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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한숨


                                                                                                                                                    손정모

  산골 어디에도 불빛 하나 없다. 물안개만이 골짜기로 흘러내릴 뿐. 새벽 4시 무렵이다. 마당을 쓸면서 생각에 잠긴다. 자정 무렵에 받은 전화에서였다. 어라연에서 식당을 차린 산막(山幕) 주인의 전갈이었다. 날 밝으면 여자 손님들이 산막으로 올라올 거라고 했다. 산막은 어라연의 상류인 세한곡(洗恨谷)에 자리 잡고 있다. 손님들 중에는 귀기(鬼氣)가 서린 처녀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잘 지켜보라는 거였다. 전화를 받는 순간부터 몸이 떨렸다. 주인의 탁월한 관상 감각임에랴! 산막은 관리용 본관 건물과 5채의 벽돌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층짜리 벽돌집마다 실내에는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벽난로에 땔 장작을 패려고 산막 뒤뜰로 걸어간다. 강물 소리에 묻혀 장작을 팰 시간이 내겐 한없이 소중하다. 기억의 공간으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장작은 과거를 더듬는 탐침(探針)이라고나 할까.

  잘 말린 참나무들이다. 도끼를 꺼내 잠시 숨결을 고른다. 이내 바람을 일으키며 도끼날이 장작을 가른다. 지난달에도 귀기가 서린 여자가 찾아왔었다. 단풍 관광을 나선 다섯 아가씨들 중의 하나였다.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깊다고 여겨졌다. 그러더니 사흘 후에 강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런데, 또 귀기가 서린 여인이라니! 온몸에 한기가 서리면서 마음이 자꾸만 불안해진다. 콸콸콸 흐르는 강물 소리.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소리를 낸다.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혀 울음 울 때는 다 그런가? 부모의 시신을 마주 한 날에도 파도소리로 귀청이 얼얼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풍어기(豊漁期)라서 그 날은 어머니까지 아버지의 소형 동력선에 몸을 실었다. 그랬는데 배는 자정이 되어도 돌아올 줄을 몰랐다. 그 이튿날 새벽에야 마을 사람들에 의해 부모의 시신이 인양되었다. 해무가 끼어 항로를 잡지 못하여 암초에 부딪힌 거였다. 배는 침몰해 버렸고 부모의 시신은 암초에 걸려 있더라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했다. 암초의 각진 바위에 걸려 있었어도 부둥킨 상태였다고 했다. 생명의 끈을 놓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둥킨 상태였다니! 마지막까지 함께 한 애틋한 정서가 강물처럼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그 때 전해진 부모의 메시지는 눈물나는 안타까움이었다. 이모 내외의 보살핌으로 가까스로 중학교는 마쳤다. 차마 더 머물기엔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저기를 떠돌게 된 거였다. 서서히 여명이 깔리기 시작한다. 다섯 시가 조금 지난 시점이다.

  “인호 형, 잘 잤어요? 벌써 많이 팼네요.”

  두 살 밑인 동료 종업원인 준태다. 세 명의 남자 종업원과 두 명의 여자 종업원. 이게 산막의 관리사무소 전체 직원이다. 어라연 계곡의 주인은 이따금씩 얼굴만 들이밀 뿐이었다. 팬 장작들을 준태가 수레에 실어 뒤뜰로 옮긴다. 장작을 수레에 실으며 준태가 말한다.

  “아침에 산막으로 서울 여자들이 올라온다면서요?”

  나는 고개를 끄떡여 대답을 대신한다. 7명 중의 한 여자에게 귀기가 서려 있다고 한다. 내 기억에 주인의 관상이 틀려본 적이 없었다. 그랬기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 준태를 향해 다짐을 받는다.

  “나중에 은애랑 연옥이가 일어나면 실내 청소를 말끔히 시키도록 해. 꼭 청소 마무리 검사는 자네가 해야 돼, 알았어?”

  준태가 흔쾌히 고개를 끄떡이며 수레를 끈다. 나의 전신에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수건을 챙겨 들고는 본관의 목욕탕으로 향한다. 더운 물을 채워 몸을 가만히 욕조에 담근다. 환기용 팬이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기분이 상쾌한 아침이다.

  “전업 화가들이래. 사흘가량 머문대나 봐. 그 동안에 잘 살펴 줘.”

  주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환기용 팬이 돌아가는 데도 서서히 샤워실의 거울에 물기가 서린다. 물기가 서림에 따라 나의 의식도 실타래처럼 내풀린다. 

  산막을 찾기 전에 카 센터 보조원으로 일하던 날이었다. 작업복에 기름을 묻혀 가며 자동차의 내부를 들여다보던 날이었다. 토요다 제품의 스포츠카를 끌고 젊은 여자가 카 센터에 들어섰다. 마침 주인 부부는 친척 결혼식에 다녀오겠다며 외출한 직후였다. 흰색의 미니스커트에 자주색 티 차림의 여자가 에어컨 가스가 샌다고 했다. 향긋한 헤이즐럿 커피를 여자에게 내밀며 조금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보닛을 열고 질소 기체로 일단 충전시켰다. 가스의 누출 장소를 알아내려는 터였다. 그리고는 에어컨 연결 호스 주변을 따라가며 비누칠을 하여 상태를 살폈다. 냉매 압축 펌프에 연결된 호스의 이음매가 유난히 느슨했다. 바로 거기에서 가스가 새고 있었다. 여자는 스물서넛 가량의 앳된 회사원이었다. 스포츠카로 심야의 도로를 질주하는 게 그녀의 취미라고 했다. 호스를 갈아 끼고 펌프와의 연결 부위를 꽉 죈 후에 천천히 냉매를 주입했다. 시동을 켜서 확인하니 이내 실내가 시원해졌다. 수리비를 받고는 길가로 차를 빼어 주었다. 여자는 지갑에 카드를 넣으면서 속삭이듯이 말했다.

  “잠시만 절 좀 만나 주실래요?”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가로수로 심긴 마로니에나무를 햇살이 관통하고 있었다. 풍성한 녹색의 잎들이 바람결에 휩쓸리고 있었다. 초등학생 둘이 나무를 올려다보고는 깔깔대며 지나갔다. 소년들의 깔깔거림에 의해 하늘의 구름 조각이 으스스 떠는 느낌이었다. 청정하기 이를 데 없는 웃음에 구름송이마저 취한 듯했다. 진열창 유리에 반사되어 떨던 햇살이 가루로 바스러지는 듯했다.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 내게 여자가 다가섰다. 대뜸 나의 얼굴을 그녀의 두 손으로 감싸더니 속삭이듯 말한다.

  “지금 너무나 외롭죠? 눈빛에 한없이 공허하다고 씌어 있어요. 저랑 같이 가요, 응?” 

내 눈빛에 실린 공허감 때문에 가슴이 저리다고 했다. 또한 그녀도 혈육이라곤 언니밖에 없는데 이틀 전에 죽었다는 거였다. 여자보다 6살 위인데 간암으로 사망한 거였다. 마음이 허탈하여 도로를 질주해대었지만 그것만으론 잠재우기 어렵다는 거였다. 아리따운 용모라 이미 내 마음이 혹한 상태였다. 카 센터의 문을 닫아걸고는 임시 휴업이라는 팻말까지 내걸었다. 설사 다음 날 주인으로부터 내쫓기는 일이 있더라도 대수로울 게 없다고 여겨졌다. 아직까진 마음을 정착시킨 곳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성산대교에서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 쪽으로 북상했다. 애기봉 못 미쳐 한적한 풀밭으로 차를 옮기더니만 여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자가 말했다. 바쁘지 않다면 술 한 잔 나누자고. 차의 옆에다가 폴리에스테르 자리를 깔고는 술과 안주류를 펼쳤다. 통성명을 하자며 나의 나이부터 물었다. 서른한 살이라고 했더니 나이보다는 훨씬 젊어 보인다고 했다. 스물세 살의 여자는 피륙회사의 의상실 디자이너였다. 기분이 울적하여 며칠간의 휴가를 얻었다고 했다.

  점차 주위가 밝아지더니 햇살이 퍼진다. 목욕탕 창문을 조금 열어보니 극성스럽던 물안개마저 어느 틈에 스러지고  없다. 시원스레 흘러내리는 강줄기만이 은빛으로 굽이칠 뿐. 여자 종업원들도 일어나 벽돌집 내부의 청소를 하는지 떠들썩하다. 다시 욕조 안에 몸을 담근다.

  “언니를 잃고 나니 완전한 고아 신세예요. 딱하게도 가슴을 터놓고 이야기할 상대도 없어요.”

  고아라는 울림이 시린 선율처럼 가슴으로 휩쓸려 들었다. 대관절 외로움이란 뭔지? 외로움을 떠올리자 가슴이 먹먹하게 젖어 들었다. 디자이너에겐 창안이 생명이었다. 이런 창안의 열기를 주눅 들게 만드는 건 정신적인 공황감(恐慌感)이었다. 여자는 공황감에서 벗어나려고 트렁크엔 언제나 술과 안주를 실었다. 차를 달리다가 어느 곳이든 내려서 술잔을 기울이려는 의도였다. 여자가 내면의 소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뒤에 올해는 언니마저 잃었다. 여자에게 살면서 가장 두려운 건 외로움이었다. 여태껏 애인도 없다고 했다. 여자와 대화를 나눌수록 외로워지는 건 나였다. 여자에겐 외로움이나 아이디어의 고갈에 대한 것이 문제이겠지만. 내겐 삶의 방향 자체가 미지수라는 게 가슴 아픈 문제였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제대로 된 직장 하나 없는 신세라니. 뭔가 나를 안주시킬 자리를 찾아야겠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니 불안할 수밖에는. 대학의 의류학과를 나왔다고 여자가 밝혔다. 나도 꿀릴 게 없다는 심정으로 내뱉었다. 나는 중졸 학력밖에는 못 되는 사내라고. 여자는 아무려면 어떠냐는 표정이었다. 일껏 긴장했던 내게서 스르르 기운이 빠졌다.

  이 때였다. 하늘에 비둘기 두 마리가 수작을 부리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연방 꽁지를 쫄 듯 바싹 다가섰다가 물러나기를 자유롭게 했다. 새들끼리 나누는 정서의 교환이라고 여겨졌다. 하물며 새들도 정서를 나누는데 나는 뭔가 자문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여자에게 술잔을 들이밀며 말했다. 여자의 얼굴에 어리는 홍조와 더불어 여자에게 색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여태 애인이 없다면 우리 사귀어 보지 않을래요?”

  취중에도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가볍게 웃어넘겼다. 웃는 눈가에서 까닭 모를 서러움이 피어올랐다. 그 여리고도 안타까운 여진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여자의 눈가에 실린 서러움의 색채로부터 문득 남해의 석양이 떠올랐다. 어촌인 고향에서는 부부가 함께 사망하면 화장(火葬)을 해서 재를 뿌리는 게 관습이었다. 부모가 세상 떠난 봄날이었다. 처처에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곤 했다. 부모의 시신이 발견된 남해의 무인도 근방이었다. 무인도에는 야생 벚꽃이 지천으로 어우러져 있었다. 석양의 해풍이 일 때마다 눈송이처럼 꽃잎이 흩날리곤 했다. 기관실의 이모부는 술에 취해 내내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나 혼자 갑판에서 뼛가루를 뿌려댈 뿐이었다. 핏빛으로 타는 저녁놀에 눈물을 닦아가며 뼛가루를 뿌릴 때였다. 무더기로 떨어지는 꽃잎들이 뼛가루에 휩쓸려 아스라이 소용돌이치곤 했다. 허공에서 나풀나풀 몸을 뒤집다간 허허로이 물결에 휩쓸려 버리고 마는 꽃잎들. 그 꽃잎들에 묻혀 어머니의화사한 미소가 스러져가고 있었다. 아찔한 석양빛에 취해 서글서글한 아버지의 눈빛마저 먹빛의 울음으로 잠겨들고 있었다. 따가운 햇살에 현기증마저 일 정도였지만. 부모를 떠나보내는 서러움에 나 혼자 갑판에 쪼그려 앉아 눈물을 닦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봄날의 일이었다. 용기를 내어 갑판에서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갑판에서는 기관실의 이모부마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를 가다듬어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고 싶었다. 왠지 부모님께는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이후에는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두어 번 목청을 가다듬고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가세요, 엄마, 아빠. 그토록 좋아하던 통영바다의 바람 속으로...엄마, 아빠 없다고 절대 기죽지 않을게요...할 말은 무지 많지만 이젠 말 안 할래요. 사랑해요, 안녕!”

  마지막 목소리엔 슬며시 울음기가 피어올랐다. 석양의 햇살이 왜 그리 따가운지. 눈물을 보이면 부모가 혹여 슬퍼할세라 울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었다. 깨문 입술 위로 하염없이 눈물만 방울져 흘러내렸다. 그 때까지 잠잠하던 바다였다. 점차 해풍에 휩쓸리며 바다는 수만 갈래의 황금빛 빛살로 부서지고 있었다.

  여자가 공허한 미소를 흘리더니 중얼대듯 말했다. 애인이란 조건이 비슷해야 맺어진다고. 하지만 그 날 하루만큼은 애인이 되어 줄 수도 있다고 했다. 하루는 애인이 되어 줄 수도 있다니? 들을수록 슬그머니 울화가 치미는 말이었다. 여자가 은연중에 나를 업신여긴다고 여겨졌다. 자격지심에 기인된 모멸감이 서서히 전신으로 밀려들었다. 울화가 치밀수록 취기가 급격히 가속되었다. 의식이 몽롱해지며 전신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여자가 나를 차의 뒷자리로 끌어들였다. 폴리에스테르 자리를 걷고는 여자도 차에 올랐다. 취중에도 음주 운전이라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의식이 먼저 허물어져 내렸다. 

  눈을 뜨니 승용차의 뒷자리에서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나려고 했다. 여자가 나의 귀에 속삭였다. 은밀한 계곡에 차를 세웠기에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원한다면 그녀를 가져도 좋다며 눈을 감았다. 발출되지 못했던 성욕이 일시에 머리를 쳐들었다. 어느새 여자의 향긋한 살 냄새에 취해 여자의 전신을 더듬기에 바빴다. 얼마나 그리던 여자의 알몸인가 싶었다. 머리가 말갛게 응결되도록 여자를 탐하고 싶었다. 서로의 마음이 통했음일까? 여자의 몸도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면서 내 몸으로 감겨들었다. 좀처럼 깨고 싶지 않은 환락의 시간이었다. 내 몸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자는 오금을 박았다. 그녀의 몸을 취한다고 해서 애인이 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어디까지나 애인이란 수준이 비슷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계곡의 차창 밖으로는 벚나무의 꽃잎이 하염없이 흩날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꽃잎들은 길 잃고 헤매는 꿀벌 떼처럼 느껴졌다. 겨우내 시린 바람결에 부대끼면서 꽃핀 봉우리들이었다. 세월 지나면 누가 떨어진 꽃잎 한 장인들 기억해 주랴? 바람결이 점차 거세어졌다. 줄기가 꺾인 꽃봉오리조차 승용차의 유리창에 부딪히곤 했다. 탁탁 탁탁탁! 하염없이 스러져 가는 마지막 모습들. 상실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면서도 마지막으로 기억해 달라고 절규하는 것만 같았다. 눈가에 조금씩 눈물이 맺히곤 했다. 스러지는 꽃잎들이 너무 서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흩날리는 꽃잎은 그래도 꽃으로서의 영예는 누렸겠지만. 사랑해 보지도 못한 내 가슴에 차오르는 건 설움의 덩어리뿐이었다. 해 보지도 못한 내 사랑이여, 올봄에도 죽음처럼 스러지고 마는가?   

  ‘애인이란 수준이 비슷해야만 이뤄지는 거예요.’

  여자의 말이 청각으로 밀려든 직후였다. 가슴이 거듭 공허해지면서 눈시울 가득 눈물이 맺혔다. 살아오면서 느낀 너무나 처절한 공허감의 현장이었다.

  수준에 맞는 삶이란? 그 날 이후로 내 가슴을 적시는 경구(警句)가 된 말이다. 나의 수준을 높이는 길은? 지금이라도 공부를 해야만 할까? 이 나이에 고등학교와 대학을 나온들 제대로 직장 생활이나 할까? 뜻만 있다면 검정고시를 통해 진학할 방법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의 재출발이 너무 늦은 것만 같다.

  목욕을 마치니 해가 중천에 솟구쳐 빛을 내뿜는다. 상쾌하고도 청량한 가을의 분위기가 몸속 깊이 스며든다. 산과 들녘엔 잎새마다 단풍으로 물결치는 시월이다. 산중의 날씨는 일교차가 심하여 9월 하순부터는 벽난로를 사용하고 있다. 남자 종업원들은 한낮이면 톱과 도끼를 들고 산을 오른다. 산에 들어가 고사목부터 잘라 나뭇단을 만든다. 만들어진 나뭇단은 지게를 이용하여 산 아래로 져 나른다. 일단 산기슭까지만 운반하면 화물차로 산막까지 실어 나른다. 준태와 진철이 한참 나뭇단을 만들 때였다. 핸드폰이 울어댄다. 폴더를 여니 주인의 목소리가 흘러든다. 방금 여자들이 식당을 거쳐 산막을 향해 떠났다고 한다. 하산하여 손님을 맞아 숙소를 배정하고 안내하라는 뜻이다. 나는 준태와 진철에게 나뭇단의 뒤처리를 맡기고는 곧바로 산막으로 내려간다.

  오후 1시 무렵. 7명의 여인들이 산막으로 내닫는다. 하나같이 30대 초반의 여인들이다. 투숙 기간을 확인하니 원래대로 사흘간만 머물겠다고 한다. 모두 전업 화가들인데 연중의 행사로 함께 여행하며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검정색 윗도리와 잿빛 바지를 입은 여자를 특히 잘 살펴봐. 갸름한 얼굴에 다소 귀티가 나는 예쁘장한 얼굴이야. 이후에 경찰이 산막을 찾는 일만 없도록 하란 말이야. 그럼, 잘 부탁해.”

  나는 여인들을 동편 벽돌집으로 안내한다. 다들 그림 도구들로 짐이 묵직해 보인다. 숙박부와 기재된 이름과 얼굴을 일일이 대조하면서 산막의 규정을 들려준다. 그리고는 벽난로의 사용법과 불길의 조정 방법까지도 알려준다. 이들 여인들 중 흑색의 옷차림을 한 여인은 지연이다. 서른세 살의 나이로 나보다는 두 살이 많다. 잠시 후에 여자 종업원들이 식사 준비가 되었다며 여인들을 관리 사무소의 식당으로 부른다. 주인의 말대로 지연의 미모는 눈부시게 빼어난 편이다. 온화한 듯한 표정 속에서도 이따금씩 짧게 분출되는 섬광 같은 눈빛. 감히 눈빛을 맞받지 못할 만큼의 섬뜩한 한기가 서려 있다. 나의 관점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눈빛이라고 여겨진다. 뭔가 사연이 깊지 않고서는 발출할 수 없는 눈빛이라고 생각된다.

  화가들이 식사를 할 때 종업원들도 다른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식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은애가 수선을 떤다.

  “취나물 한 번 들어보세요. 맛이 죽인다니까요. 어제 저녁에 아랫마을의 아주머니로부터 산  거예요.”

  식사를 하면서도 나는 어떻게 지연을 살필 것인지 궁리해 본다. 식사 후 낮 동안은 다들 함께 산행을 나서는 눈치다. 낮 동안 여자들이 함께 지낼 때는 별다른 일이 없을 듯싶다. 등산복 차림새로 은밀히 여인들을 따라 산행을 한다. 색안경을 끼고 등산모도 푹 눌러 쓴다. 눈썰미가 예리한 사람일지라도 원거리에선 쉽게 알아채지 못하리라 생각된다. 멀찍이 떨어져 산을 오르면서 서서히 의식은 과거로 내달린다.

  초등학교 4학년쯤의 일이었다. 선산을 둘러보느라 바람이 드센 저녁에 산길을 아버지와 함께 탈 때였다. 아버지가 나의 눈동자에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마침 하늘을 맴도는 매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사람한테도 날개가 필요해. 사람의 날개란 것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이야. 날개를 가꾸려면 쉴 새 없이 노력을 해야 해. 그래야만 높고도 멀리 날 수가 있어. 내 말 알아듣겠니?”

  아버지의 말뜻이 어린 나이의 나에게도 명확히 잡혔다. 언제 어디서건 활기롭게 삶을 사는 당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후로 내 가슴엔 날개라는 말이 소용돌이쳤다. 그러다가 부모와 사별한 뒤로는 그만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노력한다는 의미 자체를 부정하고 싶었다. 기껏 노력한 다음에는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싶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내게 죽음을 먼저 보여준 사람이 부모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중학교를 마치고 전국을 떠돌면서부터는 생각이 차츰 달라졌다. 공부를 해야만 제대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사회. 그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이 서서히 가슴을 죄어 왔다.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벽을 뛰어넘으려면 역시 날개를 가져야만 했다. 어떻게 날개를 갖출 것인가 생각할수록 암담하기만 했다. 부모가 오래 살기만 했어도 날개 문제는 잊을 수도 있었으련만. 생각할수록 가슴이 쓰리기만 했다. 출발이 늦다는 건 이래저래 심리적으로 도움이 안 되었다. 남들은 이미 어떤 수준에 있는데 나만 지금 무엇을 하는가? 지금 서둘러서 남들만큼 따라갈 수나 있겠는지? 시작도 하기 전에 절망감부터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내 나이 서른한 살. 이 나이에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입술을 깨물고 산을 타면서 생각에 잠긴다. 지금 나는 어떤 여자의 행색을 살펴야 한다. 이게 날개를 다는 일인가? 나의 날개는 이미 잘려 나가 버린 것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 할 수만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이 인생을 살고 싶다. 흔들리는 나뭇잎에서 전해지는 저 파동들은 내 마음을 알까? 인간이 첫 발을 내디딘 300만 년 전으로의 지구로 되돌아가고 싶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꿈꾸었던 원초의 세계에서 자유로이 비상하고 싶다. 눈앞에서 사각거리는 풀잎도 귓전을 울리는 새의 울음도 나의 날개와는 무관하다. 현재로서는 냉정한 객체일 뿐. 내가 오늘 숨이 진다면? 내가 오늘 풀잎의 이슬로 스러진다면? 어느 새가 날아와 울어줄 것이며 어떤 안개가 나를 덮어 줄 것인가? 저 여리디여린 햇살마저도 허공에서 돌아서서 흩날릴진대 나는 죽어서도 어디로 갈 것인가? 산길을 오르면서도 걷잡을 수 없이 가슴이 텅 비는 느낌이다. 텅 빈 가슴에 서리가 맺히면서 하늘이 얼어붙는 듯하다.

  산을 오르니 산등성이의 곳곳에 사진기나 스케치북을 든 사람들이 많다. 단풍철이라 등산객들로 산야가 북적댄다. 산의 중턱쯤에서 여인들은 둘러앉더니 의견들을 나누는 모양이다. 그러더니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에 가슴이 떨린다. 심중에 꺼려지는 곳은 낭떠러지나 물웅덩이 또는 고사목이다. 지연의 발길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가 두려워진다. 눈에 띄지 않으려 노력하랴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쓰랴 온 신경이 곤두선다. 지연은 성큼성큼 산등성이를 잘도 오른다. 자칫 잘못하다간 놓치기 십상일 듯하다. 바짝 신경을 쓰며 그녀의 뒤를 따른다. 그러면서 내심으로 중얼거려 본다. 여자의 눈빛이 좀 괴기스럽다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뭐람? 자신의 생명은 자신이 관리할 따름인데 타인이 개입할 필요가 있는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지난번에 경찰이 들이닥쳐 진이 빠질 정도의 취조를 하던 일이 떠오른다. 물은 말을 되묻고 그러다가는 또 되묻곤 하던 일이 짜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산에 쌓인 나뭇잎이 문제다. 지연을 놓치지 않으려면 바짝 따라가야만 하는데 나뭇잎 소리 때문에 불안하기만 하다. 지연이 눈치를 챈다면 나의 일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쌍안경을 사용하기로 했다. 쌍안경이라면 멀리 떨어진 물체까지도 정확히 감식해 낸다. 쌍안경을 쓰기도 망설여지는 게 치한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지연이 마침내 산등성이에 오른다. 서서히 경사가 가파른 강기슭 쪽을 향해 다가선다. 그러다가 우뚝 서서 생각에 잠기는 표정이다.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이따금씩 크게 머리를 내젓기도 한다. 점점 걱정스러워진다. 그냥 가서 스케치북을 펴고 작업을 하면 안 될까? 자꾸만 조바심이 인다. 마침내 어떤 뾰족한 바위를 골라 화구를 펼치기 시작한다. 스케치북을 펼쳐 들더니 이내 스케치를 시작한다. 눈에 띄지 않는 거리에서 망원경으로 주기적으로 살펴본다. 그 때마다 지연은 꽤나 열심히 스케치를 진행할 따름이다. 내 나름으로의 미행 감시는 잘 되는 편이라고 여겨진다. 산에 올라 하산할 때까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여인들이 산막에 든 지 이틀째까지도 별일은 없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녁 무렵이다. 다음 날이면 무사히 산막을 떠나가게 되는 날이다. 그 동안 지연은 꽤 많은 양의 그림을 그렸다. 그 날도 아침부터 새로운 스케치북으로 바꾸어 산을 올랐다. 추측컨대 다른 여인들도 꽤 많이 그려댄 모양이다. 어스름이 지는 다섯 시 무렵이면 지연을 비롯한 여인들은 하산하기 시작한다. 하산마저도 무사히 끝난 뒤에 여인들은 식당으로 들어선다.

  이윽고 저녁 식사도 끝나고 여자들은 벽돌집으로 들어간다. 지금껏 저녁에 벽돌집으로 들어간 뒤엔 여자들은 바깥으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은 그녀들이 산막을 떠나는 시점이다. 그래서 변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잘 지켜보라는 전갈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여기면서도 혹시나 싶어 동편 벽돌집 바깥을 은밀히 지켜본다.

  놀랍게도 밤 9시 무렵에 지연이 흑색의 원피스 차림으로 벽돌집을 빠져 나온다. 손에는 하얀 천에 싼 상자 같은 걸 들고 있다. 일행도 함께 나오려니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지연이 향하는 대로 이끌려 나도 따라 나선다. 때마침 보름이라 달이 반공에 걸려 사방이 훤하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초목의 잎새마다 달빛이 젖어 번들거린다. 세찬 바람이 일 때면 폭포의 물줄기처럼 달빛이 흘러내린다. 사방에서 바람이 치솟는다. 바람의 중심이 어디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지연은 험난하기 짝이 없는 세한곡의 줄지은 칼바위 일대로 다가서고 있다. 점차 가슴이 펄떡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예감이 좋지 않은 느낌이다. 아예 준태나 진철을 부를까도 싶어진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으며 조심스레 지연을 지켜보기로 한다. 칼바위 부근은 강줄기가 폭포를 형성하는 곳이어서 실족하면 죽음과 직결되는 위치다. 하필이면 칼바위 일대로 발걸음을 옮기다니! 호루라기라도 있으면 불어서 내려오라고 외치고도 싶다. 만약 그랬다간 미행한 것이 드러날 우려도 있다.

  골짜기로 휩쓸리는 물안개의 머리를 풀어헤치면 지연과의 첫날의 만남이 떠오르리라. 첫날의 저녁 식사 후였다. 내가 산막 주위로 흘러내리는 강물을 굽어볼 때였다. 막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시점이기도 했다. 지연은 커피를 마시다가 내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여기서 사신 지 얼마나 되었어요? 물안개가 언제부터 급격히 끼기 시작하죠?”

  “석 달쯤요. 물안개의 생성에 대해선 아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물안개를 바라보는 지연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안개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도 시선은 강심으로만 박혀 있었다. 강심 어딘가에는 지연이 찾는 무엇이라도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30대 초반이면서도 치렁치렁한 생머리를 늘어뜨려 여대생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단아한 용모에 비해선 눈빛은 섬뜩할 정도로 매서운 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다. 지연은 나의 얼굴을 말끄러미 들여다보면서 어떤 생각에 잠기는 모양이었다. 몇 분이 흐른 뒤에 지연은 벽돌집으로 돌아갔다.           

  지연은 물줄기가 세찬 칼바위에 올라서더니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팔을 벌려 두어 번 몸을 뒤흔들더니 천천히 손을 뒷머리로 가져간다. 이윽고 머리를 묶은 끈이 내풀리며 머리카락이 우수수 바람결에 흩날린다. 연이어 그녀가 합장을 하며 가만히 고개를 숙인다. 머리카락을 풀어 젖히고 합장을 하는 광경을 바라보자 왈칵 소름이 끼친다. 점차 지연이 죽음의 소용돌이로 다가서는 것만 같아서 가슴이 펄떡거린다. 제발 저 동작에서만 멈추어 준다면! 그리고는 조용히 산막으로 되돌아가 준다면! 마음 같아서는 당장 소리를 질러 바위에서 내려오라고 외치고 싶다. 그랬다간 정말 놀라서 실족사할 위험이 크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가슴만 졸이고 있을 때다. 지연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천천히 신발을 벗는다. 이 때 나의 머릿속으로 왈칵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마지막 동작이 신발을 벗는 행위라는 사실이.

  나도 모르게 손뼉을 막 쳐댄다. 고함을 지르거나 달려 나가는 일보다는 훨씬 안전하리라는 생각하면서. 아닌 게 아니라 지연은 흠칫 놀란 표정이다. 온몸에 두려움의 기색이 역력하다. 멀리서도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잠깐만요, 손님. 저는 산막의 인호예요. 거긴 위험한 곳이라서 어서 내려오세요. 어서요!”

  지연은 다소 안심한 표정으로 칼바위에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뛰다시피 지연의 곁으로 다가선다.

  “한밤중에 웬 일이세요? 왜 신발은 벗었어요?”

  “어머, 밤인데도 저를 미행하셨어요?”

  나는 잠시 얼굴을 붉히며 일순 말문이 막힌다. 그러면서도 칼바위 아래로 지연을 내려서게 팔을 이끈다.

  “이 팔 놓으세요. 지금 당장에요!”

  나는 당혹감에 휩싸인 채 손을 푼다. 그리고는 지연의 얼굴을 망연히 들여다본다. 지연은 잠자코 자신의 옆을 가리키며 칼바위에 앉는다. 나더러 그녀의 옆에 앉으라는 모양이다. 무형의 힘에 이끌리듯 나는 그녀의 곁에 붙어 앉는다. 나란히 앉고 보니 밤의 정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내가 곁에 앉았어도 지연은 망연히 흘러내리는 강물을 바라보고만 있다. 흘깃 바라보니 지연의 눈빛에 초점이 풀린 느낌마저 든다. 갑자기 머리끝이 우쩍 일어서는 기분이다. 혹시 지연이 물귀신이 둔갑한 실체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잠시 황당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다. 지연이 자신의 목으로부터 앞가슴에 손을 집어넣는다. 앞가슴 자락을 헤치는 광경을 보기가 민망하여 나는 잠시 고개를 돌린다. 다시 고개를 되돌리려는 순간. 지연이 느닷없이 칼끝을 나의 목울대에 들이민다. 그녀의 왼 손에는 플라스틱 칼집이 들려 있다. 너무나도 민첩한 몸놀림이라 미처 피할 겨를도 없었다. 목울대에 칼날의 끝이 따끔거리는 게 약간은 상처가 난 모양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그녀의 눈동자만 들여다본다. 혹시라도 귀기가 어리면 수도(手刀)로 그녀의 손목을 후려칠 생각에서다. 잠시 긴장된 순간이 지나자 그녀가 스스로 칼을 내리며 내뱉는다.

  “당신이 치한이었으면 오늘 여기서 죽었을 거예요. 다행히 당신의 마음이 깨끗했기에 살아남은 줄이나 알아요.”

  어이가 없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황당한 마음에 잠시 말까지 더듬는다.

  “내가 왜 여기 온 줄이나 온 줄이나 아, 아세요?”

  그제야 여인이 씽긋 웃더니 칼을 강으로 던져 버린다. 은빛 섬광이 번쩍 일더니 칼은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칼을 강물 속으로 던져 버린 그녀. 그녀가 나를 믿는 걸까? 창졸간에 다시 한 번 혼란이 인다.

  “사흘 전부터 댁의 미행을 알아챘어요. 하지만, 밤중에도 미행하리라곤 미처 몰랐어요. 예술인들은 감성으로 통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에요. 댁이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새들이 비상하는 동작과 돌 구르는 소리까지 감출 순 없었다구요. 새들이 날아오를 땐 가까이에 반드시 위험물이 있을 경우거든요. 첫 날부터 새들의 비상을 눈여겨 지켜봤죠. 그런데 정작 당신은 비상할 날개나 지니고 있으세요?”

  “......”

  말문이 막힌다 함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과거부터 시달려 온 날개를 단숨에 지적해 내는 여인을 만나다니? 묘한 충격에 전신이 마비되는 느낌마저 든다. 어쩜 여인을 만난 건 전생의 인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뭉클 든다. 그래서, 마음을 흔쾌히 열기로 작정한다. 여인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주인으로부터 들은 귀기(鬼氣) 서린 표정에 대해 털어놓는다.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듣고 나서 응답한다. 주인한테도 신기(神氣)가 있는 것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아무튼 사흘 동안의 배려에 참으로 고마웠다고 지연이 말한다. 그러면서, 그녀의 과거사를 강물에 띄워 보내듯 들려준다.

  그 날 밤은 그녀의 남편이 죽은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라고 한다. 그녀는 1년 동안 남편의 화장한 골분(骨粉)을 간직해 왔다. 1주기가 되는 그 날 밤을 기해 강물로 떠내려 보낼 참이었다. 그랬기에 자신도 몰래 눈에 귀기가 비쳤을지도 모른다고 털어놓는다. 그녀의 남편은 미국의 대학에서 발암 물질을 연구하다가 폐암에 걸렸다. 2년간을 투병하다가 작년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사별한 남편에 대한 애환이 깊어 그녀가 산막까지 찾아든 거였다.

  지연이 가만히 보자기를 푼다. 바위를 오르면서부터 들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내가 물러서 주기를 바라는 눈치다. 원하는 대로 그녀에게서 멀찍이 물러선다. 그녀가 뼛가루를 강물 속으로 조금씩 날려 보낸다. 이십여 분이 지나도록 그녀는 하염없이 뼛가루를 강물에 날려 보낸다. 이윽고 상자가 비게 되자 그녀는 소리 죽여 훌쩍이기 시작한다. 바라보는 내 마음조차 저려 든다. 소리를 죽이려고 애쓰는 눈물겨운 모습.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을 지경이다. 부담감을 덜어 주려고 나는 강기슭 아래로 가만히 내려선다.

  그녀와 떨어진 강기슭에서다. 내게도 설움이 끓어올라 하늘의 달을 올려다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세상을 떠난 부모의 얼굴이 달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듯하다.

  “얘야,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어. 이제라도 용기를 내어 날개를 달아보렴.”

  눈시울이 핑 돌며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 나이에 어디서부터 출발하죠? 너무나 막막하여 미칠 것 같아요.”

  내 기분에 너무 취했던 모양이다. 문득 지연에 대한 생각이 미치자 느닷없이 불안해진다. 섬광 같은 직감 때문이었을까? 나도 몰래 냅다 고함을 질렀다.

  “지연 씨, 어디 있어요?”

  칼바위 위로 달려가 본즉 지연의 신발과 골분 상자만이 나뒹굴 뿐이다. 지연을 고함 쳐 불렀지만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다만 흘러내리는 강물 소리만 귓전에 날아와 박힐 뿐이다. 칼을 강물에 던지는 걸 보고는 결코 불상사가 일어나지는 않겠거니 여겼다. 그랬는데 일이 이 지경이 되었으니 가슴에 구멍이 펑 뚫리는 심정이다. 여태껏 터뜨린 적이 없는 울음소리가 자신도 몰래 터져 나왔다. 일단 산막으로 돌아가 종업원들을 깨워야겠다는 생각밖엔 없다. 흑흑거리는 숨결을 달래며 산막으로 내달리는 참이다.

  문득 길을 막아서는 인영(人影)이 있다. 고개를 들어보니 맨발의 지연이다. 나도 몰래 반가워 와락 달려들어 그녀를 껴안는다. 그녀는 차디찬 석상인양 굳어 있다.

  “어디 있었어요? 제가 부르던 소리 안 들렸어요?”

  지연이 품에 안긴 채 입술을 깨물며 속삭이듯 말한다.

  “인호 씨가 자리를 뜨고 나면 조용히 남편 곁으로 갈 작정이었어요. 그러다가 나를 위해 울음을 터뜨리는 댁을 보고는 생각이 달라졌어요. 나를 위해 울어준 댁이 한없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그래 살았으니 됐어요. 이제부터 부군 대신 제가 지연 씨를 돌봐 드려도 되죠, 네?”

  “저는 다시 태어난 삶이에요. 조금 전에 댁이 절 부르던 순간에 말이에요. 저도 댁의 꿈이 이루어지게 곁에서 도와 드릴게요.”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별빛을 받으며 지연에게 다짐을 받는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죽음을 생각 말라고. 지연도 눈시울 가득 눈물을 글썽이며 천지신명께 맹세를 하겠다고 다짐한다. 지연과 포옹을 하며 조심스레 물어본다. 어떻게 하면 소멸된 날개를 달 수 있겠는지를 물어본다. 공부를 해야만 가능하리고 한다. 결코 서른한 살이 늦은 나이는 아니라며 재출발하라고 격려해 준다. 순간적으로 눈시울이 달아오른다. 그 얼마나 듣고 싶었던 말이었던가? 지금껏 그 누구도 내게 들려준 적이 없는 말이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하늘의 달을 올려다본다. 달의 밝은 음영의 자락에서 세상 떠난 부모가 둘을 내려다보는 듯하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뭉클 든다. 부모와 지연의 격려만 있다면야! 정녕 그 어떤 난관이라도 헤쳐 나갈 것만 같다. 지연이 귓전에 속살대며 묻는다. 따사로운 바람결이 가슴으로 휘몰리는 느낌이다.

  “장차 날개를 달면 무엇부터 하고 싶으세요?”

  결정을 못해 가장 난감해 하던 부분의 질문이다. 얼결에 대답이 흘러나간다. 

  “자동차 공학과에 진학하여 늦게라도 카 센터를 제대로 운영하고 싶어요.”

  지연은 아주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그럼 됐어요. 그 마음 하나로 인호 씨는 날개를, 아주 커다란 날개를 이미 단 거예요.”

  충격으로 일시에 머리가 텅 비는 느낌이다. 마음의 날개를 찾느라고 그 얼마나 괴로웠던가? 그런 날개가 자신도 몰래 내면에 자리 잡혀 있었다니? 숨겨진 내면의 힘찬 물줄기를 이제야 찾은 듯하다. 나의 등줄기와 사지에서도 시원한 기류가 감도는 느낌이다. 전신이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듯하다. 내게 자신감이 붙으면서 상대에게도 관심이 쏠린다. 곧바로 지연에게 의견을 묻는다. 둘이 결합하면 무엇부터 도와야 하는지를. 그녀는 속삭이듯 말한다. 그녀가 미술 창작을 지속하도록 도와 달라고. 그것 이상 바랄 게 없다며 내 품에 얼굴을 묻는다. 그녀의 체온이 따사롭게 휘감겨든다. 나도 그녀를 힘껏 끌어안는다.

  강바람이 차갑게 살갗을 파고들 무렵. 지연과 나는 강기슭에서 산막으로 되돌아온다. 지연을 벽돌집으로 보내는 대신. 지연이 볼일로 새벽에 돌아온다더라고 그녀 일행에게 전한 뒤. 산막 본관의 텅 빈 주인용 숙소에 함께 들어선다. 환기를 위해 잠시 창문을 열어젖힌다. 여전히 보름달은 중천에 떠서 잔잔한 빛살을 흩날려 보낸다. 동강을 타고 흘러들어온 강바람이 창문을 흔들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는 듯하다. 이제는 두 영혼이 이슬로 스러지지는 않겠다면서.

(200자 원고지 86장)