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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사꽃 그늘

                                                                                         손 정 모

   바닷바람이 점차 눈을 부릅뜨고 수면을 내리쓸기 시작한다. 바다는 해풍이 일렁일 때마다 숱한 골을 이루며 자지러진다. 수면파의 파동이 일 때마다 하얀 포말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휘잉 휘이이잉!

   살갗에 소름이 일 정도의 새된 음향이 연신 따갑게 밀려든다. 해안에 늘어선 나뭇잎들이 찢겨 떨어질 지경이다. 몸에 달라붙은 옷들마저 마구 나부껴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4월 하순의 오후인데도 초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도 기온이 싸늘하다.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가 격렬하게 진동한다. 꺼내 귀에 갖다 대니 상희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밀려든다.

   “지금 막 고개를 내려가는 중이야. 잠시 후에 만나자구.”

   돌섬의 해안인 거미곶으로 오는 길에는 고개가 있다. 왜냐하면 선착장은 거미곶의 반대편 해안에 있기 때문이다. 섬의 중앙에는 해발고도 200여 미터에 달하는 향산(香山)이 치솟아 있다. 선착장에서 향산을 넘어야만 거미곶으로 이르게 된다. 상희가 향산 고개를 넘는 중이라는 얘기다. 거기에서 거미곶까지 오려면 반시간은 족히 걸린다.

   나는 열린 잠바의 지퍼를 끌어올리며 낚싯대를 움직여 본다. 벌써부터 낚싯대가 요란스레 진동했지만 상념에 잠겨 있느라고 느끼지 못했다. 낚싯줄을 건져 올리니 볼락 2마리가 매달려 올라온다. 신속히 낚시 바늘을 물고기 입에서 빼낸다. 물고기를 살림망에 넣어 다시 바닷물에 담근다. 살림망에는 9마리의 물고기가 활발하게 헤엄치고 있다.

   잠시 잠잠했던 해풍이 또 다시 휘몰려든다. 해안에 줄지어 선 동백나무와 사철나무가 허리를 꺾으며 요동친다. 해안의 곳곳에는 야생 복숭아나무가 지천으로 깔려 꽃들이 만발한 상태다. 나의 시선이 복숭아꽃에 이르렀을 때다. 과거의 잔상이 기억 속으로 밀려든다.

   재작년 여름인 7월 하순경이었다. 폐암 말기에 있으면서도 해변의 공기를 쐬고 싶어하던 어머니였다. 게다가 해묵은 관절염으로 인하여 어머니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다. 현대의학으로도 관절염은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관절에 염증이 생겨 관절이 마모되었기 때문이다.

   지팡이에 의존해서 해변을 거닐면서도 산책을 즐겼다. 아마 산책하면서 많은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 내리는 듯했다. 해변을 마냥 산책한 저녁이면 도근주(桃根酒)를 찾았다. 도근주는 야생 복숭아나무의 뿌리를 파내어 잘라서 담근 술이다. 복숭아나무 뿌리와 소주와 설탕이 섞여서 만들어진 약주(藥酒)다. 한방에서는 도근주를 무릎 관절의 상처를 치료하는 약제로 사용한다. 관절염을 앓는 환자들에게는 확실하게 통증을 완화시키는 작용이 있는 듯하다.

   어머니도 도근주를 마시면 얼굴에 화색이 돌며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야생 복숭아나무 뿌리를 채취한 장소도 여러 곳이었다. 계속해서 도근주를 만들려면 복숭아나무를 보호해야 했다. 결코 나무를 통째로 파서는 안 되었다. 나무의 뿌리 일부를 조금씩만 파서 도근주를 담는 데 썼다. 그랬어도 야생 복숭아나무는 섬의 해변에 쫙 깔려 있었다.

   돌섬을 서너 시간씩이나 산책한 후유증인 듯했다. 어머니의 얼굴에는 미열이 끓고 있었다. 그랬어도 도근주를 찾았다. 도근주에는 항상 그윽한 향기가 났다. 술을 마시기 전에 향기에 취할 정도였다. 어머니도 도근주의 향기를 무척 좋아했다. 자줏빛으로 찰랑이는 술은 관절염을 다스리는 소중한 한약이었다. 술이 식도로 넘어가는 사이에 관절의 통증이 금세 가라앉는다고 했다.

   관절에 찾아드는 통증을 약주로 다스리며 어머니가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았다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거야. 이제 내가 떠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 너를 두고 떠나려니 가슴이 ?.”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한 채 목이 메어 흐느꼈다. 나는 어머니를 가만히 껴안고는 묵묵히 손바닥으로 등을 두드렸다. 의사는 나에게 말했다. 암 세포가 전신에 퍼졌기에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세상 떠나기 전에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돌섬은 진도 북서쪽 해안의 쉬미항에서 가까웠다. 돌섬의 남동쪽 해변에 야생 복숭아나무의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돌섬은 쉬미항에서는 북서 방향으로 4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주말마다 돌섬을 찾았다. 최대 길이가 650미터, 폭이 200미터에 달하는 무인도임에도 숲은 울창했다. 녹색으로 생동하는 잎사귀들이 해풍이 불 때마다 깃털처럼 나부꼈다. 걷기가 힘들까 봐 부축하려고 해도 굳이 마다하는 어머니였다. 어머니의 시선은 돌섬 서쪽의 수평선을 그윽이 굽어보고 있었다. 석양으로 불타는 바다의 물무늬에서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건지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곧잘 석양의 바다를 굽어보며 아버지를 떠올리곤 했다. 어머니의 눈시울에 맺힌 이슬로부터 또 아버지를 떠올린다고 여겨졌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은 재작년 봄철인 4월이었다. 가거도 서쪽 100킬로미터 해상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 조업하던 중이었다. 기상청에서도 예측하지 못했던 돌풍이 불며 선박들이 전복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지원한 대규모의 수색 작업에도 조난자들의 시신마저 찾지 못했다. 결국 아버지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 채 장례식을 치러야 했다.

   어처구니없는 재난이었지만 현실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장례를 치르고 나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원을 찾았더니 폐암이라고 했다. 암세포가 많이 퍼졌기에 항암제를 투입할 시기가 지났다고 했다. 수술이라든지 기타 치료의 길도 막혔다고 했다. 수명이 얼마나 남았겠느냐는 물음에 한두 달가량이라고 의사가 대답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마을에는 친척이라곤 없는 터여서 고아가 되는 것이 시간 문제였다.

   재작년 7월 하순경의 여름철. 어머니가 나랑 돌섬의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그 이튿날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곁에 함께 있어 달라고 말했다. 나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으며 흔쾌히 그러겠다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에 이불까지 펴 준 뒤였다. 혹시라도 몰라서 미리 진통제까지 준비해 두었다. 어머니가 옆으로 누우면서 나에게 등을 안마해 달라고 말했다. 나는 흔쾌히 어머니의 등 뒤를 안마했다. 그랬는데 나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안마하던 중에 더러 졸았던 모양이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머니의 눈시울에 눈물이 괴어 있었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대하자 급격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들임에도 어머니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리에 누운 지 얼마 안 되어 어머니가 잠들었다. 숨 쉬는 소리에 마찰음이 한없이 뒤섞여 듣기가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점차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소리마저도 평온스럽게 여겨졌다. 평소에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나는 잠도 어머니 곁에서 잤다.

   하지만 학습할 공부 때문에 옆방에 가서 책을 보기로 했다. 그리고는 어머니의 방에 불을 껐다. 수면에 방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정된 학습량은 많았던 반면에 공부에 소요된 시간은 적었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그걸 보충하느라고 자정이 넘게 책을 보다가 어머니에게로 갔다. 어머니의 방에 들어서니 왠지 분위기가 달랐다. 방이 썰렁하고 음산한 느낌으로 뒤덮인 분위기였다.

   느낌이 이상하여 즉시 어머니에게로 다가갔다. 어머니의 숨소리를 들으려고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숨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창졸간에 놀라 어머니의 코에 손바닥을 갖다 대어 보았다. 전혀 숨결이 와 닿지 않았다. 이미 운명한 터였다. 그럴 리가 없다면서 어머니의 코에 귀를 갖다 대어도 보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웃집부터 달려가 어머니의 운명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이 밤중인데도 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장(里長)도 집에 들러 상황을 확인하더니 사망 신고를 하겠다고 했다. 날이 밝을 무렵에 경찰관과 의사가 함께 집에 들어섰다. 이장이 사망 사실을 신고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어머니의 얼굴과 목 주변을 한동안 꼼꼼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사망 진단서에 폐암에 의한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고 서명했다. 사망 진단서가 발급된 뒤다. 경찰관이 나와 이장에게 장례를 치러도 된다고 얘기하고 의사와 함께 돌아갔다.

   마을에 친척이라곤 없던 부모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이런 나를 위해 이장이 손수 나서서 나를 도왔다. 이장과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머니를 방화곡의 아버지 곁에 묻었다. 친척이 없었으니 만고에 연락할 곳은 마을 사람들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마을 사람들이 성심껏 일을 도와 장례가 잘 치러졌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이었다. 이장의 조언으로 나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직후였다. 여전히 수능 공부에 몰입해야 할 고3 시기였다. 대학 진학을 위해 광주에서 고등학교에 재학하던 중이었다. 경제적 여건이 학업을 계속할 상태가 아니었다. 일단 학교에는 휴학 신청을 했다. 내가 출생한 마을의 이장(里長)을 찾아가 상담했다. 50대 중반의 머리가 벗겨진 이장이 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마을이 빈촌(貧村)이잖아? 어느 누군들 재정적인 여유가 있겠니? 휴학했다니까 내 밑에서 내년 2월까지만 일하라구. 그렇게만 한다면 나도 너를 돕겠네.”

   그 날로부터 나는 이장의 집에서 일손을 도우며 살았다. 일한 만큼 일정한 급료를 매달 지급해 주겠다고 했다. 이장은 낚시점을 운영하며 선박도 두 척이나 지닌 어민(漁民)이었다. 이장의 식구로는 이장의 아내와 딸이 있었다. 나와 동갑인 딸은 어릴 적부터 서울에 올라가 공부했다. 그런 관계로 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고3 시기라 한창 공부에 몰입하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휴학한 시점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낚싯배에 올라타 시간을 보냈다. 아침이면 이장이 낚시꾼들을 원하는 해안 절벽에 배로 실어 날랐다. 저녁이면 낚시꾼들을 다시 배에 태워 항구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이장의 일을 곁에서 거들었다. 낚시점을 운영하는 것은 이장 아내의 역할이었다. 낚싯배에 관련하여 낚시꾼들을 실어 나르거나 선박의 엔진을 점검하는 일. 이런 영역에 있어서 나는 이장의 조수 역할을 착실히 수행했다.

   해 보지 않던 일이라 엄청나게 힘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장과의 계약에 따라 나는 이장의 일을 열심히 도왔다. 한창 공부에 몰두해야 할 시기에 낚시꾼들이나 실어 날라야 하다니! 때때로 내겐 수없는 상념의 실타래가 뒤엉키곤 했다.

   진도읍 산월리의 쉬미항. 진도 북서쪽 해안에 국가가 현대식으로 구축한 어항(漁港)이다. 항구에는 나날이 낚시꾼들이 적지 않게 몰려든다. 갯바위의 명소를 찾는 낚시꾼들이다. 이들 낚시꾼들을 아침이면 태워다 주고 저녁에는 귀항시켜야 한다. 50대 중반의 이장의 이름은 장천수(張泉水)라고 했다. 머리가 벗겨지고 얼굴이 넓고 다부지게 생긴 체형을 지녔다. 언제나 온화한 표정에 얼굴에는 미소가 남실댄다. 그를 만난 이후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바다를 향한 그의 눈빛은 미풍에 나부끼는 깃털처럼 온화하게 느껴졌다. 그의 시선은 평상시에 수평선의 끝자락을 더듬곤 했다. 아무리 주위가 번잡하고 힘들어도 그의 눈빛에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누구든 그의 눈빛만 보면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었다.

   휴학하던 작년 가을이었다. 아침 식사를 한 지 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이장과 함께 선박의 엔진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틈틈이 이장이 엔진에 대해 나를 가르치곤 했다. 이장의 해박한 지식에 저절로 귀가 기울여졌다. 엔진이 고장 났을 때의 처치 요령을 이장이 들려주었다. 유사시를 대비하여 나는 열심히 들었다.

   낚시꾼들을 갯바위에 태워다 준 뒤였다. 이장의 집에서 이장 내외와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 뒤에 선박 학습을 위해 이장과 함께 바다로 나섰다. 선박 내의 내비게이션을 보고 배를 모는 것을 연습했다. 내가 배를 몰고 곁에서 이장이 지켜보았다.

   통통거리는 엔진 소리가 저녁연기처럼 허허롭게 휩쓸려 나갔다. 엔진 소리만 들으면 가슴속이 편안해졌다. 대기 속으로 흩어지는 엔진 소리를 들을 때였다. 머릿속으로 섬광이 일며 유년시절의 추억이 밀려들었다.

   집 앞에는 널따란 논이 펼쳐져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무렵의 가을철이었다. 논가에 농막(農幕)이 세워져 있었다. 참새 떼들을 내쫓기 위한 원두막 모양의 가건물이었다. 추수가 끝나면 곧바로 제거되는 구조물이었다. 따가운 햇살을 막으려고 지어진 농막이었다. 논으로 몰려드는 참새 떼들을 농막에 붙어서 고함을 질러 내쫓았다.

   “후여어! 후여어어!”

   무리를 지어 논으로 내려앉으려다 말고 참새 떼들이 지나가 버렸다. 참새 떼들은 연이어 날아들기 마련이었다. 다른 논에 딸린 농막에서도 참새 떼들을 부지런히 내쫓았다.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생활을 하던 시골 마을이었다. 한창 목이 잠겨들 무렵이었다. 논길을 따라 내닫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움보다는 무서움이 먼저 느껴지는 아버지였다. 논 세 마지기와 밭 두 마지기가 유일한 재산이었다. 배는 없어서 이웃 사람들의 배를 타고 조업하곤 했다. 어려운 형편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에는 늘 근심이 서려 있었다. 보통 시무룩하게 활기를 잃은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노여움은 잘 타서 걸핏하면 고함을 지르며 야단을 쳤다.

   논길을 타고 방천으로 올라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방천에 올라설 때의 표정을 살폈다. 의외로 따뜻하고 포근한 미소를 띠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앞에 가까이 와서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고함지르기가 힘들지? 새들도 그걸 아는지 모르겠어?”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말로 들려 어안이 벙벙했다. 목소리가 제대로 안 들렸다느니 새를 못 쫓았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당연히 꾸지람이나 들을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당혹스런 눈빛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볼 때였다. 아버지가 문득 내 양 손을 쥐고 나를 향해 말했다.

   “네가 고함을 질러댄 만큼 나중에 네게 도움이 될 거다. 어떤 도움이 될지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자, 이제 그만하고 집으로 가자.”

   아직 해가 반공에 걸렸는데도 아버지는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버지 뒤를 따라 잠자코 나도 걸었다. 그 날 따라 논가에는 메뚜기 떼들이 하얗게 치솟았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아버지로부터 모처럼 따뜻한 정감을 느낀 날이었다.

   갯지렁이를 낚시 바늘에 꿰어 다시 바닷물에 던져 넣는다. 물색이 연한 녹색으로 굽이치는 게 참 곱게 느껴진다. 고패질을 하면서도 물빛을 감상하느라고 물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연신 사방으로 파문을 일으키며 남실대는 물결이다. 물결이 미끄러져 나갈 때마다 수면으로 휩쓸리던 햇살이 어지럽게 나부낀다. 어디선가 새의 맑은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문득 산사(山寺)에서 청아하게 울려 퍼지던 풍경소리를 듣던 날이 떠오른다.

   이장의 집에서 머물면서 한 해를 넘기고 이듬해 2월을 맞았다. 한창 그물을 손질할 때였다. 찢긴 곳을 찾아 새 그물 조각으로 덧대는 작업을 했다. 꼼꼼히 손질을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일상의 일이기에 정신을 집중시켜 작업을 했다. 문득 이장이 나를 불렀다. 이장이 나를 부를 때에는 뭔가 중대한 일이 있을 때였다.

   나의 가슴이 두근대었다. 그러면서 마음속으로 생각에 잠겼다.

   ‘무슨 일로 나를 부를까? 혹시 내가 실수한 일이라도 생겼을까?’

   나는 생각을 감추며 조용히 이장에게로 걸어갔다. 언제나 청바지에 청색 잠바를 즐겨 입는 이장이었다. 이장의 몸매는 탄탄하여 상당히 근육질에 가까운 체형이었다. 하지만 이장의 얼굴에는 언제나 미소가 서려 있었다. 어떤 날도 얼굴에 미소가 스러진 때를 보지 못했다. 이장은 원래 미소를 얼굴에 달고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여겨졌다.

   살면서 내가 느낀 바로는 미소에도 여러 유형이 있음을 알았다. 대체로 백치(白痴)에 가까운 미소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머금었다. 그런가 하면 경지에 달한 느낌을 자아내는 미소도 눈에 띄었다. 이장의 미소는 달인 중의 달인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미소였다. 미소를 대할 때마다 저절로 자세를 가다듬게 되었다.

   마침내 이장의 앞에 다가섰을 때였다. 이장이 나를 향해 말했다.

   “진호야, 내가 네 복학 처리를 해 놓았다. 신학기 공납금도 학교에 납부하고 왔어.”

   잠시 말을 중단하고는 내 눈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하루 전에 광주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를 찾아 복학 처리까지 마쳤다고 한다. 선장이 내게 저축통장을 내밀며 말했다.

   “이게 네 이름으로 만들어진 통장이다. 휴학한 뒤로 열심히 노력한 네 임금이 들어있어.”

   통장을 열어 금액을 확인하던 내 눈이 놀라 휘둥그레졌다. 예상했던 액수보다는 너무나 컸기 때문이었다. 혹시 숫자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싶어 이장을 바라보았다. 이장이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이장의 목소리에서 저녁 안개같이 눅눅한 물기가 느껴졌다.

   “왠지 너는 내게 남이 아닌 듯한 느낌이 들어. 광주에서의 1년간 하숙비와 2학기 공납금이 되도록 넣었어. 그뿐만 아니라 국립대학 입학 등록금 정도는 충분히 될 거야. 내일부터 광주에 나가서 하숙집을 찾아 봐. 그리고 이제부터는 공부에만 전력을 다하도록 해. 여태껏 선미를 제외하고는 이 마을에서 대학에 진학한 인재가 없었어. 나는 네게서 충분한 가능성을 느꼈어. 그랬는데도 네게 일을 시켰던 것은 합법적인 노임을 주기 위해서였어.”

   이장의 말을 듣다가 점차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세상 떠난 부모의 얼굴이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고아의 몸으로 이장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해 오던 나였다. 묘한 일은 은연중에 이장이 스승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이다. 이장을 대할 때마다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스승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그물을 비롯한 어구를 손질하는 일. 선박의 엔진을 다루거나 배를 모는 일. 이들 일을 가르칠 때엔 영락없는 스승이었다. 서툰 부분은 익숙해질 때까지 반복해서 지도해 주었다. 지도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온화한 모습을 보였다.

   배를 몰다가 암초에 배가 걸렸을 때에도 침착하게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잘못을 지적하여 교정 지도를 할 때에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헛허허! 한다고 해도 실수란 건 생기게 마련이야. 절대로 주눅이 들면 안 돼. 침착하게 스스로 해결하는 자세가 필요해. 주변에서 누가 극성스레 떠들거나 말거나 마음을 가라앉혀야 해. 너는 지금 잘 하고 있어. 훌륭해. 바로 그렇게 하란 말이야.”

   이장을 대할 때마다 세상 떠난 아버지가 비교되곤 했다. 언제나 눈에는 핏발이 선 매서운 얼굴의 아버지였다. 유년시절에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나 무섭고도 매정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이장과 생활하면서부터였다. 아버지는 근엄하면서도 당당한 위풍을 지닌 사람으로 여겨졌다. 당당한 자신감과 강인한 정신력은 아버지의 강력한 장점이었다. 내가 이장을 대하면서부터였다. 이장이 아니었으면 평생 찾지 못했을 아버지의 장점을 연이어 발견했다. 나는 점차 이장과 아버지의 장점을 골고루 닮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정말 알아낼 수 없었던 궁금증이 남아 있다. 내가 이장한테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처신했던가하는 점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그건 전혀 아니었다. 이장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당혹한 표정을 지으며 극복하려고 애쓰는 나에게 밀려든 건 격려였다.

   “괜찮아. 그만한 정도도 훌륭했어. 앞으로 잘 하면 돼.”

   어느 순간부터였다. 나의 의식 속으로 돌연한 생각이 밀려들었다. 부모를 잃은 나에게 대자연이 내려 보낸 스승이 이장이라고 여겨졌다. 학교 공부에 앞서서 인생 공부를 시키려고 대자연이 보낸 스승. 이런 생각이 든 날부터였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30분씩 아령 운동을 하고는 샤워를 했다. 그런 뒤에는 대자연을 향해 경건하게 기도했다.

   ‘대자연이시여, 제게 훌륭한 스승님을 보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도 스승님의 지도를 잘 받아 열심히 수련하겠습니다. 세상 떠난 부모님께도 제 근황을 잘 전해 주세요.’

   부모를 떠올릴 적마다 잔등을 타 넘는 설움으로 목이 메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도를 한 직후였다. 가슴속으로 휘몰리는 해일처럼 부모를 잃은 설움이 끓어올랐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마당비를 움켜쥐고는 자신도 모르게 울먹였다. 가슴으로 시린 바람이 치밀어 오르면서 가슴에 구멍이 뚫린 느낌이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의 기복이 심해진 모양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마음을 달랜 뒤에 마당을 쓸었다.

   낚싯줄에 힘이 실리는 감각이 와 닿는다. 이내 파드득거리는 파동이 확실하게 실려 온다. 또 물고기가 물린 모양이다. 볼락인지 노래미인지 낚싯줄을 당기면서 가늠해 본다. 천천히 낚싯대에 부착된 얼레(reel)를 감기 시작한다. 얼레를 감기 시작한 뒤부터 한결 힘이 강하게 느껴진다. 딸려 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모양이다. 마침내 수면이 갈라지면서 감성돔이 고개를 내민다. 귀한 어종이라 왈칵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고기를 건져 살림망에 담그고는 바닷물 속으로 밀어 넣는다. 살림망은 잡은 물고기를 가두어 일시적으로 살게 만든 작은 그물이다.

   다시 미끼를 채워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운다. 생각난 듯 흘끔 언덕길을 바라본다. 아직 상희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나타날 시각이 아직 덜 되었음이 분명하다. 조금 전에 살림망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의 눈을 봤을 때였다. 세속을 초월한 이장의 눈빛과 닮아 있음을 느꼈다.

   광주시 용봉동의 국립 C대학교에서 입학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다. 내가 운동장의 행사장에 들어서기 직전이었다. 두 사람이 나를 막아서며 꽃다발을 건네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이장과 이장의 딸이었다. 그들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에 이장의 딸이 입을 열었다.

   “진호 씨, 진심으로 형설의 공을 축하해요.”

   말과 더불어 손을 내밀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그녀와 악수했다. 이장도 축하한다며 손을 내밀었다. 이장과 악수를 하는 순간이었다. 감정을 자제하려고 했는데도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고 했다. 세속을 초월한 스승임에 틀림없다고 여기며 가까스로 눈물을 숨겼다.

   광주에서 하숙집을 구하여 부단히 공부에만 몰두하여 노력한 결실이었다. 나 스스로도 대견하여 시내를 활보하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싶을 지경이었다. 경쟁률이 치열한 우주공학과에 합격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의 관문을 뚫었으니 이제 내가 꿈꾸는 세계로 매진하면 되었다.

   이장의 딸인 선미는 나와 동갑이지만 서울의 R대학교 2학년생이었다. 서울의 R대학교는 세계적인 사학의 명문이었다. 나를 축하하려고 일부러 서울에서 내려온 거였다. 그 날 나는 정말 감격스러웠다. 기분 같아서는 이장을 업고 운동장을 달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두 마리의 노래미를 낚아 살림망에 넣어 물에 담근 뒤였다. 다시 미끼를 꿰어 낚싯대를 드리우고는 고패질을 한다. 고패질은 낚싯줄을 바닥에서 한 뼘 높이로 오르내리는 동작을 뜻한다. 물고기를 낚시의 미끼로 유인하려는 의도에서 행해진다. 이동하는 미끼를 잘 공격하는 물고기의 습성을 이용하려는 측면이다. 잠시 잠잠했던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한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꽃잎들이 날려 와 수면에서 남실댄다. 햇살에 비친 꽃잎들은 홍옥처럼 요염하게 빛난다. 물결에 떠도는 꽃잎들을 바라보자니 잠깐씩 무지개의 색채가 일렁인다.

   다채로운 색상의 표본인 무지개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입시 학원에 강사가 되어 학비를 조달하기로 했다. 광주에서도 입시 학원은 널려 있었다. 하루에 네 시간씩만 강의해도 학비와 숙식이 해결될 정도였다. 자력으로 앞날을 개척한다는 것이 그처럼 보람스러울 수가 없었다. 진실로 삶을 성취하는 느낌도 들어 전신에 신명이 차올랐다.

   그러던 초여름이었다. 신입생 학과 대표가 타대학생들과의 남녀 교제 모임을 주선했다. 7명의 집단 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금남로 주변의 카페에서 만나 즉석에서 짝을 맞추었다. 그 때 만난 동급생의 여학생이 상희이다. 상희는 광주의 사립인 J대학교 미술교육과의 신입생이었다. 둘은 카페에서 빠져 나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무등산을 찾았다.

   무등산 증심사(證心寺)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런 뒤에 둘은 함께 산행 지도를 훑어 봤다. 증심교(證心橋)에서 출발하여 토끼등과 봉황대를 거쳐 중머리재까지 오르기로 했다. 그런 뒤에 당산나무 삼거리를 거쳐 증심교로 되돌아와서 하산하기로 했다. 등산로가 결정되자 둘은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을 시작했다. 산을 오르면서 살아 온 서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려주기로 했다. 나의 눈에 비친 상희의 얼굴은 수수한 용모로서 편안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미소가 매혹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시선이 이끌렸다.

   해발 467미터의 토끼등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가슴이 탁 틔는 느낌이 들어 정신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산을 오르기 전부터 둘 사이에는 교감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첫 만남에서부터 등산을 하기에 이른 거였다.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가정사를 들려주었다. 부모도 세상을 떠나서 혼자서 학비를 마련하면서 공부한다고. 주말에도 학원에 나가서 강의를 하는데 그 날만은 양해를 구했다고. 부모가 없는 나와 교류를 계속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상희는 명료하게 대답했다. 부모를 잃은 것이 어디 내 탓이냐고? 교류하는 데에 전혀 문제될 요소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희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토끼등은 무등산의 낮은 봉우리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부근에 몇 개의 벤치가 깔려 있었지만 이용자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상희와 나는 마음 편히 앉아서 대화할 수 있었다.

   상희는 목포가 고향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시청에 다니는 하급 공무원이라고 했다. 얼마 안 되는 봉급으로 4식구가 살아간다고 했다. 상희에겐 고등학교 2학년생인 남동생이 있다고 들려주었다. 생활이 벅차서 상희도 학원 강사로 뛰며 공부한다고 말했다. 둘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더욱 호감이 생겼다.

   그 날 이후로 둘은 자주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었다. 서서히 둘은 연정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교내 공학관 건물 앞에서 만났을 때였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가 즐겨 찾았던 돌섬을 찾을 계획이라고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그녀도 돌섬을 찾아오겠다고 했다. 진도의 쉬미항에서 돌섬을 드나드는 관광선이 시간마다 있었다. 돌섬은 진도의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였다.

   낚시를 하다가 살림망을 건져 올려서 들여다본다. 열대여섯 마리의 물고기가 헤엄을 쳐대고 있다. 숫자를 헤아린 뒤엔 다시 물속으로 담근다. 배낭에는 냄비와 휴대용 가스레인지가 들어 있다. 충분히 매운탕을 끓이고도 남을 지경이다. 매운탕을 끓일 정도만 물고기를 취하고 나머지는 살려줄 작정이다. 그러면서도 잡는 자체가 취미이기에 입질이 오면 곧바로 낚아 올린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고갯길을 올려다본다. 관광선이 도착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난 모양이다. 향산 고갯길을 내려오는 십여 명의 관광객들이 눈에 띈다. 아마 그들 중에 상희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상희를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댄다. 삶의 처지가 비슷한 동급생이지 않은가? 그러면서 근래에는 서서히 연정을 느낄 듯 말 듯한 상태다. 그랬기에 그녀를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말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대신에 수평선을 가르며 멀리서 발동선의 엔진 소리가 들려온다.

   발동선에서 나는 엔진 소리만 들리면 유년 시절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통통통 통통통통!

   마치 심장의 박동 소리를 듣는 느낌 같다고나 할까? 단조로우면서도 아늑한 소리가 마음을 다독여 주는 기능을 가진 듯했다. 발동선 소리에 버금가는 소리로는 뜸부기와 쏙독새의 울음소리가 있다. 뜸부기 소리를 떠올리자 내 의식은 유년의 시절로 내닫는다.

   밤이 늦도록 읍내에 간 부모가 돌아오지 않은 때가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다. 배가 아무리 고파도 부엌을 뒤지는 일은 없었다. 설사 뒤져 봐야 나올 것도 없다는 것도 알 정도였다. 밥 짓는 저녁연기가 마을의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면 친구들은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집으로 돌아와 보지만 부모는 집에 없었다. 곡식과 어물(魚物)을 들고 읍내 시장에 가서 저물도록 파는 거였다. 워낙 시장에 늦게 가니 귀가 시간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논밭에서 산출되는 농산물과 개펄에서 캔 조개류를 마련하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이웃집 사람들에 비하면 비교할 거리조차 못 되었지만. 부모는 빈한한 살림을 이겨 내려고 참으로 애를 썼다. 커서야 왜 그랬는지를 알았지만 유년시절에는 부모의 얼굴이 그립기만 했다. 저녁 시간이 되어 허기가 진 머리에는 현기증이 일곤 했다. 영양 공급이 제 때에 안 되어 생긴 생리적 현상이었다.

   방바닥에 앉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는 쓰러져 잠들기 마련이었다. 그러다가 잠결에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고 깨어나곤 했다. 밤이 늦어서야 돌아온 부모의 두런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현기증의 여운에 휩쓸려 머리는 여전히 어지럽기만 했다. 그런 유년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단조롭게 들리던 선율이었다. 선박의 엔진 소리나 뜸부기나 쏙독새의 울음소리 같은 음향이었다.

   내가 살던 마을 뒷산에 아버지의 가묘(假墓)를 만들어 세웠다. 아버지의 무덤 곁에 어머니의 유해도 묻었다. 그 야산 골짜기를 시골 마을에서는 방화곡(芳花谷)이라고 불렀다. 소쿠리같이 생긴 아늑한 골짜기는 남향이었으며 철쭉이 군락을 이룬 곳이었다. 봄이 되어 철쭉이 피기 시작하면 동화 속의 궁전을 이루었다. 철쭉이 필 무렵이면 나는 그 골짜기를 자주 찾곤 했다. 소나무 우거진 산야에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는 청아하기 그지없었다. 그 소리에 묻혀 영원히 헤어나지 못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풀을 뜯어 먹이려고 염소를 몰고 갔던 곳도 방화곡이었다. 봄철에 골짜기를 뒤덮은 철쭉의 군영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방화곡 앞의 평야에 부모의 논밭이 드러누워 있었다. 방화곡은 내 유년기의 꿈의 동산이었던 곳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시절이었다. 가을이 되어 아버지가 논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세우려고 했다. 나는 당시에 학교에서는 그림을 제일 잘 그린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 소문이 집에까지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나에게 당신의 얼굴을 그려 보라고 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자세를 잡고는 기다려 주었다. 그런 뒤에 그림을 보고는 매우 흡족하게 여기는 표정이었다. 자식의 재능을 완전히 인정해 준 거였다. 아버지가 박 바가지를 내게 내밀며 허수아비의 얼굴을 그리라고 했다.

   마치 일반인이 전문가에게 무슨 일을 부탁하는 듯한 자세였다. 나는 당당하게 먹으로 박 바가지에다가 허수아비의 얼굴을 그렸다. 눈썹이 무섭게 위로 치솟고 눈알이 튀어 나올 듯이 그렸다. 아버지가 바가지의 그림을 보고는 매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감탄했다. 그러더니 곧바로 논으로 들고 갔다.

   다시 바람결이 거세어지는 모양이다. 휘잉 휘이잉 소리를 내며 바람이 섬으로부터 바다로 불어 내린다. 그 바람에 해변의 물결 위로 복숭아 꽃잎이 나비처럼 떨어진다. 화사한 꽃잎을 보자 어머니의 숨결이 떠오른다.

   낚시 도구를 철거하려고 낚싯대를 접을 때였다. 상희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내 귓전을 파고들었다.

   “물고기 많이 잡았어? 우와, 여기에 든 걸 네가 다 잡았어? 일단은 밥을 먼저 지어야겠어. 그런 뒤에 매운탕을 끓여야 물고기의 신선한 맛을 보게 돼.”

   말을 마치자마자 물통에서 물을 꺼내 그릇을 헹구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물고기 수가 너무 많다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굵은 고기 여섯 마리만 건져 낸다. 그런 뒤에 나머지 물고기들은 바다로 살려 보낸다.

   씻은 쌀을 안쳐서 밥을 짓는다. 연이어 매운탕까지 끓인 뒤다. 폴리염화비닐 계통의 휴대용 자리를 땅바닥에 깐다. 자리의 중앙에 밥과 냄비를 놓고는 상희와 마주 앉는다. 이윽고 둘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둘이 식사를 끝내고는 설거지를 하여 식사 도구를 갈무리한다. 그런 뒤에 나란히 손을 잡고 복숭아나무 숲을 걷기 시작한다. 연한 붉은 색의 복사꽃잎들을 가리키며 얘기하다가 상희에게 도근주를 설명한다. 복숭아나무의 뿌리가 관절염에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고 들려준다. 어머니가 임종하던 날까지 도근주를 마셨다고 말하다가 울컥 목이 멘다.

   세상 떠난 어머니의 얼굴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복숭아 꽃잎들을 들여다보며 눈시울을 붉히자 상희가 내게 속삭인다.

   “이 꽃잎들을 따서 어머니의 묘소에 갖다 바치면 어때? 물그릇에 복사꽃잎을 띄우면 도근주를 대신할 만하지 않을까? 적어도 그만한 상징성은 있을 것 같애. 돌섬에서 방화곡까지는 멀지 않다고 했지? 나도 방화곡을 찾아 미래의 며느리로서 시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어.”

   나는 그녀의 진심어린 마음에 가슴이 온통 뒤설렌다. 도근주 대신에 복사꽃잎을 따서라도 어머니의 무덤에 인사하겠다는 여인이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중얼댄다.

   ‘상희야, 진정한 네 마음이 너무 고마워. 네가 마음을 준 이상으로 나도 너를 소중하게 대할 게.’

   그러다가 문득 상희가 한 말이 생각났다.

   ‘미래의 며느리로서 방화곡을 찾아 인사하겠다고?’

   생각할수록 내 가슴이 마구 두근댄다. 연정이 생기려는 단계였지 아직까지는 둘이 연인으로 맺어진 상태는 아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상희가 한 말은 연인이 되자고 선언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어찌 내 가슴이 뛰지 않겠는가? 나도 상희를 향해 가슴속의 말을 털어놓는다.

   “너도 나를 너의 부모님께 소개시켜 줄 수 있겠니? 만약에 부모님이 나를 사위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니?”

   상희가 내 손목을 잡더니 나에게 말했다.

   “이건 기밀에 관한 사항이라서 너한테만 들리도록 말해야겠어. 내게 귀를 좀 빌려줄래?”

   나는 엉겁결에 상희에게 오른쪽 귀를 내밀었다. 그러자 나긋나긋한 목소리의 상희의 말소리가 귓속으로 흘러든다.

   “진호 도령, 사실은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이미 허락을 받았어요. 이만하면 저를 연인으로 받아들일 만하죠?”

   이번에는 내가 그녀의 손을 붙잡으며 진심으로 말한다.

   “상희 낭자, 내가 고아임에도 부모의 허락을 받아 주셔서 고마워요. 오늘의 이 고마움을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사실은 내가 먼저 그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랬는데도 그대한테 선수를 빼앗겼지만 마음은 너무나 행복해요.”

   일부러 존댓말을 쓰며 장난기 어린 대화를 나눈 뒤다. 둘이 말을 마치자 자연스레 포옹을 한다. 그런 뒤에 둘이서 복숭아 꽃송이를 몇 송이 따서 모은다.

   청정한 솔바람이 하염없이 불어 내리는 방화곡(芳花谷)이다. 나와 상희가 부모의 무덤 앞에 나란히 섰다. 그런 뒤에 함께 두 번 절을 한다. 물이 담긴 사발에는 복사꽃잎이 구름송이처럼 떠서 바람결에 일렁이고 있다. 마치 어머니가 꽃잎처럼 물 위에 떠다니며 미소를 짓는 듯하다. 어머니의 향긋한 체취가 왈칵 내 가슴으로 밀려드는 느낌마저 든다. 재배를 하고 일어서려니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사내로서 눈물을 쉽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소리가 떠올랐다.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문다. 그랬는데도 울음이 어깨로 전이되었는지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창졸간에 울음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상희가 흐느끼고 있다.

   참다가 말고 터져 나오는 상희의 울음소리로 심장이 얼어붙는 듯하다.

   “바보같이 부모님 묘소에 와서까지 울음소리를 감추려고 해? 그게 나를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해?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몰라 줘?”

   전신에 경련이 이는 듯 파동이 일며 심장이 터지는 듯하다. 수천 길의 물속으로 곤두박질하는 느낌이 들며 몸이 한없이 나른해진다. 창졸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동시에 환영처럼 밀려듦을 느낀다. 근엄하면서도 당당한 아버지와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밀려들었다. 그러면서 상희와 나를 활짝 웃으며 반기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찰나 간에 일어난 환상적인 장면으로 가슴이 먹먹할 지경이다. 세상은 정적 속에 잠기고 청정한 솔바람 소리만 깃발처럼 파드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