 캘스에 의해 재납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준은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T교수가 귀환할 날만 기다리던 T교수의 아내가 실신해 입원하는 광경이 화면에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 소양호 석회동굴의 함몰 때 사망하지 않았음을 알게 돼 가슴이 가벼워졌다.
현준은 오늘의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 건지 무척 두려운 심정이다. 일단 한반도가 테러단의 미사일 받이의 역할로 설정된 것부터가 찜찜하다. 수없이 날아들 미사일들 중 일부라도 중요 시설에 폭발된다면 치명적인 결과가 되리라.
부디 유도탄 공격단과 소백산과 울릉도의 대공 발사단에서 승전보를 울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장기 분화의 자동화 시스템은 20XX년 6월 중순에 완성된 터였다. 일단 배양액에 특성화 단백질과 분화 조절용 유전자를 충분히 공급한다. 그런 다음에 배양액의 농도 변화에 따른 온도 변화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배양액의 온도가 70℃에 이르면 DNA 중의 염기사슬들 간에 수소결합이 끊긴다. 수소결합이 끊기면 DNA의 이중 나선구조가 풀리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조절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려면 이 시점에서 형성되는 m RNA의 코돈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자동화 프로그램으로 설계된 온도의 하한선은 25℃다. 25℃에서부터 75℃까지의 구간을 통해 온도의 조절이 자유로운 배지의 환경을 떠올린다. 원리는 지극히 간단하지만 자동화하는 데 도달한 종래의 연구는 없었다. 문제는 어떤 발견이나 이론도 상대보다 먼저 아이디어를 짜내는 데 있다고 여겨진다.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인간의 체형을 받아들여 대응 유전자와의 상관관계도 잘 규명한 셈이다. 특정 유전자를 주문하는 나라에선 인간 체형의 서술만으로도 사전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조화로운 미래 유전자로의 전환도 구상해 본 거다.
현준은 연구실에 걸린 연구 진행표를 잘 들여다본다. 지난주인 20XX년 6월말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부근의 버클리 대학에서 논문 발표를 했다. 발표된 논문의 제목은 ‘5대 장기로의 분화에 대한 조절 유전자의 역할’이란 거였다. 그 논문 발표가 끝난 시점에서였다. 한국 정부에서는 세계 각국으로 어떤 영상을 내보냈다. 그 영상이란 건 인간이 정말 바라고픈 내용의 영상물이었다.
즉 20일의 단기 프로그램으로 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조직 배양시키는 거였다. 그리하여 20일만 경과되면 누구든 자신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새로운 장기를 갖게 되는 터다. 자신의 망가진 장기를 갈아 끼우고 싶다면? 단지 20일의 시간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온 세상이 자나 깨나 꿈꾸어 오던 거다. 이것을 마침내 한국의 과학자들이 이룩하게 된 것이다. 200여 세계의 국가들 중에서 한국만이 그 일을 해 내게 된 거다. 새로운 장기(臟器)의 교체를 꿈꾸는 나라들은 모두가 한국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장기 교체에 관련된 일정 비용은 각국에서 한국 정부로 입금하게 될 터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그걸 개발하여 세계 특허를 취득했기 때문이다. 배양 장기를 쓰는 각국에선 법적인 개런티(guarantee)를 지불해야 되는 것이다.
건물 전체에서 일시에 사람들이 내지르는 요란한 소리들이 들린다. 현준의 눈이 즉시 액정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약간 흥분된 음색의 아나운서가 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한다. 현준에겐 아나운서의 말보다도 화면의 영상이 신속한 정보를 보내는 것으로 느껴진다.
국가 관측망에서는 유도탄 공격단의 미사일 발사가 3분 전부터 이루어졌다. 불빛이 번쩍거리면서 미사일이 하늘로 치솟았다가는 각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날아간다. 감시망의 액정 화면에는 마라도 남방의 동중국해의 캘스 테러 부대를 향하여 미사일이 날아간다. 정확히 3개씩의 미사일이 날아간다. 캘스 해상 테러 부대엔 구축함 33대과 순양함 57대, 항공모함이 2척이 있다. 2척의 항공모함에는 함대공 미사일과 함대지 미사일 발사대가 내리깔려 있다. 대략 6, 000명의 군인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나다닌다. 마침내 한국의 미사일이 항공모함의 선체 중앙을 향해 날아간다. 항공모함과 1km 거리를 두고 탄두의 탐색기에서 레이저광선이 깜빡거리면서 발사된다. 그러더니 미사일 탄두 하나가 항공모함의 중앙을 향해 곤두박질친다. 마침내 항공모함에 부딪히자 섬광과 굉음을 일으키며 폭발해 버린다. 바다에는 200여m 높이의 물기둥이 치솟다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린다. 항공모함에 실렸던 숱한 장비들과 무기들은 폭연 속에 스러져 버리고 만다. 두 번째의 미사일도 또 다른 항공모함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린다.
한국은 지난 2년간에 걸쳐서 핵 폭발 이후의 수습에 대한 연구를 완료했다. 핵무기를 사용하되 지구의 환경을 깨끗이 보존하려는 국가의 의지였다. 핵무기가 작렬하면서 내놓는 방사선 낙진을 신속한 시간 내에 흡수하는 연구를 완성한 거였다. 핵폭탄이 투하된 지역에 곧바로 다수의 광 흡수성 플랑크톤 연막탄을 발사하는 체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지구의 대기와 대양을 낙진으로부터 보호하게 된다. 숱한 예비 실험을 통해서 환경 보호 체계가 명확히 검증되었다. 핵미사일을 날린 수 초 후마다 발사대에서는 플랑크톤 연막탄을 날려 보내기로 한다.
N과학원의 U원장과 소백산 대공단의 K중장과 울릉도 대공단의 Y중장의 얼굴이 잠시 비친다. 세 번째의 미사일이 해상에 잔존하는 일부의 전함들을 파도 속에 휘감아 날려 버린다. 건물 사방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진다. 미사일 30여 개로 미국의 테러 부대가 그대로 날아가 버린다. 방송국에선 한참 동안이나 러시아의 수면을 비추고 또 비춘다. 글자 그대로 깨끗할 뿐. 어디에도 잔여 세력이 눈에 띄지 않는다. 발사된 30여 발의 미사일은 2006년 5월에 N과학원이 개발한 중거리 미사일 ‘천궁(天宮)’이다. 천궁의 개발은 국민들이 털어 모은 국방 성금의 찬란한 결실인 셈이다.
캘스의 테러 부대가 막 사라진 시점이다. 하와이 북쪽 해상에 있던 로첸의 영국 테러 부대가 미사일 5발을 한반도로 쏘아 보낸다. 10분쯤 지나자 한반도 영공으로 5발의 미사일이 날아든다. 소백산 발사단에서 미사일 ‘봉황(鳳凰)’ 5발을 쏘아 날아드는 5개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파시켜 버린다. 아울러 울릉도 대공 발사단에서 3발의 천궁이 하와이 북쪽 해상의 영국 테러단으로 날아간다. 미사일 ‘봉황(鳳凰)’은 국민들의 방위성금에 의해 2006년 2월에 개발된 미사일 방어용 무기다.
울릉도에서 3발의 천궁이 하늘을 오른 직후다. 중국 연운항 동쪽 해상에서 7발의 미사일이 북한산을 향해 발사되었다. 북한산은 N과학원의 U원장의 유도탄 공격단이 본부를 둔 거점이다. 액정 텔레비전에 비치는 U원장의 입가엔 차가운 미소가 서린다. 화면을 바라보는 현준의 얼굴엔 감격한 빛이 역력하다. 언제 한국에서 저처럼 빈틈없는 대응책을 마련해 왔는지 실로 감탄스러운 심정이다. 용수로부터 틈틈이 미사일에 대해 들어왔지만 국가의 대책이 이 정도인 줄인 미처 몰랐다. 그리고 지난 1년간. 국민들의 방위성금의 협조가 그처럼 열광적인 것도 유례없는 경우다.
미국과 유럽의 무서운 감시를 견뎌내고 핵무기를 완성한 올해인 20XX년의 3월. 그 날의 국민적인 축제의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전국에 내려진 대사면으로 범죄인들도 가슴 그득히 조국의 은혜에 감동했다. 거리 곳곳마다 태극기가 하늘을 뒤덮었다. 온종일 매스컴에서 흘러내리는 음악은 안익태의 환상 교향곡과 애국가와 개선 행진곡이었다. 대한민국이 약소국으로서 선진국으로부터 받아온 온갖 설움을 떨치는 날이기도 했다. 전국의 음식점마다 무료였으며 모든 관광지의 입장료도 무료였다. 거리마다 가슴 벅찬 대화들이 술렁대고 낯선 사람들도 목례를 나눌 정도였다.
지난주인 20XX년 6월 하순의 오전 9시 무렵.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버클리 대학에서였다. 자연대학에 딸린 대강당 강연장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학술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을 상징하는 명찰이 부착되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용수와 현준, 소연, 혁진도 있었다. 늘 동행하던 교수들은 국내에 남아 있기로 했다. 여기에는 2가지의 측면이 작용하고 있었다. 하나는 젊은 세대에게 미래를 맡겨 본다는 의미였다. 다른 하나는 유사시에 대비한 경우로 요인 납치 등의 비상사태를 대비한 측면이었다.
오전 10시에 소연이 체세포 복제에 관련된 전자회로의 적용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오후 1시에 용수가 유도 발사체를 이용한 미사일의 명중률 향상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오후 3시에는 혁진이 배아 줄기세포를 이용한 뇌세포의 재생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이 발표될 때마다 그 기대와 소요는 대단했다. 발표 회의장에서의 즉각적인 질문도 많았다. 한국 팀으로는 제일 끝으로 오후 5시에 현준이 논문을 발표했다. 5대 장기로의 분화에 대한 조절 유전자군의 반응 특성에 대한 거였다. 발표를 마치자마자 실내는 과도한 관심으로 들끓는 듯했다. 각국의 짧고도 빠른 어조의 질문들이 쇄도했다. 현준은 되도록 간결하게 대답을 해 주어 최소한의 성의를 나타내었다.
학술 행사는 오후 7시에 종료되었다. 기다렸다는 듯 세계는 한국인들의 학문적 성취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어느 분야도 미래의 국력을 좌우할 정도의 전략적인 연구 영역이다. 논문이 발표되기 이전에 산업화가 70 ∼ 80%로 진행하는 속성을 세상은 알고 있는 터다. 그랬기에 논문 발표 직후에 한국인들에 관한 시선은 부러움을 넘어선 시기심에 가까웠다.
학술 행사가 끝나자 로스앤젤레스의 한국 교민회에서 한국의 과학도 넷을 초빙했다. 환영 행사에 모인 한국인들은 대략 3천 명에 이르렀다. 그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젊은 과학도를 만나 격려해 주려고 모인 거였다. 교민 회장은 연회장에서 좌중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한국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부상시킨 주역들을 여기로 모셨습니다. 다들 힘찬 격려를 해 주시고 이들의 노력이 조국의 영광으로 자리 잡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과일 가게를 하는 할머니, 생선장수를 하는 아주머니,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내 등등. 자신의 사회적인 입장을 초월하여 젊은이들을 격려하러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 70대 초반의 할머니가 현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할머니는 생선가게만을 20년간을 운영해 왔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이 기특하기도 하지. 그래 미국까지 건너와서 한국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소리를 듣게 해 주다니! 연구한다고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소? 이 할망구가 손자를 만난 심정으로 술 한 잔을 따르겠소.”
머리는 온통 백발로 뒤엉키고 얼굴 전체는 주름살로 뒤덮인 할머니. 할머니를 대하자 현준이 먼저 할머니에게 술을 따랐다. 그 할머니가 답례로 점잖게 현준에게 술을 따랐다. 술잔 가득히 술을 채우는데도 손 하나 떨리는 기색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표정은 친손자라도 만나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했다. 잔을 얼른 비우고는 현준이 재차 술잔을 할머니에게로 건넸다. 그리고 두 손으로 술잔에 술을 가득 채웠다. 할머니도 가만히 고개를 끄떡이며 자리를 옮겼다.
현준의 일행은 교민들의 탁자를 돌며 그들의 격려에 고마움을 일일이 표했다. 한반도의 정기를 이어받은 배달겨레들. 그들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어떻게 경쟁해 가든 그들의 영혼은 장중하게 굽이치리라.
현준의 일행이 국내에 돌아온 뒷날. 한국은 ‘주문형(注文形) 배양 장기(培養臟器) 프로그램’를 상품화하여 세계에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주문을 받아서 인간의 장기를 실험실에서 배양하여 환자에게 공급하는 거였다. 세계는 한국의 발표에 대단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병자들 중에 장기가 성한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도처의 병원에서 신음을 토하는 사람들은 장기가 부실한 사람들이리라. 세계 대다수의 환자들이 어찌 한국의 프로그램을 채택하지 않겠는가?
배양 장기 프로그램의 보급을 위해 한국은 경기도 이천에 대규모의 장기 배양관을 세웠다. 각국 민족들의 체형을 고려하느라고 민족들의 유전자형까지 분석을 마친 상태다. 그뿐이랴? 국가적인 두뇌의 과학 영재를 선발하여 근무에 투입한 상태다. 이제 한국은 병든 환자들에 대한 희망의 천국이 된 셈이다. 여기와 결부되어 인천공항에서 이천의 배양관까지 고속화도로까지 신설되었다. 외국인들은 인천공항에만 내리면 누구든 셔틀버스로 이천의 배양관까지 직행할 수 있다.
한국 과학의 연구진과 정부의 지원은 한국의 위상을 변환시켰다. 한국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신흥 선진국으로 부상했다. 이제 과거에 군사 강국들의 핵 사찰이나 받던 힘없는 나라가 아니다. 유전공학과 관련된 이론은 한국의 검증을 받아야만 실현성 있는 이론으로 여겨지는 실정이다.
어느새 한국은 생동하는 세계의 중심이 된 터다. 세계의 뉴스가 한국을 다루지 않고는 화제 거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외국의 언론들은 한국의 정계와 과학계의 놀라운 융화에 대해 극찬을 해대었다. 그리고 한국 국민들의 위대성에 대해 세계는 나날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과거의 한 때. 약소국으로 인해 생겼던 숱한 불이익과 손실들을 ‘방위성금’이란 단어에 국가적인 결집을 시켰던 국민들이었다. 빈약한 경제 사정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던 절박한 상황이었다. 국민들의 가슴으로 밀려드는 위기의식은 제2의 IMF 한파를 입지 않나하는 불안감이었다. 두 번 다시는 경제에 있어서 다시 타국인들의 간섭을 받고 싶지 않은 터였다. 몇 년 전의 그 한파를 떠올리게 될 때. 국민들은 두 번 다시는 난경에 빠지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민들의 방위성금은 이런 국민적 연대감으로부터 발생된 것이었으리라.
방위성금을 통한 국민적인 단합은 참으로 세계가 놀랄 일이었다. 그에 못지않게 평가되는 게 또 있었다. 과학을 비롯한 학문과 산업화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 준 면이었다. 이러한 한국 정부의 새로운 변신은 세계의 정부에 커다란 각성제가 되었다. 각 나라의 소장파 정치인들은 한국 방문을 꿈꾼다. 그들의 생각에도 한국 정부야말로 국민을 위한 바람직한 모델로 비친다. 각 나라는 미래의 이상적인 정치 형태를 한국 정부에서 찾게 된 터다. 어떻게 한국 정부가 이런 변신을 시도했는지 세계는 참으로 궁금히 여긴다.
현준도 해외 신문마다 다루는 한국 정부의 변신에 대해 놀라운 심정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회에서는 상대의 정당원을 헐뜯는 모략과 중상이 얼마나 극심했던가? 행정부에서는 지자체(地方自治團體)의 장들이 휘하 부서원들과의 융화가 매끄럽지 못한 게 허다했다. 그래서 정책의 추진에 있어서도 숱한 시행착오를 벌여야만 했다.
그랬는데 어느새 정부의 구성원들은 일제히 의식을 새롭게 한 터다. 국회는 국회대로 상대방의 정당원의 의견을 존중하게 되었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는 경우에도 절대로 상대방의 후보자를 인신공격하지 않는다. 저마다 미래에 대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고 거기에 대한 실현 가능성을 평가받으려고 한다.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각 부처간의 협의의 빈도가 잦아진다. 선취권을 확보하려고 만나자마자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진행방식이 아니다. 사전에 상대의 협의를 구하는 문안을 작성하여 미리 상대에게 보낸 뒤. 충분히 상대방으로부터의 수용 여부를 타진한 뒤에 모임을 갖는 방식이다. 이러다 보니 인근 부처간에 마찰이 생길 수가 없다. 법조계는 법조계대로 내부 정화의 지침을 마련하여 모범을 보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을 한동안 심층 분석한 외국의 언론은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한국의 정계를 변신케 한 것은 방위성금으로 난국을 타개하려는 국민들의 단합된 의지였다.’
현준은 그 기사를 읽고 머리를 끄떡인다. 자신도 크게 동감하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1년간이나 지속되어 온 방위성금의 자발적인 헌금. 박봉을 헐어서까지 방위성금만은 어떻든 내려고 최선을 다한 국민들이다. 언제까지나 정치인들이나 험담하고 지낼 만한, 안일한 상황이 아니었던 터다. 모두가 동참하지 않고서는 난국을 타개할 수 없으리라는 국민적인 여론이 들끓었다. 국론이 형성되자 국민들은 난국에 처한 현실의 참상을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소득의 10%에 달하는 방위성금을 자발적으로 내자고 의견의 합의를 봤다. 일단 의견의 일치를 보자 국민들은 앞 다투어 방위성금을 헌납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어떤 모금에 있어서는 투명한 집행이 항상 우려되곤 했다. 그래서 국가에선 국립 N과학원의 U원장에게 방위성금의 모금과 집행을 위촉했다. U원장은 세계적으로도 청백리에 속하는 사람으로 알려진 학자다. 그런 그가 방위성금을 관리한다는 얘기를 듣자 성금을 기탁하는 국민들의 호응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현준은 건물 주변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으로 실험실 문을 연다. 실험실 복도마다 학생과 교수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환호성을 내지른다. 좀체 볼 수 없던 진풍경이다. 현준은 실험실을 빠져나가 동료 대학원생들을 만난다. 그들의 얘기는 좀 전에 주변 5개 테러 군대와의 전쟁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전쟁의 종료를 통해 20만 명에 이르는 테러 군인들이 전멸당했다는 뉴스다. 이제 한국을 위협할 존재는 세상에서 사라진 터다.
마지막까지 수백 발의 미사일을 날려 보내던 러시아와 영국의 테러단들이다. N과학원의 U원장은 비장해 두었던 핵미사일을 이들에게 날려 보내기로 결정한다. 최초의 국산 핵미사일인 한반도 1호와 2호. 이들이 발사되기에 앞서 오존 가스를 대량으로 탑재한 미사일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하나는 러시아의 테러 부대가 있는 오호츠크 해로 난다. 다른 하나는 영국의 테러 부대가 있는 하와이 북쪽 해상으로 난다. 오존 가스를 탑재한 미사일이 오호츠크 해와 하와이 해상에서 폭발하는 순간. 하늘에는 수없는 섬광이 오존의 자취를 더듬다가 회신 전파를 북한산으로 되돌려 보낸다. 북한산 레이더에서는 즉각 오존이 그려낸 디지털 정보를 핵미사일 탐색기에 입력한다. 방위성금에 의해 개발된 최초의 국산 핵미사일인 한반도 1호와 2호. 30m 길이에 20t에 달하는 당당한 풍도의 핵미사일. 이 미사일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온통 환희와 기대로 들끓는다.
이 미사일을 개발하던 중 외국의 간섭 또한 거세었다. 개발을 당장 중단하라는 경고성 발언을 미국으로부터 몇 차례나 들었다. 하지만 한반도를 뒤덮는 국민들의 열기는 세계를 뒤엎을 듯했다. 그런 열기 앞에 미국의 경고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정부는 미국의 경고를 정중히 사양하겠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유사시에는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배포가 실린 성명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군사 강국들도 경악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제지할 유일한 방법은 전쟁밖엔 없는 터였다. 그런 시기에 5개의 해상 테러단들이 한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다. 테러 부대들은 각기 자국에서도 추방된 부대들이다. 이들은 국제 해상에서 거주하며 인접 국가들을 공격하여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려는 터다. 한국의 핵개발에 강한 거부감을 갖던 미국과 영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이들 5개국의 정부 수뇌들은 각각 자국 회의를 연다. 묘하게도 이들 5개국 정부 수뇌들은 한국에 선전포고한 테러 부대를 비밀리에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이 번 비밀 지원에 대해선 절대적인 보안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세계 도처에 깔린 한국의 첩보망을 피해 가는 정보란 없다. 한국 정부에서 5개국의 비밀 지원 사실을 확인한 순간. 한국 정부는 3개의 미사일 공격단을 공식적으로 발족시킨다. 북한산의 유도탄 공격단과 소백산과 울릉도의 대공 발사단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정부는 전국민의 참여를 호소했고 국민 또한 비상시국에 적극 협조한다.
이렇게 국가적 존망을 걸고 개발된 핵미사일이 한반도 1호와 2호다. 이렇게 개발된 핵미사일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이를 데 없이 뒤설렌다. 과연 그 핵미사일이 국민들의 기대감을 만족시켜 줄 수 있겠는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흔히 보아온다. 발사되어 목표물에 이르기도 전에 공중에서 미사일이 폭발되어 버리곤 하던 광경을. 신형 핵미사일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슴은 뒤설레다 못해 쿵쿵 소리가 날 지경이다. 국민들은 한결같이 가슴속으로 염원한다. 제발 핵미사일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끝나 국민적인 설움을 일시에 해소시켜 주기를! 핵무기 하나 없다고 짓눌려 살았던 국제적 위상을 단숨에 불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핵미사일의 발사와 더불어 핵이 기존 선진국들의 호사물이 되지 않기를! 짧은 시간이었지만 전국민들은 저마다 간절한 염원으로 빈다. 제발 발사가 성공하기를. 그리하여 한국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새롭게 평가되기를 바라리라. 텔레비전의 화면에는 발사관의 제복을 입은 용수가 발사대 앞으로 들어선다. 그는 발사에 앞서 다시 한 번 발사 체계를 점검하는 모양이다. U원장이 용수의 동작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다. 마침내 용수가 N과학원 U원장에게 발사하겠다고 거수경례로 보고한다. U원장이 고개를 끄떡이며 손을 들어올리는 순간. 마침내 현준은 미사일 발사대의 스위치를 신중히 누른다.
‘콰가콰강!’
마침내 오호츠크 해를 향해 한반도 1호기가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며 날아가기 시작한다. 5분이 지난 뒤다.
‘콰가콰가강!’
천지를 진동하는 듯한 굉음을 울리며 한반도 2호기가 상공을 날아오른다. 잠시 후 몸체를 수평으로 눕히며 하와이 북쪽 해상으로 날아가기 시작한다. 핵미사일이 오호츠크 해에 이르는 동안 러시아의 서너 차례의 요격용 미사일이 날아오른다. 그 때마다 북한산 발사대에서 핵미사일에 차단 전파를 보내 요격용 미사일을 수중으로 날려 보낸다. 관측위성이 보내온 전파로 포착된 영상에서다. 마침내 오호츠크 해상에서 먼저 한반도기가 폭발한다. 거대한 버섯구름을 일으키며 2∼3분간 주위로 마구 섬광을 뿜어낸다. 숱한 민족적 설움을 내뿜는 듯한 발산의 현장이다. 2분쯤 지났을까? 하와이 북쪽 해상에서도 요란한 버섯구름이 하늘을 뒤덮는다. 이 장면을 보자마자 국민들은 일제히 사무실과 집 밖으로 내달으며 환호성을 질러댄다. 언제나 외세로부터 공격만 당해 오던 잠재된 민족적 울분이 유감없이 발산된 날이기도 하다.
거리로 내달은 국민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하나같이 환호성을 질러댄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현준도 반사적으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고함을 지른다.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 만세!!’
국민들은 환희에 젖어 거리를 휩쓸고 다닌다.
이 때 거리의 대형 액정 화면으로 뉴스가 흘러나온다.
“방금 확인된 소식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나라에게 선전포고했던 5개의 테러 부대들은 완전히 소탕되었습니다. 한편 비밀리에 이들 세력을 지원했던 국가들도 크게 경악에 빠진 상태입니다. 우선 워싱턴의 표정을 현지 특파원으로부터 알아보겠습니다.”
테러 부대들이 소탕된 지 1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5개 테러단을 비밀 지원했던 국가들의 대통령이나 수상들이 한국 정부에게 방송으로 사과문을 발표한다. 이렇게 되면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급격히 부상하게 된다.
뒤를 이어 세계 30여 개 나라에서 이천의 장기 배양관에 교섭을 신청해 왔다. 여기에 뒤질세라 다음 날부터는 세계 곳곳에서 한국 대사관을 통해 교섭을 신청해 온다.
세계의 전역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고 유전기술이 세계 시장을 들끓게 할 무렵. 세계의 매스컴과 인터넷에서는 유사한 어구의 말로 한국인을 묘사한다.
‘황색의 갈매기들, 일제히 비상하다.’
매스컴에서 지칭하는 황색 갈매기는 황인종에 해당하는 한국인을 비유한 거다. 이에 한국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연사흘간의 국민 축제 기간을 전국적으로 선포한다. 광화문 하늘 높이 대형 애드벌룬을 줄줄이 높여 띄워 올린다. 또한 길이가 200여m에 달하는 대형 무대도 설치한다. 여기에 전국의 유명 연예인들과 성악인들 및 국악인들을 초청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축제의 서막이 오르는 광화문의 첫 날 밤이다. 후배 대학원생들과 함께 현준도 심 교수와 W교수를 모시고 광화문으로 간다. 현준은 김성종 부부와 김태호에게도 광화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들의 도움을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현준이다. 현준은 광화문에서 성종 일가족을 만나 감격적인 포옹을 한다. 광화문 주변은 거리 가득히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전투경찰들이 일제히 거리 질서를 돕고 있다. 가까스로 인파를 헤치고 대형 무대 앞에 현준의 일행이 도착한다. 밤 7시 무렵.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나타난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는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의 영광과 축복을 모든 국민들께 돌립니다. 오늘부터 3일간은 민족 자축의 기간입니다. 약소국으로 지냈던 세월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오늘을 기해 세계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자축하고자 합니다. 자, 우리 다 함께 애국가를 불러 오늘의 영광을 자축합시다.”
대통령의 제안이 끝나자마자 일제히 하늘로 축포가 발사된다. 그러면서 수천 마리의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힘찬 활갯짓을 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의 애국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 얼마나 기다려 왔던 아름다운 순간인가! 현준은 애국가를 부르다가 울컥 목이 메어 눈물을 글썽인다. 눈물을 감추며 주위를 둘러보는 순간. 사람들마다 가슴이 벅차 여기저기서 눈물을 글썽인다. 천도(天道)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되 해치지 않으며, 성인의 도는 남을 위하되 다투지 않느니라(天之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문득 현준에게 노자 도덕경의 마지막 장인 제81장의 글귀가 밀려든다. 해외 테러단을 사멸시킨 것은 국토를 수호하기 위함이었다. 핵미사일을 개발한 것도 국가 방위의 강력한 의지였다. 유전공학의 선진국이 된 것은 세계 인류의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숭고한 일념에서였다. 현준은 정당한 방식으로 세계의 선진국이 된 국가에 진심으로 긍지를 느낀다. 가까스로 애국가 제창이 끝났을 때다. 여인의 은은한 향수 냄새와 함께 인파로부터 소연이 다가서며 속삭이듯 말한다.
“저기 뒷줄 보이죠? 저기엔 미래의 사위의 얼굴을 보겠다고 제 부모님이 현준 씨를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 함께 그리로 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