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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8회
달그림자
손
정 모
8. 은하동천(銀河洞天)
커다란 돌비석이 젖혀지면서부터 비석 하부로부터 거대한 물줄기가 마구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시야에 보이는 것이라곤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물줄기뿐. 진경을 비롯한 일행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치솟는 물줄기와 수면에 나부끼는 물보라들로 인해, 도무지 숨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물보라를 튀기며, 치솟는 물줄기는 완연히 허공으로 치솟는 폭포 줄기였다. 나는 경황이 없는 중에서도 어떻게든 헤엄이라도 쳐야겠다고 별렀다. 어느새 물은 가슴 높이를 지나, 순식간에 콧잔등이까지 차 올랐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진경을 비롯한 여인들과 사내의 모습은 끝내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은 꾸물거릴 수가 없었다.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펴면서 동굴의 출구라고 여겨지는 방향으로 몸을 물에 띄웠다. 물에 젖은 옷이 몸에 착착 감겨드는 통에 제대로 동작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차 올랐기에, 심리적인 공포가 전신을 엄습해 왔다. 게다가 완연한 황톳물이었기에 물에서 눈을 뜨기도 쉽지 않았다. 불안한 가운데서도 들어 왔던 곳이라고 여겨지는 곳을 향해, 헤엄을 쳐 나갔다. 문득 물이 어느 정도까지 차 올랐는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호흡을 멈춘 뒤에, 몸을 수직으로 세우면서 바닥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의외로 머리가 물 속에 잠기고서도 발끝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슬며시 위기감이 전신을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바닥에 발이 닿았기에 힘껏 바닥을 발로 차며 치솟아 오르려고 했다. 이 때, 무언가 나의 발목을 휘감아 쥐는 게 있었다. 나는 섬뜩해지는 마음으로 창졸간에 냅다 두 발에 힘을 실어 버둥거려 보았다. 하지만, 나의 발목을 휘감은 것은 좀체 나의 발목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이제는 겨우 참고 있던 숨길마저 가빠져 왔기에, 문득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나는 몸을 버둥거리며 다른 쪽 발로 휘감긴 발목을 발악적으로 걷어찼다. 하지만, 발목을 죄어드는 힘은 더욱 거세어졌을 뿐.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다. 안 돼 ! 도저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발버둥질을 치다가 코로 두어 줄기의 물이 쏟아져 들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하면서, 다시 한 번 발길질을 하는 순간이었다. 이 번에는 온 몸이 휘청 꺾어지면서 급류로 빨려 드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그러면서 나의 몸뚱이가 강력한 물살에 휩쓸려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물밑으로 빠져나가는 강력한 물살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모양이었다. 연거푸 콧속으로 파고드는 물을 어쩌지 못하여 버둥거리다가 어느새 나는 의식을 잃은 모양이었다.
내가 의식을 되찾아 일어난 것은 밤 7시 무렵이었다. 제일 먼저 나의
사지가 멀쩡한가를 살폈다. 이마와 어깨의 몇 군데에 드러난 찰과상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상처는 없었다. 나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혹시 목뼈나 등뼈가 부러지기라도 했더라면 어쩔 뻔했겠는가 말이다. 하여간 너무나도
아찔한 느낌에 휩싸여 나는 완전히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나는 일어나서 가벼운
체조를 하며 전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다가 문득 쏟아지는 폭포 소리에 놀라
고개를 주위로 둘러보았다. 내가 서 있는 곳은 분지형의 지형으로서, 주변은 온통
치솟은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에워싼 절벽의 높이는 평균적으로 100여 미터는
됨 직해 보였다. 밤이어서 먼 곳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원형으로 형성된
분지의 둘레로 치솟은 절벽의 경사는 거의 수직에 가까웠다. 어느 쪽을 둘러보아도
도무지 빠져나갈 길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암담한 지형이었다. 나는 치솟은 절벽 아래를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출로가 있는지를 살폈다. 그러다가 10여 미터의 높이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밑에 이르렀을 때였다. 뭔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물체가
눈에 띄었다. 나는 물체가 혹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급히 달려가 보았다.
아니나다를까, 시커먼 형체의 물체는 사내와 진경을 포함하여, 운주현(雲周賢)과
예청혜(芮靑蕙)의 쓰러진 몸뚱이들이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윽고 시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몸뚱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나는 일단 생사부터 확인한 후에, 의식을 깨어나게
할 작정이었다. 먼저 진경에게로 다가가서 호흡을 하는지를 살폈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었다. 주현과 청혜도 역시 고른 호흡을 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사내인
풍전행(馮電行)에게로 다가갔다. 사내의 코끝에 귀를 가져가 보았지만, 이미 숨길은
멎어 있었다. 이마에 손을 갖다 대어 보았더니, 싸늘한 기운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나는 사인(死因)을 알아보려고 사내의 전신을 차근차근히 손으로 더듬으며 살펴보았다.
얼굴을 비롯한 손발에는 이렇다 할 외상이 없었지만, 가슴의 갈비뼈가 송두리째 바스러져
있었다. 아마도 물결에 휩쓸리다가 동굴의 벽에 세차게 부딪친 모양이었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탄식을 했다.
"고작 저승으로 가려고 그렇게 무지막지한 일을 저질렀소 ?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이잖소 ? 세상에 할 일이 그 얼마나 많소 ? 그런데도 당신 때문에
하마터면 나를 포함한 일행 모두가 물귀신이 될 뻔했었소. 이제 저승으로 가서나마
좀 점잖아지기를 빌겠소."
나는 잠시 사내의 시신을 버려 둔 채, 진경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살며시
진경의 귀에다 입을 갖다대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경씨 ! 이승이 좋아요 ? 저승이 좋아요 ?"
"이승요 ! "
말대꾸부터 먼저 하고는 살며시 눈을 뜨면서 진경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진경은 금세 놀란 표정을 짓더니,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잠깐만요. 조금 전에 분명 동굴 속의 물 속에 휩쓸렸었는데, 왜
제가 여기에 있죠 ? 아니, 중국인들도 모두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네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 "
"진경씨 ! 그건 나중에 따지기로 하구요. 우선 몸에 이상이 없는지를
확인해 보지 않으시겠어요 ? "
진경은 내 말을 듣자마자 몸을 이리저리로 움직이면서 몸의 상태를 살폈다.
한동안 면밀히 몸의 상태를 살피던 진경은 활짝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말했다.
"천만 다행으로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요. 그런데, 왜 그리 사람을
웃겨요 ?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알려면 크게 이름을 부르든지 아니면 흔들어대든지
해야 할 게 아니에요 ? 느닷없이 '이승이 좋아요 ? 저승이 좋아요 ?'가 뭐예요 ?
그것도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하다니, 나 참 기가 막혀서."
"아니, 사람을 살려 주었는데도 어쩌면 깨어나자마자 떼를 쓸 수가
있나요 ? 이래도 되는 겁니까 ? "
진경은 개구쟁이와 같은 표정으로 눈을 생글거리며 말했다.
"어이구, 기가 차서. 언제 동굴 속에서 나를 구해 주었다고 그러세요
? 물줄기가 솟구치자마자 비명도 지를 사이도 없이 급류에 휩쓸려 버렸잖아요 ?"
나도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어쩔 수 없어, 그대로 소리를 내어 웃고
말았다. 그런데, 정말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쓰러진 두 여인을 향해 급히 달려갔다.
진경은 주현을 깨워 일으켰고, 나는 청혜를 깨워 일으켰다. 여인들은 금세 눈을 비비며
땅바닥에서 깨어 일어났다. 여인들은 깨어 일어나자마자 저마다 한 마디씩을 토해
냈다.
"어머나, 내가 살기는 살았었군요. 영락없이 죽는 줄로만 알았어요."
"정말 기적이네요. 이게 꿈은 아니겠죠 ? 그런데, 풍전행(馮電行)씨는
어디에 있죠 ?"
나는 여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는 아마도 소용돌이치는 물결에 휩쓸리다가 동굴 벽에 심하게
부딪친 모양이에요. 저기 저쪽에 죽어 넘어져 있어요."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사내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여인들을 데리고
갔다. 여인들은 금세 허리를 꺾으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생사의 한계를 간단히
넘어서 버린 사내를 두고 여인들은 이렇게 눈물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여인들의
슬픔이 가라앉을 때까지, 뒷짐을 진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숨을 삭였다. 10여 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여인들은 눈시울을 붉힌 채, 내게 시신의 처리를 의논했다.
나는 날이 밝을 때까지는 그대로 두었다가, 다음 날 아침에 처리하자고 했다. 우선
날짐승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소나무 가지를 꺾어서 시신을 대충 덮었다.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 후,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우리도 비록 지금 살기는 살았지만,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어요.
고개를 돌려 주위의 사방을 둘러보세요. 아무리 낮게 봐도 100미터는 넘을 듯한 절벽으로
에워싸인 분지 속에 갇히고 말았어요. 어느 한 곳이라도 출로가 있어야 하는데, 출로가
없다면 우린 끝장이 난 목숨들이에요. 이제부터 넷이 함께 절벽 밑을 따라 가면서,
출로가 없는지를 살펴보기로 해요."
내 말을 듣자마자 여인들의 얼굴은 금세 사색이 되었다. 진경은 가방을
뒤져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교신을 보내려고 시도를 했다. 나는 급히 진경의 동작을
제지하며 말했다.
"잠시만요. 핸드폰에는 전지가 있어야 하고, 전지를 충전시킬 수
없는 지역에서는 신중을 기해야죠. 지금 우리가 지닌 핸드폰은 나와 진경씨를 합하여
고작 두 개뿐이잖아요 ? 이 곳에서는 전지를 충전시킬 수가 없으니,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돼요. 우선 분지(盆地)의 크기가 얼마나 될까요 ? 특이하게도 공지(空地)가
거의 원형으로 생겼죠 ? 공지의 직경이 얼마나 되어 보이세요 ? 대략 100m 정도밖에
안 되겠죠 ? 그렇다면 둘레는 기하학적으로 314m의 값으로 바로 나오죠 ? 에헤,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해요 ? 원 둘레는 지름의 3.14배이잖아요 ? 원에서, 중심각이
114.6도일 때의 호의 길이가 거의 원의 지름과 일치되잖아요 ? 그건 그렇구요. 이
좁은 공간에 병풍처럼 사방으로 100미터 이상의 절벽이 에워싸고 있다니 얼마나 신비로워요
? 우선 300여 미터의 둘레를 걸으면서 돌파구가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시죠."
나와 진경은 앞장을 섰고, 주현과 청혜는 뒤를 따랐다. 넷이서 시름에
잠긴 얼굴로 차근차근히 높다랗게 치솟은 바위 절벽을 올려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비록 둘레가 300여 미터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우거진 수목과 덩굴로 인하여 발걸음이
더뎠다. 넷이서 족히 한 시간은 걸었으리라.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왔지만, 빠져나갈
곳이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넷은 허탈해진 심정으로 하염없이 하늘만을 올려다보며
근심을 달래고 있었다. 당장 오늘 밤 잠을 잘 곳이 문제였다. 넷이 한 바퀴를 돌
때엔 오로지 절벽만을 올려다보며 돌파구가 있겠는지를 살폈을 따름이었다. 확실히
사방이 꽉 막힌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관찰한 결과로는, 원형으로 함몰된 지형임이
틀림없었다. 함몰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학술적인 연구가 필요한 문제라고 여겨졌었다.
현실적인 난관에 대한 뚜렷한 해결책이 없었으므로, 나는 재차 정밀 탐색을 나서고
싶었다. 나의 이러한 속내를 여인들에게 틀어 놓고는, 잠시 기다리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여인들은 나와 함께 동행하겠다면서 모두 나를 뒤따랐다. 바람결도
스산한 산중의 겨울밤이었기에, 일행 모두에게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사내의 시신마저도 은근히 무서움의 근원으로 작용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낮이면 별 대수로울 것도 없는 시신이건만, 밤이면 분명 좀 다른 법이었다.
귀신이라든지 유령이라는 끔찍한 개념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온갖 형상으로 자라나는
것이 밤의 특성이었다. 사실은 무술의 달인이라는 나도 밤만 되면 괜히 섬뜩해지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었다.
불빛 하나 없는 산중. 흘낏 시계를 들여다보니, 밤 10시 무렵이었다.
하늘에 뜬 별빛만으로 주위를 탐색하려니까, 은은한 설움이 가슴속으로부터 끓어올랐다.
나는 묵묵히 절벽 아래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절벽의 경사와 하단의 지형을 눈여겨보았다.
애초에 내가 떨어진 땅바닥 부근에서였다. '콸콸' 우렁찬 소리를 내며,
10여 미터의 높이에서 폭포 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그 쪽면만 폭포
줄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땅바닥으로부터 10여 미터 높이의 절벽 하단부에 직경이
1m 가량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거대한 폭포수는 거기로부터 밖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던 터였다. 나는 다시 구룡동굴(九龍洞窟)의 일을 머리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풍전행이 비석을 밀치자마자 거대한 돌구멍이 드러나면서 물줄기가 폭포 줄기처럼
치솟아 올랐던 터였다. 지표면을 따라 흐르던 물이 토양으로 스며들어 거대한 지하수를
이루면서 어디엔가로 흘러내리고 있었으리라. 그 지하수의 물줄기가 바로 동굴의
바닥에 밀착되어 지나고 있었으리라. 바닥은 바위 층으로 되어 있어서 물기가 바로
스며들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비석의 하단부가 유일하게 구멍을 드러내고 뚫려 있었을
터였다. 형야성이 그 구멍을 발견할 때까지만 해도 지하수의 물줄기는 오늘날처럼
그렇게 세지는 않았으리라. 그랬기에, 형야성은 비석으로 구멍을 간단히 막아 놓았으리라.
문제는 그 이후로 지하수의 양이 증가되면서부터 수압이 높아진 데에 있었을 터였다.
그러던 차에 사내가 비석을 밀치면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을 터였다. 그리하여,
동굴은 금세 물바다가 되었고, 물이 차 올라오면서 구멍은 더 크게 뚫렸으리라. 일단
쏟아져 들어왔던 물줄기가 지하수의 수압과 평형을 이루면서 다시 아래로 빠져나갔을
터였다. 그 와중에서 거대한 소용돌이의 물살이 일어났고, 뚫린 구멍으로 일행이
휩쓸려 나간 것이었으리라. 내가 의식을 잃기 전에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일행 중의
하나였으리라. 하지만, 내가 연거푸 몇 번이나 걷어차 버리지 않았던가 ? 내가 아무리
궁금해도 이것만큼은 영원히 물어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의 심중으로는 아무래도
형야성일 가능성이 높았었다. 발목을 끈덕지게 붙잡는 악력은 사내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내의 가슴은 동굴 벽에 부딪친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내가 발악적으로 걷어차 낸 발길질에 의해 갈비뼈가 다 부러졌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무튼 그 때는 말이다. 내가 의식을 잃기 직전이었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않았던가 ! 모르긴 몰라도 어쩌면 갈비뼈가 내려앉는 통에, 사내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그것은 생명을 내건 극한 상황의
일이지 않았던가 ? 천지신명에게 밝히건대, 추호도 내가 고의적으로 사내를 죽이려고
한 일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내가 양심적으로 괴로워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말이다. 나의 발길질에 차이지 않았더라면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는가 말이다.
이 점을 떠올리면서부터 나의 마음은 처연한 심사에 휩싸였다. 어쨌든 일행은 뚫린
구멍을 통해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갔을 터였다. 그러다가 절벽 하단부에
뚫린 구멍의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을 터였다. 다행스럽게도 절벽 하단의 땅바닥은
관목의 숲으로 어우러졌었지 않은가 ! 그랬기에, 10여 미터의 높이에서 떨어졌어도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으리라. 사내에 대한 나의 비통한 마음을 헤아리는 듯, 우렁찬
폭포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콸콸콸콸 ! 콸콸콸콸 !! 기나긴 밤을 여지없이 박살을 내려는 듯이
흘러내리는 폭포 줄기가 확실히 경이롭게 여겨졌다. 이 때 문득 나의 뇌리에
영감 같은 것이 떠올랐다. 물줄기의 출구가 어디인가에는 틀림없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떠올랐던 터였다. 폭이 1m 가량의 폭포수가 지속적으로 흘러내리는 곳이라면, 수량이
보통이 아닐 터였다. 이처럼 많은 양의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이 곳이 꽉 막힌 지형이라면
말이다. 틀림없이 금세 물바다가 되고 말 터였다. 그런데도 2400평 가량의 분지는
관목 숲으로 뒤덮여 있을 뿐 땅은 건조한 상태였었다. 이 사실을 발견하고서부터는
나는 물줄기가 흘러 내려가는 곳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들은 나의 뒤를 따라
바싹 그림자처럼 좇기 시작했다. 원형 분지의 거의 절반의 테두리를 따라 물줄기가
흘러가고 있었다. 원형 분지의 절반쯤의 테두리 지점에서였다. 흘러가는 물소리는
요란했지만 더 이상의 물줄기를 볼 수가 없었다. 놀랍게도 그 지점에서부터 물줄기는
커다란 바위 구멍을 통하여 땅 속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뚫린 바위 구멍의 직경은
족히 3m 가량은 되어 보였다. 뚫린 바위 구멍을 들여다보던 일행의 얼굴은 하나같이
핼쑥하게 변하였다. 만약 튕겨져 나왔던 몸뚱이들이 여기까지 휩쓸려 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싶어 아찔했다. 하마터면 시체도 남기지 못한 채 이 세상을 하직할 뻔했기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어쩌면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을까 ?"
"진경 언니, 정말 무서워요. 한국에 왔다가 다 죽을 뻔했잖아요
? 이미 풍전행씨는 죽었고, 하마터면 저희들까지 떼죽음을 당할 뻔했잖아요 ? 참으로
한국의 산과 동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은 미처 몰랐어요. 이제 확실히 출로도
막혔고, 핸드폰의 교신마저도 막힌다면 우린 어쩌죠 ? 정말 속상해서 미치겠네. 이제
핸드폰이라도 좀 켜서 교신을 해 봐요. 저 뭐라더라 119 있잖아요 ? 지금 당장 미칠
지경인데, 도저히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릴 수가 없다구요. 제발 부탁인데요. 지금
당장 좀 전화를 걸어 봐요, 네 ? "
단발머리의 청혜가 진경을 향해 울상으로 사정을 했다. 마침내 진경이
나의 동의를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하도 안절부절못하는 청혜의 태도가 안쓰러웠기에,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거렸다. 이윽고 진경은 핸드폰을 꺼내 119를 눌러
교신을 시도했다. 밤중이라 진경의 귀에 갖다댄 핸드폰의 신호음인데도 내 귀에까지
다 들렸다. 띨르르릉 ! 띨르르릉 !! 맥없이 반복되는 처량한 신호음만이 주변을 휩싸고
있었다. 불통임을 알리는 신호음이었던 터였다. 지형적인 구조 때문에 예감했던 일이었지만,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전신의 피가 식는 느낌이었다. 처연한 심정을 지긋이 누르면서,
나도 핸드폰을 꺼내 은숙을 향해 교신을 보냈다. 몇 차례나 시도를 했으나, 불통임을
알리는 신호음만이 귓전을 울리고 있었다. 나에게 시선을 주고 있던 여인들을 향해,
나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어쩌죠 ? 아무래도 불통입니다."
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청혜는 허리를 꺾어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반면에, 주현은 결이 고운 머리카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며
눈물을 추스르고 있었다. 이 번에는 눈길을 돌려 진경의 모습을 흘낏 바라보았다.
진경은 차가운 눈빛으로 청혜와 주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핸드폰의 전원을 끄고 있었다.
그러더니, 진경은 나를 향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종철씨, 우선 잠을 잘 만한 곳을 찾아 봐야죠 ? 초겨울이라, 밖에서
잔다면 십중팔구는 죽음을 면치 못할 거예요. 조금 힘이 들더라도 주변을 더 둘러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진경의 심지가 굳건함에 내심으로 감탄하며,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아요. 진경씨는 청혜씨와 주현씨를 데리고 우리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던 곳으로 가서 기다리세요. 그럼 제가 금방 적당한 곳으로 안내할게요."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구멍 뚫린 바위를 지나 곧장 앞으로 내달렸다.
가볍게 달리면서 절벽의 하단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다시 50여 미터 가량을 진행했을
때였다. 관목 숲이 어우러진 언저리쯤에서였다. 유난히 절벽 면으로부터 길다랗게
돌출한 커다란 바위가 있었다. 돌출한 바위의 높이는 대략 4m에 달했으며, 길이는
20여 미터에 달했다. 조심스레 바위의 밑동에 접근하기 위해, 다복솔과 철쭉으로
어우러진 나뭇가지들을 치워야만 했다.
나는 굵은 나뭇가지를 꺾어 들고는 마구 두드리면서 길을 내었다. 마침내
수십 그루의, 뒤얽힌 철쭉나무를 헤치고는 바위 밑동에 가까스로 도달할 수가 있었다.
외형상의 불규칙한 모습과는 달리, 돌출한 바위의 밑동은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돌연한 인공의 흔적에 내심으로 가슴이 섬뜩해져 왔다. 그러면서 계속적으로 밑동에
밀착되어 있는 다복솔의 가지를 밀쳐 낸 순간이었다. 동굴의 입구가 괴물처럼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나는 휴대용 손전등을 꺼내 들고는 스위치를 밀어 올렸다. 금세
주위가 환하게 밝아 왔다. 1.5V의 소형 건전지 4개가 직렬로 연결되어 뿜어내는 빛줄기라
밝기가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손전등은 전력의 소모가 빠르기에, 여간해서는 잘
쓰지 않던 도구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별빛에만 의존하여 동굴을 찾아낸
터였다. 동굴의 입구에는 예서체로 은하동천(銀河洞天)이란 글씨가 한자로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서체에는 흘러내리는 물줄기만큼이나 당당한 힘이 서려 있었다. 나는
점차 내심으로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전에도 누군가가
여기에 들어와 살았다는 이야기인데, 누가 이러한 사지(死地)에 들어왔는지 의아스러웠다.
나는 정신을 집중시키며 조심스럽게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동굴은 대체적으로 천연
석동(石洞)이었지만, 인공으로 개조한 흔적이 너무나 역력했다. 동굴의 높이는 3m
가량이었으며, 폭은 네 사람이 나란히 걸어 들어갈 정도였다. 입구로부터 10m쯤 걸어
들어가자 네 방향의 분기점이 나타났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니,
각각 1개씩의 석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다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 보니, 전후로
두 개의 석실이 만들어져 있었다, 하나같이 석실들은 인공으로 내부를 다듬은 흔적을
드러내고 있었다. 각 석실마다 돌 침상과 돌 책걸상이 마련되어져 있었다. 다만 없는
것은 이불과 베개를 포함한 침구류들과 옷가지들일 뿐. 나는 아무래도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싶어, 나의 살을 힘껏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임에
거듭 놀랄 수밖엔 없었다. 마지막 석실에서는 한 구의 백골이 아무렇게나 나뒹굴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해골을 주워 모아 한쪽으로
모은 뒤에, 나는 해골을 향해 경건하게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돌아가신 선배 어르신께 인사 올립니다. 오늘 후배가 이곳에 들른
것은 잠시 이 곳에 머물고자 해서입니다. 그러니, 신성한 곳에서 외람되이 굴더라도
부디 어여삐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 "
나는 일어서서 다시 마지막 석실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석실 뒤쪽에
혹시라도 통로가 더 있지는 않을까 싶어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석실의 뒤쪽에는 돌
침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쪽이 의심스러웠다. 내가 만약 석실을 만들더라도 유사시를
대비하여 비상 통로 정도는 만들어 둠 직했다. 위치상으로도 그 쪽이어야만 입구와는
정반대 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돌 침상을 한쪽으로 밀치려고 해 보았지만
혼자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일단은 물러나서 여인들을 데려오기로
마음을 정했다. 나중에라도 여인들과 합세하여, 돌 침상을 밀쳐 보리라고 마음먹었다.
내가 다시 여인들 앞에 나타나자마자, 여인들은 반가워서 저마다 한
마디씩을 던지며 호들갑이었다.
"아이, 왜 이제서야 오세요 ? 저희들은 혹시라도 맹수가 나타나서
종철씨가 실종된 줄 알았어요."
"어서 오세요. 우린 기다리다가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
"혹시 일부러 애를 먹이려고 늑장을 부리신 건 아니죠 ? 만약 그렇담
콱 혼내 주겠어요, 알겠어요 ?"
나는 일부러 신비한 미소를 흘리며 잔뜩 여유를 부렸다.
"오호, 그랬었어요 ? 하지만, 내가 늑장을 부린 것은 아니니 절대로
나를 때리지는 마세요. 자, 이제 밤도 늦었으니, 나를 때릴 때 때리더라도 일단은
나를 따라 갑시다. 좋은 장소로 모실 테니까요."
내가 앞장을 서자 여인들은 금세 나의 뒤를 바싹 좇아 왔다. 잠시 후에
천연 석동(石洞)의 입구에 닿았다. 내가 손전등을 꺼내 동굴 입구를 비추자마자
여인들은 저마다 탄성을 지르며 야단들이었다. 하나같이 은하동천(銀河洞天)이라는
말에 매료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원래 '동천'이라는 말은 신선들이나 사는 별천지를
뜻하는 말이었다. 여인들은 일제히 그 글자 앞에서 숙연한 표정과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윽고, 나는 여인들을 네 군데의 석실로 안내했다. 여인들은 또 한 번 놀라
탄성을 지르며 야단들이었다. 너무나 탄성을 지르는 나머지, 덮고 잘 침구도 없는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마지막 석실의 해골에게로 여인들을 데리고 가자마자,
여인들은 기겁을 하며 일제히 안색이 변하였다.
"어머나 ! 오늘은 왜 이렇게 일진이 사나울까 ? 한쪽에는 시체가
누워 있지를 않나 여기에는 또 해골이라니 ! "
"아무래도 명대로 못 살겠네. 동굴 안에 무슨 해골이야 ? "
"아, 정말 짜증 나 ! 어서 이 곳을 떠나야겠는데 대책이 안 서니
미치겠네, 정말 ! "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여인들의 소란이 가라앉기를 한동안 기다렸다.
그런 다음에, 나는 여인들에게 덮고 잘 침구가 없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제야 여인들은
또 한 차례 호들갑을 떨며 아우성이었다. 나는 여인들을 향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잠시만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보시다시피 침구는 아예 없거든요.
없는 침구를 만들어 낼 방법은 없지 않겠어요 ?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저기
동굴 입구에는 제가 입구를 찾아들면서 쓰러뜨려 놓은 억새들의 풀 더미가 있거든요.
달리 특별한 방도가 없다면, 오늘밤에는 풀 더미 위에서 취침하기로 하자구요. 제
의견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방법을 들려 주셨으면 해요."
어느 정도의 소요가 끝난 다음에, 나는 여인들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여인들은 일제히 동굴 바깥으로 몰려가더니, 저마다 억새풀 더미를 가슴 가득히 안고
들어왔다. 나는 여인들에게 잠시 마른 풀 더미를 내려놓게 한 뒤에 말했다. 먼저
취침할 곳을 정하라고 말이다. 마음에 드는 곳에다가 자신이 가져 온 풀 더미를 깔도록
하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여인들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좀처럼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먼저 진경이 내게 물었다.
"그럼, 종철씨는 어디에서 잘 건가요 ? 다들 못 정하고 있으니까,
종철씨가 먼저 정해 주세요."
"나 말이오 ? 나는 세 분이 정하고 난 뒤에, 남는 방에서 잠을
청할 생각이었거든요. 정 그렇다면 먼저 말씀 드릴게요. 나는 저기 해골이 누워 있는
방에서 하룻밤을 보낼 작정입니다. 자, 그럼 나머지 분들께서는 원하시는 장소를
정해 주시죠."
여전히 여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나는 기다리다 못해 여인들을 향해
말했다.
"아니, 밤도 깊었는데 이러고만 있으면 어떻게 해요 ? 빨리빨리
정하고 잠을 자야 할 게 아니에요 ?"
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진경이 대답했다.
"그럼, 저는 종철씨가 묵기로 한 방의 바로 앞의 방을 쓸래요."
청혜가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진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우린 한국에 와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거든요. 오늘밤만
언니 곁에서 주현이랑 제가 함께 자면 안 될까요 ?"
청혜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경은 대뜸 청혜와 주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렇게 해요. 그럼, 저기 저 풀 더미들을 저 방으로 옮기도록
해요."
여인들은 금세 단합된 모습으로, 풀 더미를 옮겨다 놓기 시작했다. 여인들을
지켜보다가, 나는 나대로 질이 좋은 억새 풀 더미들을 골라 자리를 깔았다. 바싹
마른 것이어서 촉감이 싫지는 않았다. 나는 여인들에게 잘 자라는 말을 남기고는
곧장 해골이 있는 방으로 옮겨 누웠다. 아무리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해골일지라도
께름칙한 느낌은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굳이 해골이 있는 방을 선택한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했다. 여인들로 하여금 부담 없이 숙소를 결정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었다.
깊은 동굴이라 바깥의 바람은 들어오지 않았지만, 냉기가 도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잠들기에 앞서 하루 동안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며 감회에 젖어 들었다.
감회에 젖는 도중에 문득 은숙의 얼굴이 떠올랐다. 은숙의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지금쯤은 은숙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핸드폰이 불통만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어 보고 싶었다. 그러다가 또 다시 구석에 놓인 해골에 생각이
미쳤다. 대관절 저 해골은 누구였을까 ? 혹시 형야성일까 ? 절대로 그럴 리는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형야성의 무덤이 있는 위치와 사진을 본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해골의 주인은 누구였단 말인가 ? 혹시 은하동천이란 글자를 새긴 장본인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을 못 이루다가 냉기가 나의 몸을 엄습해
들어올 무렵에서였다. 나는 억새풀로 온몸을 감싸고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잠을
청하였다. 피로했던 탓이었던지 어느새 꿈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말았던 모양이다.
서늘한 바람결에 깨어나 일어나니, 아침 6시 무렵이었다. 맑은 산새의
울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와 빛살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간편한 옷차림새로,
석실을 빠져나가 분지의 중앙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렀다. 너무나 맑아 처연할 정도의
하늘빛이었다. 지난밤의 차가운 추위와 처절할 정도의 좌절의 순간도 새 아침에는
그저 감격스러울 따름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은숙에게 핸드폰으로 교신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불통일 따름이었다. 내친 김에, 분지를 에워싼 절벽까지도 새롭게 차근차근히
살펴보았다. 분지는 아무리 봐도 확실히 놀라울 정도의 사지(死地)였다. 100미터도
넘게 수직으로 솟구친 절벽이 어쩌면 이다지도 완벽할 정도의 병풍 모양일까 ? 어디를
둘러보아도 빠져나갈 구멍이라곤 아예 없어 보였다. 나는 다시 분지의 중앙으로 돌아가서,
사방을 둘러다보며 이런저런 궁리에 잠겼다. 아침 7시가 가까워 올 무렵이 되면서부터였다.
선홍(鮮紅)빛으로 타오르는 눈부신 햇살이 절벽을 뛰어넘어, 나의 눈앞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절벽 하단부로 뚫린 폭포의 위치는 정남쪽 방향이었었다. 거기에서부터 물줄기는
서쪽을 지나 시계 방향으로 북쪽 지점까지 흘러들고 있었다. 분지의 물줄기가 커다란
바위 구멍을 통해 다시 땅 속으로 흘러드는 지점은 정북쪽이었다. 그리고, 석동이
자리잡은 곳은 북동쪽이었다. 수직으로 치솟은 절벽에는 조금씩 물기가 배어 나와,
쏟아지는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절벽을 타고 오른다는
생각은 포기해야만 할 것 같았다. 수직에 가까운 경사면에다가, 물기로 질척이는
상태이지 않는가 ? 이런 상태라면, 아예 발을 내디딜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다른
탈출법을 궁리해 보느라고 일순 넋을 잃고 서 있었다.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자니까, 느닷없이 진경의 목소리가 귓전을 파고들었다.
"종철씨, 일찍 일어나셨군요. 아침부터 혼자만 여기에 나와서,
무얼 그리도 골똘히 생각하세요 ? 밤새 잘 주무셨어요 ? 저는 억새 잎새가 아무래도
몸에 맞지를 않아서, 그만 잠을 설치고 말았어요. 밤새 바람결은 왜 그렇게도 차가웠죠
?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떨려요. 그건 그렇구요. 청혜와 주현도 조금 전에 일어나서
막 이 곳을 향해 올 거예요. 그런데, 혹시 오늘 아침에 거둔 수확이라도 있으세요
?"
나는 고개를 옆으로 내저으며, 진경을 향해 방긋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약간은 핼쑥해진 진경의 얼굴을 바라보자마자 안쓰러운 마음이 일었다. 그리하여,
나 자신도 몰래 진경을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그럼, 밤새 꽤 힘들었겠는데요. 나중에라도 시간을 내어 눈을
좀 붙이도록 하세요. 혹시 중국 여인들이 배고프다고는 하지 않던가요 ? 당장 오늘
아침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데 걱정이네요. 혹시 무슨 묘안이라도 있으세요 ?"
진경이 내게 막 뭐라고 입을 열 듯 말 듯할 때였다. 청혜와 주현이 뛰다시피
하여 걸어나오면서 일제히 한 마디씩을 던졌다.
"어머나, 두 분이 따로 여기에 계실 줄은 몰랐네요. 무슨 얘기를
그렇게 다정하게 하셨어요 ? "
"언니, 왜 저희들은 안 깨우셨어요 ? 우린 두 분이 살짝 여기를
떠난 줄 알고 놀랬잖아요 ? "
나는 세 여인이 나의 곁으로 다가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인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날이 밝았으니, 풍전행씨의 시신을 처리해야겠거든요. 나의
생각으론 공지의 귀퉁이에다가, 가매장을 하는 게 어떨까 해요. 우리가 언제 여기를
벗어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시체를 이대로 두면 부패할 테니까 말이에요."
여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떡거려 동의를 해 주었다. 나는 풍전행의
시체를 안아 들고는 공지의 귀퉁이로 갔다. 땅을 팔 수 있는 연장도 없었기에, 굵은
소나무 줄기로 땅을 대충 팠다. 시체를 묻을 만한 깊이가 되자, 나는 시신을 흙 속에
눕혔다. 내가 시신의 얼굴에 흙을 덮기 전에, 여인들을 향해 말했다. 이제 흙으로
덮으면 영원한 묘지가 될지도 모르기에, 망인에 대한 예를 올리자고 했다. 먼저 청혜와
주현이 철 늦게 핀 들국화 송이를 꺾어서 시신에게로 던지며 말했다.
"풍전행씨 ! 올 때엔 함께 왔건만, 이게 웬 변고예요 ? 끝까지
우리를 보호해 주겠다더니, 이렇게 유명을 달리 하게 되다니요 ? 비록 들국화 몇
송이일망정, 천만 송이의 국화 송이로 여겨 주시구요. 한 많은 세상을 두둥실 날아올라,
저승에 가서는 부디 행복하게 지내세요."
말이 끝날 즈음에, 먼저 청혜의 눈시울에서 눈물이 맺혀 반짝였다. 이어서
주현의 눈에서도 눈물 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맑은 솔바람이 시신의 옷자락에
나부끼고 있는데도 시신은 끝내 말이 없었다. '쏴아쏴아'하는 청량한 솔바람 소리에
묻혀, 여인들의 흐느낌은 점점 잦아만 들었다. 진경도 말없이 자리를 뜨더니, 하얗게
핀 억새꽃을 꺾어 시신의 가슴에 올려다 놓았다. 진경은 말없이 입술만 달싹거리더니,
어느새 눈물이 핑 돌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이제는 나의 차례였다. 망자(亡者)에겐
꽃보다도 한 줌의 흙이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하여, 고운 황토를 한
움큼 움켜쥐고는 시신의 가슴에 뿌려 주었다. 사람의 생사의 획이 이렇게 간단히
그어지는가를 생각할 때, 가슴 심층부로부터 어느새 설움이 피어올랐다. 시야가 눈물로
흐려진 가운데, 나는 부지런히 막대기를 놀려, 흙무덤을 완성시켰다. 아울러 내친
김에 석실의 해골까지도 수습을 하여, 풍전행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었다. 이마의
땀방울을 훔쳐 내고는, 나는 여인들과 나란히 서서 무덤을 향해 절을 올렸다. 넷은
한동안 숙연한 모습을 짓다가 하얗게 증발된 한숨만을 피워 올리면서 무덤을 떠났다.
흘낏 시계를 바라보니 오전 9시를 막 지나고 있었다. 여인들의 얼굴에는
허기진 기색이 역력했으나, 아무도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루 전 물에
휩쓸릴 때, 모든 휴대품들을 분실하고 만 터였다. 그러자니, 먹을 것이라곤 과자
부스러기 하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여인들에게 일단 동굴 속의 석실 내부를 뒤져
보자고 제안했다. 잠시 후에 석실아 닿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말이다. 발견된
것은 도자기 몇 점이 고작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커다란 질그릇 하나와 작은
사기그릇 5개가 전부였다. 질그릇은 국 그릇이었던 모양이고, 사기 그릇은 밥 그릇이었음에
틀림없었다. 수저라고는 아무리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내친 김에
해골이 있던 끝방의 후면 벽쪽의 돌 침대를 넷이서 밀쳐 보았다. 돌 침대를 걷어내자마자
커다란 구멍이 나타났지만 말이다. 실망스럽게도 그 구멍은 분지 바깥으로 통하는
비상 통로일 뿐이었다. 구멍을 돌 침대로 다시 원래대로 막아 놓은 뒤에, 일행은
석실의 바닥에 둘러앉았다. 비상 대책을 세우지 않고서는 살아도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사라지자마자 구멍 뚫린 듯한 허탈감이 전신을
엄습해 왔다. 하나같이 넋을 잃고 있을 때, 나는 여인들을 향해 연명의 방안을 제시했다.
여인들은 눈빛을 빛내며 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여인들을 향해 연명을 위한 식생법(食生法)을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얘기했다. 분지에는 해묵은 칡들이 즐비했었고, 칡 뿌리는 연명용으로는 너무나
좋은 식물이었다. 그 외에 오이풀, 삽주, 도라지, 더덕, 마 등의 뿌리들도 대단히
좋은 식품이었다. 줄기로는 민들레, 고들빼기, 씀바퀴, 광대나물, 버섯, 고사리 등의
식물도 아주 좋은 식량들이었다. 또한 동물들도 빼놓을 수 없는 연명 수단이었다.
분지의 가장자리로 원형으로 흘러가는 150여 미터 가량의 도랑에서는 물고기들이
적지 않았다. 붕어와 피라미, 메기, 모래무지, 끄리, 빙어, 쏘가리 등의 상당수의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물고기가 고갈될 가능성은 없지만 말이다. 물고기가
고갈된다면, 언 땅을 파 헤쳐서 개구리나 뱀을 포획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도랑의
폭은 5m에 달했고 수량도 풍부했으므로, 식수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게다가 목욕까지도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줄곧 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여인들은 서서히 안도감을 느끼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청혜가 느닷없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종철씨 ! 도랑에 물고기가 많이 있으면 뭘 해요. 그물이나 족대도
없는 데다가 하다 못해 낚싯대와 낚시 바늘마저도 없잖아요 ? 상황이 이럴진대, 도대체
어떻게 물고기를 잡을 작정이세요 ? "
"아하, 그걸 걱정하셨군요. 도랑의 폭과 길이가 대체로 일정하지만
말이에요. 비교적 폭이 좁고 깊이가 얕은 곳을 골라서 임시 둑을 쌓아서 막는 거예요.
그렇게 한 뒤에는 둑 안의 물을 밖으로 퍼 내면 되잖아요 ? "
이 번에는 주현이 정색을 하며 내게 물었다.
"그럼 물은 뭘로 퍼 내실 건가요 ? 손바닥으로 풀 건가요 아님
주먹으로 풀 건가요 ? "
여인들이 따지고 들면 들수록 나의 내부에서는 슬며시 웃음이 터져 나오려고
했다. 나는 미소를 살짝 감추며, 여인들을 향해 자신에 찬 목소리로 설명해 나갔다.
물을 푸는 도구는 굵은 고사목(枯死木)을 얇게 쪼개어 목제(木製) 그릇을 만들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계속하여 도구를 만들어 가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해 나갔다.
그런데도 의외의 반응이 나타났다. 나의 설명을 못마땅하다는 듯이 듣고 있던 청혜와
주현이 일제히 반문한 거였다.
"그렇다면 나무는 무엇으로 쪼갤 건가요 ? 쪼갠 다음에 나무는
무엇으로 결합시킬 건가요 ? 톱이나 못 등의 일체의 도구도 없으면서 큰 소리만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 자꾸만 짜증이 날 수밖에는요 ? 그리고 또
뭐라 했나요 ? 살기 위해서는 뱀이나 개구리도 먹어야만 한다구요 ? 하기야 한국인들은
곰 발바닥까지도 먹는댔으니까 알 만하기는 하지만요. 저희들은 죽었으면 죽었지
뱀을 먹는 짓 따위는 하지 않을 거예요. "
이상스럽게도 청혜와 주현의 톡톡 쏘는 듯한 앙칼진 태도가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빠져 나갈 길이라곤 없는 암담한 현실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아는 나였다.
우연히 지나는 헬기에 의해 발견되지 않고서는 사실상 탈출이 어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이럴수록 전체의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유도해 나가야겠다는 일념으로 관대해지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암담한 현실에 희망의 불꽃마저 없다면 곧바로 일행 모두가 자포자기해
버릴 가능성이 압도적이었다.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여인들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급하더라도 일의
순서를 정해 놓고 차근차근히 추진해 나가자고 여인들을 달랬다.
나는 여인들에게 칡을 몇 뿌리 캐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는 곧장 석실 밖으로 나와 칡 뿌리를 캐기 시작했다. 뭉뚝한 소나무 줄기로
땅을 판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의 끼니 해결을 위해선
조금도 망설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비교적 결이 좋은 토양을 골라, 한 시간 가량을
끙끙거리며 씨름을 했다. 그런 뒤에, 손에 얻어진 수확이라고는 고작 칡 두 뿌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칡은 양 손으로 움켜 쥐기에는 벅찰 정도의 굵기였었고, 길이는
2m 가량이었다. 나는 곧장 칡을 도랑으로 가져 가서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석실로 되돌아왔을 때까지도 여인들은 상심을 한 채 풀이 죽어 있는 모습들이었다.
어차피 죽게 되어 있는 마당에, 먹기는 왜 먹느냐는 듯한 볼 부은 얼굴들이었다.
나는 이 번 기회에 유선문의 심성 수련을 철저히 해 보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내가 고성의 상족암에서 귀한 시간을 들여서 수련한 것이 심성 수련이 아니었던가
? 내가 한 단계 높아지기 위한 인격 수련의 기반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이왕 이렇게
마음을 먹은 김에,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행하리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나는 여인들의 표정과 행동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기로 했다. 나는 칡을 담을 그릇이
필요하다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이 번에는 여섯 개의 도자기 그릇을 들고 나와 흐르는
물에 씻었다. 세월이 흘렀어도 사기 그릇은 물에 잠기자마자 금세 백색의 색채를
쏟아 내고 있었다. 나는 흐르는 물에 사기 그릇을 하염없이 헹구며 마음을 정화하고
있었다. 몸을 물에 담그고 서 있자니까, 물고기들의 무리가 한없이 자유롭게 유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생각을 갖게 되었다. 내가
왜 구룡동굴에서 죽지 않고 여기에까지 오게 된 것일까 ? 객관적인 정황으론 다분히
죽을 만한 여건들이었었다. 그런데도 지금껏 생존할 수 있었다는 건 말이다. 뭔가
자연이 내게도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나는
어느새 눈을 감은 채로 사기 그릇을 헹구고 또 헹궜다. 이제 내 마음속에서 들끓는
일체의 잡념은 정화가 된 느낌이었다. 심지어 내 발을 적시며 흐르는 물소리까지도
이제 나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생명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 지금의 나의 생명은 어디로부터 온 걸까 ? 단순히 난자와 정자의 결합의 의미가
아니라, 생명 현상의 심오한 근원을 말함이었다. 정자가 스스로 움직인다고 해서
독립된 생명 현상을 지니고 있는지 실로 의아스러웠다. 하기야 그것도 생명의
한 형태라면 형태라고 할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종합적으로 관리되고 절제된
의미에서의 생명 현상이란 수정 이후에 나타나는 게 아닐까 ? 잠시 심오한 생명의
근원을 더듬어 보게 되어 마음이 황홀해졌다. 눈을 감은 채, 그릇을 반복하여 헹구는
사이에, 마음이 극도로 평온해졌다. 이 순간에는 흐르는 물결도 스쳐 가는 바람결도
모두 감미로움 그 자체였다. 극도의 황홀감에 취해 무아지경에 빠져 있을 때였다.
창졸간에 나의 발목을 부여잡는 느낌이 물 속으로부터 전해져 왔다.
문득 구룡동굴의 물 속에서 발목을 잡힌 일이 떠올라서 기겁을 할 지경이었지만 말이다.
도랑의 깊이가 허리보다 깊지는 않았기에 태연히 서 있었다. 왠지 바로 눈을 뜨고
싶은 생각은 일지 않았다. 내가 잡힌 신체의 부위가 다름 아닌 발목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눈을 뜨는 대신 감촉으로부터 여인의 손길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생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다가오던 발자국 소리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못
들었는데 말이다. 어느새 물 속에까지 들어와 나의 발목을 움켜쥔 것일까 ? 수많은
말이 있는데도 왜 말 한 마디 없이 나의 발목을 움켜쥔 것일까 ? 와 닿은 여인의
손길은 말할 수 없이 따스하고도 부드러웠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은 채, 따스한
손의 주인이 누구일까를 생각하며 가슴을 졸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