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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굴

                                                                                          손 정 모

   대숲으로 스산한 기류가 연신 파도처럼 밀려드는 느낌이 전해진다. 어느새 가을이 깊었음이 느껴진다. 정동 마을의 인태(仁泰)가 굴삭기를 가동하여 언덕의 흙을 걷어낸다. 그는 나보다 3살 아래인 43살의 다부진 근육질의 사내다. 언덕은 집터 뒤에 치솟은 종중산으로 오르는 시발 부위다. 청향산(淸香山)이라는 이름의 종중산은 나의 생가(生家) 집터 북쪽으로 솟구쳐 있다. 언덕의 형세는 30도로 기울어져 20여m에 이르는 가풀막이다. 오르는 길이 5m가량의 폭으로 다듬어져 있다. 이런 맵시가 예전부터 약간 특이했다고 여겨진다.

   내가 토굴을 발굴하려 마음을 먹은 것은 자욱한 연막(煙幕) 탓이었다. 묘하게도 연사흘째 꿈에서 생가가 연막에 휩싸여 들썩거렸다. 아무래도 생가 언덕 부근의 토굴 탓이라는 느낌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근래에 발견된 생가 뒤편의 토굴을 발굴해야겠다고 작정했다. 토굴에 실린 신비로운 기운이 내 꿈속에까지 찾아들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20분간 흙을 걷어내니 높이가 2m가량의 토굴(土窟)이 확연히 드러난다. 단순히 땅이 함몰된 구덩이가 아님이 선명히 드러난다.

   신도시 조성 계획이 발표된 지는 15년이 넘는다. 그러다가 그 계획이 구체화되어 12년 전부터 구체적으로 시행되었다. 9년 전에는 생가 뒤를 지나는 국도인 진마대로(晉馬大路)가 뚫렸다. 진마대로는 진주에서 창원까지 신설된 36km에 이르는 4차선 국도이다. 종중산의 산중턱을 동서 방향으로 내달리며 차도가 뚫렸다.

   종중산의 기슭에서 생활하던 형님 가족이 근래에 시내로 이사했다. 형님이 살던 가옥과 택지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예전에 보상했다. 국도 아래 방향의 평야에 신도시가 조성된다고 한다. 형님이 살던 집은 내가 출생했던 집이다. 달리 말하면 나의 생가(生家)다. 형님이 이사한 직후에 생가는 굴삭기에 의해 평지로 변했다. 집터 언저리의 산자락에는 빈약한 대숲이 바람결에 휩쓸릴 따름이다.

   생가 뒤쪽인 북쪽에 위치한 종중산을 오르던 시발점의 부위다. 현재로서는 집터에서 진마대로까지 올라가는 경사지 부분이다. 이 일대가 예전에는 산을 오르던 길이 시작되던 장소다. 이 등산로의 경사가 30도 정도로 20여m만큼 곧게 뻗어 있다. 산길이면서도 폭이 5m에 이르는 상당히 특이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작년 여름에 폭우가 길게 쏟아진 뒤였다. 사립문 바깥에서 시작되는 산길 경사로의 흙더미가 크게 떨어져 나갔다. 흙더미가 떨어져 나간 곳에서 의외로 토굴 입구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땅의 함몰 구덩이로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작년 가을에 재차 떨어져 나간 흙더미 사이로 구멍을 들여다보았다.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이 넓어지는 것이 인공적인 토굴이라고 여겨졌다.

   당초에 외떨어진 종중산에 터전을 잡았던 사람은 세상 떠난 부모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6⋅25를 맞아 인민군들에게 시달리다가 종중산에 자리를 잡았다. 종중산은 동서로 3km의 거리로 내뻗은 산악으로 치솟아 있었다. 산악의 남쪽 산기슭에는 정동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 남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종중산 북쪽에는 거대한 저수지를 갖춘 평야가 발달되어 있었다. 거기 평야 북쪽에는 또 다른 산악이 펼쳐져 있었다. 종중산 북쪽에 치솟은 산악 일대에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거기의 동네를 더무실 마을이라 불렀다.

   정동 마을 뒷산인 종중산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종중산 북쪽에는 더무실 마을의 평야가 펼쳐져 있다. 종중산 남쪽에는 정동 마을의 평야가 광막하게 펼쳐져 있다. 묘하게 동서로 3km가량 내뻗은 종중산의 산맥이 두 평야를 가로막는다. 작년에 산등성이를 타며 지형을 내려다본 적이 있다. 진마대로는 종중산 남쪽의 산중턱을 따라 동서로 뚫려 있다. 나의 생가였던 곳은 종중산의 산악에서 남북으로 허리가 잘록한 지점이다. 다른 부위는 폭이 넓은데 거기에서만 남북의 폭이 200여m에 불과하다.

   지형 구조로 봐서 다른 곳은 펑퍼짐하게 널브러진 산줄기다. 유독 생가였던 자리만 잘록하게 휘어들어가 산줄기의 허리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지형의 구조가 우연하게도 그렇게 생겼으려니하고 여겼을 따름이다.

   토굴이 잘록한 지형과 연관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2주일 전에 들었다. 그래서 굴삭기를 동원하여 드러난 토굴(土窟) 입구만 파 보기로 작정했다. 굴삭기를 다루는 작업은 마을의 중장비 기사인 인태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 서울에서 내려와 진주에서 일박했다. 아침에 진주의 숙소에서 나와서 생가 마을인 정동을 찾았다.

   정동은 진주 시에 속하지만 도심의 외곽 지역에 있는 마을이다. 도심에서 남동 방향으로 3km가량의 거리에 있다. 아침에 인태를 만나 공사 대금으로 20만 원을 지급했다. 인태가 막걸리를 서너 잔 마신 뒤에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토양 자체가 부드러운 퇴적층이라 굴삭기가 닿자마자 쉽게 파 헤쳐진다. 노출된 토굴은 비스듬히 아래로 내리뻗는 형세다.

  십여 분간 작업을 치른 뒤다. 놀라운 장면이 펼쳐져 인태와 나를 궁금증의 세계로 휘몬다. 토굴은 집터 아래로 5미터쯤 내려가다가 수평으로 뚫려 있다. 평균 높이는 2m 정도이며 폭은 3m가량이다. 거의 직선 형태로 정동 마을에서 더무실 마을을 향해 뚫렸다. 단체 노역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작업이라 여겨진다. 토굴은 진마대로 하부를 관통하면서 더무실 마을로 내닫는다. 굴이 실제로 더무실 마을까지 관통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정황으로 봐서 그럴 가능성이 압도적이라 여겨진다.

   인태가 나를 향해 말한다.

  “여태껏 마을에서 살았지만 이런 굴이 있는 줄은 정말 몰랐십니더. 이 굴이 언제부터 뚫렸던 것인지 생각할수록 신기합니더. 회중전등을 구해서 함께 쭉 안쪽까지 한 번 들어가 봅시더.”

   인태의 말에 따라 둘은 회중전등을 구해 굴 안으로 들어간다. 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온이 몸으로 착 달라붙는다. 입구에서 십여m쯤 들어서자 토굴 바닥에 물줄기가 보인다. 어디에서 쉴 새 없이 물이 흘러들어 온다는 얘기다. 물의 깊이는 겨우 발목이 잠길 정도일 따름이다.

   둘은 의아롭게 여기면서 점차 안쪽으로 걸어 들어간다. 높이 2m에 폭이 3m가량이라 걷는 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그 흔한 거미줄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둘은 휴대전화 영상 장치에서 위치 정보를 훑어본다. 토굴 입구에서 어느새 150m 지점을 통과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50m 거리만 가면 더무실 마을에 닿는 출구가 나오리라 여겨진다. 인태와 나는 뛰다시피 속도를 내어 굴 속을 걷는다.

   5분간을 더 걸어갔을 때다. 토굴을 가로막는 돌연한 구조물이 발견된다. 바닥에서 1m가량의 높이에 콘크리트 벽이 가로막고 있다. 벽의 중앙에는 여닫는 출입문이 눈에 띈다. 열린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니 온돌방이 보인다. 온돌방의 북쪽에 또 하나의 출입문이 보인다. 출입문을 밀어 보려고 했지만 바깥이 막혀 있다. 인태와 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인태가 나를 향해 제안하듯 말한다.

   “온돌방을 포함한 토굴에는 보물을 감출 만한 곳은 없는 모양이네예. 지금 온돌방 아래로 물이 계속 흘러들지예? 내 생각으로는 뚫렸던 굴을 바깥에서 인공적으로 막은 모양입니더. 우짤꼬예? 일단 공사비를 내가 받았신께네 더무실로 장비를 이동시켜 뚫어볼까예? 시간은 좀 걸리겄지만 내한테도 궁금하게 생각됩니더.”

   나는 잠시 생각했다가 인태에게 응답한다.

   “굴삭기를 더무실까지 이동시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겠어요? 그 문제만 해결되면 나도 끝까지 굴의 구조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인태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하천 공사 관계로 아랫마을에 대형 덤프트럭과 중장비가 깔려 있십니더. 굴삭기를 이동시키는 데는 20분 정도만 하면 충분합니더. 그러면 상수 씨 말씸대로 그렇게 해 보겠십니더. 괜찮지예?”

   200여m의 굴을 되돌아 나와 생가 집터에 둘이 도착한다. 둘이 준비해 둔 도토리묵을 안주로 막걸리를 서로 나눠 마신다. 둘이 플라스틱 막걸리 1병씩을 비운 뒤다. 인태가 파헤친 흙더미를 굴삭기로 집터에 가지런히 쌓는다. 그러고 나서 인태가 아랫마을로 가서 덤프트럭을 가져오겠다고 한다. 굴삭기는 생각보다 쉽게 덤프트럭에 실린다. 십여 분이 흐른 뒤다. 동서로 펼쳐진 종중산 줄기의 잘록한 허리 부분을 찾는다. 그 부위야말로 정동의 생가 집터와 반대편이 되는 곳이다.

   둘이 산등성이에 올라 정동의 생가 집터와 반대 지점을 탐색한다. 반시간가량 오락가락하며 의견을 나눈 뒤다. 마침내 유력한 지점을 찾는다. 직경이 1km에 달하는 저수지의 물줄기가 흘러 개울과 합류되는 지점이다. 저수지의 물길과 산자락에서 내뻗은 개천이 합류되는 지점에 절벽이 치솟았다. 절벽 아래에는 직경 3m에 달하는 둥근 바위가 버티고 섰다. 절벽은 퇴적 토양으로서 굴삭기가 쉽게 파헤칠 만한 토질이다.

   인태와 내가 의견을 나눈 결과다. 아무래도 둥근 바위 일대가 굴의 출구가 되리라 예견된다. 인태가 바위 부근의 퇴적 토양을 파헤치기로 한다. 퇴적 토양은 굴삭기의 날이 닿자마자 쉽게 떨어져 나간다. 둥근 바위는 종중산 중턱에서 예전에 골짜기로 굴러내려 왔으리라 여겨진다. 토굴 부위에 있던 바위로 굴을 의도적으로 막았으리라 여겨진다. 대략 20여 분의 작업을 마쳤을 때다.

   마침내 시원한 바람이 밀려들며 굴의 출구가 드러난다. 예측했던 대로 둥근 바위가 굴의 출구 지점으로 드러난다. 출구가 드러나자 인태와 내가 굴 안으로 들어선다. 더무실과 정동으로 이어지는 200여m 길이의 굴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둘은 신비한 느낌에 휘감겨 굴 내부를 둘러본다. 굴 내부로는 더무실 계곡에서 흘러든 물이 발목까지 차오른다. 굴의 높이는 2m가량이며 폭은 3m가량으로 균형 잡힌 모양을 취한다.

   둘은 회중전등을 켜서 굴 내부를 샅샅이 비춰 본다. 하지만 온돌방과 주방을 제외한 특색적인 구조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200m가량의 굴이 거의 직선 통로로 뚫렸을 따름이다. 토굴 규모로 볼 때에 수많은 사람들이 투입되었으리라 여겨진다. 무슨 용도로 굴이 뚫렸는지 추측하기가 쉽지 않다. 한동안 인태와 굴을 둘러본 뒤다. 내가 인태에게 부탁한다. 파헤친 흙더미를 저수지 곁의 공터에 옮겨 놓으라고. 그래야 비가 내려도 흙이 하천에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일환이다.

   인태가 토굴을 떠나기에 앞서서 내게 말한다.

   “토굴 내부가 시원하여 여름철에 더위를 식히기에는 딱 좋게 생겼네예. 정말 이런 규모로 굴을 팠을 때엔 중요한 의도가 있었겄지예? 고것이 무엇에 연관되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더.”

   인태가 굴삭기를 덤프트럭에 실어 마을로 돌아간 뒤다. 나는 일단 굴을 거쳐 생가 집터에 도착한다. 진마대로 경사면 아래에 굴삭기에 의해 평지로 다듬어진 지역이다. 집터 근방에는 규모가 작은 대숲이 펼쳐져 있다. 언젠가는 도로의 안전을 위해 대나무 숲까지도 제거되리라 여겨진다.

   생가 집터에서 더무실까지 뚫린 굴의 내력이 내겐 몹시 궁금하다. 혹시나 아는 사람이 없을까 싶어 물어보기로 한다. 인태를 제외한 정동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이주해 버린 상태다. 인태도 굴의 내력을 모른다. 그래서 산줄기 북쪽의 더무실 마을로 찾아간다. 거기에도 폐가만 4채가 남아 마을의 흔적을 드러낼 따름이다. 결국 사람들에게 물어 정보를 찾을 길이 끊긴 상태다. 선걸음에 차를 몰아 진주역 부근의 가게로 간다. 거기에서 회중전등에 넣을 전지를 충분히 산다. 전지가 소진되어 탐색 작업에 방해받는 일을 막기 위함이다.

   굴의 입구가 나중에는 막혔기에 다른 마을에서는 알지 못하리라 여긴다. 굴삭기 작업에 지출한 금액이 문제가 아니다. 그만한 금액이야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액수다. 나는 탐색 작업에 임하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는다.

   분명한 것은 굴이 원인 없이 뚫리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굴 안을 관통하는 물줄기에 착안한다. 농수(農水)를 공급하는 수로로 사용되었는지를 헤아려 본다. 생가 집터는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곳이다. 그러기에 산자락에서 흘러내리는 개천들이 집 언저리를 지나간다. 산맥이 큰 편이기에 골짜기에 연중 물이 마를 때가 없다. 그렇기에 굳이 더무실로부터 물을 공급받을 필요는 없다고 여겨진다.

   혹시 광물을 캔 곳인지도 헤아려 본다. 굴이 남북으로 평평하게 뚫렸을 뿐이라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도 없다. 뭔가 보물을 감추기 위한 곳인지도 검토해 본다.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되었다는 관점에서 그럴 가능성도 배제된다. 내 머리로는 도저히 더 이상 추측할 근거가 없다. 하지만 찾다가 보면 단서가 잡힐지도 모르리라 여겨진다.

   생가 집터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회중전등을 켜고 다시 굴로 들어간다. 모처럼 굴삭기로 굴을 열었기에 관련된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아내고 싶다. 200여m 길이의 굴을 관통하여 북쪽의 더무실 출구로 향한다. 북쪽 출구 곁의 온돌방에 들렀을 때다. 무심코 방바닥의 장판을 들춰 본다. 의외로 장판 밑에 얇은 나무 상자가 눈에 띈다. 상자는 가로가 30cm, 세로가 15cm가 되는 크기를 지녔다. 상자를 여니 거기에는 길이가 20cm에 이르는 단검(短劍)이 들어 있다. 단검 밑에는 글이 적힌 종이가 눈에 띈다.

   이 칼만 만지면 당신의 영혼이 달려오겠다고 하셨죠?

   당신의 숨결이 그리워 미치겠어요.

   내일이면 당신을 만나러 저수지에 뛰어들게요.

                   - 진희 -

   세상의 언어가 일제히 얼어붙어 내 사유의 흐름을 차단하는 듯하다. 숨결이 그리워 저수지에 뛰어들겠다니? 가슴을 뒤흔들 듯한 연가의 절창이지 않은가? 정말 세상을 자신의 정감에 충실하게 산 인물이라 여겨진다. 그러자 내 가슴에 진한 서러움의 통증이 밀려든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흐느끼면서 단검의 칼날을 어루더듬는다. 아무래도 영가를 위해 뭔가 해 주어야겠다는 충동이 강하게 인다.

   시간이 제법 흘러 어느새 석양이 평야를 발그레 물들이고 있다. 저수지에도 바람결에 일렁대는 수면에 햇살이 뒤엉켜 휘황하게 빛난다. 굴로 흘러드는 저수지의 수량이 한결같이 일정해 보인다. 저수지 곁의 굴 출구에서 한동안 서성일 때다. 저수지 쪽으로 누군가 걸어 내려오고 있다. 내게 접근한 사람은 의외로 여승이었다. 나이는 나와 비슷한 40대 중반으로 보인다. 여승이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연이틀째 꿈에 저수지에서 연막(煙幕)이 자욱하게 피어올랐어요. 분명히 누군가 외부인이 들이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여기에 굴이 있는 줄 아셨어요? 굴삭기로 굴의 출구를 팔 때부터 건너편 산에서 지켜봤어요. 혹시 진희 씨와 무슨 연고라도 있으세요?”

   나는 일시에 급격한 희열감을 느낀다. 굴의 내력을 아는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승의 제안으로 여승이 거처하는 암자로 따라간다. 더무실 평야의 북쪽에는 옥출산(玉出山)이라는 산악이 치솟아 있다. 거기 산악의 북쪽 산기슭에는 미륵암(彌勒庵)이란 암자가 자리 잡고 있다. 휴대전화기의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미륵암의 해발고도는 240m에 달한다. 암자는 3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법당과 승방과 공양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암자의 마당에는 2m가량의 미륵불 석상이 세워져 있다.

   미륵불 주위에는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다. 마당의 중앙에는 직경이 10여m에 이르는 아담한 연못이 위치해 있다. 승방은 주지실을 겸하고 있다. 암자에는 여승과 공양주 보살 한 명이 기거하고 있다. 공양주 보살은 50대 후반의 여인으로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다. 주지실에서 다탁을 사이에 두고 여승과 마주 앉는다. 열린 창밖으로는 연못에 떠 있는 수련 줄기가 보인다.

   여승이 작설차를 마시며 입을 연다. 여승은 보기보다 화술이 대단히 능란하다고 여겨진다. 몇 마디만 들어도 마음까지 흔들릴 정도의 달변이라 여겨진다. 수수한 용모에 담긴 언변이 사람들에게 친화력을 안겨 주는 듯하다.

   “세상 떠난 예전의 주지 스님으로부터 들었던 얘기예요. 이상할 정도로 그 얘기는 가슴에 진한 여운을 남겼어요. 주지 스님의 말씀이 내게 준 정신적 자산이 무척 컸어요. 정말 세상사가 다양하며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법명이 혜운(慧雲)임을 밝힌 여승의 이야기가 물 흐르듯 흐른다. 혜운의 나이는 45살이라고 스스로 밝힌다. 어느새 나의 의식은 그녀의 얘기 속 공간으로 흘러든다. 혜운의 스승이기도 했던 전대 주지 여승의 법명은 석천(石泉)이라고 했다. 혜운보다 41살이나 연상이었던 석천은 9년 전에 77세로 입멸했다고 한다.

   석천이 21살 때에 실연을 당해 자살하려고 옥출산 절벽을 찾았다. 절벽에서 막 뛰어 내리기 직전이었다. 느닷없이 50대 중반의 여승이 나타나 석천의 자살을 만류했다. 실연을 당한 일은 연분이 안 맞았음을 의미하는 거라고 들려주었다. 연분이 안 맞다는 일은 자살할 명분이 아니라 말했다. 토벽(土壁)이라는 여승의 말은 석천의 마음에 진한 감동을 주었다. 지금까지 맛보지 못했던 별천지를 대한 느낌에 전신이 떨렸다. 그 날부터 석천은 토벽을 스승으로 삼고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석천이 여승이 된 지 2년이 지났을 때였다. 한반도에 6⋅25 동란이 일어났다. 38선을 무너뜨리고 인민군들이 파죽지세로 남하했다. 서울도 전쟁이 일어난 지 사흘 만에 적의 수중에 들어갔다. 인민군들이 진주까지 내려와 수시로 마을 사람들을 사살하곤 했다. 산중의 사찰은 인민군들이 탐내는 약탈 장소가 되었다. 인민군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당장 총탄이 가슴으로 날아들곤 했다.

   동란이 일어난 직후였다. 강진희(姜珍姬)란 28살의 여군은 간호병으로 인민군에 소속되어 남하했다. 진주 외곽인 산야에서 국군과 격전을 벌인 뒤였다. 대다수의 인민군들이 국군들에 의해 사살되거나 생포되었다. 무사히 달아난 8명의 인민군들이 정동과 더무실을 나다니며 밤에만 활동했다. 국군들에게 쫓기는 신세로 8명의 인민군들이 굴을 팠다. 지하에서 살아갈 목적에서였다. 그 굴이 종중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200여m 길이의 토굴이었다. 지형이 부드러운 침식 토양이라 굴을 뚫기가 쉬웠다. 한 달에 걸쳐서 비밀스럽게 굴을 뚫었다.

   굴을 뚫고는 생필품들을 굴로 옮겨 8명이 함께 기거했다. 그렇게 굴 생활을 한 지 두 달째에 이르렀을 때였다.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남부 지방의 인민군들에게 북상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8명의 인민군들이 새벽을 기해 굴에서 벗어날 무렵이었다. 평소에 굴을 지키려고 인민군들은 출입구 부근에 지뢰를 매설해 두었다. 일행 중의 하나가 굴을 빠져 나가다가 실수로 지뢰를 밟았다. 지뢰의 파편에 맞은 바위 조각들이 가루가 되어 허공을 날았다. 운이 나쁘게도 사내 둘은 현장에서 즉사했다.

   죽은 사내들의 뒤를 바싹 따랐던 진희의 눈에는 돌가루가 날아들었다. 돌가루에 맞아 진희의 두 눈에 핏물이 금세 흘러내렸다. 지뢰의 폭발음을 들었던 탓이었으리라. 군경 수색대들이 굴을 벗어나려던 인민군들에게로 몰려들었다. 다섯 명의 인민군 사내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나 버렸다. 눈을 다친 진희만 군경 수색 대원들에게 체포되었다. 진희는 곧바로 진주의 야전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군인들이 치료시키려고 입원시킨 거였다.

   하지만 돌가루의 충격이 너무 커서 진희의 두 안구가 파열되었다. 그래서 신속한 치료에도 불구하고 진희는 시력을 잃게 되었다. 진희의 치료가 끝난 뒤였다. 국군은 시각 장애인인 진희를 방면시켰다. 진희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탁하여 더무실 저수지까지 찾아갔다. 그러고는 저수지 남쪽의 굴 출입구 부근까지 찾아갔다. 시력을 잃기 전까지 건강하게 지냈던 장소에 잠시 머물고 싶었다.

   석천이 더무실 마을에서 양식을 구해 미륵암으로 올라가려 할 때였다. 석천이 저수지 입구에서 서성대던 진희를 발견했다. 석천이 일단 진희를 미륵암의 승방으로 데리고 갔다. 사흘째 미륵암에서 진희를 보살피고 있을 때였다. 미륵암으로 낯선 사내가 찾아왔다. 사선을 넘어 달아났던 5명의 인민군들 중의 하나였다.

   31살의 성현수(成鉉樹)라는 사내가 진희를 데리고 가서 함께 살겠다고 했다. 현수의 제안에 진희가 처음에는 현수에게 부담되기 싫다면서 거절했다. 하지만 이틀째 현수가 간청하자 동의를 하고는 미륵암을 떠났다. 현수가 진희를 데리고 갔을 때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석천도 진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진희를 전송했다.

   휴전이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미륵암에 어떤 소문이 흘러들었다. 소경인 어떤 여자가 더무실의 저수지 부근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석천은 느낌으로 진희가 왔으리라 여겼다. 그래서 저녁 무렵에 더무실의 저수지로 내려갔다. 석천이 예상했던 대로 진희가 저수지 가장자리를 서성대고 있었다. 둘은 반가워서 만나자마자 서로를 끌어안았다.

   예전에 현수와 함께 미륵암을 떠나면서부터 그들은 부부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진주 변두리의 야산 기슭에 초가(草家)를 지어 살았다. 밭을 일구려 야산을 괭이로 사흘째 현수가 팠다. 그러다가 전쟁 중에 땅속에 묻혔던 포탄의 불발탄을 건드리게 되었다. 돌이 묻혔거니 여기며 땅을 파는 찰나에 괭이가 불발탄을 건드렸다. 순식간에 폭음이 일며 현수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진희가 사고 현장을 더듬어 보니 현수는 절명한 상태였다. 앞이 보이지 않음에도 현수의 시신을 땅속에 묻고는 진희가 통곡했다.

   자포자기적인 절망 상태에 빠져 진희가 더무실 저수지로 찾아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저수지 옆의 굴에 들어섰다. 예전에 인민군 일행과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 진희의 생각으로는 거기를 둘러보고는 저수지에서 자살할 작정이었다. 저수지 주변을 거닐며 착잡한 마음에 휘감겨 있을 때였다. 미륵암에서 석천이 내려와 진희를 만난 거였다. 한동안 서로 대화를 나눈 뒤였다. 석천이 진희를 돌봐 주겠다며 미륵암으로 데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진희가 완강히 거절했다. 호의는 고맙지만 남한테 신세를 지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석천이 진심으로 진희를 돌보겠다고 거듭 제안했는데도 진희가 거절했다. 석천이 진희 대신에 일정한 주기로 생필품을 사 주겠다고 했다. 거기에 대해서는 진희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실명한 상태라 진희가 돈을 벌 여건이 되지 못했다. 석천이 사찰 경비의 일부를 할애하여 진희를 돌보기로 했다.

   진희는 저수지 옆의 굴에서 기거하겠다고 석천에게 말했다. 석천이 진희에게 말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게 약간의 공사를 하겠다고. 공사를 마칠 때까지 며칠만 미륵암에서 함께 지내자고 했다. 그제야 진희가 흔쾌히 대답하며 미륵암에 올랐다.

   석천은 인부 셋을 고용하여 굴 내부를 치장했다. 굴의 천장이 무너지지 않게 철제 구조물로 떠받쳤다. 굴의 벽은 콘크리트를 발라 매끈하게 다듬었다. 바닥 위 1m 높이로 두꺼운 동관(銅管)들을 맞은편 벽면까지 연결시켰다. 동관 위에 철근을 넣고 콘크리트를 부어 방바닥을 만들었다. 굴의 벽에서 만들어진 방의 벽 이외에 두 벽을 만들었다. 굴을 오가는 방향인 양쪽 방향에 콘크리트로 벽을 만들었다. 굴을 오갈 수 있게 양쪽 방향으로 문을 만들어 달았다. 방의 출입문이 집의 출입문 역할까지 했다.

   공사를 맡은 전문 일꾼들의 솜씨라 그럴싸한 주거지가 만들어졌다. 저수지 곁의 전봇대에서 전선을 뽑아 방에 전기도 들어가게 했다. 방 바로 곁에 주방도 하나 만들어 달았다. 언제든 요리할 수 있게 주방은 저수지 쪽으로 만들었다. 시멘트가 굳는 데 1주일이 필요했다. 인부들이 방바닥에 장판을 깔고 벽에 벽지까지 발랐다. 그러고서도 시멘트 냄새가 빠질 때까지 1주일을 더 기다린 뒤였다. 석천이 공양주 보살과 함께 생필품을 굴로 운반했다. 식기류들 및 전기밥솥과 전기장판까지 사서 주거지로 날랐다. 또한 침구류와 의복까지도 사 주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진희가 자력으로 생활하기에 이르렀다. 자명종 시계의 울림에 따라 저녁에는 미륵암의 석천을 찾기도 했다. 그렇게 별다른 어려움이 없이 잘 지낸다고 여겨졌다. 진희는 실명 상태에서도 법당에서 곧잘 불상을 향해 절을 했다. 세상을 떠난 현수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는 측면이기도 했다.

   석천을 만나 얘기를 나누면서도 미안한 마음을 나타내곤 했다. 일방적으로 석천에 의해 부양받는 신세가 불편하다는 마음을 내비치곤 했다. 실명한 상태라 진희가 암자를 위해 할 일이 없다고 푸념했다. 그런 불편한 마음을 버리라고 석천이 진심을 담아 말하곤 했다.

   이후로 서너 해 동안 석천과 진희는 혈족처럼 잘 지냈다. 어느 해 여름철 태풍이 지리산 일대를 강타했다. 며칠째 비가 내린 뒤였기에 산사태가 일어나 산기슭의 마을을 뒤덮었다. 그래서 ‘뫼자몰’이란 마을 일대가 흙더미에 묻혔다. 70여 명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이 일시에 숨을 거두었다. 이들 망령들의 천도재를 화엄사에서 추진한다고 했다. 화엄사에서 석천에게 천도재를 도와 달라고 연락을 취했다. 화엄사에 승려들이 많았지만 하안거에 들어갔기에 부득이 도움을 요청한다고 했다.

   석천이 진희에게 화엄사에 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는 길을 나섰다. 진희는 석천이 미륵암을 떠나자 마음이 불안했다. 혹시 현수가 세상을 떠나듯 석천한테 불상사가 생기지는 않겠는지? 진희의 불안한 마음을 헤아린 듯 석천은 조처를 취해 놓았다. 공양주 보살이 하루 두 차례씩 진희의 거처에 들렀다. 그러면서 불편함이 없도록 진희를 도왔다. 미륵암을 떠난 지 사흘 만에 석천이 더무실로 돌아왔다. 화엄사로부터 지급받은 넉넉한 경비까지 받아들고 왔다. 석천은 더무실 평야에 들어서자 저수지 곁의 진희를 먼저 방문했다.

   진희가 좋아하는 수박과 복숭아까지 듬뿍 사서 진희의 거처를 찾았다. 석천이 더무실 평야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정겨운 마음으로 석천이 진희를 불렀다.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진희가 머물던 방의 출입문을 열고 방바닥까지 살펴보았다. 방바닥에는 공양주 보살이 요리하여 갖다 놓은 음식물들이 밥상에 있었다. 음식물들을 살펴보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진희는 보이지 않았다.

   석천이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저수지를 살펴보았다. 놀랍게도 저수지 남쪽의 수로(水路) 부분에 여인의 시신이 떠 있었다. 몸이 물에 잔뜩 부푼 상태였다. 석천이 깜짝 놀라 시신의 얼굴을 살펴보니 진희였다. 저수지 가장자리에는 진희의 유서가 벗어 놓은 신발 아래에서 발견되었다.

   자비로운 부처님이시여!

   정녕 영혼이 윤회한다면 내생에서는 남을 돕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더 이상 주변에 신세 지기가 부담스러워서 생을 마감할까 합니다.

   돌봐 주신 석천 스님과 공양주 보살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 진희 -

   유서를 읽자마자 석천이 못가에 주저앉으며 마구 통곡했다.

   “못난 여자 같으니라구. 같이 친구로 지내면서 삶을 살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도 내가 그렇게 부담스러웠다고? 못된 여자 같으니라구. 그렇게 네가 잘났어? 그처럼 잘났느냐고? 으흐흐흑! 흐흐흑!”

   석천의 눈에 유서의 서체는 진희의 것임이 명료했다. 실명한 상태에서도 진희는 곧잘 글을 써서 석천에게 내보이곤 했다. 실명한 사람치고는 글씨가 반듯하여 석천이 놀랄 때가 많았다. 혹여 진희가 실명했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의심할 나위 없는 서체이기에 진희의 자살임을 석천은 받아들였다. 곧바로 암자의 공양주 보살을 데리고 저수지로 내려왔다. 시신을 보자 공양주 보살마저 몸을 떨며 격렬히 울부짖었다.

   “어이구, 불쌍한 보살님! 그렇게나 외로웠십니꺼? 우리는 당신의 친구가 될 수 없었십니꺼? 이건 스님과 저를 너무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모리겄십니다. 우째 이럴 수가 있십니꺼? 흐으흑! 으흐흑흑!”

   공양주 보살의 울음소리에 더무실 평야가 슬픔에 몸을 떠는 듯했다. 한동안 박 보살과 석천이 손을 마주 잡고 통곡한 뒤였다. 박 보살이 삼거리에 있는 지서로 사망 사실을 신고하러 갔다. 이내 경찰들과 보건소 공의가 더무실의 저수지를 찾았다. 공의가 투신에 의한 익사임에 분명하다고 소견을 밝혔다. 경찰들과 공의가 떠난 뒤였다.

   석천과 박 보살이 직접 시신을 염습했다. 그런 뒤에 관을 사서 옥출산 산비탈에 매장해 주었다. 그러고는 암자에서 천도재를 정성을 들여 올렸다. 그러고는 진희에 대한 일은 점점 세상에서 잊혔다.

   여승인 혜운(慧雲)이 기나긴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뒤다. 잠시 숨결을 고르고는 혜운이 나를 향해 말한다. 석천이 천도재를 올렸는데도 진희가 혜운의 꿈에 종종 나타난다고 한다. 놀랍게도 연막(煙幕)에 휩싸인 채 저수지에서 혜운의 이름을 불러댄다고 한다. 아무래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해 주어야 마음이 편하겠다고 들려준다. 내가 혜운을 향해 말한다.

   “토굴의 남쪽 출구가 내 생가였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아요. 공교롭게도 내 꿈에서도 생가에 연막이 잔뜩 끼곤 했거든요. 그래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것은 내가 할게요.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스님의 꿈에까지 나타난다면 예삿일이 아니라 여겨져요. 아마 영가가 너무 억울하여 여전히 이승을 떠도는 느낌이 들어요.”

   혜운이 내 말을 듣고 합장하며 고개 숙여 응답한다.

   “처사님의 마음씨에 소승도 감격스러워요. 굿이 끝날 무렵에 저도 저수지로 잠깐 내려갈게요.”

   혜운의 전송을 받으며 미륵암을 떠나온 뒤다.

   그 이튿날 시내에서 용하다고 알려진 무당을 불렀다. 표정부터 예사롭지 않은 50대 중반의 여인이다. 귀신들이 활동하기 시작할 시각인 밤 7시부터 굿을 하겠다고 한다.

   이윽고 밤 7시 무렵이 되었을 때다. 저수지 옆에 멍석을 깔고 제물을 진열한 뒤다. 무당이 꽹과리를 치면서 멍석 위를 서성대며 어깨를 떨어댄다. 아마도 접신(接神)을 준비하려는 자세로 느껴진다.

   마침내 무녀가 씻김굿을 진행한다면서 접신 상태에서 주문을 외기 시작한다. 망자의 영혼인 망령을 위로하고 달래어 저승으로 편안히 보내는 의례다. 예전 같았으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텐데 관중이라곤 나 혼자다. 마을 사람들이 다 떠나 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더무실 평야에 자리 잡은 1km 직경의 저수지. 저수지에 종중산의 산악이 거대한 용처럼 담겨 출렁댄다. 평야로 휩쓸리는 바람결이 저수지의 물에 닿아 연속적으로 수파를 일으킨다.

   게다가 무녀가 두드리는 꽹과리의 선율까지 수면에서 파동으로 어우러진다. 무녀는 기력을 다해 주문을 외며 망령을 위로하는 춤을 춘다. 춤사위에 묻어나는 무녀의 눈빛에서 문득문득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음산하다.

   어느새 저수지의 수면에는 하늘의 별이 잠겨 섬광처럼 불꽃을 피운다. 정경은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너무나 스산한 분위기다. 무녀의 입에서 괴로움이 들끓는 목소리가 터져 허공을 가른다.

   “하늘을 다스리는 천궁신장(天宮神將)님! 땅을 다스리는 지하신장(地下神將)님! 부디 외로운 영가가 저승에 잘 들어가도록 이렇게 간절히 비나이다. 육신에 갇혀 찌들었던 영가를 편안하게 영접하여 거두어 주사이다. 영가에게 에둘렸던 죄는 널리널리 바람결에 흩날려 버리도록 해 주사이다. 빌고 또 간절히 비나이다.”

   무녀의 목소리에 하도 슬픔이 끓어올라 아까부터 나도 눈물을 뿌린다.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무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떨어져 내린다.

   관객이라곤 나 혼자밖에 없는 중에서도 마침내 굿은 끝났다. 대략 한 시간이 경과한 터였다. 시계를 보니 밤 9시 무렵이었다. 나는 무녀를 도와 꽹과리와 징을 비롯한 무속 도구를 챙긴다. 나는 무녀를 그녀의 승용차 안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양해를 구한다. 그러고는 저수지의 물이 굴로 흘러드는 굴의 출구로 내려선다.

   나무 상자가 발견된 토굴을 향해 합장하여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이제 이승에서의 온갖 아쉬움은 떨쳐 버리고 좋은 데로 승천하십시오. 부디 저승에서는 나날이 복락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눈을 감고 합장하여 빌고 난 뒤다. 눈을 뜨려고 하니 콧등이 찡하며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진희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가슴에 멍울이 되어 박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숨결이 그리워 미치겠어요.

   실명한 상태로 종이에 볼펜으로 써서 남긴 저승으로의 서간문이다. 우편물 원본은 남아 있지만 저승의 망령은 벌써 읽었으리라 여겨진다. 생각할수록 슬픔의 잔영이 물결처럼 가슴으로 밀려든다. 너무 가슴이 아파 숨조차 못 쉴 지경이다. 저수지의 물조차 진희의 눈물 같기만 하다.

   석천마저도 진희가 목갑(木匣)을 남겼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진희의 영혼을 달래려 석천 혼자서 천도재(薦度齋)를 지냈다고 한다. 그랬는데도 혜운의 꿈에까지 진희가 생시처럼 나타난다고 들려주었다. 석천과 함께 촬영된 사진을 통해 진희의 모습을 안다고 했다. 생자의 꿈에 나타난다는 것은 망령이 이승을 떠돈다는 얘기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 씻김굿을 하여 진희의 영가를 위로하려고 마음먹었다. 세상에 대한 원한을 떨치고 편안히 이승을 떠나라는 취지다.

   목갑이 발견된 곳을 향해 합장하며 저승으로의 승천을 재차 기원한다. 그러고는 가만히 굴을 벗어나려 할 때다. 느닷없이 머리에 현기증이 일면서 낯선 여인의 환영이 밀려든다. 한 번도 대면한 기억이라곤 없는 낯선 여인의 얼굴이다. 하지만 마음 내부로는 진희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여인이 고통스런 중에서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맙다는 손짓을 한다. 여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해도 윤곽만 잡힐 뿐. 상세한 모습을 볼 수가 없다. 보지 못해도 눈이 실명한 상태임이 피부로 느껴진다.

   내가 토굴에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다. 나를 기다려 준 무녀가 나를 향해 작별의 인사를 한다. 무녀가 자신의 차에 올라타더니 차창 밖으로 손을 살짝 흔든다. 그러더니 이내 시야에서 자취를 감춘다. 무녀가 사라진 들녘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에 잠겼을 때다. 어스름이 진 저수지 가를 누군가 걸어오고 있다. 형상이 뚜렷이 파악되기도 전에 목소리가 먼저 날아든다.

   “박 처사님, 굿이 다 끝난 모양이죠? 애 많이 쓰셨어요.”

   무척 귀에 익은 목소리다. 미륵암의 주지인 혜운이 모습을 드러낸다. 반가운 마음에 합장을 하고 인사하며 응답한다.

   “주지 스님께서 여기까지 오셨군요. 암자에 들러 인사를 하고 갈까 생각했는데 잘 되었군요.”

   여승이 미소를 짓더니 저수지에 손을 씻으며 말한다.

   “오늘 굿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진작부터 와 보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마침 절에 신도들이 많이 찾아 와서 이제야 내려왔어요. 이제 굿까지 했으니까 고인의 영가(靈駕)가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 믿어요. 정말 좋은 일 하셨습니다.”

   종중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하천으로 저수지의 남쪽에서 물이 흘러내린다. 저수지 밑바닥에서는 연중 물이 치솟는다. 그러기에 예전부터 논은 말라도 저수지는 마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여승과 내가 앉은 저수지의 둑이 남쪽 방향이다. 둑에 앉아서도 저수지의 수면에 손이 닿는 위치다. 어느새 나도 여승을 흉내 내어 저수지에 손을 씻는다.

   여승이 손수건에 물기를 닦는 내 모습을 지켜보며 묻는다. 저수지에 손을 씻으면서 무엇을 생각했느냐고.

   여승의 물음에 커다란 의미가 담겼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대답하려니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입술을 우물댈 때다. 여승이 내 눈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나도 자연스레 여승의 눈을 마주 바라본다. 바로 이때 알 수 없는 현상이 내 마음에 일어난다. 여승의 몸뚱이에 낯선 여인이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찰나 간의 착시 현상이었지만 느낌은 묘했다. 전신으로 으스스한 냉기가 휘몰려드는 듯하다. 그러면서 굿에 너무 신경을 써서 심약해진 탓이라 여긴다.

   느닷없이 여승이 나를 향해 말한다.

   “조금 전까지도 처사님의 오른쪽 어깨에 진희 씨가 앉아 있었어요. 내가 저수지 물에 손을 씻은 이유는 영혼을 맑히려고 그랬어요. 손을 씻었는데도 여전히 망자의 모습이 보여 당황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이지 않아요.”

   여승의 말을 듣자마자 신속히 내 오른쪽 어깨를 살폈다. 어깨 어느 부위에도 다른 무엇이 얹혀 있지 않다. 여승의 마음의 작용일 뿐이라 여기면서도 나의 전신이 떨린다. 나 역시 여승의 몸뚱이에 얽혔던 낯선 여인을 봤기 때문이다. 분명히 형언하기 어려운 묘한 현상이 일어났음을 인정해야 할 판이다.

   왠지 마음이 온종일 한없이 애잔해지더라고 여승이 말한다. 수행하는 관점에서 나랑 얘기를 좀 더 나누고 싶다고도 들려준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말로 다 표현되지는 못함을 아는 여승이다. 애잔하고도 서글픈 여승의 마음이 내 가슴으로 전해진다. 가슴으로는 뜻이 전해져도 말로는 나타낼 수 없는 정황이다. 여승이 먹먹한 눈빛으로 입을 연다.

   “오랜 짐이었던 과제였다고 생각되네요. 처사님 덕분에 과제를 해결했다고 여기니 정말 마음이 홀가분해요. 하시는 일에 불심이 쌓여 커다란 기틀을 이루기를 빕니다.”

   나도 여승을 향해 합장하며 응답한다.

   “이렇게 주지 스님까지 영가를 배웅하니 저도 마음이 평온합니다. 부디 암자가 번성하기를 기원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이윽고 주지승이 오솔길에 들어서더니 이내 종적이 묘연하다. 나도 저수지 가에 세워 둔 승용차에 올라탄다. 저수지 물빛을 바라보며 잠시 영가를 위해 합장한다. 그러고는 석양에 휘감긴 들녘으로 차를 몬다. 가벼운 먼지가 실연기처럼 허공으로 피어오른다. 창밖으로 솔바람 소리가 파도 더미처럼 전신으로 휘몰려든다. 애틋하고 먹먹한 정감이 저녁 들녘으로 나른한 숨결처럼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